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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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의 소설 <맡겨진 소녀>는 2009년에 출간된 이래 아일랜드 교과과정에 줄곧 포함되어 모두가 읽는 소설이 되었다고 한다. 이 작품은 작년에 <말없는 소녀>로 영화화 되어 이번 달에 국내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지 15년 가까이 되었는데 이번 영화 개봉을 앞두고 원작 소설이 번역되어 서평단 자격으로 책을 받아 읽었다.

이 소설의 분량은 1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작가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작업은 ‘노동의 흔적들을 제거하는 데 쓰인다’고 했다. 초고에서 얼마나 덜어내고 덜어내어 이만큼이 남았을까. 줄인만큼 적확하고 밀도 있는 언어의 조탁은 번역문을 읽는 독자에게도 매끄런 천을 어루만지는 듯한 만족감을 선사해 주었다.

주인공 아이가 먼 친척집에 맡겨진 시간도 어느 해 여름 한철에 불과하다. 아이는 친부모에게서 받지 못한 친절과 환대를 킨셀라 부부에게서 받는다. 인생을 통틀어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만한 때는 몇 번이나 있을까. 그 경험이 이후의 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면 결정적 사건라 할 것이다. 어린 시절에 저런 결정적 사건을 겪은 아이라면 다가올 인생의 파고를 쉬이 넘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의 화자는 8~9세 정도 되는 여자 아이다. 부모와 킨셀라 부부의 말과 행동은 어린 아이의 시선으로 투과되기에 단순 서술에 가깝다. 이는 독자에게 평가할 기회를 준다. 부모의 태도를 비판할 수 있을 것이며 킨셀라 부부의 다정함을 언급할 수도 있다. 나는 예전부터 부모도 배움이 있어야 자녀를 잘 양육할 수 있다고 여겨왔다. 부모의 학력에 가중치를 두었는데 점점 생각이 바뀌었다. 고학력보다 필요한 건 나이가 들어도 계속 공부하는 자세이며, 부모의 사고방식이나 성정이 자녀에게 더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아빠의 무심함(또는 무례함)은 말투에서도 보이지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 데려다 주던 날 딸의 짐도 내려주지 않고 가버린 것만 봐도 평소 태도가 어떠했을지 알 수 있다. 킨셀라 부부는 가정의 안온함과 아빠와 엄마로서의 성역할 모델도 보여준다. 그 안에서 아이는 건강하게 성장하고 헤어질 때가 와도 담담하게 받아들일 줄 알게 된다.

자녀 많은 집 아이들이 울고 떼쓰면 제 것을 챙기게 된다는 생존 본능적 행동을 하게 마련인데 아이는 적나라하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옷가게 점원이 엄마를 쏙 빼닮았다고, 잘해준다고 말했을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표현하는 대신 거리에 나오자 강렬한 햇빛에 눈이 멀 것 같다고 한다. 곧바로 마음 한구석으로 햇빛이 사라지면 좋겠다고, 구름이 껴서 제대로 좀 보이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킨셀라 아주머니의 딸이라는 말이 눈이 부실만큼 좋지만 현실은 딸이 아니라는 것,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을 표현한 문장인 것 같다.

집으로 돌아온 날 엄마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지만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고 대답한다. ​

나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절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 만큼 충분히 배웠고, 충분히 자랐다. 입을 다물기 딱 좋은 기회다.


‘무슨 일’이 무엇인지는 독자도 잘 알고 있다. 몇 달 안 되는 시간동안 아이는 훌쩍 커버렸다. 아저씨는 우편함까지 뛰어가서 우편물을 가져오는 달리기 연습을 시켰다. 그래서 집에 돌아올 때 쯤엔 처음보다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저를 데려다주고 떠나는 아저씨의 자동차 소리를 듣고 아이는 뛰어나갔다. 울퉁불퉁한 자갈을 세차게 밟으며 진입로까지 달려 내려간다. 이윽고 만난 아저씨는 아이를 안아들었고 아주머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씨 어깨너머로 부둥켜안은 셋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아빠가 보이자 아이는 아저씨의 품에서 말한다. 아빠라고. 그 아빠는 누구를 부르는 말이었을까?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다.

“아빠.” 내가 그에게 경고한다. 그를 부른다. “아빠.”

