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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백 ㅣ 요다 픽션 Yoda Fiction 1
차무진 지음 / 요다 / 2019년 11월
평점 :
두 번 울컥했다. 첫 번째는 서러움과 비슷한 감정이었다. 두 번째는 그냥 눈물 펑펑이었다.
차무진 작가의 소설 <인 더 백>을 읽으면서...
작년 가을에 사두었던 책을 이제야 펼쳤고, 차무진 작가의 소설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앞부분 조금 읽다 말고 이 작가 뭐지? 싶었다. 책을 잠시 덮고 기사를 찾아보았다. 왜 대구로 가는 설정을 잡았는지, 그동안 소설가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반전! 다시 책으로 돌아오니 기사를 읽은 순기능과 역기능이 동시에 작용하여 평소보다 더 빠르게 책장을 넘겼다.
소설의 묘사는 생생하고 사실적이다. 빠른 사건 전개와 긴장감 속으로 빨려들게 만들면서도 잠시잠시 숨돌릴 틈을 주며 완급조절을 한다. 400쪽 가까이 되는 분량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영화화 확정이라는 정보를 알고 읽어서인지 활자가 눈앞에 영상으로 펼쳐졌다. 물론 작가의 실력 때문이겠지만.
주인공 동민은 IT업계에서 근무하다가 작가를 하겠다고 회사를 그만두면서 가정경제가 점점 쪼그라들고 배관공 잡부로 일하게 된다. 작가 자신의 이력이 이 소설에서 아주 유사하게 펼쳐진 셈이다. 그리고 아들!
백두산이 폭발하고 식인바이러스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동민네 가족은 피란길에 오른다. 청정지대라고 알려진 그의 고향 대구로 가기 위해서다. 그러나 동호대교를 지나다 폭격을 맞아 아내를 잃고 아들 한결을 데리고 남하하게 된다. 여섯살짜리 아들을 120리터짜리 배낭에 넣어 메고 다닌다. 이제 동민의 목적은 단 하나! 아내 지연과의 약속대로 꼭 살아서 아들과 함께 대구에 도착하는 것이다. 작가는 60이후에 이 소설을 쓰려고 했다가 자신의 아들이 소설속 아이의 나이보다 더 많아지기 전에 써야겠다고 결심했고 결국 해냈다.
백두산 폭발로 북한은 초토화 되었고 그 여파가 남한까지 미치는데 식인 바이러스 감염까지 겹쳐 한반도는 아비규환 그 자체다. 이런 상황이 온다면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먹어야 하는 상황에서 윤리의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런데 나 혼자가 아니라면? 내 새끼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이 아이와 살아서 어딘가에 꼭 도착해야 한다면?
동민은 아들이 든 배낭을 메고 대구로 가야한다. 반군과 정부군, 식인자들을 피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해야만 한다. 며칠을 굶은 상태에서도 식인행위는 도저히 허락할 수가 없었다. 아직 새끼 손가락 손톱만큼의 도덕심이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먹을 수밖에 없도록 모든 조건이 갖추어지고, 그는 아들을 위해서! 목숨을 부지해야만 했다. 아들과 함께 대구에 가야한다는 명확한 목표가 있으니까.
오늘이 소설 속 재난상황과 똑같지는 않아도, 자식과 가족을 위해 뼈빠지게 일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숙명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고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존속될 것이다. 동민의 가방은 아버지들이 짊어진 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짐이 너무 무거워 걷기 힘들다면, 숨쉬기조차 버겁다면 벗어버리면 될 일이다. 벗어던지면 홀가분하게 걸을 수 있다. 소설 속 동민에게 찾아온 몇 번의 고비는 그 짐을 버릴 수 있는 기회였다. 같이 자살하려는 마음을 먹다가도, 식인들에게 아들을 뺏기지 않으려고 용을 쓰다가도, 아이가 갈기갈기 찢기는 꿈을 꾸면서도 그는 끝끝내 아들을 놓지 못했다.
