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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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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재기발랄한 책을 읽었다. 그간 자신의 직업세계를 그리는 에세이들을 읽어왔지만 이렇게 근사한 글은 처음이다. 부산지하철 2호선 기관사로 근무하고 있는 이도훈씨는 제11회 브런치북 출판프로젝트에서 대상을 수상한 <마리오네트 지하철>을 바탕으로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를 출간했다.
나는 부산지하철 2호선 증산역(부산에서 양산으로 진입하는 첫 번째역) 근처에 살기 때문에 2호선을 이용한다. 평소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지하철 기관사라는 직업에 대해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맨 앞 칸에 타기 때문에 증산역을 지나 호포역에 도착하면 기관실의 문이 열리고 기관사가 교대하는 것을 본 적은 있었다. 그들의 얼굴을 한 번도 올려다본 적은 없지만 이도훈 기관사가 교대한 적도 있지 않았을까.
공기와 물의 고마움을 모르고 살 듯 지하철을 늘 타고 다니면서도 지하철을 모는 기관사의 노고는 전혀 몰랐다. 이 책은 우리가 제 발처럼 이용하는 지하철이 안전하게 운행하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고를 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지하세계 어벤저스 팀 덕분에 우리는 오늘도 제 시간에 출근하고 약속 장소로 갈 수 있다. 그 어벤저스 팀의 탑이 기관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 책은 ‘솔톤’이다. 말하는 이의 목소리가 일명 ‘솔톤’이면 밝고 경쾌하게 들린다. 글도 ‘솔톤’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다. 각 상황에 꼭 맞는 비유는 입꼬리가 실실 올라가다가 기어코 ‘푸합’하는 소리를 내고 낄낄거리게 만든다. 하지만 텔러의 ‘솔톤’도 대화 내내 이어지면 피로하다는 것을 아는 그는 절묘하게 완급조절을 해냈다. 지하철에서 벌어지는 웃지 못할 혹은 기상천외한 사건 사고들 속에 기관사들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수고로움이 들어있다. 지상에 사는 우리는 지하 세계의 작동시스템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이 없다면 결코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이 책으로 알렸다. 지하철 기관사의 고충과 애환을 읽으면서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의 글이 단순히 지하철 기관사의 직업세계만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기관사이기 전에 그는 이도훈이라는 개인이고, 개인이 모인 집단은 어떤 직업군이든 간에 어슷비슷한 갈등이 상존하기 마련이다. 인간관계 속에서 누구나 겪을 법한 갈등과 개인적 경험 및 고민을 읽으며 독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궁금증을 유발하는 에피소드의 제목으로 출발하여 마지막엔 실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글솜씨가 아주 맛깔스럽다.
예컨대 2부의 에피소드는 제목이 ‘기관사 기량경진대회와 후라이드 치킨’이다.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이렇게 지레짐작했다.
‘기량경진대회의 부상이 후라이드 치킨? 좀 약소한데...’
그러나 아니었다. 이 리뷰를 읽는 당신! 무슨 내용인지 궁금한가? 꼭 책으로 확인해보길 바란다. 이 책을 산 것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나는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 읽었지만... 크흡, 쏘리!)
나는 글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감동? 교훈? 이런 것보다는 재미있게 쓰고 싶다. 이도훈씨의 글을 읽으며 나는 또 부러워했다. 아, 이번 생은 망한 건가? 저자처럼 젊지도, 저자처럼 특별한 직업도 아닌, 거기다 글 잘 쓰는 능력도 부족하니... 그는 나를 절망케 했다. 지하철 기관사가 되는 것이 그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게다가 그는 UDT 출신!) 기관사가 되었는데 글은 또 왜 이렇게 잘 쓴단 말인가. 나는 영 안 되는 건가. 요즘 내 글이 만족스럽지 못해 좀 쉬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별 전환점이 된 것도 아니다. 금정연 작가 말처럼 매일, 뭐라도 써야하는데... 리뷰 쓰다 딴 길로 샜다. 그만큼 그의 글솜씨는 나를 반성하게 만들었다.
책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지하철 사고다. 요즘은 거의 없다지만 지하철에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사람들이 있었다. 급정지를 시도했으나 성공하지 못하면 기관사는 엄청난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 그러한 사례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투철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으로 외로운 운행을 하는 그들에겐 너무나도 큰 고통인 것이다.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기관사도 있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두 시간 반의 운행 시간 동안 생리현상을 참아야 하는 절체절명의 고통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감성이 공존한다.
이 책은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고, 나 자신과 주위를 돌아보게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고, 특히 부산 시민들은 꼭 읽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지하철을 기다리며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지하철의 앞부분을 유심히 바라보게 될 것이다. 내일은 지하철 2호선 기관사에게 손을 흔들어 주어야지~ 손 흔드는 아이에게 맞손을 흔들어주는 낭만을 가진 이도훈 기관사일지도 모르니까!ㅎㅎ 어쩌면 기관사가 나를 주시할 수도 있겠다. 혹시 머리에 꽃을 꽂고 있지는 않나 하고...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