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 필요한 순간 -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
스벤 브링크만 지음, 강경이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덴마크 심리학자 스벤 브링크만의 책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 다산초당에서 출간되었다. 이 책은 덴마크 공영방송 DR의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진행했던 철학 강의 시리즈 의미 있는 삶을 정리한 것이다. 작가는 서문에서 영화감독 우디 앨런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 우디 앨런은 삶을 의미 없는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작가의 강의 제목과 이 책의 부제 삶의 의미를 되찾는 10가지 생각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디어에서 삶의 의미를 다루는 내용을 쉽게 마주치게 되는데 작가는 삶의 의미를 이 책에서 이렇게 정리하고자 한다.


"저는 삶의 의미가 무언가를 성취하거나 얻기 위한 도구적인 일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 되는 일과 그 자체를 위해 몰두하는 활동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삶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바로 제가 이 강의를 통해 다루려는 태도 또는 관점입니다."


작가는 자신의 주장을 논증하기 위해 10명의 철학자를 데려온다.

 

 

 

 

10회에 걸친 강의를 통해 심리학이 너무 개인의 행복만을 추구하는 것과 도구화 현상에 한몫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10명의 철학자들의 이론을 토대로 의미 있는 삶을 위해 선을 추구하는 것, 나아가 우리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할 덕에 대해 이야기한다.


10강 중에서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강의를 소개하고자 한다.


2강은 칸트가 말하는 존엄성이다. 인간은 그 어떤 경우에도 수단이 될 수 없다고 칸트가 주장한 것은 보통 잘 알고 있다. 작가도 이렇게 축약한다.


개인적인 이득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거나, 특정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한 수단으로 취급해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그 자체로 목적이고 앞으로도 늘 그럴 것입니다. 칸트가 다소 난해하고 형식주의적인 방식으로 쓴 것처럼 말입니다. “모든 이성적 존재(당신 자신과 다른 사람들)가 당신의 도덕법칙 안에서 그 자체로 목적이 될 수 있도록 행동하라. 사람이 된다는 것은 이처럼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p. 85


우리는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서 살고 싶지만 사회속에서 그렇지 못한 취급을 수시로 당하며 살기에 칸트의 말은 너무나 이론적인 말로 들릴 뿐이다. 예컨대 학생은 성적으로 등급이 매겨지며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최근에는 교육부라는 이름으로 환원되었지만 한 때 교육부는 교육인적자원부였다. 국민을 교육시켜 인적 자원으로 사용하겠다는, 한마디로 인간을 도구로 취급하겠다는 것이 국가의 사상이다. 물론 부처의 이름이 바뀌었다고 해서 국민을 자원으로 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자본은 이미 회사의 직원들을 소모품으로 취급한지 오래이고. 특히 우리나라는 IMF체제 이후 자본과 국가가 개인을 수단화하여 물건 사용하듯 한지도 20년이 넘었다. 그 폐해로, 자원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을 때 우리 스스로가 목숨을 버리는 사태를 심심찮게 보고 있다. 성적이 떨어진 청소년도, 자신의 위치가 흔들리게 된 중장년층도, 스스로의 존엄을 상실했다 느끼는 노년층등등, 우리나라 자살률이 세계 1위인 것이 이것을 방증하고 있다. 이런 시스템 안에서 칸트의 말은 너무나 이상적인 이론으로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칸트의 인본주의적 생각을 오늘날 되살릴 수 있도록 정치적 사회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칸트가 말하는 존엄성이 말 그대로 지켜지는 사회가 언제쯤 올 수 있으려나 한숨지어졌다.


9강 카뮈의 자유에서는 신선한 자극을 받았다.


"자유는 특권이 아니라 책임으로 이루어진다."


카뮈는 자유를 구성하는 것이 책임이라고 주장한다. 바로 자유에 따르는 책임이다.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할 때가 아니라,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우리는 모든 선택을 자유롭게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특히나 요즘엔 소확행이라는 말로 작더라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며 사는 것을 행복한 삶이라고 하니 그렇다고들 여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 보면 너무나 제한적 자유가 아닌가 말이다. 그 제한 속에서 아주 소소하더라도 뭔가를 이루거나 가지면 그것만으로도 행복아니냐는 말은 그 제한성 안에 더 가두는 미사여구일 뿐이 아닌가.


카뮈의 주장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우리가 늘 마음 내키는 일만 한다면 오히려 동물처럼 욕망의 노예로 살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란 욕망대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추구할 가치가 없는 욕망이라면 스스로 억압할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의무에 대한 성찰만 하는 것도 곤란하다. 둘 다 자유롭지 못한 상태가 된다고 역설한다. 두 왜곡된 자유를 넘어서자고 말한다. 작가는 이사야 벌린이라는 철학자의 <자유의 두 개념>을 빌어와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를 설명한다. 벌린에 의하면 소극적 자유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방해 받지 않고 하는 것이지만 이것은 정작 우리가 원하는 것을 누가 결정하는지를 고려하지 않으므로 우리의 욕망이 조장되거나 주입된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적극적 자유란 무언가를 향한 자유와 관련이 있는데 누가 우리를 통제하는지, 우리는 무엇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지 깊이 성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자기 통제라 부르는데 스스로가 자신의 주인이 될 때 비로소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적극적 의미에서의 자유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의 일부로서 존재할 때 가능하다. 이것은 결국 책임과 연결되는데 인간이라면 누구나 적극적 자유를 추구할 수 있게끔 길러줄 건강한 공동체를 가꾸고 돌볼 책임이 있는 것이다. 즉 자유와 책임은 서로 깊게 연관되어 있으며 우리에게 자유가 없다면 의무를 실행할 책임도 없다.


내가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건강한 공동체에 기여할 책임감도 있다는 것이고 개개인의 존엄성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에 개인의 역할이 지대한 것이다. 즉 개인을 도구가 아닌 목적으로, 존엄한 존재로 여기는 개개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이므로 자신의 존엄과 자유를 위해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나아가 공동체 구성원의 존엄과 자유도 지켜질 것이라는 결론에 당도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이야기하는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좋은 삶이란 행복이 아니라 의미에 달려있다고 했다.

저는 많은 사람이 경험된 삶보다는 진짜 삶을, 그러니까 온갖 불확실성과 고난을 겪을 수 있지만 동시에 의미있는 활동도 할 수 있는 삶을 선택하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행복을 최대한 많이 얻는 삶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사람들과의 복잡다단한 진짜 관계 속에서 말이지요. 삶의 의미는 경험만으로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의미 있는 삶은 오직 우리가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진 활동에 참여할 때 얻을 수 있습니다. p. 255~257


"행복이란 것이 단순한 쾌락만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에서 나온다고 한 작가의 주장을 정리해 보았다. 어쩌면 더 안갯 속이란 느낌을 받을 수도 있겠고, 어쩌면 내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삶은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시간이 될 수도 있겠다. 나는 경험만으로 의미를 얻을 수 없을 거란 말에 공감했다. 직접 경험에는 제약이 많아 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최대한 많은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 내 생활에 작가는 물음표를 던졌다. 물음표가 느낌표가 되면 의미를 찾은 것이 될까? 나는 지금 수많은 물음표 속을 헤매고 있다. 지금이 바로 철학이 필요한 순간이다.

 

 

** 다산북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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