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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인생
저우다신 지음, 홍민경 옮김 / 책과이음 / 2022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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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작가 저우다신의 소설 <우아한 인생>을 450쪽이 넘는데도 단숨에 읽어 내렸다. 노년을 위한 지침서 같아서 이런저런 정보를 취할 수 있었고, 너무나 소설적이라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을 것 같았다. 물론 소설 맞다. 소설이란 걸 알고 읽으면서도 등장인물들의 상황에 설마 이럴 수가 있을까 기막혀 했다. 그건 작가의 구성능력 때문이었다.
이 소설은 70대 노인의 간병인으로 들어간 20대 여성의 체험을 강연하는 형식이다. 초반에는 실버타운과 간병 로봇 홍보에 이어 노년기의 특징이 서술되어 실버타운 홍보영상을 보는 것 같았다. 노화 방지나 장수를 위한 각종 제품 소개가 이어져마치 실버타운에 들어간 노인이 되어 그런 제품들을 이용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간병인 중샤오양이 나와 강연을 시작하는데 자신이 겪었던 일을 술회한다.
20대 여성 중샤오양이 70대 남성 샤오청산의 간병인으로 일하며 쓴 일지 같은 내용 속에 의학 관련 전문지식과 중국의 장수 지역, 대증요법들을 섞은 구성 방식 때문에 소설보다는 실제 경험담을 읽고 있는 느낌을 받게 했다. 우리는 이미 노년이거나 노년이 되어가고 있는 중이다. 제 아무리 젊었을 때 전문직으로 활약했다 하더라도 나이가 들면 판단력이 흐려진다. 소설 속 주인공 노인 샤오청산은 판사 출신임에도 노인들을 노린 사기에 번번이 당한다. 사기꾼들은 역사나 통계, 의학 지식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하여 꾀었다. 불로초를 찾는 진시황이 저랬을까 싶을 만큼 홀랑홀랑 넘어갔다. 심신이 허약해지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린다지만 주인공은 장수를 위해 맹목적이었다.
작가는 주인공 샤오청산을 통해 70대에서 80대까지의 나이에 노화로 인해 나타나는 변화와 발생 가능한 질병들을 보여준다. 그래서 노년기에 접어든 이들이 읽으면 자신의 상황에 깊이 감정이입하여 읽게 될 것이다. 곧 자신에게 닥칠 상황들이므로 주의 깊게 읽으며 도움이 될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 노년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자신에게 다가올 일들이고 부모는 이미 노인일 것이므로 여러 가지 생각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엄마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아버지께서는 생활의 불편함이나 질병에 대해 그리 표현하지 않으신다. 하지만 엄마는 여러 질환으로 자주 병원 신세를 졌고 현재도 각종 약들을 많이 복용중이다. 현재 자신의 상태가 몹시 불만스럽다. 양쪽 무릎 모두 인공관절 수술을 했음에도 통증이 있고 보행에 불편하다. 거기에 심장 석회화 때문에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다.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도 별 무리없이 잘 걸어다니는 이들을 보면 화가 나는 모양이다. 전화 통화할 때마다 나는 왜 이 모양이냐며, 왜 이러고 사냐며, 팍 죽으면 좋겠다고 푸념을 한다.
그럴 때마다 마음 편하게 먹으시라고, 이렇게 살아 있는 게 좋은 거 아니겠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실 지겹다. 나는 나중에 애들에게 저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고, 나이가 들어도 뭔가 몰두해서 할 일이 있어야겠다고 뼈져리게 느꼈다. 지금 하는 여러 가지들 중에 계속 하고 싶은 건 서평단 활동이다. 과연 노년이 되어서까지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든 생각, 그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늙었다고 출판사에서 신간 서평단으로 뽑아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사서 읽고 쓰면 될 일!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할 수 있다면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소설 후반부에서처럼 샤오청산에게 확연히 나타나는 노인성 질환은 거부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무래도 가장 두려운 것은 치매다. 몇 년 전 읽은 책 <조력살인>에서는 말기암이나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이가 자신의 존엄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물론 스위스에 가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존엄사법이 생겨나면 좋겠다. 치매에 걸려 자신을 케어할 수 없어 요양병원에 들어가면 그곳에서의 삶이 얼마나 피폐할까. 자신의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주어야 한다.
소설에서 샤오청산은 자살을 선택한다. 뇌출혈 수술 후에도, 청각과 시각이 사라져갈 때도, 버텨왔으나 자신의 기억이 점점 사라져가는 상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그러나 이미 10년 넘게 가족처럼 지내온 중샤오양은 그의 자살을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떻게든 치매를 치료할 수 있을 거라고 자료를 찾고 약을 찾다가 도교사원에 가서 치료법을 알게 되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다.
책 후반부의 이 대목에서 독자들의 의견이 찬반으로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내용을 밝히려니 상당한 스포를 하는 것 같아서 못하겠다. ‘사랑’이라는 치료법이 무엇일지, 그래서 과연 치매가 치료되었을지 예상해보는 재미를 주고 싶다. 늙고 병들면 스스로를 돌보지 못하게 되는데 그간 자신이 살던대로 똑같으리라는 건 욕심이다. 노화와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수용하지 않으면 곤란한 문제들이 발생한다. 몸의 상태와 마음의 간극이 먼 사람일수록 우아하지 못한 일들이 생길 것이다.
책 제목처럼 누구나 우아하게 살고 싶을 것이다. 과연 <우아한 인생>이란 어떤 인생일까?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자신의 우아한 모습을 그려보자. 80대의 나를 상상해보았다. 외모가 단정하고 말과 행동이 구질구질하지 않으면 좋겠다. 질병이 있더라도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웃으면서 책 읽고 서평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