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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밀한 배신자
마사 스타우트 지음, 이원천 옮김 / 사계절 / 2020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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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라는 책의 제목은 모순적이다. 친밀한 상대가 배신을 했다는 말인데 그럼 그 배신감은 배가 될 터이다. 친밀한 배신자란 누구일까? 원제는 “The Sociopath Next Door”인데 당신 옆의 소시오패스, 즉 가까운 사람이 소시오패스라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 가까이에 소시오패스가 있다는 뜻? 그렇다. 저자 마사 스타우트는 하버드 의대 정신과 교수이며 심리 상담사로 오랜 시간 상담하면서 만난 이들이 소시오패스로부터 고통받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가 만난 환자들은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조종당하고 심리적으로 붕괴되어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이었다.
그럼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소시오패스가 있다는 걸까? 저자는 전체 인구의 4%, 25명 중에 1명꼴이라고 했다. 이렇게 많은 수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책은 미국에서 2005년에 출간되었고 조사 집단에 한정성이 있으므로 현재 우리나라에 저 숫자를 그대로 대입하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책이 출간된 지 15년이나 지났으니 그들의 수가 더 늘었을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는 강력 범죄들을 보면 그럴 법도 하다. 전남편을 살해한 고유정이나 n번방 운영자 조주빈같은 사람들을 전문가들은 소시오패스라고 불렀다.
여기서 용어정리를 명확하게 하고 넘어가야 한다.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최근 들어 자주 듣고 사용하기도 하지만 정확한 의미는 모른 채 싸이코, 또라이 같은 말과 뭉뚱그려 사용하기도 한다. ‘사이코패시’와 ‘소시오패시’라는 단어를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편람>에서는 구분하고 있지만 임상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에서 별 차이가 없어 서로 통용해서 쓰고 있으며 저자도 책에서 그렇게 사용하고 있다. 미디어에서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풀어쓰기도 한다.
저자는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을 양심이 없는 것을 꼽았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양심에 찔린다고 표현할 때 그 양심과 저자가 말하는 양심의 정의는 차이가 있을까? 저자가 정의하는 학술적 의미의 양심을 알아보자.
‘심리학적으로 말한다면, 양심은 본질적으로 인간을 비롯한 다른 생명체 또는 사람들의 모임, 심지어는 인류 전체에 대한 감정적인 애착을 바탕으로 하는 의무감을 말한다.’
‘양심에 따른 선택을 하면 우리는 행복감을 느낀다. 뿐만 아니라 그런 행동을 보거나 듣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행복해진다.’
‘오감이 신체적인 감각이고 제6감이 직관에 관련된 감각이라면 양심은 기껏해야 7번째의 감각 즉, 제7감에 불과하다. 인류의 진화과정에서 뒤늦게 발달하기 시작한 양심은 아직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감각이 되지는 못했다.’
‘초자아와 양심은 서로 다르다. 초자아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프로이드가 심리학적 사고에서 도덕적 절대주의를 배제하기 위해 다른 중요한 것들도 함께 제외시켰기 때문이다. 프로이드는 사랑을 비롯해 그와 관련된 모든 감정을 제외시켰다. 비록 아이들은 부모를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사랑한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프로이드가 서술한 초자아는 전적으로 두려움에 기초하고 있다.’
‘두려움에 바탕을 둔 초자아는 어두운 커튼 밑에 숨어서 우리를 나무라고 초조하게 만든다. 양심은 자신이 아닌 타인을 살펴보도록 하고 그 행동이 사소하든 대단하든 스스로 의식하며 행동하도록 만든다.’
‘진정한 양심은 세상에 크고 작은 변화를 가져온다.’
전반부에서 양신에 대한 정의로부터 시작해 가까이 있는 소시오패스를 알아보는 법, 그리하여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는 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의학전문 서적처럼 보여 어려울 것 같지만 아니다. 마치 심리 스릴러 소설을 읽는 듯 흥미진진했다. 이 소설 같은 내용들은, 저자가 25년간 해온 심리치료를 토대로 인물과 사건, 대화를 재구성했으며 비밀 보장 의무에 따라 등장하는 사람들과 상황은 사실과 허구를 섞었다고 한다. 11장 마멋의 기술만 완전 허구라고 한다.
이렇게 소설의 주인공 같은 인물들을 유형별로 나누어 소개하면서 양심이 없는 소시오패스들은 어떻게 태어나는지 고찰한다. 태어날 때부터 양심이 없는 것인지, 양육 방식의 차이 때문인지, 지역, 종교, 문화적 차이는 없는지 등등 하나하나 살펴 나간다. 또한 인류에게 양심이라는 제7감은 어떻게 진화 발전해 왔는지 그 역사적 과정까지도 소개한다. 이와 같은 학술적 내용은 책으로 직접 만나보면 좋을 것 같고 이 리뷰에서는 우리의 실생활속에서 소시오패스를 판별하고 대처하는 방법으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저자는 소시오패스를 구분하는 최고의 단서는 '동정 연극' 이라고 말한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동정을 받으려고 연기한다면 그는 소시오패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시오패스 남편은 아내를 마구 때린 뒤 오히려 자기 머리를 감싸 쥔 채 괴로워하며 "순간의 화를 참지 못했다. 이런 자신을 용서해달라"는 식으로 군다. 이런 동정 연극은 소시오패스가 양심 없이 자기 멋대로 굴면서도, 상대방과의 사회적 관계를 본인에게 유리하게 이용하는 수법이다.
그리고 '일상에서 소시오패스에 대처하는 13가지 규칙' (p.250~258) 을 소개한다.
1. 아무리 싫더라도 양심이 결핍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받아들여라.
2. 교육자, 이사, 지도자, 동물애호가, 인도주의자와 같은 사람들, 심지어 부모라 해도 어떤 사람이 맡은 역할에 기대되는 바와 당신의 직감이 상반될 때는 당신의 직감을 따라라.
3. 삼세번의 규칙을 개인적인 방침으로 삼으라.
4. 권위에 의문을 제기하라.
5. 아첨인지 의심하라.
6. 필요하다면 존경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라.
7. 게임에 동참하지 말라.
8. 자신을 소시오패스로부터 보호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를 피하고, 어떤 종류의 접촉이나 연락도 가부하라.
9. 너무 쉽게 동정하는 자신의 상황에 의문을 제기하라.
10. 구제할 수 없는 사람을 구제하려고 애쓰지 말라.
11. 동정심이든 다른 이유든 간에, 소시오패스가 자신의 본심을 숨기는 일을 절대 돕지 말라.
12. 당신의 정신을 지켜라.
13. 잘 사는 것이 최선의 복수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대부분 소시오패스가 아닐 가능성을 전제했을 때, 저자는 독자들이 소시오패스를 잘 알아보고 그들로부터 상처받지 말기를 기원하는 것 같다. 나아가 4%의 소시오패스의 종말은 어두울 수밖에 없으며 양심 없이 내 맘대로 아무 짓이나 하겠다는 생각은 부디 말길 바란다고 했다. 이러한 저자의 조언을 그대로 옮겨 본다.
p308~309
내가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심리학적 조언은 이렇다. 세상을 돌아보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고 누가 승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다가 ‘나도 양심이 좀 없었으면……’하고 바라는 일은 절대로 하지 말라. 더 많이 가질 수 있기를 바라라.
양심을 가지고 있는 당신은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며 온정과 위안, 분노, 혼란, 압박, 때로는 즐거움이 충만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큰 위험을 무릅쓸 기회 즉, 사랑할 기회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