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지도 샘터역사동화 5
조경숙 지음, 안재선 그림, 이지수 감수 / 샘터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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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사의 샘터역사동화 시리즈 다섯번째 챽으로 <비밀지도>가 출간되었다. 이 시리즈는 어린이 독자들에게 문학의 즐거움과 우리 역사에 대한 자긍심과 호기심까지 선사해주고자 기획되었다. 역사 속 의미있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동화로 만나볼 수 있다.

<비밀지도>는 역사 속 실존인물인 '이소바야시 신조'의 비밀스런 행적을 토대로 조경숙 작가가 상상력을 발휘해 완성한 이야기다. '이소바야시 신조'는 구한말 일본이 침투시킨 참모 본부 소속의 장교였다. 1882년 하나부사 공사와 함께 들어온 장교들 중 한명이었다. 그들은 서울을 비롯한 부산, 원산 등의 개항장에 근거지를 두고 첩보활동을 했고 이소바야시는 1882년부터 1884년까지 임진강 일대부터 중부지방전역을 측량하고 비밀스레 지도를 제작했다. 일본은 이렇게 불법적 정탐 활동으로 조선침략에 대한 준비작업을 착착 진행했다.

 

보통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는 학교 때 배웠더라도 이렇게 미시사적인 부분까지 잘 알기는 힘들다. 일제가 저지른 사건이나 정책 위주로만 배우기 때문이다. 이 책은 이소바야시의 지도작업을 돕게 된 재동이라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 일본이 조선침략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어떤 활동들을 했는지 어린이가 이해하기 쉽게 그려지고 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이 읽기에 적합하다. 물론 그 이상이나 어른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씩식하고 영리한 주인공이 용감하게 역사의 한페이지를 만들어 나갔다는 이야기는 비록 동화지만 독자에게 뿌듯함을 준다.

 

신미양요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몸이 안좋아 가장노릇을 하게 된 재동이는 아는 아저씨의 소개로 일본인의 보조일을 하게 된다. 그 일본인은 당시 만병통치약으로 불리던 '금계랍' 이라는 약을 팔러 다니는데 그 길에 재동이가 동행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재동의 눈에 그는, 약을 열심히 파려는 장사치처럼 보이지 않았다. 약파는 일은 오히려 재동이 열심이고 그는 망원경과 나침반으로 길과 산을 살피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리는데에만 열중하는 것이었다.

 

영리한 재동은 그가 우리 산천을 지도로 그리고, 도로를 중심으로 만든 그 지도를 이용해 일본군대가 들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까지 미치게 된다.

"저 사람은 사람들 눈을 피해 은밀히 우리나라의 지도를 만들고 있다. 그리고 곧 우리 조선 사람들도 일본 말을 하게 될 거라고 한다. 그건 곧 일본이 우리 조선을....."


 

책쾌 박씨아저씨의 심부름을 하며 얻게 된 대동여지도에 대한 지식과 어린 나이에 사람들을 상대하며 얻은 감각으로 상황파악을 빠르게 한 재동은 어떤 행동을 하게 될까?

이 책은 독자에게 지식적인 면으로는 일제가 제국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준비를 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또한 주인공 어린이가 스스로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동화적 요소까지 놓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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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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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미있고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 읽고 싶었다.

쌤앤파커스 출판사의 블로그에서 당첨되어 받은 책,

<너의 이야기>

일본 소설 특유의 감성이 있을거라 예상했지만 앞부분을 읽다가,

'헙, 잘못 신청한건가? 오글오글, 간질간질, 닭살을 문질러야 하는 거야?'라며 걱정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이제 겨우 스무살, 중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의 반 백년 가까이 살아보니, 무슨 책이건 드라마건 사실성, 개연성, 논리성을 따지며 불뚝불뚝 비판정신만 솟아오르는 고질병이 생겼다. 거기다 어린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입견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인생 얼마 살지 않은 젊은이가 뭐 얼마나 깊이 있는 소설을 쓰겠나?' 라며 내심 얕잡아 보기도 했다.

