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대왕
김설아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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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산출신의 김설아 작가를 <고양이 대왕>이라는 책으로 처음 만났다. 작가는 2004년 <무지갯빛 비누 거품>으로 등단했다. 이번 소설집은 등단작 포함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수록 작품 8편은, 15년전 작품부터 최근 소설까지 시간차가 있지만 소설을 관통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비슷해 보인다. 주인공은 학생과 어른까지 다양한데 그들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표현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행복하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는데 그 찰나적 쾌락 이면의 허무함을 식욕과 소유욕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정신적 쾌락추구도 포함하여. 8편 전체를 소개하지는 못하고 내가 인상깊게 읽은 두 편을 소개한다.

표제작 "고양이 대왕"의 주인공은 초등학생이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권유한 갱생프로그램을 받기 위해 가족 모두 회사의 회장님댁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갔다가 겪는 이야기인데 그곳에서 아버지가 흰고양이로 변해버린다. '아버지가 고양이로 변해버렸다 '는 책 소개를 보고, 고양이로 변한 아버지가 어떤 소동을 일으킬까 궁금했는데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상사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질책과 압박을 받다가 지병인 위염으로 쓰러져 일주일간 출근을 못한 뒤에 그 갱생프로그램 대상자가 된 것이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해 옴짝달싹 못하고 방에 갇혀있었던 반면 고양이로 변한 아버지는 집을 나가버린다. 들락날락하던 아버지는 결국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요령껏 회사생활을 하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갱생프로그램은 오히려 자유를 준 셈이었다. 작가는 아버지를 고양이로 변신시켜 자유를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전해들은 소식으로는 '야산을 헤치며 고양이 무리를 이끌고 가는 거대한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았다'는 정도였다. 아버지가 그리워도 찾지는 않겠다며 고양이 모습의 도도하고 당당한 걸음걸이와 반짝이던 눈빛을 기억하겠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초등학생임에도 아버지의 부재를 서운해하기보다 고양이의 모습으로 어디선가 당당하게 잘 살고 있길 바란다.

아버지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정상적인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 상황을 표현한 '고양이 대왕'은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다. 당당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도 녹록치않은 사회생활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이들이 엄연히 있으므로 소설이 과장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빛난다"의 소라는 결혼하면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1캐럿 짜리로 꼭 받아야겠다고 우기는 물욕을 명확히 드러내는 주인공이다. 결국 1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받아낸 소라는 결혼식날에 그것을 끼고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한껏 받는다. 그녀는 반지도 친구들의 시기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면 결혼생활도 행복할까? 그렇지 않았다. 불만족스러운 여러가지 것들은 반지만 있다면 상쇄될 정도였다. 유산 후의 이상행동(반지와 대화를 하고 생식만 해서 남편의 불만이 쌓임)으로 이혼하게 되었어도 반지만 있으면 상관없었다. 남편의 재산없이 힘겨운 독립을 하며 안정을 찾아갈 무렵 목숨과도 같던 그 다이아 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여름 아침 출근길에서 반지 켈리가 했던 말, '현재라는 시간의 빛'을 깨닫는다. 세상 모든 것들이 은은하게 빛나던 그 시간과 거리의 풍경을 보며 소라는 일터를 지나쳐 계속 내달리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결말이 대책없는 된장녀의 몰락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이 소설은 1캐럿 짜리 다이아 반지로 대표되는 결혼의 조건 혹은 여성의 소유욕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굳이 결혼이나 여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외치며 물건을 산다. 소비를 하며 죄의식을 느끼는 게 아니라 더 비싸고 더 좋은 것을 사지 못함에 안타까워 한다.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헛헛해짐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헛헛함을 느낄 때 느끼더라도 더더 가져보고 나서 느끼겠다며 더 소비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다. 소라를 통해 작가는 빛나는 것은 다이아몬드 뿐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 이 시간임을 강조하고 있다. 소비하는 사람들 중에 독서하는 이가 있어 이런 소설을 읽고 소비의 기쁨보다 더 충만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작가의 소설도 더 빛이 나리라.

