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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부카를 위한 소나타
아단 미오 지음, 김은모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5월
평점 :

음악을 소재로 한 소설이라는 소개를 보고 서평단에 신청했다. <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라는 제목과 첼로를 연주하는 미소년 같은 청년이 그려진 표지가 나를 이끌었다. 나는 초등학교 때 3년 정도 피아노를 배웠고 중학교 이후로는 피아노와 멀어졌다. 어른이 되어 배워보고 싶은 악기가 첼로였다. 10여 년 전 ‘자클린 뒤프레’의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녀의 파워풀한 연주에 푹 빠져버렸다. 그 다큐를 통해 다니엘 바렌보임과의 사랑, 그와 행복했던 연주 시절, 그리고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녀의 극적인 삶을 알게 된 후 연주를 찾아 들을 때마다 울컥울컥함은 자동 반사적이었다.
클래식 음악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클래식 음악도 즐겨 듣다 보니 소설 <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도 기대하며 읽었다. 이 소설에 첼로를 연주하는 주인공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주 소재는 저작권 분쟁 소송이다. 일본에서 실제 있었던 음악 저작권 등록 및 사용료 징수에 대한 사건이 모티프로 사용되었다. 작가 ‘아단 미오’는 이 소설로 서점대상을 비롯해 미라이야 문학상 대상, 오야부 하루히코상을 받았고,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등 각종 문학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다.
주인공 ‘다치바나 이스키’는 일본 저작권 연맹 직원인데 상사 시오쓰보로부터 비밀 업무를 부여받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저작권 위반 사례를 수집하기 위해 미카사 음악교실에 수강생으로 위장하는 업무였고, 그러한 스파이 활동은 2년간 지속해야 했다. ‘아사바 오타로’가 다치바나의 강사로 배정되었다. 둘은 나이 차가 두 살밖에 나지 않지만 성격은 정반대다. 다치바나는 어릴 적에 납치당할 뻔 했던 사건으로 트라우마가 생겨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수면장애 때문에 클리닉에서 상담을 받고 있다. 그 사건 이후로 첼로를 그만두었다. 아사바는 전공자이고 부다페스트 음악원을 수료했지만 이름이 알려진 연주자는 아니다. 사제 지간으로 만난 둘 사이에 우정이 피어나 아름다운 하모니로 승화된다든지, 감춰진 천재성이 드러나 콩쿠르에서 우승을 한다든지 하는 극적 결말로는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 식으로 소개하면 책을 직접 읽어보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재미없을 거라는 선입견을 줄까봐 저어된다. 그러나 음악을 소재로 하는 소설이면서 저작권 사용료 분쟁이라는 현실적 사안에 스파이 영화와 주인공의 처지를 교차하여 촘촘하게 엮어냈기 때문에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클래식 곡을 연주할 때 저작권 사용료를 내야 한다고?’ ‘주인공이 음악학원에 잠입해서 사례를 수집한다는데 공연장에서 연주를 하는 게 아니어도 사용료를 내야 하나?’ 같은 의문이 생길 것이다. 미카사 음악교실에 수강한 성인들은 귀에 익고 비교적 배우기 쉬울 것 같은 대중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위반 사례는 클래식 곡이 아니다. 일본 저작권법에 의하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연주하는 것은 다 해당되며 강사와 수강생이 일대일로 배울 때도 마찬가지다.
매주 금요일 다치바나는 볼펜형 녹음기를 켜둔 채 아사바를 만난다. 그에게서 음악을 상상하며 켜는 법을 배우고 자연스럽게 음악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고 음악교실 사람들의 모임에도 참여하면서 다치바나는 조금씩 조금씩 변한다. 다치바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칠흙 같은 어둠 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라부카(심해 상어)가 심해에서 수면 위로 올라올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는 심연에서 올라온 다치바나 자신을 위한 위로의 연주다. 조직의 목적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해야만 했지만 그것이 결국 다치바나를 변화시켰다.
이 소설은 격정적이거나 기막힌 반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 소송 관련해서 작은 반전이 있고, 심약해 보이는 다치바나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직장 동료와 인간적 교류를 하지 않고 자발적 고립 상태를 유지하던 다치바나가 아사바나 첼로 모임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법을 배운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성장소설이라 하겠다. 음악을 통한 교감이었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소설의 마지막, 다치바나는 아사바에게 자신이 배우고 싶었던 것은 바흐라고 말한다. 3년이 걸렸다. 그리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켜면서 소설은 끝이 난다.
이 소설은 저작권 사용료 분쟁을 통해 작곡가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 작곡가 당사자에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알려준다. 또한 일상에서 즐기는 음악이 우리를 얼마나 인간답게 해주며 악기를 매개로 한 교류에서 피어나는 유대는 대체 불가하다는 것도. 나도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연주해보고 싶은데 아직 첼로를 배우지 못했다. 그저 이런 책을 읽고 뒤프레, 요요마의 연주를 들으며 활을 잡을 날을 꿈꾼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