 

 책은 이미 받았고 리뷰도 써야하니 계속 읽어나갔다. 사실 처음 만나는 작가였고 어차피 정보도 모르니 내용부터 펼쳐서 읽다말고 작가 소개를 봤다. 1990년생이고 고등학생때부터 글을 썼으며 2013년에 정식 데뷔한 작가였다. 올해 출간된 <너의 이야기>로 일본 주요 문학상 '요사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온라인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글을 쓴지는 10년이 넘었고 일본에서 인정받는 인기작가 반열에 올랐다니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말은 너무나 형식적 설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 작가 소설을 접해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필독을 권하고 싶다. 나이로 평가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고, 촘촘한 구성과 무한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책 내용이나 줄거리에 대한 부분은 스포일러가 많고 직접 읽을 때의 즐거움과 설렘을 뺏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 감상 위주로만 쓰려고 한다.

 

 책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운명의 상대가 있다."

 

얼마나 식상하며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말인가. 그런데 작가는 이 평범하고도 유명한 문장을 그렇지 않게, 아니 진짜 믿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 문장은 소설 거의 말미에 나오는데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거의 20여년 전 내 기억속의 어떤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가족들과 함께 광안리 바다에 놀러 갔던 한여름날의 어느 밤이었다. 바닷가 옆에는 놀이기구 몇 개를 두고 운영하는 조그만 놀이동산 같은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바이킹을 탔다. 내 반대쪽에 앉아있던 청년의 얼굴이 너무나 화사하고 밝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껏 그 사람처럼 환하게 웃는 낯을 본적이 없다. 바이킹을 타면 보통 환호하거나 괴로워하는데, 그의 괴로운듯 즐거워하던 그 표정과 인상이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어서 저 문장과 오버랩 되었다. 내 표현, 참 비루하다... 그를 본 내 심정은 요즘 말로 하자면 "심쿵할" 정도였지만 말을 붙여보지는 못했다. 난 이미 남편도 있고 아들 둘도 있었으니까...  

 

 운명의 상대를 만나도 그런 영화같은 일은 있을리가 없다며 스쳐지나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소설 속 '히로인'을 믿는다면 스쳐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쩌면 둘 중 누구부터라고 할 것 없이 서로 말을 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될지도 모른다."

 

소설을 덮으며 작가는 우리에게 미래 언젠간 일어날 지도 모를 일에 대한 환상으로 만족감을 주는 것이란 생각을 하며 현실로 돌아왔다. 이것은 소설이라는 비현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몇 시간 동안의 환상여행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에 나노로봇이라는 것이 인간의 기억을 콘트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상 과학 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고, 남녀간의 로맨스소설이라고도 분류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느낀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봤을법한 상상을 잘 풀어낸 복합 장르라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때까지 자신이 못해 본 어떤 사랑을 꼭 한 번은 이루고 죽고 싶어한다. 그것이 통속적이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자신의 사랑은 불륜이 아니라 로맨스라고 생각하지 않나.

 

 작가가 소설에서 천착한 것은 기억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결코 정확할 수 없으며 실제로 자의건 타의건 시간이 지난 기억은 각색, 윤색되고 아예 자기 멋대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지고 싶은 추억, 혹은 기억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까지 미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 낼 만한 능력까지는 안되므로 대개는 영화, 드라마, 소설 같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스토리의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며 만족감을 얻는다. 자신이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상대가 나의 연인이거나 배우자이길 바란다.

 

 내가 계속 생각해 온 지점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나면서 몰입하여 읽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한 상대를 평생 만나본 적이 없다. 흔히들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데 나는 중학생때부터 그 소울메이트를 찾아헤맸다.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내가 상상하는 미디어 속의 인물 중에 일치하는 사람이 있으면 과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것의 폐해는 만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아쉬움만 커지는 것이었다. 그럴때면 높은 곳에 달린 포도를 따지 못한 채 뒤돌아서는 여우처럼' 어차피 저 사람도 실제로는 분명 단점이 많을 것'이라며 자위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서는 '내가 원하는, 내게 꼭 맞는 사람을 만들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소설을 써야하는데 그러기엔 내 능력이 너무나 일천하니 머릿속으로 그냥 이생각, 저생각만 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맞춤한 소설을 만들어낸 것 같다. 내가 그리던 것을 다른 이의 글을 통해 만나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그동안 연애소설을 읽으며 말도 안된다는 후회로 책장을 덮었는데, 이 소설은 그 부분을 불식시키기에 딱 맞는 소재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하지만 늘 갈구한다. 외로움을 잠재워줄 어떤 존재를. 그러나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실제 그럴 확률이 꽤 높다. 그럴 땐 이런 소설을 읽으며 대리만족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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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 다산책방 청소년문학 3
스즈키 루리카 지음, 이소담 옮김 / 놀(다산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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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살짜리 소녀가 책을 썼다고?

