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타이베이 - 대만의 밀레니얼 세대가 이끄는 서점과 동아시아 출판의 미래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우치누마 신타로.아야메 요시노부 지음, 이현욱 옮김, 박주은 감수 / 컴인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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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여행을 갔던 때가 20136월이었으니 벌써 7년이 지났다. 패키지 상품으로 다녀온 대만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데려간 곳, 대만 국립 고궁박물관이다. 당시에도 느꼈고 지금 생각해도 아쉽기만 하다.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허겁지겁 한 바퀴 휙 돌고 나오게 만들다니 말이다. 전시품마다 담긴 역사가 얼마나 깊을텐데 기차 창밖으로 지나는 풍경마냥 스쳐 지나고 말았다. 그리고 까맣게 잊은 곳, 대만!

 

대만에 대해 평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제목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타이베이>를 보고는 확 끌릴 수밖에 없었다. 책과 여행의 조합이라니! 그리고 대만의 밀레니엄 세대가 이끄는 서점과 동아시아 출판의 미래라는 부제도 격하게 손짓을 해왔다. 어서어서 나를 펴서 읽어보라고~~

 

이 책의 공동 저자 우치누마 신타로아야메 요시노부20183월에 서울을 주제로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을 출판한바 있다. 서울편은 못 읽어봤지만 이번 책 프롤로그에 대만과 한국을 비교한 내용을 보니 그들이 진행한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대만은 한국보다 더 작은 나라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인구는 약 2,357만명(한국은 약 5,14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달하는 268만명 정도가 타이베이에 살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구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출판업의 어려운 상황(초판 부수는 대락 2천부 전후)은 서울과 마찬가지였고, 198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힘으로 서점이나 출판사를 시작한다는 점도 비슷했다. 흥미롭게도 양국의 민주화는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고(한국의 민주화 선언과 대만의 계엄령 해제는 전부 1987). 그 이후 20대를 보내고 인터넷을 접하고 세기가 바뀔 때 사회에 나와 30세 전후로 독립한 젊은이들이 그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비슷한 상황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우리는 일본보다 인구가 적은 대만이나 한국의 현재를 보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일본 사회의 출판의 미래에 대한 힌트를 찾고자 한다. 그러니까 서울과 타이베이로 공간을 이동하는 이 시도가 바로 미래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유명 서점 소개만을 다룬 게 아니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타이베이의 20곳 이상의 독립서점과 독립출판사를 방문해 인터뷰한 내용과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만의 출판 역사와 문화, 현 분위기, 젊은 출판인과 서점주들의 생각까지 여러 면들을 알 수 있었다. 방문해보고 싶은 서점, 직접 실물을 보고 싶은 잡지들이 꽤 있었다. 평소 성격같았다면, 코로나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 책에 소개된 서점들의 동선을 짜고 타이베이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국적 분위기와 인테리어에 감탄하며 연신 사진을 찍고 향기로운 향에 끌려 커피 한잔을 마실지언정 해독불가인 글자들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그림이나 사진보다 글자에 먼저 눈길이 가는 나로선 양각으로 확 튀어 오르는 낯선 글자들이 두려워질 게 뻔하다. 김정운 작가는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장점은 여행지에서 책을 사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나는 한국말밖에 모르니 그런 즐거움은 가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저자들의 시간 여행을 따라 타이베이 시내 곳곳의 공간을 여행해 보는 수밖에...

 

 ↑↑ 전원도시

 

타이베이 독립 서점의 개척자 천빙썬씨는 서점을 찾은 손님이 시장에서 물건은 사며 주인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듯 전원도시에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서점에 들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실제 슈퍼마켓 매장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주문했다. 이 바구니는 고객이 물건을 담는 용도뿐 아니라 보관용, 이동용, 이벤트할 때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서점이란 확실한 비전과 콘셉트를 가진 서점이라고 했다. 비전이 확실하고 매일 재미있게 진화해야 한다며 서점 경영이 그리 간단하진 않다고 했다.

