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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타이베이 - 대만의 밀레니얼 세대가 이끄는 서점과 동아시아 출판의 미래 ㅣ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우치누마 신타로.아야메 요시노부 지음, 이현욱 옮김, 박주은 감수 / 컴인 / 202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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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여행을 갔던 때가 2013년 6월이었으니 벌써 7년이 지났다. 패키지 상품으로 다녀온 대만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거라고는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데려간 곳, 대만 국립 고궁박물관이다. 당시에도 느꼈고 지금 생각해도 아쉽기만 하다. 두 시간도 채 안 되는 시간동안 허겁지겁 한 바퀴 휙 돌고 나오게 만들다니 말이다. 전시품마다 담긴 역사가 얼마나 깊을텐데 기차 창밖으로 지나는 풍경마냥 스쳐 지나고 말았다. 그리고 까맣게 잊은 곳, 대만!
대만에 대해 평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제목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타이베이>를 보고는 확 끌릴 수밖에 없었다. 책과 여행의 조합이라니! 그리고 “대만의 밀레니엄 세대가 이끄는 서점과 동아시아 출판의 미래”라는 부제도 격하게 손짓을 해왔다. 어서어서 나를 펴서 읽어보라고~~
이 책의 공동 저자 ‘우치누마 신타로’와 ‘아야메 요시노부’는 2018년 3월에 서울을 주제로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을 출판한바 있다. 서울편은 못 읽어봤지만 이번 책 프롤로그에 대만과 한국을 비교한 내용을 보니 그들이 진행한 이 프로젝트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대만은 한국보다 더 작은 나라다. 2017년 말 기준으로 인구는 약 2,357만명(한국은 약 5,142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10퍼센트에 달하는 268만명 정도가 타이베이에 살고 있다. 저출산, 고령화로 인해 인구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출판업의 어려운 상황(초판 부수는 대락 2천부 전후)은 서울과 마찬가지였고, 1980년대생을 중심으로 한 젊은 세대가 자신들의 힘으로 서점이나 출판사를 시작한다는 점도 비슷했다. 흥미롭게도 양국의 ‘민주화’는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고(한국의 민주화 선언과 대만의 계엄령 해제는 전부 1987년). 그 이후 20대를 보내고 인터넷을 접하고 세기가 바뀔 때 사회에 나와 30세 전후로 독립한 젊은이들이 그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비슷한 상황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우리는 일본보다 인구가 적은 대만이나 한국의 ‘현재’를 보고 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일본 사회의 출판의 ‘미래’에 대한 힌트를 찾고자 한다. 그러니까 서울과 타이베이로 공간을 이동하는 이 시도가 바로 미래로 떠나는 시간 여행이 될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유명 서점 소개만을 다룬 게 아니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다. 타이베이의 20곳 이상의 독립서점과 독립출판사를 방문해 인터뷰한 내용과 사진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만의 출판 역사와 문화, 현 분위기, 젊은 출판인과 서점주들의 생각까지 여러 면들을 알 수 있었다. 방문해보고 싶은 서점, 직접 실물을 보고 싶은 잡지들이 꽤 있었다. 평소 성격같았다면, 코로나 상황만 아니라면, 당장 책에 소개된 서점들의 동선을 짜고 타이베이행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 이런 생각도 들었다. 이국적 분위기와 인테리어에 감탄하며 연신 사진을 찍고 향기로운 향에 끌려 커피 한잔을 마실지언정 해독불가인 글자들은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그림이나 사진보다 글자에 먼저 눈길이 가는 나로선 양각으로 확 튀어 오르는 낯선 글자들이 두려워질 게 뻔하다. 김정운 작가는 3개 국어를 할 줄 아는 장점은 여행지에서 책을 사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나는 한국말밖에 모르니 그런 즐거움은 가질 수가 없다. 그렇다면 저자들의 시간 여행을 따라 타이베이 시내 곳곳의 공간을 여행해 보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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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원도시
타이베이 독립 서점의 개척자 천빙썬씨는 서점을 찾은 손님이 시장에서 물건은 사며 주인과 즐겁게 대화를 나누듯 “전원도시”에서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한다. 가벼운 마음으로 서점에 들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실제 슈퍼마켓 매장에서 사용하는 플라스틱 바구니를 주문했다. 이 바구니는 고객이 물건을 담는 용도뿐 아니라 보관용, 이동용, 이벤트할 때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서점이란 ‘확실한 비전과 콘셉트를 가진 서점’이라고 했다. 비전이 확실하고 매일 재미있게 진화해야 한다며 서점 경영이 그리 간단하진 않다고 했다.
한 때 서점을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만으로 서울의 독립서점들을 기웃거렸던 적이 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컨셉트는 정하지 않은 채 구경만 하고 다녔다. 격주간지 <기획회의 513호>의 이슈기사, ‘규모화되는 동네 책방’을 읽으면서도 서점 운영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전원도시”의 천빙썬씨가 말한 것과 공통된 내용을 확인했다. 당인리 책발전소 김소영씨와 구미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의 글이 특히 기억이 남는다. 그들은 자신이 서점을 내려고 하는 동네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사람들이 서점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큐레이션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한 후에 서점을 열었다. 그런 고민들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그저 하고 싶다는 마음만으로 덜컥 시작해서 될 일이 아니었는데 만약 내가 서점을 시작했다면 바로 망했을 것이다. 물론 서점 낼 자금이 없어서 시작하지 못했겠지만...