소개를 보니, 일본 출판사에서 개최한 '12세 문학상'에서 3년 연속 대상을 받았는데 초등학교 4,5,6학년때였다고.

와우~ 놀랍고 궁금했다.

<다시 태어나도 엄마 딸>이라는 책으로 만났다. 쉽고 재미있는데다 깊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처음엔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배경이 요즘이 아닌가? 갸우뚱 했는데,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일본의 입시와 사교육 문제도 다룬다.

엄마와 단둘이 사는 초등학교 6학년 여자아이 하나미가 주인공이다. 엄마는 공사현장에서 일하고 밥을 아주 많이 먹으며 초초긍정적이다. 하나미는 엄마가 아빠의 존재에 대해 알려주지 않아 궁금해하는 평범하고 속깊은 딸이다. 하나미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는 이야기는 초등학생 입장이라고 해서 마냥 단순하거나 순진무구하기만 한것은 아니다.

 

"먹고 배설하고 그냥 사는 거야. 삶의 보람이니 의무니 과거니 장래니 일이니 돈이니 하는 것과 관계없이 단순하게 살다 죽는 게 좋겠어."

 

"슬플 때는 배가 고프면 더 슬퍼져. 괴로워지지. 그럴 때는 밥을 먹어. 혹시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슬픈 일이 생기면 일단 밥을 먹으렴. 한 끼를 먹었으면 그 한 끼만큼 살아. 또 배가 고파지면 또 한 끼를 먹고 그 한 끼만큼 사는 거야. 그렇게 어떻게든 견디면서 삶을 이어가는 거야."

 

위 두 인용구는 하나미 엄마의 지론이다. 단순하게 버티며 살자는건데, 딸을 위해 궃은 일 마다않고 열일하는 엄마의 자세답다. 어찌보면 우린 너무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계산하며 살고 있는게 아닌가. 슬프고 배고플 땐 먹고, 또 그만큼의 삶을 살아내자는 단순함이라니! 사실 여자 혼자 아이 키우며 살며 어떻게 부침이 없을까. 그래도 비관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으니 딸도 그 영향을 받아 긍정적이고 밝다.

엄마는 티백 하나로 홍차를 석 잔이나 마셨는데, 석 잔째에는 당연히 색이 우러나오지 않아 숟가락으로 티백을 꽉꽉 누르다가 찢어져서 속이 나와버리는 비극이 벌어졌다. 어떤 의미에서는 찻잎이 점핑한 셈이다. 케이크 덕분에 평소처럼 검소한 저녁을 먹었는데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었다.

 

 

싸구려 홍차 티백을 여러번 우려내 마셔도 만족하며 먹고, 마트에선 항상 반값 할인하는 음식만 사서 먹어도 푸짐하고 배부르다 하고, 매년 늦가을엔 떨어진 은행나무 열매를 주워와 먹어도 중독되지 않는다며 좋아한다. 가난해서 불편한 것을 불평하지 않고 살아가는 두 모녀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는데 이런 생각이 오히려 그들은 언짢아 할지도 모르겠다. 가난이 부끄러운 게 아니며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두 모녀를 격려해 주고픈 맘이다. 하나미를 만난다면 꼭 한 번 안아주고 싶다.