 

한 때 서점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서울의 독립서점들을 기웃거렸던 적이 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컨셉트는 정하지 않은 채 구경만 하고 다녔다. 격주간지 <기획회의 513>의 이슈기사, ‘규모화되는 동네 책방을 읽으면서도 서점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전원도시의 천빙썬씨가 말한 것과 공통된 내용을 확인했다. 당인리 책발전소 김소영씨와 구미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의 글이 특히 기억이 남는다. 그들은 자신이 서점을 내려고 하는 동네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사람들이 서점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큐레이션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후에 서점을 열었다. 그런 고민들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저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덜컥 시작해서 될 일이 아니었는데 만약 내가 서점을 시작했다면 바로 망했을 것이다. 물론 서점 낼 자금이 없어서 시작하지 못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종이잡지를 발행하는 곳은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 언급한 <기획회의>의 경우는 탄탄한 출판사와 매호마다 알찬 내용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대표님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을 통해) 혹시 출판이 끊길까봐 10년 넘게 후원하고 있는 격월간지 <녹생평론>은 훨씬 힘들어 보인다. <기획회의>는 정기구독 숫자도 꽤 되는 것 같지만 <녹색평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 빅이슈 타이완

 

잡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보니 <빅이슈 코리아>에 대해서 처음 들었을 때는 좋은 취지지만 후원 없이 가능할지, 길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살지 회의적 시각이었다. 그러고는 관심에서 멀어졌는데 <빅이슈 타이완>을 읽고는 놀랐다. 거리에서 35천부를 판매된다고 한다. 편집자는 동정이나 자선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으로 승부한다며, 지금까지 안정적 경영이 가능했던 것은 많은 독자들이 표지를 보고 구입해서 내용에 대해 만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종이와 웹을 믹스해서 동시 출판하는 곳도 있지만 <빅이슈 타이완>은 종이 매체에만 전념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디어의 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말에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 주간편집

 

<빅이슈 타이완>보다 더 놀란 잡지도 있다. <빅이슈 타이완>을 시작한 편집장 리취중씨는 일반 서점에서도 판매 가능한 잡지를 만들기 위해 2017<주간편집>을 창간했다. 종이신문의 쇠퇴가 확연한데 신문이라는 형태로 과연 출판이 가능할지, 5장의 앞부분에 간단 요약된 내용을 읽으면서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취중씨는 가벼운 지면 위의 무거운 내용이 들어가는 신문의 특성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가 중시하는 것은 물성의 가벼움보다는 품고 있는 내용의 무게감을 중시한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미적인 체험과 독서체험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철 안에서 작게 접어서 읽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천천히 읽기 위해서 신문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찾는 것, <주간편집>은 이런 독서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레이아웃을 우선시하고 있어요." 

   

막 창간한 신문이 정기구독자 수가 1만명이 되었고, 매달(이름은 주간편집이지만 아직 한 달에 한 권 발행중) 권당 3만부 정도 발행하고 그 가운데 정기구독은 1만부라고 한다. 아직은 적자이고 한 권당 내용은 <빅이슈 타이완>2, 해외기사 구입비용도 있어 정기구독이 15~ 2만 명 정도에 도달하면 안정화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 청핀서점

 

1989년에 창립된 청핀서점은 현재 45곳(대만 41, 홍콩3, 중국1)의 점포가 있고 대만에만 직원이 약 700명 정도 된다. 주요 사업은 서적 판매지만 이외 쇼핑몰, 콘서트홀, 영화관, 극장,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 바, 호텔등 여러 업종을 운영중이다. 일본의 츠타야보다 업종이 더 많고 규모가 크다.

서점을 주 업종으로 하는 곳의 호텔은 어떨지 궁금하고 직원들의 큐레이션을 받아 책을 읽어보고 싶다.(언어가 다른데 의사소통이 될지...) 그래도 책 추전 받아보고 싶다. 모든 지점에서 직원들에게 큐레이션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고 하니 외국인에겐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청핀서점의 캐치프레이즈는, "Books and Everythibg in Between"이다.

책에 관한 모든 것을 하는 곳이라 저렇게 다양한 사업을 하는 걸까?

직원 양수쥐안씨는 인터뷰에서 창업주가 항상 했다는 말, "화려한 서점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서점" 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인상을 받을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작은 책방, 웨웨서점과 파랑새서점도 가보고 싶다.