이렇게 끝이 나지만 독자마다 그 후의 이야기를 상상해 볼 것이다. 나는 여름방학마다 킨셀라 부부의 집에 찾아와 종알거리는 소녀의 모습을 그려봤다. 빨강머리 앤만큼 수다스럽진 않겠지만. 무채색이었던 아이가 저만의 색과 향기를 띠는 어른으로 성장할 것이다.

영화에서 마지막을 어떻게 그렸을지 궁금해진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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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사 1 정치편 - EBS 최태성 선생님 생강 시리즈
최태성 지음 / 스터디하우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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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국사1:정치편>은 큰별쌤 최태성의 생생한 강의를 만화로 만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을 받고 후루룩 훑어보니 <먼나라 이웃나라> 시리즈와 느낌이 비슷했다.

그렇다! 글자! 쫌 많다는 뜻이다.

그러면 읽기 싫겠다?

아니다! 우리가 한국사를 만화책으로 읽는 이유를 꼽아보자.

1. 한국사를 쉽고 재미있게 읽기 위해서!

2. 한국사 검정능력 시험 준비를 위한 예습으로!

3. 내신이나 수능에서 한국사 점수를 올리려고!

한국사 만화책을 읽는 이유는 크게 위 세 가지일 것이다.

그렇다면 <생강 국사>는 어떤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까?

위 1번에 해당하는 독자는 초등학생이거나 한국사에 대한 지식이 적은 경우일 터이니 좀 쉬운 책으로 먼저 한국사를 만난 다음에 이 책을 시도해 보면 좋겠다. 요즘은 초등학교 5학년 2학기에 한국 통사를 배운다. 물론 수업을 열심히 받고 다른 책들을 읽어서 어느 정도의 배경지식이 잡혀있는 초등학생이라면 <생각 국사>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2번과 3번에 해당한다면 이 책은 적합하다.

책의 앞 표지 문구를 보면 고등학생용이다.

“고1에서 심화까지 내신과 수능을 한 번에~”

그러나 한국사에 관심 많은 초중학생, 성인이 읽어도 무방하다.

나이 대와 상관없이,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면 추천한다.

이제 책의 구성을 살펴보자.

<생강국사 1> 정치편은 3장으로 구분했다.



만화로는 강의를,



단원 정리 부분에서 핵심 내용 확인을,



기출문제에서 실력 테스트를 해보도록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최태성 쌤의 유튜브 강의를 텍스트로 옮겨놓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책등에 찍힌 <최태성선생님 생강 국사>라는 제목만 보고 이 책을 고른 독자들은 2차원 평면의 만화와 텍스트를 눈으로 보면서, 최태성 쌤의 음성이 서라운드로 자동지원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한번도 강의 영상을 본 적이 없다면 이 만화를 먼저 읽고 영상을 보면 좋다. 유튜브 최태성1TV에는 강의가 많은데 고등학생이라면 수능대비 한국사를, 일반인이라면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을 추천한다.

영상을 들은 후 다시 이 책으로 돌아와서 읽으면 정말이지 술술 넘어갈 것이다.


이 때 한두 챕터만 읽은 후 강의 영상을 들어야지 절대 욕심 부리면 안된다.

여기까지 리뷰를 읽고 이런 의문을 품은 사람, 있을 수 있다.


그냥 강의 영상을 보면 되지 굳이 책을 읽어야 하나?


굳이? 읽어야 한다!

다 알지 않나?

소위 멀티태스킹이라면서 영상 틀어놓고 딴 짓한다는 거~

그렇게 귀를 스치듯 듣고 나서 기억에 남는 게 있던가?

거의 없다!

학창 시절 태정태세문단세 하면서 외웠던 것들이 아직 기억난다. 그러니 라디오나 BGM처럼 틀어놓은 영상은 공부 용도로는 꽝이다.

공부를 위해 이 책을 선택한 아람들에게 권유한다.

- 이 책의 만화 부분을 읽은 후 주요 핵심을 스스로 정리 후 필기해보라.

- 그런 다음 책의 Point 단원정리 내용과 비교해보자.

- 놓친 부분을 찾아 다시 써넣고 기출문제를 풀어보면 틀릴 일이 없다.