 

독자가 이런 생각을 할만큼 주인공에게 감정이입 되도록 하는 것이 작가의 솜씨일 것이다. 어리다고 작가가 될 수 없는 게 아니며 천재라는 말에 절로 고개 끄덕이게 만드는 이 소녀, 그야말로 앞날이 창창한 작가의 작품들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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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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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의 신간 <사하맨션>을 읽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가 2012년 3월부터였다고. 7년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으며 소설을 맺지 못할 줄 알았다고 했다. 톺아보면 지난 7년간, 아니 이명박근혜 집권시기 약 10여 년간 우리 사회는 실로 많이 후퇴했다. 아무리 역사는 일보 진보를 위해 이보 후퇴는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지만, 지난 10년의 후퇴는 그러지 말았어야 하며 그 되돌림을 다시 복구후 앞으로 나아가기에 치른 희생들이 너무나 아픈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하맨션을 배경으로 하는 이 디스토피아적 세계는 언젠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 암울해 보인다. 그래도 작가는, 우린 더디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소설 마지막에서 진경의 대사를 빌어 밝히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았다"고... 그 '원래 자리'란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그것은 반드시 어떤 '공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힘없고 무기력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취해야 할 당위성을 띤 어떤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는 지난 시간(물론 여전히 유효한)우리 사회에서 논쟁이 되었던 것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 골라보았다.

 

1. 계급사회와 그 대물림

 

p.14

채소와 과일은 모두 문드러졌고, 우유는 부패하다 못해 종이 팩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고기 썩은 냄새는 뭐라 형용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곰팡이, 온갖 벌레들, 오수로 흥건한 바닥, 작업에 추가 투입된 직원 하나는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토했다.

 

위 내용은 소설 초반, 사하맨션 주민인 진경이 폐쇄된 마트에 청소일을 하러 갔을 때의 장면이다. 마트 청소라고 했지만 묘사되는 내용은 세상의 궃은 일, 더러운 일 전체에 비유된다. 인간을 등급 매긴 그 곳에서 사하맨션에 사는 이들은 아예 그 등급에조차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이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험하고 더러운 일을 하는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합법체류중인 유학생일 수도, 불법체류자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이 맡은 일은 생각보다 많다. 고기잡이 배에서, 공사현장에서, 이삿짐센터에서, 모텔에서 일을 하는 이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례라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네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는 그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계급을 넘어갈 수 없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교육으로 계급이동이 가능했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이다. 자본이 권력이 된 이후부터 계급이동은 요원해졌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명확하다. 계급화된 사회의 대표격인 두 가정의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웃프게 묘사하고 있다.

2.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p.227

생명은 소중하고 탄생의 순간은 축복받아야 하지만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는 당사자인 여성이 선택해야 한다는 게 원장의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출산은 고통이다. 숱한 통증과 질병을 동반했다. 인과를 가지고 실선으로 이어지던 여성들의 삶은 출산과 동시에 칼로 잘라낸 듯 뚝 끊겼고, 아이들의 삶도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항상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원장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만큼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고 그래서 아이를 낳는 곳은 아이를 낳지 않는 곳도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람은 잘 모를 수도 있고 부주의할 수도 있고 상황이나 생각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번의 실수로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위 내용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함을 조산원 원장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여러 이유로 그러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여성에게만 낙태죄를 물어왔다. 지난 4월에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났지만 내년에 입법부에서 할 일은 아직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에 더해 임신이 오롯이 여성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며, 출산을 포함 양육을 여성에게만 짐지우는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임신및 출산, 교육은 결국 인간의 전 생애적 문제이며 사회 전체에서 비중이 큰 부분이기도 하다. 그간 드러나지 않는 여성의 희생을 볼모로 유지되어온 이 시스템에 여성 스스로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최저의 우리나라 출산율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출산주도 성장정책"같은 헛발질로는 해결불가인 것을 모르는 집단이 있으니 앞이 캄캄하달 수밖에...

3. 과학기술과 윤리문제

 

p.271

우미는 자신이 연구소에 혈액부터 조혈 모세포, 백혈구, 난자 등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필요한지, 어디에 쓰였는지는 모른다.

………

p. 279

확인, 검사, 치료, 시술, 수술...... 매번 다른 이름이 붙어 용인되던 시간들과 그때의 차갑고 축축하고 뻐근하고 따갑고 욱신거리던 감각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우미는 뒤늦게 찾아온 굴욕감에 몸서리를 쳤다. 살아있는 우미의 몸을 마음대로 가져다 썼다.