 

↑↑ 웨웨서점

 

↑↑ 파랑새서점

 

 

파랑새서점의 대표는 뉴스캐스터 출신의 차이산산씨다. 2017년에 파랑새서점을 오픈했고, 2012년엔 공동으로 웨웨서점을 창업 운영했다. 어쩐지 두 서점의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는 대만의 독립서점 주인들이 일종의 사회운동 이념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직접적인 정치적 행위 대신 주제가 있는 내용의 책을 고르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독자와 사회에 전달한다고 느껴졌어요. 파랑새서점을 하나의 미디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죠."

 

사람이 읽는 행위를 하는 한 서점은 영원히 존재할 거라는 낙관적 결론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유튜브는 거의 보지 않고, E-북보다 종이책을 좋아하지만 종이책과 출판의 미래에 대해서는 암울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대만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이베이의 서점주와 출판인이 우리보다 더 책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이 책에 일반 독자나 손님들과의 인터뷰는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대만에는 물성을 가진 활자 매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게도 다양한 잡지를 만들어내고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이 그 증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잡지 <LIP>의 대표 다나카 유스케씨의 인터뷰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타이베이 경기가 좋지 않음에도 개인 서점에 취재를 해보면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는 답이 돌아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허나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분명 현 상황이 힘들고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지만 그들은 더욱 양질의 내용을 담은 종이책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 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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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반하는 글쓰기
강창래 지음 / 북바이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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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반하는 글쓰기는 제목부터 도발적이다. 알고 있던 글쓰기 규칙을 위반하라고? 그래도 된다는 말? 이 책은 그동안 글쓰기에서 금과옥조처럼 따랐던 것들에 태클을 건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며 그 이유도 조목조목 설명해준다. 적절한 접속사 사용, 부사와 형용사 남발 억제, 단문 쓰기등 글쓰기 상식이라 할만한 규칙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것과 그 반대 용례들도 보여준다.

아마추어든 프로든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나 잘 쓰고 싶어 한다. 나도 글을 잘 쓰고 싶다. 아마추어라 말하기도 부끄럽지만... 부족함에 대한 코칭을 받으려고 그동안 글쓰기 책을 여러권 읽었다. 그 책들에서 코칭하는대로 잘 따라했다면 지금쯤은 아마추어 티를 벗었을까? 그러지 못했다. 줄긋고 메모하고 리뷰까지 썼어도 체화하지는 못했다. 다만 여러권 읽다보니 공통 분모는 있었다. 그 당부들은 글 쓸 때 내 머릿속 검열관으로 작동했다. 저자는 오히려 그런 것을 격파한다.

이 책은 나같은 아마추어에게 용기도 주었지만 움츠려들게도 했다. 나는 책을 읽으면 대부분 리뷰를 쓰는 편인데 이 책 리뷰는 선뜻 시작할 수가 없었다. 그동안 관성적으로 쓰던 방식이 너무나 부끄러워졌고 진짜 검열관이 내 손끝을 지켜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자판을 두드리는 옆에서

"그렇게 아니죠!"

"이 문장은 비문입니다."

라고 콕 찝어 말하는 것 같았다. 아마 작가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었다면 자동음성지원까지 됐으리라...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바로잡기, 쓰기, 고치기 순서이다.

1부 바로잡기 에서는 글쓰기의 정석이라 알려진 것들, 우리 말에 대한 오해 등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풀어놓는데 그저 고개 끄덕여졌다. 다독이 필수인지, 필사는 꼭 해야 하는지, 정말 말하듯이 쓰면 되는지, 잘 아는 것만 써야 하는지 처럼 따라하면서도 의문을 가졌던 독자라면 1부의 내용은 유용할 것이다. 본 리뷰에서 1부 내용을 요약하지 않는 이유는 독자가 직접 읽어보고 자신이 가졌던 의문과 비교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이다. 모두 중요한 내용이라 요약하기 어려운 이유도 있지만 실력 부족 탓이 더 크다.

2부 쓰기를 읽으면서 나는, 심히 찔렸다. 저자처럼 완전 프로인 사람도 책 한 권을 읽고 서평을 쓰기 위해 7권의 책과 10편의 비디오를 본다고 했다. 광범위한 자료 조사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며 자료는 아무리 많아도 많은 게 아니란다. 저자가 자료 조사를 넓고 깊게 하는 이유는 고정관념에 치우칠 가능성을 배제하려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모두가 편견이다. 편견은 다양한 편견을 섭렵함으로써 그 편협한 주관성의 문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잘 아는 주제’가 되어야 꼭 짚어야 할 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 있다.

