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카를 위한 소나타
아단 미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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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소개를 보고 서평단에 신청했다. <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라는 제목과 첼로를 연주하는 미소년 같은 청년이 그려진 표지가 나를 이끌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3년 정도 피아노를 배웠고 중학교 이후로는 피아노와 멀어졌다. 어른이 되어 배워보고 싶은 악기가 첼로였다. 10여 년 전 자클린 뒤프레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녀의 파워풀한 연주에 푹 빠져버렸다. 그 다큐를 통해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사랑, 그와 행복했던 연주 시절, 그리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극적인 삶을 알게 된 후 연주를 찾아 들을 때마다 울컥울컥함은 자동 반사적이었다.


클래식 음악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듣다 보니 소설 <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도 기대하며 읽었다. 이 소설에 첼로를 연주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주 소재는 저작권 분쟁 소송이다.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음악 저작권 등록 및 사용료 징수에 대한 사건이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작가 아단 미오는 이 소설로 서점대상을 비롯해 미라이야 문학상 대상,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받았고,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다.


주인공 다치바나 이스키는 일본 저작권 연맹 직원인데 상사 시오쓰보로부터 비밀 업무를 부여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작권 위반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미카사 음악교실에 수강생으로 위장하는 업무였고, 그러한 스파이 활동은 2년간 지속해야 했다. ‘아사바 오타로가 다치바나의 강사로 배정되었다. 둘은 나이 차가 두 살밖에 나지 않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다치바나는 어릴 적에 납치당할 뻔 했던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겨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수면장애 때문에 클리닉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그 사건 이후로 첼로를 그만두었다. 아사바는 전공자이고 부다페스트 음악원을 수료했지만 이름이 알려진 연주자는 아니다. 사제 지간으로 만난 둘 사이에 우정이 피어나 아름다운 하모니로 승화된다든지, 감춰진 천재성이 드러나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다든지 하는 극적 결말로는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식으로 소개하면 책을 직접 읽어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재미없을 거라는 선입견을 줄까봐 저어된다. 그러나 음악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면서 저작권 사용료 분쟁이라는 현실적 사안에 스파이 영화와 주인공의 처지를 교차하여 촘촘하게 엮어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클래식 곡을 연주할 때 저작권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주인공이 음악학원에 잠입해서 사례를 수집한다는데 공연장에서 연주를 하는 게 아니어도 사용료를 내야 하나?’ 같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미카사 음악교실에 수강한 성인들은 귀에 익고 비교적 배우기 쉬울 것 같은 대중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위반 사례는 클래식 곡이 아니다. 일본 저작권법에 의하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연주하는 것은 다 해당되며 강사와 수강생이 일대일로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매주 금요일 다치바나는 볼펜형 녹음기를 켜둔 채 아사바를 만난다. 그에게서 음악을 상상하며 켜는 법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고 음악교실 사람들의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다치바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한다. 다치바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라부카(심해 상어)가 심해에서 수면 위로 올라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는 심연에서 올라온 다치바나 자신을 위한 위로의 연주다. 조직의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만 했지만 그것이 결국 다치바나를 변화시켰다.


이 소설은 격정적이거나 기막힌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소송 관련해서 작은 반전이 있고, 심약해 보이는 다치바나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직장 동료와 인간적 교류를 하지 않고 자발적 고립 상태를 유지하던 다치바나가 아사바나 첼로 모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배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성장소설이라 하겠다. 음악을 통한 교감이었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다치바나는 아사바에게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것은 바흐라고 말한다. 3년이 걸렸다. 그리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켜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은 저작권 사용료 분쟁을 통해 작곡가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작곡가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또한 일상에서 즐기는 음악이 우리를 얼마나 인간답게 해주며 악기를 매개로 한 교류에서 피어나는 유대는 대체 불가하다는 것도나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해보고 싶은데 아직 첼로를 배우지 못했다. 그저 이런 책을 읽고 뒤프레, 요요마의 연주를 들으며 활을 잡을 날을 꿈꾼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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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건너 서로를 만났고 이 삶을 함께하고 있어 - 펫로스, 반려동물 애도의 기록
최하늘 지음 / 알레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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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을 떠나보낸 후 애도의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사례담을 엮은 책이 출간되었다. <우리는 무한한 우주를 건너 서로를 만났고 이 삶을 함께하고 있어>는 ‘펫로스 전문 상담소 살다’를 운영하며 반려동물 애도 상담 및 교육에 앞장서고 있는 최하늘씨가 썼다. 이 책에는 개, 고양이뿐 아니라 토끼, 앵무새까지 10건의 사례가 나오는데 모두들 사랑하는 아이를 보내고 힘들어하다 상담을 통해 펫로스 증후군을 극복했다. 극복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곁을 떠나간 존재를 위해 제대로 애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니 극복이라는 단어가 합당한 듯하다.

