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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랜B의 은유 - 윤슬빛 소설집 ㅣ 꿈꾸는돌 38
윤슬빛 지음 / 돌베개 / 2024년 4월
평점 :

아들이 중학교 때인가, 내게 물은 적이 있다. 자기가 남자를 사랑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동성애 코드를 다룬 드라마를 보던 중이었는데 당시 그 드라마는 꽤 파격적인 설정으로 논란이 있었다. 그 드라마에서 엄마가 아들에게 말했던 것과 비슷한 대답을 나도 했던 것 같다. 아들의 성정체성이 그러하다면 인정해줘야지 내가 뭘 어떻게 바꾸겠냐고. 멋있는 척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내 주위엔 동성애자가 없어서 책이나 드라마, 영화 등에서 만나는 게 내가 아는 전부다. 동성애자는 커밍아웃을 했을 때의 후폭풍 때문에 보통은 정체성을 숨기고 산다. 커밍아웃 후에 발생하는 갈등 중에서 부모의 비난이 가장 큰 것 같다. 본인보다 더 괴로워하는 부모의 입장을 그린 것들이 많다보니 내 시야가 그러한 구도에 매몰되어 있었다.
윤슬빛 작가의 신작 단편집 <플랜B의 은유>의 표제작 “플랜B의 은유”는 정반대의 시선이다. 투명인간으로 살기 싫었다는 재호 엄마와 ‘플랜B 이모’와의 관계가 나온다. 혼인신고를 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아들인 재호와 딸 은유의 입장에서 서술된다. 엄마 독자의 입장에서 좀 당황스러웠다. 이혼 후 새로운 사랑을 찾는 엄마는 자연스러우나 그 대상이 여자라서 어색한걸까. 아들의 커밍아웃에 인정하겠다고 말했던 나는, 쿨한척 하고 싶었던 이중적인 인간이었던 거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상대가 이성일 때에만 정상이라는 전제가 내 인식체계에 깔려있었던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사고를 지배한 미디어의 영향이 컸다고 생각한다. 혐오어린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소설 <브로크백 마운틴>이나 영화 <캐롤>처럼 동성애를 아름답게 다룬 작품들을 감동적으로 봤으면서도 자꾸 미디어 때문이라고 말하면 비겁한 변명밖에 되지 않는다.
윤슬빛 작가의 이번 소설집에는 동성애 코드가 주 소재이며 주인공들은 모두 청소년이다. 그들의 삶이 그리 순탄치 않으리라는 예상은 나처럼 한쪽으로 치우친 사고를 하는 사람들에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소설 7편의 분위기가 그리 어둡지 않기 때문이다. 십대만의 싱그러운 생명력과 작가의 스타일이 소재가 품은 한계를 넘어선다.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로 인해 고달픈 주인공들도 있지만 꿋꿋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래서 주인공들을 응원해주고 싶었다. 지키고 싶었던 진짜 비밀을 고백해버린 “고백”의 채경에게, 무책임한 부모 대신 동생을 돌보며 알바를 하는 “환환 밤”의 주인공에게, 너 그대로 충분하다고 “Freely in the closet”의 유안에게.
며칠 전 작고하신 홍세화 선생은 책 <미안함에 대하여>에서 ‘단 한사람이라도 자유롭지 못한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고 했다. 이 말에 공감하면서도 우리 사회가 자유로운 사회가 될 날이 요원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인다. 하지만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지하철을 이용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함께 어디든 다닐 수 있고, 성소수자가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는 사회가 되길, 너무 오래지 않게 그런 날이 오길 바란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