소설 전체에서 작가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다 이룬다면 과연 행복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다 이룬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냐는 질문도 하고 있다. 일시적 쾌락을 행복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는 건 아닌지, 진정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 있는 것인지를 독자도 자문하도록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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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마더
에이미 몰로이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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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도발적인 소설 <퍼펙트 마더>, 이 세상에 완벽한 엄마가 어디 있겠나? 우리나라 엄마들이 모성애라는 신화에 갇혀 완전무결한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중압감에 눌려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미국 엄마들도 마찬가지였다. 아마 이 세상 모든 여성이 엄마가 되는 순간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만 하는 의무감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다. <퍼펙트 마더>는 추리소설의 형식을 띠며 범인을 찾아나가는 스릴러적 요소를 품고 있으나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에 대한 무한 책임을 강요하는 사회 분위기를 비판하고 있다.


 

 

<퍼펙트 마더>는 미국 소설가 에이미 몰로이의 첫 장편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 출간 이전에 이미 여러 편의 논픽션을 집필했으며 영화 각색 작업도 한 베스트셀러 작가라고 한다. <퍼펙트 마더>는 영화화 될 예정이고 주연배우로 케리 워싱턴이 내정되었다. 500쪽에 달하는 길이임에도 한번 잡으면 놓기 어려울 만큼 페이지 터너라서 그러할 것이고, 추리와 반전이 몰입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다. 시작부터 영아 유괴 사건이 벌어지니까.


 

 

뉴욕에 살며 5월에 첫 아이를 출산한 초보맘들의 모임인 “5월맘의 주 멤버는 위니, , 프랜시, 콜레트이다. 그들은 아기를 데리고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거나 출산과 육아의 고충을 나누며 제법 단단한 유대감을 쌓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기 없이 엄마들끼리만 만나자는 의견이 나왔고 미국 독립 기념일인 74일 저녁, 그들은 술집에서 만남을 가진다. 바로 그날 밤에 위니의 아들 마이더스가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소설은 범인을 찾아나서야 한다. 엄마인 위니를 포함, 함께 있었던 나머지 세 명과 마이더스의 베이비시터인 알마까지 용의선상에 오르게 된다. 독자도 이제 그날 밤에 그들의 행동과 그간의 태도, 심리상태를 하나씩 조합하여 범인 색출을 시작하면 된다. 그러나 한명 한명의 과거사가 드러나면서 그들의 사연에서 단순히 용의자로서의 미심쩍은 요소를 확인한다기보다 이 세상에서 여성으로 겪어야할 거의 모든 케이스들을 목도하게 된다.


 

 

그 사례들은 아래와 같다.

 

 

얼굴 예쁜 하이틴 배우는 스토킹 남성에게 시달려야 하고, 정신과 상담을 해주던 의사에게 속아 임신을 하게 되고, 직장 내 성추행을 당한 여성은 꼼짝없이 전도유망한 상사를 유혹한 나쁜 년이 되어 사회에서 매장되고, 뉴욕 시장의 대필 작가로 자신의 이름을 떳떳이 밝히지 못하면서 을의 신세로 끌려다녀야만 하고, 출산유급휴가도 받지 못한 채 휴가 일수를 다 못채우고 출근했더니 사건에 휘말린 당사자라는 이유로 해고통보를 받게 되고... 결정적으로 이 사례 속 등장인물들은 출산한지 얼마 되지 않은 엄마가 아기를 집에 두고 술 마시러 갔다는 미디어의 비난과 여론의 질타를 받아야만 했다. 미디어의 훌륭한 먹잇감이 되어 과거와 사생활이 서서히 까발려지는 것은 기본 옵션이었다.


 

 

미국 소설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들이 아닌가? 그만큼 나라를 떠나 지구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은, 상시로 위험에 노출되어 있고 불합리한 조건에서 늘 을의 위치일 수밖에 없다. 헌데 그 여성이 엄마가 되는 순간 모성애의 굴레를 씌워 완벽한 어머니상 안에서 꼼짝 못하게 만들어버린다.