사람이든 가족이든 사랑하는 대상이 떠났을 때는 세상을 다 잃은 것 같은 게 당연하다. 무한 슬픔에 빠져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된다. 애도의 과정을 잘 보내지 않으면 슬픔에서 빠져나오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아무리 반려동물 인구가 많아졌다고 해도 모두가 상실의 슬픔에 공감해주는 것은 아니다. 겪는 이마다 그 슬픔의 크기가 같은 것도 아니며 동물을 키우지 않은 다수의 사람들은 아예 이해하지 못하니 말이다. 동물 죽은 걸 가지고 유별나게 군다는 말을 들으면 상처는 더욱 깊어지게 된다.

그래서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만나 서로의 고통을 공유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이 책의 저자는 전문적인 펫로스 상담과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슬픔을 수용하고 회복하도록 돕고 있다. 책의 구성은 각 사례별로 앞에는 떠난 반려동물과의 사연을 공개한 후 저자의 상담일지로 이어진다. 상담 내용을 일부 공개하면서 조금 더 깊이 상담자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어떠한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애도와 회복의 과정에 이르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개인 펫로스 상담과 ‘펫로스 서클’이라는 사별 집단 모임을 비롯해 역할 바꾸기 기법, 드라마치료 기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은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에게 치유 방법에 대한 정보를 준다. 현재 그러한 상황이라면 상담을 받아볼 수 있고 직접 상담 받지 못하더라도 책에서 다룬 사례를 읽으며 위로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이든 반려동물이 있는 경우엔 미리 대비할 수 있는 유용한 책이다. 부록에 실린 ‘파비스 펫로스 유형’이라는 자가 진단 도구는 자신의 상태를 쉽게 파악하고 치유 및 애도 과정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6가지 유형의 항목에 4개 이상 체크가 된 경우 해당 유형이며 그 유형에 따른 심리치료 추천방법까지 나와 있다.

사랑하는 반려동물을 잃은 슬픔은 함께 한 시간이나 동물의 종류에 따라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토끼가 죽으면 개보다 덜 슬플까? 1년을 함께 한 것보다 15년을 함께 한 게 더 슬플까? 그렇지 않았다. 그 누구도 당사자의 슬픔을 측량할 수 없다. 저마다 애정의 시간과 상실의 고통 모두 최대치이다. 그러니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이해와 공감이 안 되더라도 조용히 지켜봐주고 슬픔 속에 너무 오래 있지 않도록 이 책을 권유해보면 어떨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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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
이순하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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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딸이 되려고 몇 생을 넘어 여기에 왔어>는 육십대에 낸 첫 에세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순하 작가의 필력 내공이 돋보이는 책이다. 한 사람이 살아온 60여 년의 시간 동안 먹고 사는 일이 이다지도 파란만장할 수가 있을까. 이북에서 내려온 작가의 아버지, 대구에서 한의원을 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외에 외갓집 식구들 및 친구와 먹었던 음식들을 작가가 하나씩 차려낼 때마다 대한민국 현대사가 펼쳐졌다.