나 같은 아마추어는 따라할 수 없는 경지다. 잘 아는 주제로 글을 쓰기 위해 지나치더라도 자료 조사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겠다. 허나 자료 검색 뒤로 이어지는 소설가가 되려는 이들에게 도움 되는 내용들을 읽으니 슬금슬금 변명거리가 기어 나왔다.

‘난 소설가가 되려는 건 아닌데...’

‘기고해야 할 서평을 쓰는 것도 아니고...’

사실 2018년 1월, 매일 글쓰기를 처음 시작할 때는 어떤 글이든 매일매일 쓰자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다 작년부터는 거의 1일 1책 리뷰를 쓰고 있다. 저자가 리뷰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기울인 노력을 보니 내 행동은 너무 무모한 짓이다. 매일 한 권을 읽고 리뷰를 쓰는 건 수박겉핥기에 불과한 게 아니었나 반성을 하게 되었다. 매일 책 한 권 리뷰는 힘들다고 저 혼자 징징대는 꼴은, 마치 누가 강요하지 않았는데도 매일 써야하는 감옥을 만들어 스스로 들아가놓고는 괴로워하는 꼴이다.

 

3부 고치기에서도 나의 반성은 이어졌다. “글쓰기보다 글 고치기”라는 꼭지에서 스스로 고치기 어려운 초보자라면 같은 주제의 글을 세 번은 써보라고 했다. 나는 세 번씩 써 본이 없다. 다시 읽으니 보이는 어색한 문장이나 오자를 고치는 정도로 그만이었다. 책 리뷰 말고 에세이 같은 글을 쓴다면 꼭 실천해봐야겠다. 아니다. 리뷰를 쓰더라도 일주일에 한 권씩만 쓴다면 여러 번 고쳐 쓰기를 시도해 볼 수 있겠다. 또 변명하자면, 카운트 중인 1000일 글쓰기가 120여 일이 남았다. 꼼꼼한 자료 조사와 여러 번의 고쳐 쓰기로 마음에 드는 글 한 편을 완성하는 것은 넉 달 뒤로 넘겨야겠다. 이렇게 변명만 일삼으니 프로 입문은 어렵지 싶다.

 

이 책을 읽으며 반성했다가 변명했다가 극과 극으로 널을 뛰었다. 3년 째 하는 글쓰기 연습을 이토록 부끄럽게 만들줄이야... 이 책은 늘 곁에 두고, 글 쓸 때마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지 선생님에게 검사받는 용도로 써야겠다. 이렇게 쓰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책을 펴볼 것이다. 내가 쓰는 문장들이 식상하고 진부한 것 같을 때, “가장 효과적인 것은 극적이면서 보편적인 것”이라는 다독임과 문장이 자꾸만 길어질 때, 유명 소설가가 되려는지도 모르겠다는 격려를 받을 것이다. 비록 저자의 뜻은 그게 아닐지라도 말이다.

 

글을 잘 써보고 싶은 이라면 누구라도 이 책은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아마추어에서 프로로 등업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무조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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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
악셀 하케 지음, 장윤경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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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악셀 하케<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이 쌤앤파커스에서 출간되었다. 처음 만나는 독일 작가라서 출판사의 소개를 옮겨본다.

 

악셀 하케는 최고의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요제프 로트상’, 최고의 보도 기사에 수여하는 에곤 에르빈 키슈상’, 독일의 퓰리처상이라 불리는 테오도르 볼프상등을 받았다. 쥐트도이체 차이퉁에 연재 중인 칼럼 내 인생 최고의 것들은 우리가 마주하는 일상의 순간을 깊이 사유해 그려내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언어의 집을 짓는 글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독일에서 100만 부 이상 판매된 <하케 씨의 맛있는 가족 일기>를 비롯해 <신과 함께 보낸 날들>, <내가 전부터 말했잖아> 등이 있다.

 

 

<무례한 시대를 품위있게 건너는 법>은 제목부터 궁금증이 일게 만든다.