 

 

위 내용은 사하맨션에 사는 우미가 자신의 용도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그 대가로 연구소에서 사하맨션까지 타고 갈 택시비의 열배는 되는 돈을 받는다. 이 부분은, 여성은 출산을 담당하는 것뿐 아니라 그 전단계에서부터 생명과 관련된 곳에 어떤 부분으로든 실험에 조달될 수있는 몸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하층계급의 몸은 언제든 헐값에 이용가능하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대리모 문제나 인간게놈지도 문제.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황우석 사태때도 보았던 일의 일부분이다. 오히려 그때는 비용도 들이지 않고 쓰지 않았나. 이처럼 인간을 도구화하여 과학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시대는 이미 진행중이며 공고해져가는 계급사회에서는 더욱 만연해 질 것이다.

소설에서 다룬 문제 중 몇가지를 생각해보건대 미래는 우울하고 답답해 보인다. 허나 진경의 마지막 대사에서 드러난 작가의 주제의식,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세상"을 같이 꿈꾸고 싶다. 단순한 문제의 나열이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라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싶다. 누구나 다 아는 것들을 길게 늘어놓은 이 부족한 글이 소설 속 '나비혁명'처럼 작은 날갯짓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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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터 2019.6
샘터 편집부 지음 / 샘터사(잡지)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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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2019년 월간 샘터 6월호의 표지는 양측의 붉은 기둥과 천정의 초록색감의 조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표지 제목이 "마루"라고... '습기나 지열로부터 건물을 보호하고 통풍을 원활하게 하는 마루널판의 지혜'라고 설명되어있다. 어쨌든 한국적 미와 한국인의 지혜가 살아있는 것으로!

6월호 "이달에 만난 사람"은 <난 빨강>으로 유명한 박성우 시인이다. 시인은 4년 전, 고향마을 근처인 정읍 장금리로 들어가 터를 잡았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전업작가로 살고 싶어서였다. <난 빨강>이란 시집 속의 시는 어쩜 아이들의 맘을 저리도 잘 표현했을까?싶었고, 그의 삶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이번 기사를 보니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스무살이 되기도 전부터 온갖 힘든 일을 했고, 이십대 중반에 시공부를 시작하면서도 낮엔 봉제공장 시다로 일했다고 한다.


 


 

정착한 곳에서 그의 글쓰기를 방해하는 건 하루 한 번 밥 먹으러 찾아오는 길고양이뿐이란다. 매일 오후 3시에 찾아오는 녀석에게 '오후 3시의 고양이'라는 시적인 이름도 지어주었다. 시인의 신작 <아홉 살 마음 사전>에서 행복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한다.

 

"가족끼리 소풍을 가서 김밥을 먹다가 하나 남은 김밥을 서로 입에 넣어 주려 할 때의 마음"


"마을로 가는 길"에서 찾은 곳은 대구 비산동이다.

 

 

황량하던 동네를 마을사람들이 하나 둘 꽃화분을 내놓기 시작하면서 정원으로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작은 화초 몇개 내놓는다고 동네가 달라질까 반신반의했지만, 마을 사람들의 작은 변화가 기적을 꽃피운 것이다. 공동체와 골목 문화가 사라져가는 요즘, 보기 드문 정겨운 사연이었다.

 

"모두의 디자인" 꼭지에서 소개한 곳은 서울의 독특한 서점, '아크앤북'이다.

 

위 사진만 봐도 일반 서점과는 다른 느낌이다. 서울 을지로 부영빌딩 지하에 보험회사 직원교육장이던 곳이 6개월전 서점으로 탈바꿈했다. 필자 김선미는 이곳을 '네 가지 테마로 잘 큐레이션된 취향을 파는 서점'으로 정의했다. 뭔가 웅장한 느낌을 주는 인테리어와 주제별 서가가 몹시 궁금하다. 서울가면 꼭 한 번 들러보고 싶다.

6월호에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글은 "보통의 조그만 나날들"이다. 김보통 작가가 연재를 그만하게 되면서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공개했는데 본인의 평가처럼 특별할 게 없다. 비법까지는 아니고 이름처럼 보통의 방법이다. 그런데 아다시피 글쓰기에 무슨 거창한 비법이 있는건 아니다.

그가 소개해준 평범한 방법을 실천해보며 오늘도 '계속 써야 해? 말어?'하는 고민은 잠시 접어둬야겠다.

 

1. 쉽게 쓴다.

2.이야기하듯 쓴다.

3. 쓸 거리가 있을 때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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