 

 

인터넷 상용화 이전의 사회에서는 육아 정보를 주로 어른들에게서 취했다. 아니면 집 가까이 비슷한 아기를 가진 또래 엄마들과 교류하거나 육아서를 들여다보는 정도였다. 그만큼 정보는 제한적이었고 서로 비교할 대상도 적었다. 그러나 요즘은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 혹은 일명 맘카페에서 어마어마한 정보를 접하고 수시로 비교한다. 예전에는 아기의 발육상태 정도의 비교였지만 지금은 그 방대한 정보로 인해 비교할 것이 너무나 많고 도리어 그것 때문에 본인만 뒤처지는 게 아닌가 불안해 지기도 한다. 그래서 일까. 잠시라도 블로깅을 하지 않으면 초조해 지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를 봤는데 예컨대 이런 식이다. 출산병동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자신의 상황을 포스팅 한 후 하루 이틀만에 바로 아기의 상태, 병원, 조리원, 분유, 기저귀 포함 아기 용품들을 줄줄이 올리는 블로거도 심심찮게 보았다. 거의 스마트폰 중독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출산 후 몸조리보다 그런 정보들을 찾아 글을 쓰느라 얼마나 폰을 들여다봐야 했을지를 생각해보면 산모의 몸 상태가 걱정스러워지곤 했다. 목도 아프고 눈도 금방 나빠질텐데 하는 생각말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잔소리하는 시어머니처럼 비칠 것 같기도 하지만 출산 후 일정시간 동안은 자신을 위해서라도 푹 쉬는 게 더 낫다는 내 생각엔 변함이 없다. 물론 그렇게 행동하는 개인만의 문제라고만은 할 수 없다.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가 여성의 사고와 행동에 제약을 걸고 있음을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이 엄마가 되어 마음 편하게 육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는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제도와 정책들을 도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생률을 자랑?하는데 이것이 여성들의 출산파업이라 불릴 만큼 문제가 심각한데도 그 해결방안이라고 내놓는 것들은 실효성이 거의 없다. 국가소멸이라는 협박성 조어로 여성에게 출산을 강요하는 것은 오히려 거부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그것을 국가나 정치가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이다. 엄마가 된다는 것이 여성에게 얼마나 큰 희생을 담보로 하는 것인지를 모르는 남성들이 아기를 낳아봐야 변화가 있을까? 남자가 직접 낳지 않아도 충분히 해내는 나라도 있는데 우리는 언제쯤 그런 날이 올지... 이 책을 읽으며 스릴러적 재미를 느껴서 좋았던 반면 이런 문제들과 연결된 생각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나올 때마다 불끈하고 감정이 올라와서 워~~워 해야만 했다.


 

 

 

소설적 재미만 느끼면 됐지 무슨 그렇게까지? 확장시켜 생각할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소설이 다룬 소재는 내게 그렇게까지!!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이 소설을 영화화 할 때 어떤 부분을 더 부각시키느냐에 따라 흥행에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책이든 영화든 여성이라면 누구나 재미있게 만날 것이다. 다만 이런 소재, 이젠 지겹다고 할 사람들도 분명 있을 테지만 자꾸 접해야 하고 계속 이런 이야기는 만들어져야 한다! 여름 휴가용 도서로 강추한다.



 

**다산북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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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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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심리학자 스벤 브링크만의 책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 다산초당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덴마크 공영방송 DR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했던 철학 강의 시리즈 의미 있는 삶을 정리한 것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우디 앨런은 삶을 의미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작가의 강의 제목과 이 책의 부제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디어에서 삶의 의미를 다루는 내용을 쉽게 마주치게 되는데 작가는 삶의 의미를 이 책에서 이렇게 정리하고자 한다.


"저는 삶의 의미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얻기 위한 도구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과 그 자체를 위해 몰두하는 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제가 이 강의를 통해 다루려는 태도 또는 관점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기 위해 10명의 철학자를 데려온다.

 

 

 

 

10회에 걸친 강의를 통해 심리학이 너무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과 도구화 현상에 한몫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10명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토대로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선을 추구하는 것, 나아가 우리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할 덕에 대해 이야기한다.


10강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강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2강은 칸트가 말하는 존엄성이다.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칸트가 주장한 것은 보통 잘 알고 있다. 작가도 이렇게 축약한다.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그 자체로 목적이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입니다. 칸트가 다소 난해하고 형식주의적인 방식으로 쓴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이성적 존재(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가 당신의 도덕법칙 안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p. 85