 

요즘 무례한 사람들이 참 많아. 그러니 무례한 시대가 맞지!’

품위 있게라... 어떻게 해야 품위 있는 것일까?’

 

품위있는 사람이라 하면 보통 예의가 바르고 에티켓을 잘 지키는 사람을 떠올리고, ‘매너있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웬만한 성인군자가 아니고는 무례한 상대에게 예의를 지키기란 쉽지 않다.

 

책의 앞 표지에는 차별과 배제, 혐오의 시대를 살아내기 위하여라고 쓰여 있다. 이 부제를 보면 단순히 예의와 매너를 갖추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럼 품위에 대한 저자의 고찰을 따라가보자.

 

독문학자 카를 하인츠 괴테르트의 책 <시간과 풍습:품위의 역사>라는 책을 인용한다.

사람이 모인 공동체에는 늘 예절이 존재한다. 예의범절을 포기한 문화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모두가 동일한 예절, 동일한 품위를 지닐 필요는 없다.”

 

괴테르트가 인용한 키케로의 품위에 대한 정의는 아래와 같다.

"품위는 다치지 않을 권리이다. 이 권리는 칼이 들어오지 않도록 지켜준다. 이처럼 품위는 말로 스스로를 지키는 것이다.” 

 

칸트의 말을 빌리면 품위는 타인의 운명에 동참하는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작가는 앞부분에서 품위에 대한 여러 정의들을 불러온다. 수긍하기도 의심하기도 하면서 독자들에게도 묻는다.

당신이 생각하는 품위란 무엇인가?”

 

그리고 작가는 이 시대를 왜 무례하다고 했는지 독일과 유럽의 근현대사와 정치인들의 사례를 가져와서 하나하나 논증한다. 특히 무례함의 대명사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러시아의 푸틴을 든다. 브렉시트 사태를 불러온 영국의 보리스 존슨도 빠트리지 않는다. 무례한 시대가 된 책임의 일정 부분을 정치인들에게 묻는 것이다. 나도 작가가 지적한 그들의 잘못은 모두 동의한다. 그러나 100프로 정치인들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예전보다(1세기 전과 비교하자면)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기아나 전쟁도 많이 줄었으며 정보가 열린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사는데도 자학하거나 타인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일명 프로 불편러라 불리는 사람들도 많다. 수준 낮고 거짓말만 하는 정치인을 탓할 일이 아닌 것이다. 작가는 그 원인을 밝히는데 유발 하라리나 에리히 케스트너의 책을 인용하기도 하고 친구와 주고받는 대화도 가져온다.

 

펍에서 친구와 맥주를 마시며 시작한 대화는 책이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유명 작가나 철학자만 인용하면 자칫 딱딱할 수도 있으니 일반인의 대화를 집어넣으면 쉽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라 예상한 것 같은데, 작가와 친구의 대화 내용도 그리 쉬운 건 아니다.

 

나는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 난 오히려 우리가 뭔가를 너무 모를 때가 빈번하다고 생각해. 우리는 스스로 굉장히 많은 걸 알고 있다고 느끼곤 하지. 그런데 그건 우리가 매 순간 어디선가 정보를 얻거나 의지와 상관없이 쏟아지는 정보에 파묻히기 때문이야. 하지만 실제로 우리는 지식의 핵심이 아닌, 그저 지식의 표면이나 핵심으로 가는 중간 단계 정도만 알고 있을 때가 종종 있어. 그렇게 지식의 맥락을 알지도 못하고 배후 관계가 빠진 상태에서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반응하곤 하지. 정치 현상을 해석할 때도 이랬다저랬다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하잖아. 오늘날 우리가 처한 현실이 그래. 그럼에도 우리는 이 현실에서 벗어나면 안 돼. 도리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해.”

 

우리 현실이 그렇긴 하지. 그래서 넌 뭘 하고 싶은데?”


 적어도 우리 현실이 이렇다는 걸 분명히 자각해야 하지 않을까? 스스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야말로 품위가 아닐까 싶어. 그리고 우리가 미덕이라 여기는 가치를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자기 확신을 조금 낮추어 잡는 것이 이성적인 태도라 생각해
.”

 

위 대화는 거의 마지막 내용이다.