👉 내가 이 책에서 도움 받은 몇 가지를 정리한다.

1. 이 책에서 명도전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2. 조선시대 사화와 환국에 대한 깔끔한 설명



& 조선의6조 직계제와 의정부 서사제


3. 예송 논쟁의 결과로 실권을 잡은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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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그리운 말 - 사라진 시절과 공간에 관한 작은 기록
미진 지음 / 책과이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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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라는 그리운 말>이라는 책을 읽다가 주위 사람들에게 하면 뭐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물어보았다. 고향이라는 답이 많았고 엄마, 친정 같은 가족을 떠올리는 사람, 어린 시절, 편안함, 행복 같은 느낌을 나타내는 단어들도 있었다. 한편 아파트, 주택 같은 주거형태에 해당하는 대답이나 부정적인 정서를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리뷰를 쓰기 전에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 본 건 처음이었다. 지난 달 팟캐스트 매거진 정희진의 공부에서 정희진씨는 지인과 사과(apple)’라는 단어로 연상되는 것을 이야기해보았다며 구독자들도 한 번 해보라고 했다. 같은 단어라 하더라도 개인의 경험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으며 풍부하고 즐거운 대화가 가능할 것이라며. 나는 이라는 단어로 시도해 보았으나 단답식 답변만 나왔고 길게 이야기를 끌어나가지는 못했다. 대부분 내 또래의 여성들이라 그런지 엄마와 편안함이라는 낱말을 연결지어 말한 사람이 많았으나 정반대로 책임과 의무만 남은 시댁이나 친정을 떠올리는 이도 있었다.


<집이라는 그리운 말>이라는 책을 쓴 미진 작가는 집에 대한 어떤 추억이 있기에 그리워하는지 궁금해하며 책을 펼쳤다. 작가는 에필로그에서 너무나 사소해서 일기장에 간직할 법한 이야기지만 사람들 앞에서 두 손 모으고 정성들여 노래하는 어린아이처럼 기록했다고 썼다. 그랬더니 사소한 기억이 물 먹은 종이처럼 부풀어 기쁜 일도 슬픈 일도 하나가 되더라고 했다. 나는 그의 기록들을 읽으며 내 어린 시절과 겹치는 정서가 많아서 놀라웠고, 내가 가보지 못한 그 시절 서울 중구 일대를 둘러보았다. 작가는 일기로 간직하면 그만일 사소한 글을 굳이 책이라는 형태로 낼 필요가 있을지 저어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 사람의 지극히 개인적 기록이 독자에게 낯익은 생경함을 줄 수 있다. 이 책은 개별성이 품고 있는 보편성이 어떤 것인지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작가가 어렸을 때 살았던 서울 중구 만리동은 소설 <아홉 살 인생>의 여민이가 살던 동네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단 여민이네 산동네 사람들이 악다구니 치던 모습보다는 귀엽고 따뜻해 보였다. 작가의 어린 시절 만리동은 푸근했던 모양이다. 친구와 동네 사람들의 에피소드를 읽으며 내 어렸을 때가 오버랩되었다. 우리 엄마는 꼭 내가 TV 만화영화 <캔디>를 보고 있을 때 옥상에 가서 빨래를 걷어오라고 시켰는데 이거 다 보고 할게!”라며 짜증을 부렸던 기억, 크리스마스 카드를 받을 친구의 얼굴을 떠올리며 즐겁게 만들었던 기억 등등...


책 제목에서 지칭하는 은 단순히 작가가 살았던 집의 추억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동네 전체, 학교, 교회, 친구들, 가족 구성원들에 대한 기억이었다. 이사를 하고, 집을 짓고,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임대인에서 임차인이 된 경험까지, 작가의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회상이었다. 그 시간들을 관통하는 큰 줄기가 집이고 작가는 그 시간을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운 시간 속에서 가장 애틋한 이는 바로 작가의 친정 엄마다. 우리는 엄마에 대한 기억이 모두 좋기만 한 것은 아니고, 어떤 기억은 몹시도 자의적으로 왜곡되기도 혹은 윤색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래 내용은 작가의 엄마에 대한 감정이 잘 드러난 부분이라 인용한다.