우리는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서 살고 싶지만 사회속에서 그렇지 못한 취급을 수시로 당하며 살기에 칸트의 말은 너무나 이론적인 말로 들릴 뿐이다. 예컨대 학생은 성적으로 등급이 매겨지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최근에는 교육부라는 이름으로 환원되었지만 한 때 교육부는 교육인적자원부였다. 국민을 교육시켜 인적 자원으로 사용하겠다는, 한마디로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겠다는 것이 국가의 사상이다. 물론 부처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민을 자원으로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이미 회사의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한지 오래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IMF체제 이후 자본과 국가가 개인을 수단화하여 물건 사용하듯 한지도 20년이 넘었다. 그 폐해로,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을 때 우리 스스로가 목숨을 버리는 사태를 심심찮게 보고 있다. 성적이 떨어진 청소년도,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게 된 중장년층도, 스스로의 존엄을 상실했다 느끼는 노년층등등,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인 것이 이것을 방증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칸트의 말은 너무나 이상적인 이론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칸트의 인본주의적 생각을 오늘날 되살릴 수 있도록 정치적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칸트가 말하는 존엄성이 말 그대로 지켜지는 사회가 언제쯤 올 수 있으려나 한숨지어졌다.


9강 카뮈의 자유에서는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카뮈는 자유를 구성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자유에 따르는 책임이다.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모든 선택을 자유롭게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특히나 요즘엔 소확행이라는 말로 작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을 행복한 삶이라고 하니 그렇다고들 여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너무나 제한적 자유가 아닌가 말이다. 그 제한 속에서 아주 소소하더라도 뭔가를 이루거나 가지면 그것만으로도 행복아니냐는 말은 그 제한성 안에 더 가두는 미사여구일 뿐이 아닌가.


카뮈의 주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가 늘 마음 내키는 일만 한다면 오히려 동물처럼 욕망의 노예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란 욕망대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추구할 가치가 없는 욕망이라면 스스로 억압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의무에 대한 성찰만 하는 것도 곤란하다. 둘 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된다고 역설한다. 두 왜곡된 자유를 넘어서자고 말한다. 작가는 이사야 벌린이라는 철학자의 <자유의 두 개념>을 빌어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설명한다. 벌린에 의하면 소극적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방해 받지 않고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정작 우리가 원하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지를 고려하지 않으므로 우리의 욕망이 조장되거나 주입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적극적 자유란 무언가를 향한 자유와 관련이 있는데 누가 우리를 통제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깊이 성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자기 통제라 부르는데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의 일부로서 존재할 때 가능하다. 이것은 결국 책임과 연결되는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적극적 자유를 추구할 수 있게끔 길러줄 건강한 공동체를 가꾸고 돌볼 책임이 있는 것이다. 즉 자유와 책임은 서로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자유가 없다면 의무를 실행할 책임도 없다.


내가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건강한 공동체에 기여할 책임감도 있다는 것이고 개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개인의 역할이 지대한 것이다. 즉 개인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존엄한 존재로 여기는 개개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므로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나아가 공동체 구성원의 존엄과 자유도 지켜질 것이라는 결론에 당도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야기하는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좋은 삶이란 행복이 아니라 의미에 달려있다고 했다.

저는 많은 사람이 경험된 삶보다는 진짜 삶을, 그러니까 온갖 불확실성과 고난을 겪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의미있는 활동도 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행복을 최대한 많이 얻는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사람들과의 복잡다단한 진짜 관계 속에서 말이지요. 삶의 의미는 경험만으로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의미 있는 삶은 오직 우리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 활동에 참여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p. 255~257


"행복이란 것이 단순한 쾌락만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에서 나온다고 한 작가의 주장을 정리해 보았다. 어쩌면 더 안갯 속이란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경험만으로 의미를 얻을 수 없을 거란 말에 공감했다. 직접 경험에는 제약이 많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최대한 많은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 내 생활에 작가는 물음표를 던졌다.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면 의미를 찾은 것이 될까? 나는 지금 수많은 물음표 속을 헤매고 있다. 지금이 바로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다.

 

 

** 다산북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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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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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소영 작가는 미술작품을 가지고 예술 분야는 물론 사회, 문화 전반에 거쳐 광대한 지식을 뽐내고 있다.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부럽다를 넘어 질투가 난다. 서울대 경제학과 석사까지 했는데, 다시 홍익대 예술대학에 들어가 지금 박사과정 중이란다. 그렇다! 그의 학벌을 보고 내 학력 콤플렉스 발동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점점, 어라? 아니다! 우와!! 했다. 공부 잘 하고 글도 잘 쓰다니...