 

이 결론까지 오는 동안 작가는 여러 작가들의 책을 인용하여 논증했다. 작가는 사람들이 타인의 견해를 수용하지 않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왜 이렇게 극단으로 치달으며 더 과격해지는 건지, 극과 극으로 치달으면 인간의 공존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궁금해 했다. 그 답은 에른스트 디터 란터만의 <불안사회>라는 책을 인용했다. 현대사회가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다양성도 증가하면서 개인 삶의 확실성이 파괴되었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조건하에서 무탈하게 살아가려면 고도의 유연성과 신속한 적응력이 따라 주어야 하는데 이것은 현대인이 자신의 삶을 자기 뜻대로 이끌 수 없게 만든 것이다. 개인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특정 집단에 속하려 하고 이 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배척과 투쟁의 대상이 된다.

 

한편 인간은 공동체에서 타자와 어울려 살아가길 바라며 자신의 맡은 바를 완수하여 공존에 기여하기를 소망한다. 그 공동체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원한다. 그러나 세계화의 특징은 개인이 쓸모없는 존재로 느끼게 만들었고, 공동체를 통제할 능력을 잃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자신이라도 통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 역시 힘들어졌고 민주주의도 그 힘을 잃었다고 작가는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데이비드 포스터 윌리스를 인용한다. 공존과 공생의 핵심에는 타인을 위한 어떤 행위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하는데 그 행위는 결심이다. 자신의 이성적 판단을 활용해 자동으로 흘러가는 생각을 붙잡아 돌리려는 자세를 말한다.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고 자신과의 관계에 대한 것이다. 즉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비전보다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여유와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 책은 품위에 대한 정의에서 시작해 우리는 왜 타인을 혐오하고 배제하게 되었는지, 정치가 얼마나 무례해졌는지 고찰한 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태도는 무엇인지를 찾아가는 긴 여정이었다. 인간은 서로 다르므로 그 차이를 통해 배우게 된다는 말은 헤세의 <데미안>에서 읽은 개별성과 독자성과 연결되었다. 작가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하며 각각의 다른 모든 이들에게 책임이 있다고도 했다. 모든 유형의 인간에게 인정을 넘어 존중해야 한다고. 이것은 인간다운 품위라고 칭하는 근본적 토대이며 바로 연대감이라고 정의내리면서 이 책은 끝났다.

 

독일작가의 책이라 해서 독일에 국한된 내용만 다루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유사한 상황들이 있고, 작가가 인용한 사례들은 누구에게나 해당될 내용이라 공감하며 읽을 수 있었다. 단순한 예의범절이 아닌 품위 있게 사는 법을 알고 싶다면 일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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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황석영 지음 / 창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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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작가의 신간 <철도원 삼대>를 사전 서평단 자격으로 받아서 읽었다. 가제본으로 222쪽인데 출판될 책은 600쪽이 넘는다. 가제본은 전체 3분의 1분량으로 앞부분에 해당되는 것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이 책은 철도원으로 살아온 집안 삼대에 걸친 이야기다. 그러면 거의 대하소설 분량으로 한 권으로는 양이 적을 것 같은데 아무래도 요즘 긴 호흡의 대하소설로는 독자에게 어필하기 힘들 것이므로 한 권짜리로 낸 게 아닐까 싶다. 글의 호흡을 빠르게 가져간다면 100여 년에 걸친 이야기도 한 권에 담을 수 있겠지만 작가의 필력이 더 중요할 터인데 그것은 황석영 작가니까 믿을 수 있겠다. 본 책이 출간되면 연결해서 읽어 보고 싶다.

 

일제 강점기, 일본은 조선 수탈을 용이하게 하려고 이 땅에 철도를 깔았고, 조선 민중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는 건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사를 배웠어도 노동 운동하면 전태일밖에 모르는 무식자이다보니 이 소설의 주인공들이 일제 강점기때부터 노동자로서 어떻게 살아왔고 그들의 노동력이 우리나라의 기반을 어떻게 닦아왔는지 놀라며 읽었다.