p.196


엄마를 생각하는 내 얼굴에는 늘 행복, 슬픔, 분노, 그리움이 조금씩 섞여 있다. 행복의 순간에 불현듯 두려움과 슬픔, 분노 같은 감정이 소리 없이 밀려오듯, 검은 하늘에 박힌 별처럼 이름 모를 무수한 감정이 잘게 부서진다. 문득 커다란 보따리를 이고 가는 엄마의 걸음걸이가 떠올라 웃음보가 터지다가도, 젊은 시절 출근길에서 부닥친 엄마의 깜짝 등장에 반가워지다가도, 눈에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지고 마음에는 서러움과 분노가 서로 싸우며 으르렁댄다. 그렇게 한바탕 다 울고 나면 다시 푸른색 그리움이 꼬리를 휘젓는다. 젊음에 겨워 눈부신 천 개의 얼굴이 세월을 타고 넘으면 한 개의 엄마 얼굴이 된다.


작가는 악착같이 부지런하게 살았던 엄마를, 이젠 떠나보낸 지 20여 년이 된 엄마를 떠올리며 자신의 얼굴에서 엄마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운 엄마의 얼굴을 한 채로는 낯부끄런 행동은 하지 않을 성 싶다. 작가가 그리워하는 집이 사실은 엄마가 아니었을까. 본문 마지막 문단에서 작가는 이렇게 썼다.


"내게 단 한 번 시간을 얼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엄마의 손길을 얼리고 싶다. 그리고 아주 힘든 어느 날 따뜻한 햇볕에 녹여 만지고 싶다. 그럼 그 기억을 가슴에 품고 남은 시간을 또 마냥 철없이 조금은 뻔뻔히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동네 사람들이 가족 같았던 시절, 예전 만리동, 아현동 일대의 모습들, 특히 돌아가신 친정엄마가 그리운 사람들이 읽으면 자신의 기억들이 자연스레 떠올라 미소를 머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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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송이 꽃 그리기 수업 - 마음을 전하는 꽃말 · 꽃 도감 컬러링북
이마이 미치 지음 / 이아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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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송이 꽃 그리기 수업>은 컬러링북인데 부제가 "마음을 전하는 꽃말 꽃 도감 컬러링북"이라고 되어 있어요. 꽃말과 정보(분류, 원산지, 개화기, 탄생화)까지 준답니다. 40개의 꽃말과 정보를 알 수 있으니 꽃 선물 할 때 유용하게 쓰이겠지요.



 

색칠 순서와 테크닉(평칠하기, 혼색, 해칭)을 알려주고 재료도 소개하고 있어요. 왼쪽 견본을 보고 오른쪽 밑그림에 색칠하면 되니 차암 쉽죠~~ 같은 꽃을 여러 번 색칠하고 싶다면 밑그림을 미리 복사해 두면 좋겠지요.

 

혼색 연습을 위해 먼저 크리스마스로즈를 칠해봤는데요 색깔이 책의 색감과 차이가 있네요




그다음 벚꽃, 리시안셔스, 극락조화, 카네이션을 색칠해봤어요.






 

매일 하나씩 그리기엔 시간 확보가 되어야겠더라구요. 이틀에 하나 정도 완성한다면 이 책 한권으로 석달은 재밌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른이 취미 생활로 추전합니다! 저는 집중해서 색칠하다보니 무념무상이 되더라구요~~ 맘이 심란한 분들에게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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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간 -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수전 톰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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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클래식 관련 서적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주로 작곡가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짚어주는 형식이 많았다. 여기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들을 소개하며 작곡 에피소드를 더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작곡가들의 삶이나 작곡 일화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흔히 클알못을 위해 감상을 위한 기본 지식과 유명 곡들을 소개하는 책들부터 한 권에 작곡가 한 명을 심도깊게 다루는 책들까지 나왔다. 이러한 클래식 서적들은 솔로 소품곡부터 앙상블, 협주곡이나 교향곡까지 유명한 곡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더 퀘스트에서 출간된 <피아노의 시간>에는 방대한 클래식 곡들 중 피아노 곡으로만 100곡이 엄선되었다. 저자 '수전 톰슨'은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레코딩 아티스트다. 다수의 국제 음악상 수상을 포함, 2013년에는 실내악 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코베트 메달을 수상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클래식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며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다수의 저서를 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자신의 실력을 적극 살려 피아노 곡들을 골라 클알못뿐 아니라 클래식 마니아들까지 만족시켰다.


