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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의 의자 (10주년 기념 특별판) - 숨겨진 나와 마주하는 정신분석 이야기
정도언 지음 / 지와인 / 2020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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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 년 동안 심리학 관련 서적들을 꽤 읽어왔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보니 2006년부터인 듯하다. 시작은 김형경 작가의 <사람풍경>이었다. 당시 힘들었던 마음을 감당하기 어려워서 벗어나보려고 이런 저런 방법들을 동원했었다. 용하다는 철학관에 가서 사주팔자를 보기도 했고, 종교기관을 기웃거리기도 했다. 정신과 상담을 받지는 않았으나 심각하게 고려하기는 했었다. 결국에는 책을 선택했고 <사람풍경>에서 위안을 많이 받았다. 책으로 마음공부를 하는 나만의 방식은 제법 성공적이었다. 그러다보니 책을 계속 잡게 되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책에서 만난 국내외의 정신과 의사, 상담사, 심리학자들은 나에게 자신의 상담 사례를 친절하게 들려주었다. 그 사례들 중 나와 유사한 것을 접목해 치료받는 다고 여겼고, 책 <미움 받을 용기>를 통해서는 남과 나와의 거리두기에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다. 남(가족도 포함, 나를 제외한 모두)의 문제를 너무 내 문제로 삼는 것이 내 고민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읽게 된 책 <프로이트의 의자>는 읽어야할 목록에 넣어두고서는 어쩐 일인지 계속 순위에서 밀려난 책이다. 이 책이 나온 지 벌써 10년이 넘었고 이번에 개정판이 나왔다. 프로이트는 심리나 상담 이야기를 할 때 빠질 수 없는 학자다. 이 유명한 책을 그동안 왜 읽지 않았는지 곰곰 생각해 보았다.
앞서 밝힌 대로 심리관련 서적으로 처음 읽은 책 <사람풍경>에서 김형경 작가는 자신의 정신분석에 대해 밝혔고 프로이트의 방어기제와 관련한 내용 위주로 풀어나갔다. 프로이트의 저작을 직접 읽지 않았음에도 그 책이 프로이트에 대해 이해한 듯한 착각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그 후 많은 책들에서 기본적으로 인용되는 프로이트의 이론, 그리고 인간발달이론 공부를 하며 수박겉핥기 식으로 외웠던 자아, 초자아를 포함한 방어기제 등등...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프로이트에 대해 자세히 공부한 적 없으면서도 마치 다 아는듯한 착각 속에 살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프로이트의 핵심 이론을 잘 정리한 이 책을 뒤늦게 읽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프로이트의 의자>를 읽으며 어쭙잖게 알고 있던 프로이트 관련 지식들을 정리, 복습할 기회를 가졌다. 어쭙잖음에도 불구하고 복습이라 표현한 이유는 오랜 시간 이 책 저 책에서 만났던 프로이트 이론들이 영 사라진 게 아니라 머릿 속에 남아있었던 모양이다. 덕분에 쉽게 읽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잘 안다는 뜻은 또 아니다.
이 책은 누구나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심리학이나 정신의학과를 전공할 학생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추천한다. 프로이트에 관심이 있거나 정신분석에 관해 궁금하다면 이 책으로 시작해도 좋다. 쉽게 쓰여 있다고 해서 내용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 저자 정도언 박사의 말처럼 어려운 것을 더 어렵게 쓰는 게 오히려 쉽다. 프로이트 이론 설명이 그리 쉬울리는 없다. 하지만 저자의 말투는 친절하고 부드럽다. 서술어가 존댓말로 끝나기 때문에 마치 상담 선생님과 직접 이야기를 주고 받는 느낌이다. 프로이트 이론은 시중의 심리학 관련 책을 읽다보면 꼭 만나게 된다. 그런 책들은 상담 사례별 내용이라 프로이트 이론을 자세히 언급하지 못한다. 그러니 이 책으로 읽은 후 다른 심리서적을 읽는다면 훨씬 이해가 빠를 것이다. 저자는 국제 정신분석학회 정회원으로 국내 최초의 정신분석가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정신분석으로 최고 전문가라고 보면 되겠다.