 

이 책은 음식에세이이며 작가의 자서전이자 한국 현대사 속에 숨은 생활문화사이기도 하다. 매 꼭지는 하나의 음식을 소재로 한 단편 소설 같았다. 아버지가 첩실을 여럿 두었어도 참아야만 했던 엄마, 쥐고기를 먹고 기력이 회복된 언니의 이야기, 여중생에게 휘두르던 교사의 일상적 폭력, 키다리 아저씨 같았던 친구의 아버지, 지금 상식으론 어불성설인 작가 시어머니의 행동들이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작가는 소재가 되는 음식의 유래와 조리법을 자신과 가족 및 주변 인물들의 삶과 맛깔스럽게 버무려 일품요리로 차려냈다. 눈과 코를 자극하는 문장들은 비유로 넘실거려 독자를 아름다운 문학의 세계로 이끈다.

 

여자는 갱죽에 수제비를 떠 넣고 있었다. 화덕의 화기를 돋우려고 부채로 불을 일구었다. 넘실거리는 화력에 뜨거워진 여자의 얼굴은 홍옥처럼 붉었다. 그녀는 선 채로 뜨거운 갱죽을 소리 없이 먹었다. 여자의 소음 없는 수저질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아버지에 대한 비정이 비탄으로 바뀌어 귓속의 달팽이관이 울듯 마른 울음을 울고 있다고 생각했다. 여자는 온기가 사라진 구들목을 다시 데우는 데 내동댕이쳐져 흠씬 젖은 장작은 하등 쓸모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애잔한 추억과 눈물로 범벅된 작가의 인생 음식들 중에서 독자가 먹어본 것도 있을 것이고 처음인 것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이 책에서 소개된 음식을 보며 자신의 경험이 오버랩되면 공감할 것이며 생소한 음식은 맛보고 싶어질 것이다. 나는 이 책의 음식들보다는 작가가 써내려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더 감정이입되었다. 뜨겁고 달콤한 호떡으로 인생의 쓴맛을 일찍 알아버렸던 중학교 때, 작가의 중학생 시절을 견디게 해준 영미와 영미 아버지 이야기에서 나도 내 친구 영미를 떠올렸다. 나의 중학교 시절을 가장 즐겁게 해준 친구가 바로 김영미였다. 작가처럼 다른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어 영미와는 연락이 끊겼고 이후로 지금껏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작가는 어른이 되어 영미를 우연히 만난 적이 있었다. 친구는 엄마 병원비를 내지 못해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작가는 수중에 있던 제 병원비 몇 푼을 쥐어주고 돌아섰는데 영미에게 병원비를 대주겠다는 약속을 하지 못했다. 작가도 당시에 곤궁했기 때문에 시간이 좀 걸려 뒤늦게 돈을 마련하여 병원으로 달려갔으나 영미를 만날 수 없었다. 중학교 시절 작가에게 아버지 역할을 해주었던 영미 아버지를 생각하면 자신의 행동은 너무나 부끄러운 짓이었다. 작가는 호떡을 볼 때마다 용서를 떠올린다. 은혜를 갚을 기회를 놓친 것을 후회한다고 했다. 혹여 작가의 친구 영미씨가 이 책을 보게 되어 다시 만날 기회가 생기면 좋겠다.

 

백열전구가 절간의 풍경처럼 매달려 있던 어둠고 침침한 동굴 같은 호떡집이었다. 낡아빠진 양은쟁반에다 호떡을 담아주었다. 뜨거운 호떡을 베어 물면 먹물 같은 검은 설탕물이 줄줄 흘렸다. 혀가 델 정도로 뜨거웠지만 뜨거울수록 맛이 있었다. 호떡집을 자주 드나들다보니 호떡처럼 몸을 낮추어야, 뜨거워도 견더야 단것이 입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인간은 제 고통이 크면 타인을 돌아볼 겨를이 없고 가난은 마음의 여유를 허락하지 않는다. 언젠가 은혜도 갚고 힘든 사람을 돌봐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생각만큼 쉽지 않다. 행복을 저금해두었다 나중에 행복해질 수 없듯 말이다. 작가의 친정엄마는 젊은 시절 딴집 살림을 여럿 차린 남편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는데 남편이 52세에 세상을 뜬 후 가장이 되어 자식 넷을 먹여살려야 했다. 씩씩한 대장부로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노년에는 페루로 이민간 셋째딸네에 가서 그 동네의 대모가 될 정도로 맘씨 넓고 자애로운 한국여성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대구에서 서울로, 그리고 페루로, 일생을 종횡무진 거침없이 살다가신 작가 친정어머니의 생이 존경스러웠다. 작가도 사랑과 존경의 뜻을 담아 책 제목을 이렇게 지은 것 같다.

