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하맨션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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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의 작가 조남주의 신간 <사하맨션>을 읽었다. 작가의 말을 보니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때가 2012년 3월부터였다고. 7년동안 많은 것들이 달라졌으며 소설을 맺지 못할 줄 알았다고 했다. 톺아보면 지난 7년간, 아니 이명박근혜 집권시기 약 10여 년간 우리 사회는 실로 많이 후퇴했다. 아무리 역사는 일보 진보를 위해 이보 후퇴는 어쩔 수 없고 그래도 역사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지만, 지난 10년의 후퇴는 그러지 말았어야 하며 그 되돌림을 다시 복구후 앞으로 나아가기에 치른 희생들이 너무나 아픈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사하맨션을 배경으로 하는 이 디스토피아적 세계는 언젠가 우리의 미래가 될 것이라 암울해 보인다. 그래도 작가는, 우린 더디지만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소설 마지막에서 진경의 대사를 빌어 밝히고 있는 듯하다. "사람들은 원래 자리로 되돌아가지 않았다"고... 그 '원래 자리'란 것이 무엇일지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그것은 반드시 어떤 '공간'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그 자리는 힘없고 무기력한 이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행위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취해야 할 당위성을 띤 어떤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말이다!

 소설에서 다루는 소재는 지난 시간(물론 여전히 유효한)우리 사회에서 논쟁이 되었던 것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에서 몇 가지 골라보았다.

 

1. 계급사회와 그 대물림

 

p.14

채소와 과일은 모두 문드러졌고, 우유는 부패하다 못해 종이 팩이 터지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고기 썩은 냄새는 뭐라 형용할 수조차 없는 것이었다. 곰팡이, 온갖 벌레들, 오수로 흥건한 바닥, 작업에 추가 투입된 직원 하나는 마트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바닥에 토했다.

 

위 내용은 소설 초반, 사하맨션 주민인 진경이 폐쇄된 마트에 청소일을 하러 갔을 때의 장면이다. 마트 청소라고 했지만 묘사되는 내용은 세상의 궃은 일, 더러운 일 전체에 비유된다. 인간을 등급 매긴 그 곳에서 사하맨션에 사는 이들은 아예 그 등급에조차 들지 못하는 불가촉천민이다. 그들이 할 일은 정해져 있다. 우리 사회는 어떤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가장 험하고 더러운 일을 하는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합법체류중인 유학생일 수도, 불법체류자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이 맡은 일은 생각보다 많다. 고기잡이 배에서, 공사현장에서, 이삿짐센터에서, 모텔에서 일을 하는 이들은,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례라 피부에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동네 식당에서 서빙 일을 하는 그들을 쉽게 만나게 된다. 소설 속에서는 계급을 넘어갈 수 없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교육으로 계급이동이 가능했던 시절이 언제였던가 싶을 정도이다. 자본이 권력이 된 이후부터 계급이동은 요원해졌다. 영화 <기생충>을 보면 명확하다. 계급화된 사회의 대표격인 두 가정의 상황을 블랙코미디로 웃프게 묘사하고 있다.

2. 낙태죄 헌법 불합치 판결

p.227

생명은 소중하고 탄생의 순간은 축복받아야 하지만 아이를 낳을지 낳지 않을지는 당사자인 여성이 선택해야 한다는 게 원장의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출산은 고통이다. 숱한 통증과 질병을 동반했다. 인과를 가지고 실선으로 이어지던 여성들의 삶은 출산과 동시에 칼로 잘라낸 듯 뚝 끊겼고, 아이들의 삶도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 항상 최선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원장은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아이를 낳겠다는 결정만큼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하고 그래서 아이를 낳는 곳은 아이를 낳지 않는 곳도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사람은 잘 모를 수도 있고 부주의할 수도 있고 상황이나 생각이 바뀔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 번의 실수로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위 내용은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한 결정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함을 조산원 원장의 입을 빌어 말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여러 이유로 그러하지 못했으며 오히려 여성에게만 낙태죄를 물어왔다. 지난 4월에 헌법 불합치 판결이 났지만 내년에 입법부에서 할 일은 아직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에 더해 임신이 오롯이 여성 혼자만의 책임이 아니며, 출산을 포함 양육을 여성에게만 짐지우는 문제도 제기하고 있다. 임신및 출산, 교육은 결국 인간의 전 생애적 문제이며 사회 전체에서 비중이 큰 부분이기도 하다. 그간 드러나지 않는 여성의 희생을 볼모로 유지되어온 이 시스템에 여성 스스로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세계최저의 우리나라 출산율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다. 그런데도 "출산주도 성장정책"같은 헛발질로는 해결불가인 것을 모르는 집단이 있으니 앞이 캄캄하달 수밖에...

3. 과학기술과 윤리문제

 

p.271

우미는 자신이 연구소에 혈액부터 조혈 모세포, 백혈구, 난자 등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왜 필요한지, 어디에 쓰였는지는 모른다.

………

p. 279

확인, 검사, 치료, 시술, 수술...... 매번 다른 이름이 붙어 용인되던 시간들과 그때의 차갑고 축축하고 뻐근하고 따갑고 욱신거리던 감각들이 모조리 떠올랐다. 우미는 뒤늦게 찾아온 굴욕감에 몸서리를 쳤다. 살아있는 우미의 몸을 마음대로 가져다 썼다.

 

 

위 내용은 사하맨션에 사는 우미가 자신의 용도를 깨닫게 되는 부분이다. 그 대가로 연구소에서 사하맨션까지 타고 갈 택시비의 열배는 되는 돈을 받는다. 이 부분은, 여성은 출산을 담당하는 것뿐 아니라 그 전단계에서부터 생명과 관련된 곳에 어떤 부분으로든 실험에 조달될 수있는 몸임을 드러냄과 동시에, 과학기술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하층계급의 몸은 언제든 헐값에 이용가능하다는 것을 명징하게 보여준다. 국제적으로 벌어지는 대리모 문제나 인간게놈지도 문제.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이 황우석 사태때도 보았던 일의 일부분이다. 오히려 그때는 비용도 들이지 않고 쓰지 않았나. 이처럼 인간을 도구화하여 과학 발전의 밑거름으로 삼는 시대는 이미 진행중이며 공고해져가는 계급사회에서는 더욱 만연해 질 것이다.

소설에서 다룬 문제 중 몇가지를 생각해보건대 미래는 우울하고 답답해 보인다. 허나 진경의 마지막 대사에서 드러난 작가의 주제의식,

"더디지만 조금씩 나아가는 세상"을 같이 꿈꾸고 싶다. 단순한 문제의 나열이 아니라 어떤 부분에서라도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고 싶다. 누구나 다 아는 것들을 길게 늘어놓은 이 부족한 글이 소설 속 '나비혁명'처럼 작은 날갯짓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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