책은 4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제목은 다음과 같다.
1장 숨겨진 나를 들여다보기
2장 무의식의 상처 이해하기
3장 타인을 찾아 끝없이 방황하는 무의식
4장 무의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기본 치유법
책 속 부록 정신분석가와의 대화는 저자와의 Q&A 시간을 가질 수 있고, 또 다른 부록 마음공부를 하고 싶은 이들을 위한 안내서에서 더 많은 책들을 소개받을 수 있다. 별책부록 "정신분석가들의 말"에 수록된 52개의 문장과 설명도 유용하다.
각 장들의 제목을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무의식에 관한 내용이다. 프로이트의 이론에서 무의식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1장에서는 의식과 무의식의 영역에 대한 설명과 함께 무의식을 누르고 있는 방어기제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 나간다. 저자는 방어기제를 살펴봐야하는 이유로 이렇게 말한다.
p. 74
내 마음의 진실을 알려면 내가 무엇을 방어하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내 행동, 태도, 성격에 묻어나오는 방어기제를 잘 살펴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야 내가 진정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분석 시간에 하는 일 중에 방어기제의 분석이 중요합니다.
1장의 마지막에서 저자는 마음 관련 다양한 이론들과 그 학자들을 소개한다. 프로이트의 정신성 발달 이론(구강기, 항문기, 오이디푸스기, 잠복기, 성기기)는 이제 빛을 많이 잃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에릭슨의 ‘정신사회적 발달’이론이 활용도가 더 높다고 말한다. 그 외 ‘애착 이론’과 ‘분리 개별화 이론’, ‘상호주관성 이론’ 등을 소개한다. 또한 저자는 우리의 마음은 언제나 싸움터이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몇가지 색상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의 색을 들여다보는 것, 그것이 정신분석이 우리를 치유하는 방법입니다.”
2장과 3장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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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chapter 11 시기심, 질투 부분을 관심 있게 읽었다. 부러움, 시기심, 질투, 이 모든 것들은 비교에서 시작된다. 특히 현대인들은 자기애적 생각도 강하고, 자본주의와 결탁한 미디어가 부추기는 면도 없지 않아서 쉽게 비교하고 절망하고 나아가 시기 질투로 번질 수 밖에 없다. 저자는 시기심을 긍정적 에너지로 바꿔 발전하려는 의지로 삼으라고 한다. 챕터 마지막에는 항상 타인과 비교하는 것에 집착한다면 정신분석을 받길 권유한다. 분석가가 시기 질투를 느끼는 이유와 그 의미를 정신역동적으로 알아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표피적인 이야기를 옆집 사람이나 친구처럼 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제시하면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다. 저자는 인생 상담과 정신분석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간 정신분석에 대한 의심과 비판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아니면 정신분석 상담을 사칭한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책 곳곳에서 정신분석에 대한 오해를 풀려는 노력이 보였다. 이번 챕터에서도 그러했다.
p.173
정신치료나 정신분석은 짐작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정신분석은 내가 말한 것에 근거해서 나에게 되돌려주는 과학입니다. 귀 기울여 듣지 않는 치료자는 위험합니다. 그러니 혼자 있을 때도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잘 듣는 연습을 꾸준히 하십시오. 그러면 길이 보입니다.
3장에서는 가장 달콤한 무의식 - 사랑 파트가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 부분은 그동안 생각해보지 못한 내용이었고 고개 끄덕여졌다.
p. 209
모든 사랑은 과거로부터 온 것입니다. 모든 사랑의 근원은 첫사랑에 있습니다. 다시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옛사랑을 다시 찾는 일입니다. 사랑은 퇴행적입니다. 현재같이 보이지만 과거로 돌아간 것입니다. 정신분석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랑은 과거가 현재에 덧입혀지는 전이 현상입니다.
