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 - 플뢰르 펠르랭 에세이
플뢰르 펠르랭 지음, 권지현 옮김 / 김영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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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수잔 브링크라는 여성을 다룬 프로그램을 보았을 때의 충격을 기억하고 있다. 영문도 모른 채 피부색이 다른 나라에 입양된 아동의 삶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된 이후 해외 입양 관련 뉴스나 프로그램을 관심 있게 보아왔다. 한국전쟁으로 고아수출국이 된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위권인 현재까지도 중국에 이어 고아 수출국 2위라는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다. 몹시 부끄럽다.


박근혜 정부 당시 프랑스로 입양된 여성(플뢰르 펠르랭)이 문화부장관이 되었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었다. 버릴 때는 언제고 입양된 나라에서 장관이 된 것을 금의환향이라도 한 듯 성공한 한국인이라는 공식에 꿰맞춰 호들갑을 떨어대는 언론에 나는 치를 떨었다. 저 여성은 한국의 이런 식의 대응이 얼마나 얼떨떨할까 싶었다. 좋은 가정에 입양되어 교육을 잘 받았는가보다 정도로 생각했고 그 후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그가 김영사에서 에세이를 냈다고 하기에 서포터즈 서평단 책으로 신청했다. 몇 년 전 뉴스에서 보도된 내용만으로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무엇보다 그는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낯이 화끈거렸다. 내가 궁금해 했던 게 과연 무엇이었나 하는 물음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기 때문이다. 나는 얼평하는 사람과 남의 개인사에 시시콜콜 관심을 두는 이들을 싫어한다. 그의 개인사를 알고 싶어한 나는 내가 싫어한 사람들과 뭐가 다른가, 혹시 그의 치부 같은 걸 확인하려는 관음증적 심리가 있었던 게 아닌가...


<이기거나 혹은 즐기거나>플뢰르 펠르랭2013년 한국 방문 당시 한국인들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던 것들을 풀어낸 에세이이다. 그는 생후 6개월에 프랑스에 입양되어 어떻게 성장하여 정치인, 사업가로 활동했는지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솔직하게 밝히고 있다. 이 책은 그간 해외입양아 스토리에서 자주 다루던 친부모 찾기는 아니다. 첫 방한 당시 당신은 한국인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프랑스인이라고 답했던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소상히 밝히고 있다. 그 때의 답변에 대해, 혹은 플뢰르 펠르랭이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영유아기 부모의 양육태도와 건강하고 적정한 부모의 교육열이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확인했다. 입양아인지 아닌지의 차이와는 상관없다. 친부모가 학대를 일삼는 경우도 있고, 입양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내는 양부모도 많다. 그러나 해외입양의 경우 부모와는 다른 검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인 자신의 모습 때문에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펠르랭은 성장하면서 자신이 프랑스인이 아니라고 여긴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입양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해서 우수한 성적으로 좋은 학교를 졸업했고 정부에서 일을 했다.


그런데 이혼을 하면서 딸에게서 친부를 빼앗았다는 생각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버림받았다는 사실과 연결되어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학교생활에서 도드라지지 않도록 행동하고 모범적인 학생이 되고자 했던 노력들이 자신의 상처를 부인하려고 했던 행동임을 그때서야 깨닫게 된 것이다.


p.33


나는 그것이 상처였음을 항상 부인했기 때문에 상처를 의식하지 못한 채 아프기만 했다.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기만 하는 사람에게 공감하기 어려운 나로서는 그런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상처를 치유하려는 생각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지금은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아이는 아무리 친가족처럼 아껴주는 양부모 밑에서 커도 다른 성인들과 똑같이 자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의식하지 못했던 친부모에 대한 수치심, 양부모를 사랑하면서도 갚을 수 없는 채무의식이 공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직시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기보다는 그 한계를 이겨내려고 노력했다. 학교생활에서 특별히 차별이나 어려움은 없었다. 오히려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공부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그는 게이샤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고, 문화부장관 당시 했던 인터뷰가 악의적인 편집으로 왜곡 보도되기도 했다. 정치권에서 나와 벤처사업을 시작하면서도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독자들에게 당부했다. 스스로 만든 내면의 한계가 자신이 가진 가능성을 깨닫지 못하게 만들 수 있으니 경계의 일부라도 깨도록 노력하길 바란다고.


이 책으로 프랑스의 교육제도와 사회 문화적 분위기, 정치권에 대해서 알 수 있다. 물론 플뢰르 펠르랭이라는 인물을 관통하는 일면이었지만 한국 출신 입양아였기에 겪을 수밖에 없었던 독특성이 있다. 해외입양아를 다루는 여느 미디어와 이 책이 차별되는 지점이다.

 


 

**위 리뷰는 김영사 서포터즈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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