 

소설은 이진오가 발전소 공장의 굴뚝 위에서 단식투쟁하는 장면으로 시작하고 그의 노동자 인생은 부친 이지산, 조부 이일철, 증조부 이백만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훑어나간다. 필부로 태어난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가문도 돈도 아니었다. 건강하게 태어난 몸으로 그저 성실하게 일하는 것만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일본인의 사환으로 일할 때 일어를 몰라도 눈치빠르게 적응했으며 철도공사 현장에서도 빠르게 기술을 취득해 숙련공이 되었으며 야학에서 <자본론>을 읽고 쓰며 노동운동의 당위를 알아갔고, 독서회를 결성해서 모임을 꾸려나갔다.

 

짧은 분량임에도 100여 년 전 식민치하에서도 성실과 패기로 일상을 살아낸 이 땅의 민중에게 경외심이 들었고 작가에 감탄했다. 그러나 이제는 일제가 아닌 악덕 자본가들이 노동자를 착취하고 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김용균 노동자가 화력발전소에서 그렇게 희생된 후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자며 김용균법 제정이니 뭐니 하면서 떠들었지만 이번에 또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고 위험의 외주화는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얼마 전 일어난 사망사고에서 삼표시멘트는 21조 근무지침을 어긴 것을 하청업체의 책임으로 돌리고 있다.

 

이 소설의 이진오도 해고 노동자 복직 투쟁중이다. 일제이후 노동력 착취는 이름만 바뀐 자본가들에게 승계되어 왔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투쟁은 현재 진행 중이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매년 산업재해로 2400여명이 죽어나간다. 우리 대부분은 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노동하며 살아야 한다. 노동에 경중이 있을 순 없으나 스스로 노동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며 자신은 산재사고로 죽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더럽고 힘든 곳에서 일을 하는 이들이 합당한 대우를 받아야 함에도 그들은 생명의 안전도 담보 받지 못한 채 노동 현장에 투입되고 급여도 가장 낮다.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노동운동뿐 아니라 정치권에서 법안으로 연결되어야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이 소설에서는 철도현장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삶을 조명하고 있기 때문에 역사책에서 다루지 않는 우리나라 노동의 역사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100여년 전 민중들의 생활 양식도 엿볼 수 있다.

 

서울 인근 지방 사람들은 초봄이 지나면 인천 주안서 온 조기를 짝으로 들여놓았다. 조기를 소금에 절여 집집마다 채반에 넣어 장독대에 두거나 새끼줄에 매달아 담장에 널어놓고 햇볕에 말려 굴비를 장만했다. 초겨울에 김장을 하듯이 봄에 조기를 절이고 말리는 일은 집안의 제철 행사였다.”

 

굴비가 먹고 싶으면 시장에 갈 것도 없이 인터넷이나 홈쇼핑에 주문하면 아이스박스에 깔끔하게 포장되어 집으로 바로 배송되는 시대에, 저런 풍속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1세기 만에 우리 사회는 변한 것, 사라진 것이 너무나 많다. 이 소설은 그것을 기억하게 해주며, 인정할 여러가지 중에 이 의미도 크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나는 어릴 때 생선을 자주 접하지 못해서인지 생선은 그리 즐기지 않는 편이다. 물론 서울 사람들의 저런 굴비장만 풍속을 알지도 못했다. 하지만 안동식혜는 잘 알고 좋아하는 음식이다. 살얼음 동동 뜬 발그스름한 그것을 한 입 들이켜 입안으로 들어온 무를 씹을 때 그 아삭함은 어떤 음료에도 비길 바가 못 된다. 그러나 그 맛을 본지도 한 10년은 된 것 같고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이는 안동식혜의 맛을 즐기고 싶어 안도현의 안동식혜를 소리내어 읽으며 입맛을 쩝쩝 다실 뿐이다.

 

안동식혜를 담아온 사발에는 잘 삭은 밥알이 동동 뜨고 나박나박 썬 무와 배도 뜨고 잣이나 땅콩 몇 알도 고명처럼 살짝 뜨는데...”

 

요즘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서는 만날 수 없는 역사와 서사가 있는 이런 책은 앞으로 학생들이나 젊은이들에게 문화사 및 역사 교재로 쓰여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민중의 노동사 속에 여성들의 삶과 노동도 빠지지 않아서 좋았다. 그리고 철도원 삼대의 가족사와 기이한 에피소드를 읽으면서는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과 천명관의 <고래>도 오버랩 되었다.