피아노는 우리에게 가장 허물없는 악기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클래식 음악을 접해왔다. 체르니 연습곡의 지루함을 모차르트의 작은 소나타로 이겨내며 바흐와 쇼팽을 만난 어린이들이 모두 피아니스트가 되진 않았으나 임윤찬처럼 앞으로 세계를 평정할 피아니스트로 탄생하기도 한다. 피아노를 배운 모든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즐기란 법은 없다. 그러나 유튜브 시대는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이들도 임윤찬을 알게 해 주었고 그의 연주에 심취할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곡으로 임윤찬이라는 인물이 알려지게 된 것도 피아노가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악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피아노는 큰 악기다. 여타 악기들에 비해 덩치가 큰 것은 물론이거니와 두 손으로 건반을 두드려서 내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스케일로 귀를 압도한다. 피아노는 밝음과 슬픔이 공존하며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영화 음악에 클래식 피아노 곡이 자주 쓰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실화를 배경으로한 로만 폴란스키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주인공 스필만이 쇼팽의 발라드 1G minor를 연주한다. 독일 장교 얼굴에 드러나는 복잡다단한 감정과 스필만이 속으로 흐느끼는 연주는 그 장면을 인상 깊게 만든다. 스필만의 손가락이 격하게 엔딩으로 치다를 때 그의 불안과 우울이 쇼팽의 의도를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었고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이처럼 피아노 발라드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다양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각 곡의 특징과 진행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연동된 QR코드로 들어가 플레이 후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 이해하기 더 좋다. 고전의 시작인 바흐에서 시작해 현대 음악 작곡가들의 곡까지 망라된 이 책으로 매일 한 곡씩 감상해 보자. 클래식에 조예가 깊고 그간 클래식 소개 책들이나 작곡가 책을 읽어온 독자라면 그렇게 읽어도 된다. 허나 클래식 초심자라면 설명을 읽어도 당최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그러니 목차를 훑어보고 잘 알고 있는 곡이나 낯익은 곡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QR코드로 연주를 먼저 감상한 후 설명을 읽는다. 그래도 설명이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연주를 들으며 설명을 읽어보면 처음보다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초심자는 한 곡으로 오래 감상하길 권한다. 귀에 익어 나도 모르게 콧노래로 흥얼거리게 될 때 설명을 다시 읽으면 처음 읽었을 때와 분명 달라진 것을 알게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대로 감상하는 것도 괜찮다. 들으면서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떠오를 수 있고 자연 풍광이 그려질 수도 있다. 이러한 감상이야말로 전문가의 권위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활용법은 내 맘에 드는 연주자 찾기이다. QR코드 속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좋았다면 그 연주자를 검색해보라. 그가 연주한 다양한 곡들을 만나면서 책에서 소개되지 않은 다른 곡들을 발견하며 자신의 클래식 취향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자연스레 목차에서 베토벤을 찾았다. 그리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QR로 들어갔다. 누구의 연주를 소개할지 몹시 궁금했는데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였다. 이 책에서 발견한 피아니스트다. 그 영상은 노년에 한 연주였는데 아주 박진감이 넘쳤고 속도감이 상당했다. 바로 다른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젊었을 때의 쇼팽 연주 영상이 있었다. 흑백 영상들에서 보이는 그의 아우라는 토스카니니를 떠오르게 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많은 곡들을 다 들어보지는 못했다. 게다가 클래식이야말로 듣던 곡만 듣는 편향이 심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곡이 다양한 연주자들의 무수히 많은 음반이나 영상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각기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로 감상하다 보면 계속 같은 곡만 듣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이 바로 클래식의 매력이다. 연주자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으니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피아노의 시간>이라는 제목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가 급 놀라서 내려놓는 클알못이 없길 바란다. 이 책은 각 곡들의 주제와 템포 설명 뿐 아니라 피아노의 역사 및 관련 상식을 소개하고, 작곡가의 숨은 에피소드도 간간히 들려주기 때문에 초심자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방법들을 힌트 삼아 취향껏 찾아듣다 보면 어느샌가 이 책이 술술 읽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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