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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 - 커플, 육아, 공동체로 보는 다정한 풍경들
신성미 지음 / 크루 / 2024년 4월
평점 :

나는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소설을 읽는다.
여행을 가고 싶지만 못가니까 여행 책자 보며 간접 여행한다.
이민 가고 싶지만 못가니 다른 나라에 사는 한국 사람의 일상을 들여다보며 대리 만족한다.
책은 이렇게 나를 먼 곳으로 데려가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준다. 활자 안에서 나는 한껏 자유롭다. 즐기지 않을 수 없다.
이번에 서평단 자격으로 받은 책 <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은 최근 읽어본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 중 최고였다. 동아일보 경제, 문화부 기자 출신인 저자 신성미씨는 미국여행에서 만났던 스위스 남자와 결혼해 스위스에 산지 10년이 되었다.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살면서 겪은 일들을 책으로 냈는데 기자출신답게 전달력, 구성력은 물론 삽입된 사진까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했다. 물론 편집자의 노고도 큰 몫을 했겠지만!
내가 스위스라는 나라에 대해 아는 건 몹시 단편적이었다. 중립국, 융프라우, 루체른 페스티벌과 몽트뢰 재즈 페스티벌 정도.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서 그려진 스위스의 자연에 매료되었다. 스위스는 인기 여행지 중 하나지만 그 드라마 이후로 더 많은 이들이 여행가고 싶어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여행만으로는 한 나라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 어렵다. 여행 중 가이드가 알려주는 정보는 여행 후엔 다시 오지 않을 썰물처럼 밀려가버린다. <사랑한다면 스위스처럼>에서 저자는 스위스 사회의 전반적인 모습부터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까지 보여준다. 읽고 있으니 마치 그곳에서 저자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기분이었다.
저자는 자신의 결혼과정을 공개하며 스위스의 결혼문화에서 시작해 출산, 육아, 가족 및 이웃들과의 교류가 어떠했는지 그곳에서 살아온 시간 순서대로 엮었다. 중간중간에 독자들이 궁금해할만한 정보들도 쏙쏙 집어넣어 에세이에 실용성을 더했다.


스위스는 이민이 쉽지 않은 나라이고 물가 수준이 어마어마해 한 달 살기를 해보기는 힘들다. 또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스위스의 전반적인 사회제도와 문화들 중 일부를 우리나라에 바로 적용하기도 쉽지는 않다. 여러 면에 있어서 차이가 많기 때문이다. 산이 많은 지형인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나 스위스의 면적은 경상도 정도이며 인구는 900만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주거형태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일상생활 모습도 차이가 크다. 그렇다고 마냥 부러워만하다 책을 덮기엔 아쉬운 마음이다. 스위스 사람들처럼 살 수는 없지만 과감한 사고의 전환을 시도해보는 건 어떨까.
물론 저자도 스위스를 무조건 따라하라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정책적으로든 일상에서든 차용해 볼만할 것들은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에 적용하기에는 난관이 많다며 먼저 선을 그으면 다른 나라의 어떤 장점도 수용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어떤 것을 실행하지 못했을 때, 그것을 해내기 어려운 이유를 구구절절 갖다 대는데 변명거리를 찾을 시간에 어떤 식으로든 행동으로 옮기는 게 낫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놀랐다. 결혼 초창기 내가 꿈꾸었던 결혼 생활과 자녀 양육방식, 교육관 등과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다. 실행에 옮겨 성공한 것도 있고 현실의 벽 앞에서 포기한 것도 있는데 스위스였다면 대부분 이루어졌지 않을까 싶다. 가장 부러웠던 것은 가정(커플)을 최우선으로 두는 문화다. 결혼 여부와 상관없이. 우리는 대개 결혼이라는 제도로 묶였을 때에만 파트너로 인정해주고 가족 모임에 함께 할 수 있다. 그러나 스위스는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는 동거 커플이 많고 동성혼도 합법이다. 가족 행사나 모임에 어떤 형태의 커플이든지 같이 참여한다. 부모가 각자 재혼했더라도 자녀는 양쪽의 커플들과 무람없이 만난다. 출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비혼 상태에서의 출산은 거의 손가락질 대상이다. 최근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은 0.6명 대인 반면 스위스는 1.5명 정도다. 가족과 사회가 새생명을 대하는 태도에 현격한 차이가 있고 교육시스템도 많이 다르다.
스위스에서는 어려서부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양육하여 독립심을 키우고, 중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제 용돈을 벌어쓰고, 성인이 되면 독립하는 것은 당연하고, 결혼할 때 부모로부터 일체의 자금 지원을 받지 않는다. 파트너와 가정을 가장 우선해주고 은퇴 후에도 연금으로 남은 생애를 여유롭게 누릴 수 있다. 이런 식의 생애주기가 가능한 이유는 스위스의 문화와 사회제도가 잘 맞는 톱니바퀴처럼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책으로 만난 스위스에서 내가 가장 주목한 부분은 독립적 개인들이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게 아니라 탄탄한 유대를 형성해 커플을 이루고 나아가 건강한 공동체를 형성한 것이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흔히 서양은 개인주의적이고 동양은 공동체를 중시한다는 말은 스위스에서는 아니었다. 고독사가 늘어나고 전연령대의 자살률이 세계 1위를 찍는 우리나라의 공동체의식은 무너지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딸의 몸조리를 위해 스위스에 와서 지내는 동안 그 동네 사람들의 모습에서 1960년대 우리나라가 떠올랐다고 했다. 21세기 유럽의 어느 마을에서 만난 끈끈한 이웃 간의 정을 부러움과 아쉬움의 눈길로 바라보았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스위스 관찰기를 스위스에 관심이 있거나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 한국과 많이 다른 사회에 호기심이 있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썼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혔다. 나는 저자의 말에 동의하면서 지금 결혼을 계획하고 있거나 신혼인 사람들, 임신중이거나 영유아 자녀가 있는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우리나라가 스위스만큼 가정을 우선하는 제도를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가정을 꾸려나가는 데 있어 어떻게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지를 계획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하고 싶다한들 현실적인 난관이 없지는 않겠지만 이 책이 응원해 줄 것이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