 

 

 내가 꿈만 꿨지 잘 안 되는 바로 그 지점! 한 분야를 다른 분야로 연관지어 글쓰기!! 그러려면 아는 게 많아야지 싶어 책을 많이 읽는데 잘 안 된다. 이것은! 독서만으로는 안 되는 것인가? 유명인의 말이든, 멋진 문구든, 메모를 해두었다가 글 쓸때 인용을 해야 하는데 읽을 당시에는 생각하면서도 따로 적어두지는 않아서 그런 걸까? 어떤 문장을 이어가려할 때 맨 비슷비슷한 단어로, 했던 말 하고 또 하는 기분으로 글을 쓴다. 내 상태와 비교를 하자니 질투심이 풍풍 솟아오르는 거다.

 

 

 그러나 그런 마음, 고이 접어, 넣어두었다!

내 학력이 별로라서 그렇기도 하고, 분명 작가보다 치열한 공부를 하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건 아주 쓸데없는 감정이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우며, 기실 말도 안 되는 질투인 것을...

 

 

 작가는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문제에서 한 지점을 예리하게 포착해내어 예술작품과 연결한 후 자신의 생각을 펼쳐놓는다. 또, 도슨트처럼 예술작품 설명으로 시작해 자신의 감상이나 단상을 다른 작품이나 사회문제로도 연결시킨다.

 

 

 예를 들면, 1부의 두 번째 글, “지독한 게으름”을 보자. 일본 그림책 작가 ‘사노 요코’의 에세이에서 게으름이라는 키워드를 이끌어내어(아주 사소한 문장에서 자신과의 공통점을 찾아냄/물론 사노 요코는 게으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음) 자신의 게으름을 정당화하는데 우아하게도 회화 작품과 짝 지운다. 아래 ‘존 화이트 알렉산더’의 “휴식”으로.

 

 

그래놓고 마지막 문장에는 또 이렇게 쓴다.

 

 

 

"게다가 이왕 일을 하면 그 일로 뭔가 세상에 없는 걸 만들고 싶다는, 내 게으른 성격에 어울리지도 않는 드높은 야심이 순간순간 일어나곤 한다. 그래, 난 맥도 할머니보단... 요코 할머니처럼 죽고 싶어, 그러려면 지금보다 조금은 부지런해져야 하는 걸까?"

 

 

 

 

 처음에 자신은 지독한 게으름쟁이라 해놓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마무리 하는 것으로 보아 사실은 게으르지 않은 거다. 그렇잖은가? 그렇게 많이 공부하며 다방면으로 활동하는데 어찌 게으를수 있을까.

 

 

 그러니 저런 이에게 질투심을 가지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에세이는 전체 6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의 제목은 게으르게,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행복하게 로 잡았다.

 

 

 5부의 일곱 번째 글의 제목은 “경제학 농담으로 푸는 저출산 해법”이다. 자신의 전공분야를 살려 경제학 보고서를 인용하는데 시작은 경제학 자학 농담이다. 어렵게 느껴질 법한 내용을 농담으로 시작한다. 그러고나서 경제학 보고서와 경제학자의 말을 인용한다. 마지막 부분에 또다른 경제학 농담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데, 이 부분이 딱 나도 생각해 본 내용이었다.

 

 

 작가는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낮은 급여를 지적한다. "여성의 돌봄 노동을 ‘사랑의 노동’으로 미화하면서 그 실제적 중요성과 가치는 저평가 되고 있다"고. 우리는 대부분 어머니의 희생으로 이만큼 자기 자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늘날 여성들이 출산을 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이겠지만, 여성들은 더이상 출산과 육아에 자신의 삶을 희생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사회적 보육을 담당하는 어린이집 교사들이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믿음이 있다면 출산율이 조금은 올라갈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기대하기에 그들의 급여는 턱없이 낮다.

 

 

 이런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경제학 농담을 끌어오는 것은 역시 작가의 밑천이 두둑하기 때문이다. 김정운 작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풍부한 콘텐츠를 자산으로 축적해 두고 있어야 새로운 창조물이 나오며, 그것의 한 축에 예술이 꼭 들어간다고! 이 말에 부합하는 사례가 바로 문소영 작가라 생각된다.

 

 

 나도 언젠가 작가처럼 글을 쓰고야 말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어본다!

