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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아서
박산호 지음 / 더라인북스 / 2022년 8월
평점 :
<너를 찾아서>는 러브스토리다.
선우는 갓난아이 연우를 데리고 앞집으로 이사 온 아랑을 사랑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상대를 순수하게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마음이라는 것. 아랑은 바로 그 선물을 내게 준 사람이다. 처음이자 유일한 사람.”
제대로 사랑받고 자라지 못했던 선우는 자신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사랑에 5년 만에 절절한 고백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그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때 선우가 스물이었고 아랑은 선우보다 열 살이 많은 나이였다.
그리고 현재, 서른 다섯 선우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비오는 날 아침 학교 캠퍼스에서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 준 여학생 지우가 아랑과 너무나 닮아 깜짝 놀란다. 지난 15년 간 사라진 아랑을 계속 찾았지만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는데 그녀와 닮은 지우를 만나며 선우는 속절없이 흔들린다. 제 평생 유일한 사랑인 아랑과 닮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스며들게 되는 자신이 당황스럽지만 이 설레는 감정이 싫지만은 않다.
‘선우 이야기’는 선우의 사랑이야기다. 아랑은 선우에게 첫사랑이자 끝사랑이었고 말없이 떠나버린 그녀를 15년 동안 찾아 헤매고 있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다는 건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선우 이야기’는 사랑의 정의를 묻고 있다. 작가는 독자들이 사춘기 남학생의 치기어린 사랑으로 여길 수 없도록 선우의 상황을 완벽히 세팅해놓고 선우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한다. 하나의 단편처럼 완결성이 있으며 이어지는 ‘아난 이야기’ ‘연우 이야기’ 역시 그러하다. 세 편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랑의 절실함은 ‘선우 이야기’에 가장 극대화 되어 있다.
<너를 찾아서>는 박산호 번역가의 소설 데뷔작이다. 인스타에서 출판사 작품 소개를 봤을 때 스릴러물이라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영어 번역으로 유명한 그가 쓴 소설은 어떨지 아주 궁금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 명의 등장인물 각각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첫 서술자 선우의 이야기에 미스터리적 요소가 가장 많다.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앞에서 궁금했던 것들이 하나씩 풀리는데 이 소설은 마치 퍼즐 맞추기 같았다.
처음, ‘선우 이야기’는 사각 퍼즐 판 중앙에 눈에 띄는 조각 몇 개만 올려둔 채 네 귀퉁이와 가장자리만 채운 형국이었다. 안쪽의 그림이 무엇일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두 번째 ‘아난 이야기’에서 어려운 조각들의 자리가 착착 맞춰지더니 세 번째 ‘연우 이야기’는 가속도가 붙어 남아있는 퍼즐 조각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완성이 되면 좋으련만 퍼즐 맞추기가 꼭 그렇듯 마지막 남은 몇 조각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게 한다. 이 소설도 마지막, ‘모두의 이야기’에서 마지막 조각의 역할을 하는 반전의 반전이 드러나면서 스릴러적 요소의 정점을 찍는다.
스릴러 소설의 시점이 1인칭인 경우가 많다. 화자가 보고 생각하는 것으로만 서술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의 한 면만을 보여준다. 그것이 독자가 오해하는 장치로 작동해 독자가 숲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화자를 여럿 내세워 각기 다른 시각을 서술함으로써 독자에게 사건의 다른 면을 볼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는 이러한 기법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위해 특수한 능력을 등장인물 한 명에게 부여한다. 두 번째 화자 아난은 타인과 신체적으로 접촉했을 때 그 사람의 기억 속 어떤 장면을 볼 수 있다. 이것은 1인칭 화자의 서술로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초능력적 요소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 아난의 외할머니를 무당으로 설정하여 독자가 아난의 능력을 무리 없이 인정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 반전에서도 아난의 이 능력이 큰 역할을 하는데 독자에 따라 아난과 선우 사이의 대화를 반전으로 인식할 수도, 아난이 별장으로 돌아오기 전 선우의 독백이 더한 반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미안해, 연우야. 널 사랑하지만 아랑은 영원히 나만의 아랑이어야만 했어...”
우린 첫사랑에 이중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뭣 모르고 하는 사랑이라 폄하하는 한편 순수함에 영원성을 더해 숭고한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것이 열다섯 소년의 사랑, 사라진 그녀를 찾는 선우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주인공 나이 때문에 설득 안 된다는 독자를 위해, 사랑은 죽음조차 불사를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는 선우의 아버지를 사랑한 선아 누나를 등장시켰다. 그러나 선아 누나는 선우에게 남긴 편지에 이렇게 썼다.
“선우야,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해. 하지만 잊지 마. 사랑은 항상 널 실망시킬 거야.”
우리는 사랑에 끝이란 없길 기대한다. 해피엔딩이라는 말조차 ‘둘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뜻이라고 여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절절하게 사랑했건만 배신하고 죽인다. 둘의 사랑을 양팔저울 위에 올려놓으면 수평이 될까. 내가 더 많이 사랑하면 실망하고 슬플까. 사랑하면 충만함만 그득할 것 같지만 사랑해도 쓸쓸하다.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이고, ‘선우의 이야기’를 한 남자의 사랑이라고 요약하기도 힘들다.
나에게 이 소설의 반전은 선우의 사랑이 아니라 선아의 사랑이었다. 이 소설은 사라진 아랑을 찾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줄거리이지만 ‘선아의 이야기’를 마지막에야 발견했다. 선우의 사랑이 순수한 이미지였다면 선아의 사랑은 구질구질했다. 눈여겨 읽고 싶지 않았고, 그녀의 행동이 사랑이란 말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비난하고 싶었다. 대체 왜 저런 인간을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에 가서야 작가가 숨겨둔 소설 속 소설 같은 이야기를 찾아냈다. 프롤로그에 배치한 작가의 대범함에 엄지 척했다. 내가 늦게 눈치 챈 둔감한 인간일 수도 있다. 선아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