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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평점 :

여행을 마치고 열흘 만에 집으로 돌아오니 서평단 책 몇 권이 도착해 있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라는 제목이 눈에 확 들었다. 어떤 책이었더라 잠시 고갤 갸웃거리다 이병률 시인의 추천사를 봤으나 감이 잡히질 않았다. 워낙 여러 군데에 서평단 신청을 했고 일상을 비운지 2주 가까이 되다보니 그랬다. 뒷표지를 펼치니 시각장애인의 이야기였다.
목차를 훑다가 가장 끌리는 제목이 마지막에 있었다. ‘사랑에 빠지는 60일’을 먼저 읽었다. 시각장애인의 사랑이야기일거라고 예상했던 나는 한 방 먹었다. 아이를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며 불안해하던 임신 7개월차 된 손님의 출산 후 고백에 이어 작가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엄마가 생활고 때문에 자신을 보육원에 맡기려고 했다가 차마 그러지 못했던 60일간의 이야기였다. 이 글 때문에 작가 모녀의 돈독한 애정 에피소드들이 있을거라 생각했으나 잇따라 읽은 마지막 글에서 더 크게 한 방 먹었다. 딸이 장애인이 될 거라는데 창피했다고 말하는 엄마, 그에 치열하게 대거리하는 딸의 이야기를 읽고 깜짝 놀랐다.
마지막 두 글을 읽은 후 일상 적응에 바쁜 나머지 며칠간 책을 덮어두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생각이 났다. 나는 귀국 후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서울에서 하룻밤을 묵었고 26인치 캐리어를 들들거리며 서울 지하철을 몇 번 이용했다. 큰 캐리어를 끌고 사람 많은 지하철에서 에스컬레이터 이용은 무리였다. 엘리베이터를 찾아 뱅글뱅글 돌았고 금방 나갈 수 있을 길을 많이 둘러다녀야 했다. 열다섯 살까지 멀쩡하던 눈이 안 보인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아니 비참했을까? 겨우 이틀간 크고 무거운 캐리어 때문에 불편했던 일을 겪어서 그랬는지 책을 펼치지 않아도 작가의 불편한 일상이 자꾸만 그려졌다.
이 책은 너무 가난해 어린 나이에 철이 들었고, 한창 예민할 사춘기에 시각 장애가 생겼고, 엄마를 일찍 여읜 여성의 에세이다. 하나같이 자신이 원한 일이 아니다. 제목처럼 참으로 지랄맞다. 작가의 일상은 분명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지랄맞음이 축제가 될 거라는 제목처럼 작가는 긍정적이다. 아, 긍정적이라는 말로는 부족하다. 책을 다 읽고 보니 그녀는 이글이글거리는 불꽃같았다. 과거가 어떠했든 그녀는 지금 당당하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첫 글 ‘불꽃축제가 있던 날 택시 안에서’에서 작가가 밝혔다시피 그녀의 내면에는 별과 불꽃들이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았다고 하니 이 책을 시작으로 펑펑 불꽃을 터뜨릴 것 같다.
책에 실린 글들은 대부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엄마, 가족, 친척, 친구라 불렀던 이들, 장애인 보조 활동지원사, 그리고 마사지를 받으러 오는 손님들까지. 그녀의 직업은 마사지사다. 손님의 몸뿐 아니라 마음도 말랑말랑하게 마사지해준다. 마사지를 받고 간 손님들은 잠을 푹 잤을 것이다. 마사지를 잘 받아서 그렇다고 여기겠지만 분명 마음의 이완도 이루어졌을 것이다. 자신이 대나무숲이 된 것 같다고 표현했듯 말이다. 마사지사 경력이 오래되었다 해서 모든 손님들이 대하기 쉬운 건 아닐 것이다. 일상에선 편견어린 시선과 비하성 발언이 따라붙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손님들도 있다. 그러나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을 반면교사 삼는다.
장애인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읽고 학생들은, ‘나는 저렇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식으로 글을 쓴다. 나는 무어라 피드백을 해야할 지 난감하다. 발달장애와 언어장애가 있는 시조카를 보며 내 자식이 그렇게 태어 태어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장애가 불편할지라도 불쌍한 건 아니라고,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면 안 된다고, 학생들에게 말하면서는 마음 한쪽이 뜨끔거린다. 자신의 잣대로 그녀에게 올바른 행동을 유도하는 보조활동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런 내 이중적 태도를 들킨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책에서 애증의 심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작가 모녀의 관계는 가장 놀라웠던 부분이다.그런 관계는 내 주위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친정엄마에게 자식의 도리라는 의무감만 남은 나는 이제 엄마를 사랑한다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나는 딸이 없기 때문에 아웅다웅하다가도 금세 알콩달콩하는 모녀 관계를 상상할 수 없다. 이런 내 입장에서 작가와 엄마의 살벌하고도 애정 넘치는 사이는 언뜻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화끈하고 열정적인 모친의 성정을 빼닮은 작가는 오늘도 땀 흘리며 탱고를 배운다. 그리고 손님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 자신의 편견을 발견하면 선뜻 사과한다.
조승리 작가는 샘터 수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고 그간 써온 글들을 이번에 책으로 냈다. 이 펄떡거리는 글들에서 솟아나는 생명력에 눈이 부시다. 앞으로 축제 같은 글들을 팡팡 써낼 거라 기대한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