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
변재원 지음 / 김영사 / 2024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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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김영사의 블라인드 서평단용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예전에 동물원의 필요성이라는 주제로 중학생들과 토론수업을 한 적이 있다. 크게 동물들이 야생에서 자유롭게 살 권리를 빼앗으면 안 된다는 주장과 인간(특히 아이들)이 다양한 동물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허락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었다. 다른 주장들은 사실상 그 두 주장의 곁가지였을 뿐 아이들 입장에서 동물원이 없어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렇다면 동물원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한 대안이 필요한데 아이들에게서 그런 의견을 끌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나 역시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았고 동물원에서 할 수 있는 다른 방식의 일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4년부터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게 되면서 동물 관련 서적들을 찾아 읽었다.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의 에세이에서 시작해 반려동물 산업을 다룬 책을 읽은 후 동물단체에 기부도 시작했다. 관심은 자연스레 자연 생태 다큐로 옮아갔고, 관련 서적은 물론 육식과 채식을 다룬 책, <클린 미트>(체세포로 만든 배양육)도 읽었다. 이러한 독서활동을 통해 인간이 얼마나 오만한 종인지를 절감했다.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님에도 독재자처럼 굴고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거침없다. 인간이 가장 우월한 존재라면 다른 종들도 이 생태계에서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그것이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시 동물원을 생각해보자. 인간에게 동물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존치하고 있다면 동물원 동물들의 삶의 질에 신경써야 할 것이다. 동물의 생태를 더 공부하고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이렇게 동물을 돌본다는 것이 지극히 인간적 사고에 입각한 것일지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인간이 동물과 역지사지한다는 것 자체가 안 될 일이니 말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동물원에 가는 어른들이 사고의 방향을 조금만 틀어보면 어떨까. 동물들을 구경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좋아하는 동물의 생태에 대해 알아 본 후 동물원에서는 어떻게 생활하는지 관심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럴 때 읽어보면 아주 도움이 될 책이 나왔다. <이상한 동물원의 행복한 수의사>는 청주동물원 수의사 변재원씨의 에세이다. 동생처럼 키우던 개를 치료하고 싶어서 수의학과에 진학했고 군 생활을 하던 연평도 바닷 속 장관에 사로잡혀 해양동물 수의사가 되었다.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동물들은 해양동물뿐만이 아니었다. 카멜레온, 알락꼬리여우원숭이, 재규어, 수달, 홍따오기, 물범, 바다코끼리, 비버, 바이칼물범을 돌본 이야기가 1장 아쿠아리움에서 에 펼쳐진다. 모든 초보들은 어설프지만 초보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성적이다. 그가 첫 직장 아쿠아리움에서 만난 동물들에게 보인 행동은 진심 한가득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추정나이와 체중뿐인 정보만을 들고 새로 들어온 물범을 오진했다. 갈팡질팡하던 끝에 수조 속에 새끼를 낳은 것을 보고서야 임신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내 사육 물범의 출산은 국내에서 처음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황이었고, 어미가 출산한 새끼를 외면하자 수의사가 돌보게 되었다. 새끼 물범 케어에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라 물범 전용 분유를 제조하는 것부터 먹이는 것까지 담당 사육사와 저자가 번갈아가며 돌봤다. 그는 자신이 아빠 물범이 된 것 같았다. 그렇게 그렇게 변수의사는 착실히 임상경험을 쌓아 나갔다.

나는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면서 여러 동물병원을 전전하다보니 수의사들이 인간 의사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간은 과별로 전문의가 있지만 동물병원은 수의사가 모든 과를 진료한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많을수록 진료를 잘 한다. 우리집 러시안블루 암컷은 중성화수술이 잘못되어 죽을 뻔했고, 수컷은 아파트 10층에서 추락했지만 앞다리 한쪽만 골절되고 무사했다. 막내 스코티쉬폴드싱글 수컷은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중이다. 이사 후에 다니던 병원이 멀어 가까운 곳에 가서 중성화 수술 했다가 잘못될 뻔 했던 고양이를 예전 병원에 데려가 겨우 살렸다. 재수술 받은 후 멀어도 그 병원에 다닌다. 선생님들은 오랫동안 그곳에서 진료를 하고 있는데 대부분 소개받아서 찾아간다.

2장 청주동물원에서 는 그곳의 동물들과 사육곰에 대한 이야기, 안락사당할 뻔했다가 터를 잡은 늙은 강아지, 동물 밖 야생동물 사연까지 두루두루 다룬다. 저자가 언급했다시피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개선되어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정부가 동물을 대하는 태도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다. 2장에서 다룬 사육곰의 운명은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1980년대 농가소득 증대를 목적으로 곰을 수입하여 사육하는 것을 권장해놓고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곰을 애물단지로 만들어버렸다. 청주동물원은 2018년부터 사육곰을 동물원의 식구로 받아 지금은 다섯 마리의 곰이 그곳에서 지내고 있다. 아직 당진에는 국내 최대 곰 농장이 있는데 청주동물원의 수의사들은 정기적으로 이곳에 봉사활동을 나간다. 2026년부터 곰 사육이 전면 금지될 예정이나 여전히 전국에 300마리가 넘는 곰이 사육되고 있다고 한다. 2025년까지 구조되지 못하는 곰들은 모두 도축될 운명이다.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이 애꿏은 생명을 학대하고 기어이 죽음으로 내모는 것이다.

3장 동물원의 꿈에서는 저자가 그동안 만난 동물들의 삶의 질에 관한 생각들, 인간의 욕심 때문에 저지른 과오들을 씻어낼 방안들을 고민하고 있다. 생태계안의 모든 동물들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 독자도 생각해볼 문제들이지만 정책을 입안하는 국회의원들이 관심을 가져야 할 대목이다.

p.170~171

따지고 보면 서식지 파괴, 외래종 밀반입 및 유기 등 문제의 원인은 전부 인간에게 있는데 또다시 인간에 의해 인간에게 해를 입히는 유해 조수 혹은 생태교란종으로 분류되어 인간의 손에 관리(라는 이름으로 제거)된다. 생태를 가장 교란하고 잇는 종은 인간이건만 죄 없는 동물만 불명예를 뒤집어쓰고 죽임을 당하는 방식으로 책임을 다하고 있다. 심지어 포획되는 방식까지도 잔인하기 그지 없다. 포상금을 노린 인간들의 총에 맞거나, 틀이나 덫에 갇히거나, 산 채로 묻힌다. 다친 동물을 살리는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좀 인도적인 처분을 고민할 수는 없는지를 자꾸만 생각하게 된다. 해결책이 제거나 퇴출뿐이라면 마지막 순간이라도 고통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식을 고려할 수는 없는 것인지.

이 책을 읽고 청주동물원이 기존의 동물원과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었다. 장애가 있는 동물의 사연을 알려주고, 장애인도 관람할 수 있으며, 죽은 동물을 추모할 수 있는 곳. 전국의 동물원이 청주동물원처럼 동물권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곳이 되면 좋겠다.

p.195

팀장님과 내가 바라는 동물원의 모습은 어떤 특정한 운영 방식이 아니라 동물원 수의사로서 동물원의 동물들이 어제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울 수 있고, 사람에게 길들여져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야생동물이나 열악한 시설에서 고통받는 동물을 이런저런 고민 없이 받을 수 있고, 그들의 여생을 동물원에서 편히 보낼 수 있도록 오로지 동물의 안위와 평안을 위해 일 할 수 있는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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