첫사랑이라고 하니 어떤 것을 첫사랑이라고 불러야 할지 잠시 갸웃했다. 중학교 때 짝사랑했던 선생님?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아빠? 어릴 때 나는 아빠같은 남자랑 결혼할거라며 큰소리 쳤었다. 다정다감하고 집안 일도 곧잘 하시는 아빠는 어린 내게 이상적인 남편상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물론 아빠의 다정은 자식에게만 해당되고 남편감으로는 별로라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지만... 어쨌든 위 내용을 읽다가 잠시 첫사랑이 떠올랐고 책에서 말하는 첫사랑이 내가 생각한 첫사랑은 아닌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그렇다면 그에 해당하는 내 첫사랑은 누구지? 한참 생각했다. 너무 많아서가 아니라 위 두 사람보다 강렬한 이미지를 심어놓은 사랑이라는 이름에 해당하는 남자가 내 인생에 없었다는 결론에 미치니 한편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 나이에 사랑은 무슨? 하고 다음으로 패쓰~~
p. 211
사랑은 자신이 잘 달래야 하는 감정입니다. 상대가 처음부터 나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물론 어렵습니다. 속으로는 자꾸 나와 같은 사람이기를 기대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한다는 말에 쉽게 속지 말고 사랑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지 마십시오. 사랑은 결국 자기를 위해 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위 내용에 공감했다. 사랑한다는 말로 스스로를 속이는 경우를 많이 봐왔다. 물론 책이나 영화 같은 미디어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이며 사랑도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많이 보게 된다. 예전 영화나 책에서는 무조건적 사랑이 많이 등장하는데 요즘은 거의 볼 수가 없다. 실제로는 더욱더 그러한 듯하다. 사랑의 완성을 결혼이라 착각하는 사람들의 논리도 가만보면 대부분 조건 있는 결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남은 사람의 입에서 흔히 나오는 멘트를 봐도 알 수 있다. ‘나 혼자 어떻게 살라고? 먼저 가냐?“고 한탄하는데 이것 역시 죽은 사람때문이 아니라 남은 자신이 더 걱정되어 튀어나오는 말이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이성간의 사랑에 대한 내용이라 이런 좀 잔인한? 결론에 이르렀는데, 사랑의 대상이 어떤가에 따라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인류애는 또다른 차원일 듯하다.
4장 무의식을 대하는 다섯 가지 기본 치유법 에서는 독자가 정신분석 상담을 직접 받는 것 같은 분위기로 쓰여 있어서 앞 장들의 이론적 내용보다 더 쉽게 다가온다.
p. 267
이 책은 독자의 시각에서 쓴 책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나’는 바로 독자 여러분 자신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쓴 나는 저자이자 독자입니다. 책을 통해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자기 마음의 속도만큼 자기 마음의 넓이와 깊이만큼 사물을 받아들입니다. 그렇지만 나는 이 책이 독자 여러분의 일상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내 마음의 관리자가 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은 누군가의 포획물이 되어버릴 것입니다. 내 마음을 알게 되면 내 마음속에 나의 지원자를 키울 수 있습니다.
저자가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 <사람풍경>을 읽을 당시 나도 정신분석을 받고 싶었지만 어디서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스스로 나 자신의 관리자가 되는 것이었다. 많은 책들의 힘을 빌렸고 역부족에 무릎이 꺾일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제법 나 자신을 들여다 볼 줄 알게 되었다. 한참 철지났지만 저자의 격려로 어깨 으쓱 올라갔다.
지금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있다면? 자신을 추스르기 너무 어렵다면? 당장 정신과를 찾기에 물리적 어려움이 있다면? 프로이트의 카우치에 누워 힘든 마음을 털어놓는 시간을 가져보자. 정도언 정신분석가의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듣다보면 직접적 해결은 아니어도 마음이 편안해 질것이다. 그러고나서 부록의 다른 책들로 넘어간다면 스스로 자신의 관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