 

마지막에 "늬 아버지 마음만은 어찌할 수 없더라."는 당신의 말에 작가는, '오랫동안 가슴속에서 삭고 삭아 이제는 향기조차 날아가버린 오래 묵은 씨간장 같은 말'이라고 표현했다. 얼마나 한 남자에게 오롯이 사랑받는 여자가 되고 싶었을까. 가족을 위해 한평생 열심히 살았던 사람에게 그다지도 큰 욕심이었을까. 같은 여자로서 애잔한 마음이 들었다. 작가 친정엄마의 생을 이 책으로 만나보니 질곡의 세월을 살아낸 이 땅의 모든 엄마들에게 경외심이 든다. 물론 우리 엄마에게도.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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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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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김영사의 블라인드 서평단용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예전에 동물원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중학생들과 토론수업을 한 적이 있다. 크게 동물들이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를 빼앗으면 안 된다는 주장과 인간(특히 아이들)이 다양한 동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허락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다른 주장들은 사실상 그 두 주장의 곁가지였을 뿐 아이들 입장에서 동물원이 없어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물원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대안이 필요한데 아이들에게서 그런 의견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나 역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았고 동물원에서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의 일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게 되면서 동물 관련 서적들을 찾아 읽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의 에세이에서 시작해 반려동물 산업을 다룬 책을 읽은 후 동물단체에 기부도 시작했다. 관심은 자연스레 자연 생태 다큐로 옮아갔고, 관련 서적은 물론 육식과 채식을 다룬 책, <클린 미트>(체세포로 만든 배양육)도 읽었다. 이러한 독서활동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 종인지를 절감했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님에도 독재자처럼 굴고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침없다.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면 다른 종들도 이 생태계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시 동물원을 생각해보자. 인간에게 동물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존치하고 있다면 동물원 동물들의 삶의 질에 신경써야 할 것이다. 동물의 생태를 더 공부하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렇게 동물을 돌본다는 것이 지극히 인간적 사고에 입각한 것일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동물과 역지사지한다는 것 자체가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는 어른들이 사고의 방향을 조금만 틀어보면 어떨까. 동물들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의 생태에 대해 알아 본 후 동물원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읽어보면 아주 도움이 될 책이 나왔다.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는 청주동물원 수의사 변재원씨의 에세이다. 동생처럼 키우던 개를 치료하고 싶어서 수의학과에 진학했고 군 생활을 하던 연평도 바닷 속 장관에 사로잡혀 해양동물 수의사가 되었다.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동물들은 해양동물뿐만이 아니었다. 카멜레온,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재규어, 수달, 홍따오기, 물범, 바다코끼리, 비버, 바이칼물범을 돌본 이야기가 1장 아쿠아리움에서 에 펼쳐진다. 모든 초보들은 어설프지만 초보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성적이다. 그가 첫 직장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동물들에게 보인 행동은 진심 한가득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추정나이와 체중뿐인 정보만을 들고 새로 들어온 물범을 오진했다. 갈팡질팡하던 끝에 수조 속에 새끼를 낳은 것을 보고서야 임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내 사육 물범의 출산은 국내에서 처음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어미가 출산한 새끼를 외면하자 수의사가 돌보게 되었다. 새끼 물범 케어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라 물범 전용 분유를 제조하는 것부터 먹이는 것까지 담당 사육사와 저자가 번갈아가며 돌봤다. 그는 자신이 아빠 물범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그렇게 변수의사는 착실히 임상경험을 쌓아 나갔다.

