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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대왕
김설아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7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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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출신의 김설아 작가를 <고양이 대왕>이라는 책으로 처음 만났다. 작가는 2004년 <무지갯빛 비누 거품>으로 등단했다. 이번 소설집은 등단작 포함 8편의 단편소설이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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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 작품 8편은, 15년전 작품부터 최근 소설까지 시간차가 있지만 소설을 관통하는 작가의 주제의식은 비슷해 보인다. 주인공은 학생과 어른까지 다양한데 그들을 통해 현대사회의 문제점들을 표현하고 있다. 등장인물들은 행복하기 위해 쾌락을 추구하는데 그 찰나적 쾌락 이면의 허무함을 식욕과 소유욕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정신적 쾌락추구도 포함하여. 8편 전체를 소개하지는 못하고 내가 인상깊게 읽은 두 편을 소개한다.
표제작 "고양이 대왕"의 주인공은 초등학생이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권유한 갱생프로그램을 받기 위해 가족 모두 회사의 회장님댁으로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갔다가 겪는 이야기인데 그곳에서 아버지가 흰고양이로 변해버린다. '아버지가 고양이로 변해버렸다 '는 책 소개를 보고, 고양이로 변한 아버지가 어떤 소동을 일으킬까 궁금했는데 안타까운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상사의 잘못을 뒤집어쓰고 질책과 압박을 받다가 지병인 위염으로 쓰러져 일주일간 출근을 못한 뒤에 그 갱생프로그램 대상자가 된 것이었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해 옴짝달싹 못하고 방에 갇혀있었던 반면 고양이로 변한 아버지는 집을 나가버린다. 들락날락하던 아버지는 결국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요령껏 회사생활을 하지 못했던 아버지에게 갱생프로그램은 오히려 자유를 준 셈이었다. 작가는 아버지를 고양이로 변신시켜 자유를 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전해들은 소식으로는 '야산을 헤치며 고양이 무리를 이끌고 가는 거대한 고양이의 뒷모습을 보았다'는 정도였다. 아버지가 그리워도 찾지는 않겠다며 고양이 모습의 도도하고 당당한 걸음걸이와 반짝이던 눈빛을 기억하겠다고 말한다. 주인공은 초등학생임에도 아버지의 부재를 서운해하기보다 고양이의 모습으로 어디선가 당당하게 잘 살고 있길 바란다.
아버지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하며 오순도순 살아가는 정상적인 모습을 허락하지 않는 상황을 표현한 '고양이 대왕'은 씁쓸한 뒷맛을 지울 수가 없다. 당당한 아버지가 되고 싶어도 녹록치않은 사회생활을 견디지 못해 자살하는 이들이 엄연히 있으므로 소설이 과장되었다고만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은 빛난다"의 소라는 결혼하면서 다이아몬드 반지를 1캐럿 짜리로 꼭 받아야겠다고 우기는 물욕을 명확히 드러내는 주인공이다. 결국 1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받아낸 소라는 결혼식날에 그것을 끼고 친구들로부터 부러움을 한껏 받는다. 그녀는 반지도 친구들의 시기도 모두 만족스러웠다. 물질적으로 풍족하면 결혼생활도 행복할까? 그렇지 않았다. 불만족스러운 여러가지 것들은 반지만 있다면 상쇄될 정도였다. 유산 후의 이상행동(반지와 대화를 하고 생식만 해서 남편의 불만이 쌓임)으로 이혼하게 되었어도 반지만 있으면 상관없었다. 남편의 재산없이 힘겨운 독립을 하며 안정을 찾아갈 무렵 목숨과도 같던 그 다이아 반지를 잃어버리게 된다.
여름 아침 출근길에서 반지 켈리가 했던 말, '현재라는 시간의 빛'을 깨닫는다. 세상 모든 것들이 은은하게 빛나던 그 시간과 거리의 풍경을 보며 소라는 일터를 지나쳐 계속 내달리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결말이 대책없는 된장녀의 몰락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이 소설은 1캐럿 짜리 다이아 반지로 대표되는 결혼의 조건 혹은 여성의 소유욕을 비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굳이 결혼이나 여성에만 초점을 맞춘 것은 아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외치며 물건을 산다. 소비를 하며 죄의식을 느끼는 게 아니라 더 비싸고 더 좋은 것을 사지 못함에 안타까워 한다. 가지면 가질수록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더 헛헛해짐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헛헛함을 느낄 때 느끼더라도 더더 가져보고 나서 느끼겠다며 더 소비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는 이들도 있다. 소라를 통해 작가는 빛나는 것은 다이아몬드 뿐 아니라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곳, 이 시간임을 강조하고 있다. 소비하는 사람들 중에 독서하는 이가 있어 이런 소설을 읽고 소비의 기쁨보다 더 충만한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작가의 소설도 더 빛이 나리라.
소설 전체에서 작가는 우리가 욕망하는 것을 다 이룬다면 과연 행복한 것인가를 묻고 있다. 그리고 다 이룬다는 것 자체가 가능하냐는 질문도 하고 있다. 일시적 쾌락을 행복이라는 단어로 뭉뚱그리는 건 아닌지, 진정 자유로운 존재로 살고 있는 것인지를 독자도 자문하도록 철학적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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