우리나라에서 종이잡지를 발행하는 곳은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위에 언급한 <기획회의>의 경우는 탄탄한 출판사와 매호마다 알찬 내용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으로 알고 있다.(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대표님의 블로그에 올라오는 글을 통해) 혹시 출판이 끊길까봐 10년 넘게 후원하고 있는 격월간지 <녹생평론>은 훨씬 힘들어 보인다. <기획회의>는 정기구독 숫자도 꽤 되는 것 같지만 <녹색평론>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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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이슈 타이완
잡지에 대해 관심이 있다보니 <빅이슈 코리아>에 대해서 처음 들었을 때는 좋은 취지지만 후원 없이 가능할지, 길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살지 회의적 시각이었다. 그러고는 관심에서 멀어졌는데 <빅이슈 타이완>을 읽고는 놀랐다. 거리에서 3만5천부를 판매된다고 한다. 편집자는 동정이나 자선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내용으로 승부한다며, 지금까지 안정적 경영이 가능했던 것은 많은 독자들이 표지를 보고 구입해서 내용에 대해 만족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종이와 웹을 믹스해서 동시 출판하는 곳도 있지만 <빅이슈 타이완>은 종이 매체에만 전념하고 있다. 무엇보다 미디어의 질을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원칙으로 삼고 있다는 말에서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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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간편집
<빅이슈 타이완>보다 더 놀란 잡지도 있다. <빅이슈 타이완>을 시작한 편집장 리취중씨는 일반 서점에서도 판매 가능한 잡지를 만들기 위해 2017년 <주간편집>을 창간했다. 종이신문의 쇠퇴가 확연한데 신문이라는 형태로 과연 출판이 가능할지, 5장의 앞부분에 간단 요약된 내용을 읽으면서도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리취중씨는 가벼운 지면 위의 무거운 내용이 들어가는 신문의 특성을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가 중시하는 것은 물성의 가벼움보다는 품고 있는 내용의 무게감을 중시한다.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미적인 체험’과 독서체험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전철 안에서 작게 접어서 읽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천천히 읽기 위해서 신문을 펼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찾는 것, <주간편집>은 이런 독서체험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아름다운 레이아웃을 우선시하고 있어요."
막 창간한 신문이 정기구독자 수가 1만명이 되었고, 매달(이름은 주간편집이지만 아직 한 달에 한 권 발행중) 권당 3만부 정도 발행하고 그 가운데 정기구독은 1만부라고 한다. 아직은 적자이고 한 권당 내용은 <빅이슈 타이완>의 2배, 해외기사 구입비용도 있어 정기구독이 1만5천 ~ 2만 명 정도에 도달하면 안정화가 가능하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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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핀서점
1989년에 창립된 청핀서점은 현재 45곳(대만 41, 홍콩3, 중국1)의 점포가 있고 대만에만 직원이 약 700명 정도 된다. 주요 사업은 서적 판매지만 이외 쇼핑몰, 콘서트홀, 영화관, 극장, 갤러리, 레스토랑, 카페, 바, 호텔등 여러 업종을 운영중이다. 일본의 츠타야보다 업종이 더 많고 규모가 크다.
서점을 주 업종으로 하는 곳의 호텔은 어떨지 궁금하고 직원들의 큐레이션을 받아 책을 읽어보고 싶다.(언어가 다른데 의사소통이 될지...) 그래도 책 추전 받아보고 싶다. 모든 지점에서 직원들에게 큐레이션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고 하니 외국인에겐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
청핀서점의 캐치프레이즈는, "Books and Everythibg in Between"이다.
책에 관한 모든 것을 하는 곳이라 저렇게 다양한 사업을 하는 걸까?
직원 양수쥐안씨는 인터뷰에서 창업주가 항상 했다는 말, "화려한 서점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상에 남는 서점" 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고 했다. 어떤 인상을 받을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작은 책방, 웨웨서점과 파랑새서점도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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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웨웨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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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랑새서점
파랑새서점의 대표는 뉴스캐스터 출신의 차이산산씨다. 2017년에 파랑새서점을 오픈했고, 2012년엔 공동으로 웨웨서점을 창업 운영했다. 어쩐지 두 서점의 분위기가 비슷했다. 그는 대만의 독립서점 주인들이 일종의 사회운동 이념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직접적인 정치적 행위 대신 주제가 있는 내용의 책을 고르는 것으로 자신의 생각을 독자와 사회에 전달한다고 느껴졌어요. 파랑새서점을 하나의 미디어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죠."
유튜브는 거의 보지 않고, E-북보다 종이책을 좋아하지만 종이책과 출판의 미래에 대해서는 암울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대만은 우리와 많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타이베이의 서점주와 출판인이 우리보다 더 책을 사랑하기 때문일까? 아닐 것이다. 이 책에 일반 독자나 손님들과의 인터뷰는 실려 있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대만에는 물성을 가진 활자 매체를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다. 그렇게도 다양한 잡지를 만들어내고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이 그 증거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잡지 <LIP>의 대표 ‘다나카 유스케’씨의 인터뷰 내용은 의미심장하다. 타이베이 경기가 좋지 않음에도 개인 서점에 취재를 해보면 “열심히 하고 있어요”라는 답이 돌아오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한다.
허나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분명 현 상황이 힘들고 미래가 그리 밝지만은 않지만 그들은 더욱 양질의 내용을 담은 종이책을 계속 만들어 낼 것이다. 책을 너무나 사랑하는 사람들이니까!
** 이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무상으로 책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