나는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면서 여러 동물병원을 전전하다보니 수의사들이 인간 의사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과별로 전문의가 있지만 동물병원은 수의사가 모든 과를 진료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많을수록 진료를 잘 한다. 우리집 러시안블루 암컷은 중성화수술이 잘못되어 죽을 뻔했고, 수컷은 아파트 10층에서 추락했지만 앞다리 한쪽만 골절되고 무사했다. 막내 스코티쉬폴드싱글 수컷은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중이다. 이사 후에 다니던 병원이 멀어 가까운 곳에 가서 중성화 수술 했다가 잘못될 뻔 했던 고양이를 예전 병원에 데려가 겨우 살렸다. 재수술 받은 후 멀어도 그 병원에 다닌다. 선생님들은 오랫동안 그곳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소개받아서 찾아간다.

2장 청주동물원에서 는 그곳의 동물들과 사육곰에 대한 이야기, 안락사당할 뻔했다가 터를 잡은 늙은 강아지, 동물 밖 야생동물 사연까지 두루두루 다룬다. 저자가 언급했다시피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2장에서 다룬 사육곰의 운명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1980년대 농가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곰을 수입하여 사육하는 것을 권장해놓고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곰을 애물단지로 만들어버렸다. 청주동물원은 2018년부터 사육곰을 동물원의 식구로 받아 지금은 다섯 마리의 곰이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아직 당진에는 국내 최대 곰 농장이 있는데 청주동물원의 수의사들은 정기적으로 이곳에 봉사활동을 나간다. 2026년부터 곰 사육이 전면 금지될 예정이나 여전히 전국에 300마리가 넘는 곰이 사육되고 있다고 한다. 2025년까지 구조되지 못하는 곰들은 모두 도축될 운명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이 애꿏은 생명을 학대하고 기어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3장 동물원의 꿈에서는 저자가 그동안 만난 동물들의 삶의 질에 관한 생각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저지른 과오들을 씻어낼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다. 생태계안의 모든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독자도 생각해볼 문제들이지만 정책을 입안하는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p.170~171

따지고 보면 서식지 파괴, 외래종 밀반입 및 유기 등 문제의 원인은 전부 인간에게 있는데 또다시 인간에 의해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유해 조수 혹은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되어 인간의 손에 관리(라는 이름으로 제거)된다. 생태를 가장 교란하고 잇는 종은 인간이건만 죄 없는 동물만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 심지어 포획되는 방식까지도 잔인하기 그지 없다. 포상금을 노린 인간들의 총에 맞거나, 틀이나 덫에 갇히거나, 산 채로 묻힌다. 다친 동물을 살리는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좀 인도적인 처분을 고민할 수는 없는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해결책이 제거나 퇴출뿐이라면 마지막 순간이라도 고통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식을 고려할 수는 없는 것인지.

이 책을 읽고 청주동물원이 기존의 동물원과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동물의 사연을 알려주고, 장애인도 관람할 수 있으며, 죽은 동물을 추모할 수 있는 곳. 전국의 동물원이 청주동물원처럼 동물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

p.195

팀장님과 내가 바라는 동물원의 모습은 어떤 특정한 운영 방식이 아니라 동물원 수의사로서 동물원의 동물들이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고, 사람에게 길들여져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이나 열악한 시설에서 고통받는 동물을 이런저런 고민 없이 받을 수 있고, 그들의 여생을 동물원에서 편히 보낼 수 있도록 오로지 동물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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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 - 커플, 육아, 공동체로 보는 다정한 풍경들
신성미 지음 / 크루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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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소설을 읽는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못가니까 여행 책자 보며 간접 여행한다.

이민 가고 싶지만 못가니 다른 나라에 사는 한국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대리 만족한다.

책은 이렇게 나를 먼 곳으로 데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활자 안에서 나는 한껏 자유롭다. 즐기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서평단 자격으로 받은 책 <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은 최근 읽어본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 중 최고였다. 동아일보 경제, 문화부 기자 출신인 저자 신성미씨는 미국여행에서 만났던 스위스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에 산지 10년이 되었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면서 겪은 일들을 책으로 냈는데 기자출신답게 전달력, 구성력은 물론 삽입된 사진까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물론 편집자의 노고도 큰 몫을 했겠지만!