인간이란 이기적이고 나약하기 이를데없는 존재라는 회의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나로선 작가가 부여잡고 싶은 것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들 한결과 떨어질 수 없는 동민은,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인간이다. 가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비는 계속 바위를 지고 산을 올라야하는 시지프스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아버지의 굴레를 거역할 수 없는 본능으로 생각한 것 같다. 죽을 것 같이 힘들어 벗어나고 싶은 유혹에 몸부림치다가도 유전자에 각인된 아비의 업을 실행하기 위해 몸이 움직이도록, 동민을 그렇게 만든 게 아닐까.
반전을 기다렸다. 끝날 때가 되어 가는데도 반전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끔찍한 이 모든 상황들이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사실 기대했다. 주인공 동민이 꿈을 꾼거라고, 무시무시한 악몽을 꾼 것이니 깨어나면 된다고. 컴퓨터 게임 같은 가상세계에서 현실세계로 넘어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초딩같은 상상을 하는 내게, 작가는 얼얼한 강펀치를 날렸다. 그 한 대는 바로! 눈물샘을 폭발시켰다. 자동으로 풍풍 나오는 눈물을 닦으며 몇 장을 넘겼다. 제발 대구에 무사히 도착하길 빌었다. 마지막 한 장에는 또 다른 결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 반전은 독자 맘대로 상상하도록 하는 열린 결말, 아니 열린 반전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을 리뷰에 쓰면 혹시라도 이 글을 읽을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 생략한다.
처음 내가 울컥했던 페이지를 다시 넘겨서 읽고 또 놀랐다. 이것은 무엇인가? 작가의 트릭에 내가 제대로 말려든건가? 아니면 나만 이 장면에서 감정이입 심하게 한건가? 다시 돌아와 읽어보니 반전의 전주곡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p. 269
“아빠가 그랬어요.”
메어린이 동민을 보았다.
동민은 울음을 참고 있었다.
주체할 수 없는 벅참이 올랐다. 아들이 자신 외 누군가와 대화하고 있었다. 둘만 있었던 이 깊은 어둠에서 다른 대상에게 아이를 건넸다. 오래전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아이를 안고 어두운 동굴을 걷는다면, 서로만을 의지하고 깊은 심연을 걷고 있다면, 그는 그래왔다. 공기도, 형태도 느끼지도 못할 아들의 두려움까지 모두 혼자 흡수해야 했고 격정과 시선도 대신 감내해야 했다. 그것이 너무 어려워 지친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지금, 그 다른 이가 잠시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는 식인자였고 적이었다.
동민은 이마를 바닥에 박았다.
(……)
“당신 그간 외로웠군.”
동민은 주먹으로 눈을 닦았다.
아이는 그런 아빠를 한번 쳐다보기만 했고 장난감 로봇의 팔을 끼우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 소설은 재난영화에 피칠갑 좀비물이 뒤섞인 것 같지만 사회성 짙은 내용을 여럿 내포하고 있다. 끝나지 않는 이념 갈등, 종교, 구원, 도덕, 계급, 자본주의 등등... 어떤 하나의 키워드에 천착한다면 그 하나만으로 긴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
오늘 내 리뷰는 뒤죽박죽인데 이 소설 판권이 팔렸다고 하니 주인공을 누가 맡으면 좋을지 나혼자 캐스팅 중이다. 동민을 하정우나 이병헌이 한다면 그간 맡아온 역할들 때문에 동민의 예민함을 살리지 못할 것 같다. 공유나 이동욱 같은 키 큰 남자도 안 어울릴 것 같다. 30대 중후반에 키는 크지 않아도 몸은 다부지고 얼굴은 평범한데 섬세한 눈빛을 가진 남자여야 한다. 박해준 배우의 얼굴과 표정, 눈빛 연기가 이 역할에 어울릴 것 같긴 한데 키가 좀 크다. 그리고 메어린이 중요하다. 그는 거구인데 운동신경이 뛰어나야 하고 얼굴이 우락부락한데 착한 느낌을 주어야 한다. 마동석이 떠오르긴 하는데 <부산행>에서 비슷한 역을 했기 때문에 식상하다. 엄태구와 박훈이 떠오르는데 메어린은 그들보다 좀 못생겨야 한다. 혼자 캐스팅 놀이하느라 심각했던 리뷰를 가볍게 마무리했다.
아, 소설 속에서 동민은 영화화 판권비를 받지 못했으나 차무진 작가는 받았다고 하니 내가 다 뿌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