 

이번 소설은 한국문단의 거장이라는 수식이 빛바래지 않았길 바란다. 가제본으로는 그렇지 않았는데 본 책도 실망하고 싶지 않다. 남은 3분의 2는 어떨지 꼭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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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빛나는 삶의 비밀
스에모리 지에코 지음, 최현영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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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이라는 말은 무척 친숙하지만 의외로 깊이 성각해 본 적이 없는 공기와도 같은 말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저는 여러 상황에서 축복, 곧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손길을 느끼며 지내왔습니다."

 

 "'산뜻하다'는 말에는 정말 기분 좋은 울림이 있습니다. 이렇게 좋은 의미로 가득 찬 말이 또 있을까 싶습니다. 사람뿐만 아니라, 기후나 날씨를 표현할 때도 산뜻하다는 말은 흠잡을 데가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산뜻한 미소나 옷차림, 산뜻한 날씨 등 어떤 단어와 연결해 보아도 정말 멋진 말이지요."

위는 <언어, 빛나는 삶의 비밀>이라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입니다. 제목과 인용한 내용을 보면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말하는 책일 것 같습니다. 저는 그렇게 예상했거든요. 그런데 아닙니다.

이 책의 저자 '스에모리 치에코'씨의 남편은 아들이 여섯 살, 여덟 살 일때 과로사했습니다.

20년 후엔 큰아들이 사고로 척수손상을 입어 가슴 아래 몸이 마비가 되었습니다. 재혼한 남편은 뇌출혈 후유증으로 대화가 힘든 상태가 되고 있습니다.

인생에 한 번도 아니고 저렇게 어려운 상황이 자꾸만 닥쳐올 때, 그 파도를 넘기란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저는 아마 욕하고 짜증냈을 것 같은데요...

아, 이 책은 삶의 아름다움에 대해 쓴 책이 아닐까요? 저자는 자신이 겪었던 일을 그대로 드러냈지만 하늘이나 운명을 원망하거나 욕하지 않습니다. 저자의 개인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곱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의 에세이라고 여길 정도의 글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은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 말씀을 전달하는 훈계조의 책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책은 빛나는 삶의 비밀을 말하는 책이 된 것입니다. 견뎌내기 너무나 힘든 상황에서도 저자는 늘 따뜻한 시선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런 눈을 가졌기에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에서, 사물에서, 사람에게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겠지요. 그가 사용하는 단어들은 한결같이 밝고 긍정적입니다.

제목처럼 저자는 언어에서 삶의 비밀을 발견했나 봅니다. 현실은 지옥처럼 무섭고, 그래서 부정적인 언어를 쓰는 게 당연할 것 같았지만 오히려 그는 반대로 행동했습니다. 그래서 비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걸까요.

"'윤기'라는 단어는 매우 멋진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금세 거칠어지기 쉬운 무엇인가를 수분을 머금은 솔로 정성껏 쓰다듬어 주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부분의 경우, 눈에 띄지 않는 것들입니다. 주인공이 아님에도 빠지면 정말로 허전한 것들입니다."

"사진이 고마운 이유는 이렇게 뜻밖의 순간에, 예전의 건강하고 즐거웠던 날들을 생생하게 상기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지요. 남편과 저는, 점점 불편해지는 몸을 한탄하기보다 둘이서 아름다운 산을 바라보고 고요한 전원 풍경을 즐기며, 그렇게 즐거웠던 때도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기에 행복합니다."

 

 

읽다보면 저자는 원래 긍정적인 성격이 아닐까 싶습니다. 연습 혹은 수양으로 쉽게 되지 않을 것 같거든요. 예쁘고 다정하게 말하자고 다짐하는 건 그때뿐, 벌컥 화 잘내고 흥분하면 과격한 말을 마구 쏟아내는 저로서는 수양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생각이네요. 그래도 이렇게 글로 쓰는 건 맞춤한 단어를 고르려고 고민도 하고 어색하면 고치기라도 하지만 말은 정말이지 내뱉으면 주워담기 힘듭니다. 계속 노력해야지, 별달리 뾰족한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삶을 빛나게 만드는 건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이고, 그렇게 만드는 건 자신이 사용하는 언어 속에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부디 저자의 남은 생이 안녕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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