내가 스위스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건 몹시 단편적이었다. 중립국, 융프라우, 루체른 페스티벌과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정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그려진 스위스의 자연에 매료되었다. 스위스는 인기 여행지 중 하나지만 그 드라마 이후로 더 많은 이들이 여행가고 싶어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여행만으로는 한 나라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여행 중 가이드가 알려주는 정보는 여행 후엔 다시 오지 않을 썰물처럼 밀려가버린다. <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에서 저자는 스위스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부터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까지 보여준다. 읽고 있으니 마치 그곳에서 저자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기분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결혼과정을 공개하며 스위스의 결혼문화에서 시작해 출산, 육아, 가족 및 이웃들과의 교류가 어떠했는지 그곳에서 살아온 시간 순서대로 엮었다. 중간중간에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정보들도 쏙쏙 집어넣어 에세이에 실용성을 더했다. 



스위스는 이민이 쉽지 않은 나라이고 물가 수준이 어마어마해 한 달 살기를 해보기는 힘들다. 또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스위스의 전반적인 사회제도와 문화들 중 일부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도 쉽지는 않다. 여러 면에 있어서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산이 많은 지형인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나 스위스의 면적은 경상도 정도이며 인구는 900만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거형태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일상생활 모습도 차이가 크다. 그렇다고 마냥 부러워만하다 책을 덮기엔 아쉬운 마음이다. 스위스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지만 과감한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저자도 스위스를 무조건 따라하라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책적으로든 일상에서든 차용해 볼만할 것들은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난관이 많다며 먼저 선을 그으면 다른 나라의 어떤 장점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어떤 것을 실행하지 못했을 때, 그것을 해내기 어려운 이유를 구구절절 갖다 대는데 변명거리를 찾을 시간에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낫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놀랐다. 결혼 초창기 내가 꿈꾸었던 결혼 생활과 자녀 양육방식, 교육관 등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실행에 옮겨 성공한 것도 있고 현실의 벽 앞에서 포기한 것도 있는데 스위스였다면 대부분 이루어졌지 않을까 싶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가정(커플)을 최우선으로 두는 문화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대개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였을 때에만 파트너로 인정해주고 가족 모임에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위스는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동거 커플이 많고 동성혼도 합법이다. 가족 행사나 모임에 어떤 형태의 커플이든지 같이 참여한다. 부모가 각자 재혼했더라도 자녀는 양쪽의 커플들과 무람없이 만난다. 출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비혼 상태에서의 출산은 거의 손가락질 대상이다. 최근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6명 대인 반면 스위스는 1.5명 정도다. 가족과 사회가 새생명을 대하는 태도에 현격한 차이가 있고 교육시스템도 많이 다르다.


스위스에서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양육하여 독립심을 키우고,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제 용돈을 벌어쓰고, 성인이 되면 독립하는 것은 당연하고, 결혼할 때 부모로부터 일체의 자금 지원을 받지 않는다. 파트너와 가정을 가장 우선해주고 은퇴 후에도 연금으로 남은 생애를 여유롭게 누릴 수 있다. 이런 식의 생애주기가 가능한 이유는 스위스의 문화와 사회제도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만난 스위스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독립적 개인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게 아니라 탄탄한 유대를 형성해 커플을 이루고 나아가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흔히 서양은 개인주의적이고 동양은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말은 스위스에서는 아니었다. 고독사가 늘어나고 전연령대의 자살률이 세계 1위를 찍는 우리나라의 공동체의식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딸의 몸조리를 위해 스위스에 와서 지내는 동안 그 동네 사람들의 모습에서 1960년대 우리나라가 떠올랐다고 했다. 21세기 유럽의 어느 마을에서 만난 끈끈한 이웃 간의 정을 부러움과 아쉬움의 눈길로 바라보았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스위스 관찰기를 스위스에 관심이 있거나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한국과 많이 다른 사회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썼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혔다. 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면서 지금 결혼을 계획하고 있거나 신혼인 사람들, 임신중이거나 영유아 자녀가 있는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스위스만큼 가정을 우선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어떻게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지를 계획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고 싶다한들 현실적인 난관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 책이 응원해 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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