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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의 시간 - 100곡으로 듣는 위안과 매혹의 역사
수전 톰스 지음, 장혜인 옮김 / 더퀘스트 / 2023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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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클래식 관련 서적들이 많이 출간되었다. 주로 작곡가 중심으로 클래식 음악의 역사를 짚어주는 형식이 많았다. 여기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들을 소개하며 작곡 에피소드를 더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요 작곡가들의 삶이나 작곡 일화는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흔히 클알못을 위해 감상을 위한 기본 지식과 유명 곡들을 소개하는 책들부터 한 권에 작곡가 한 명을 심도깊게 다루는 책들까지 나왔다. 이러한 클래식 서적들은 솔로 소품곡부터 앙상블, 협주곡이나 교향곡까지 유명한 곡들을 주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더 퀘스트에서 출간된 <피아노의 시간>에는 방대한 클래식 곡들 중 피아노 곡으로만 100곡이 엄선되었다. 저자 '수전 톰슨'은 콘서트 피아니스트이자 레코딩 아티스트다. 다수의 국제 음악상 수상을 포함, 2013년에는 실내악 분야에서 공로를 인정받아 코베트 메달을 수상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클래식 음악 라디오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며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다수의 저서를 냈다. 이번 책에서 그는 자신의 실력을 적극 살려 피아노 곡들을 골라 클알못뿐 아니라 클래식 마니아들까지 만족시켰다.
피아노는 우리에게 가장 허물없는 악기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 학원을 다니며 클래식 음악을 접해왔다. 체르니 연습곡의 지루함을 모차르트의 작은 소나타로 이겨내며 바흐와 쇼팽을 만난 어린이들이 모두 피아니스트가 되진 않았으나 임윤찬처럼 앞으로 세계를 평정할 피아니스트로 탄생하기도 한다. 피아노를 배운 모든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즐기란 법은 없다. 그러나 유튜브 시대는 피아노를 배운 적 없는 이들도 임윤찬을 알게 해 주었고 그의 연주에 심취할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라흐마니노프 곡으로 임윤찬이라는 인물이 알려지게 된 것도 피아노가 우리에게 아주 가까운 악기임을 보여주고 있다.
피아노는 큰 악기다. 여타 악기들에 비해 덩치가 큰 것은 물론이거니와 두 손으로 건반을 두드려서 내는 소리가 오케스트라 스케일로 귀를 압도한다. 피아노는 밝음과 슬픔이 공존하며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다. 영화 음악에 클래식 피아노 곡이 자주 쓰이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실화를 배경으로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주인공 스필만이 쇼팽의 발라드 1번 G minor를 연주한다. 독일 장교 얼굴에 드러나는 복잡다단한 감정과 스필만이 속으로 흐느끼는 연주는 그 장면을 인상 깊게 만든다. 스필만의 손가락이 격하게 엔딩으로 치다를 때 그의 불안과 우울이 쇼팽의 의도를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었고 전쟁의 참상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었다. 이처럼 피아노 발라드 하나로 표현할 수 있는 감정은 다양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각 곡의 특징과 진행을 자세히 설명해준다. 연동된 QR코드로 들어가 플레이 후 저자의 설명을 읽으면 이해하기 더 좋다. 고전의 시작인 바흐에서 시작해 현대 음악 작곡가들의 곡까지 망라된 이 책으로 매일 한 곡씩 감상해 보자. 클래식에 조예가 깊고 그간 클래식 소개 책들이나 작곡가 책을 읽어온 독자라면 그렇게 읽어도 된다. 허나 클래식 초심자라면 설명을 읽어도 당최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그러니 목차를 훑어보고 잘 알고 있는 곡이나 낯익은 곡으로 시작하는 게 좋다. QR코드로 연주를 먼저 감상한 후 설명을 읽는다. 그래도 설명이 쉽게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 연주를 들으며 설명을 읽어보면 처음보다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될 것이다. 초심자는 한 곡으로 오래 감상하길 권한다. 귀에 익어 나도 모르게 콧노래로 흥얼거리게 될 때 설명을 다시 읽으면 처음 읽었을 때와 분명 달라진 것을 알게 것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설명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느낌대로 감상하는 것도 괜찮다. 들으면서 어떤 영화나 드라마가 떠오를 수 있고 자연 풍광이 그려질 수도 있다. 이러한 감상이야말로 전문가의 권위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또 다른 활용법은 내 맘에 드는 연주자 찾기이다. QR코드 속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좋았다면 그 연주자를 검색해보라. 그가 연주한 다양한 곡들을 만나면서 책에서 소개되지 않은 다른 곡들을 발견하며 자신의 클래식 취향을 찾아가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처음 펼쳤을 때 자연스레 목차에서 베토벤을 찾았다. 그리고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의 QR로 들어갔다. 누구의 연주를 소개할지 몹시 궁금했는데 ‘아르투로 베네데티 미켈란젤리’였다. 이 책에서 발견한 피아니스트다. 그 영상은 노년에 한 연주였는데 아주 박진감이 넘쳤고 속도감이 상당했다. 바로 다른 영상을 찾아보았더니 젊었을 때의 쇼팽 연주 영상이 있었다. 흑백 영상들에서 보이는 그의 아우라는 토스카니니를 떠오르게 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많은 곡들을 다 들어보지는 못했다. 게다가 클래식이야말로 듣던 곡만 듣는 편향이 심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 곡이 다양한 연주자들의 무수히 많은 음반이나 영상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좋아하는 곡을 각기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로 감상하다 보면 계속 같은 곡만 듣고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은 것이 바로 클래식의 매력이다. 연주자마다 해석의 차이가 있으니 느낌이 다르게 다가온다.
<피아노의 시간>이라는 제목만 보고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펼쳤다가 급 놀라서 내려놓는 클알못이 없길 바란다. 이 책은 각 곡들의 주제와 템포 설명 뿐 아니라 피아노의 역사 및 관련 상식을 소개하고, 작곡가의 숨은 에피소드도 간간히 들려주기 때문에 초심자라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앞서 소개한 방법들을 힌트 삼아 취향껏 찾아듣다 보면 어느샌가 이 책이 술술 읽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