이제부터 작가님은 내 워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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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습니다 - 무심한 소설가의 여행법
가쿠타 미츠요 지음, 박선형 옮김 / 샘터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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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습니다> 는 일본작가 '가쿠타 미쓰요'의 신작 여행에세이다. 영화 <종이달>의 작가로 우리나라에 알려져 있는데, 일본에서는 문학상도 많이 받았고 그녀의 작품이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된 것도 많다. <종이달>을 영화로 보며 꽤 파격적이고 신선한 감흥을 받았는데 작가의 에세이에서는 잔잔하고 고요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상을 쓴 에세이와 소설 사이의 감성 차이가 있는데 어찌보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작가의 에세이는 작년에 <이제 고양이와 살기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다>를 읽었고 이번이 두번째다. 그 책에 등장한 아메숏이 이번 책에도 나와서 나혼자 반가워했다. 67쪽,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꼭지에는 지금 고양이와 살게된 인연을 말하고 있다.

대학시절 선배의 곤란한 부탁을 거절하려는 심산으로 보상은 고양이로 받겠다며 즉흥적으로 말했다. 그 고양이 종 이름이 바로 아메리칸 쇼트 헤어(줄여서 아메숏) 였다고~~ 그때 선배에게 했던 부탁을 20년 후에야 하느님이 들어준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 친구들과 한국으로 여행가자고 무심코 내뱉은 말이 그대로 실현되었다는 이야기와 더불어 나오는 이 고양이 키우게 된 이야기는 내가 집사이기에, 지난번 작가의 고양이 에세이를 읽었기에 자연스럽게 시선과 마음이 머물게 된 꼭지다. 작가의 낙천적 심성을 다시 확인했다.

 

이처럼 이책은 작가의 느긋하고 낙천적 심성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보통 여행에세이하면 여행지의 멋진 풍광과 함께 힐링장소 위주가 많은데 이 책은 조용하다. 20~30년간 여행했던 곳에서 받은 느낌과 당시 자신의 생각을 들려준다. 화려하지도 요란스럽지도 않은 작가의 여행경험을 읽다보니 여행의 설렘보다는 내집에서의 편안항이 느껴졌다. 선풍기가 유유히 돌아가고 책장을 하나하나 넘기는 내 옆엔 고양이가 낮잠을 즐기고 있는 장면이 연상된다.

작가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여행갈 때 들고다니는 가이드북과 여행노트다. 요즘은 워낙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구글맵으로 이동한다지만 작가는 아직 가이드북을 좋아한다. 일본에서 오랫동안 인기있었던 책, <지구를 걷는 법>을 아직 애용하지만 이젠 그 책을 들고 다니는 일본인을 만날 수 없어서 이렇게 아쉬워한다.

"가이드북을 지참하는 여행은 아날로그여서 이제는 비주류가 되어버렸구나 싶다. 홀로 남겨진 듯해서 어쩐지 쓸쓸하다."

그리고 작가는 한 번의 여행마다 한 권의 노트를 남긴다고 한다. 이동 루트, 숙박 장소, 여행 경비, 먹고 마신 것, 산 것등을 기록하며 어디서 무엇을 보고 어떤 사람들과 대화했는지 뭐가 인상에 남았는지를 상세히 남겨둔다고 한다. 아마 그래서 이 책에 오래전 여행했던 것을 쓸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나는 작가처럼 여행을 자주 가지 못하기도 하지만 저렇게 상세한 기록을 남겨본 적이 없다. 로망인 홀로 긴 여행을 가게 된다면 나도 저런 기록을 남겨야겠다.

작가가 가장 자주 여행한 곳은 태국이다. 너무 자주 가다보니 수많은 출입국 스탬프 때문에 방문 목적을 의심받을 정도라고. 여러가지 목적으로 방문했지만 특별한 볼일이 있어서가 아니라고 한다.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사원에 가거나 태국식 스키야키를 먹는 것은 개인적인 소망일 뿐 '볼일'은 아니다."

제목에서는 좋아하는 마을에 볼일이 있다고 했는데 볼일이 없다니? 아마도 '볼일'이라는 단어 속에 내포된 특별함이 작가에겐 별 일이 아니란 뜻인 것 같다. 여행에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일상처럼 누리고픈 소망이리라.

혹여 이 책을 읽고 '뭐 이런 심심한 여행에세이라니?'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MSG 쫙 뺀 담백한 맛이라 여기면 좋을 듯 싶다. 밍밍한 맛을 찬찬히 곱씹다 차오르는 고소함을 느낄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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