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야기
미아키 스가루 지음, 이기웅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재미있고 술술 잘 읽히는 소설이 읽고 싶었다.

쌤앤파커스 출판사의 블로그에서 당첨되어 받은 책,

<너의 이야기>

일본 소설 특유의 감성이 있을거라 예상했지만 앞부분을 읽다가,

'헙, 잘못 신청한건가? 오글오글, 간질간질, 닭살을 문질러야 하는 거야?'라며 걱정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이제 겨우 스무살, 중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진행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거의 반 백년 가까이 살아보니, 무슨 책이건 드라마건 사실성, 개연성, 논리성을 따지며 불뚝불뚝 비판정신만 솟아오르는 고질병이 생겼다. 거기다 어린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입견도 자연스레 생겨났다. '인생 얼마 살지 않은 젊은이가 뭐 얼마나 깊이 있는 소설을 쓰겠나?' 라며 내심 얕잡아 보기도 했다.

 

 책은 이미 받았고 리뷰도 써야하니 계속 읽어나갔다. 사실 처음 만나는 작가였고 어차피 정보도 모르니 내용부터 펼쳐서 읽다말고 작가 소개를 봤다. 1990년생이고 고등학생때부터 글을 썼으며 2013년에 정식 데뷔한 작가였다. 올해 출간된 <너의 이야기>로 일본 주요 문학상 '요사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 후보에 올랐다고 한다. 온라인 출신 작가로는 처음으로. 글을 쓴지는 10년이 넘었고 일본에서 인정받는 인기작가 반열에 올랐다니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는 말은 너무나 형식적 설명밖에 되지 않는다. 이 작가 소설을 접해보지 않은 독자들에게는 필독을 권하고 싶다. 나이로 평가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고, 촘촘한 구성과 무한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될 것이다.

 

 책 내용이나 줄거리에 대한 부분은 스포일러가 많고 직접 읽을 때의 즐거움과 설렘을 뺏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내 감상 위주로만 쓰려고 한다.

 

 책 뒷표지에 이런 문구가 있다.

 

"이 세상 어딘가에 운명의 상대가 있다."

 

얼마나 식상하며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말인가. 그런데 작가는 이 평범하고도 유명한 문장을 그렇지 않게, 아니 진짜 믿게 만드는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지고 있다. 위 문장은 소설 거의 말미에 나오는데 나는 그 문장을 읽으며 거의 20여년 전 내 기억속의 어떤 한 장면이 떠올랐다.

 

 가족들과 함께 광안리 바다에 놀러 갔던 한여름날의 어느 밤이었다. 바닷가 옆에는 놀이기구 몇 개를 두고 운영하는 조그만 놀이동산 같은 곳이 있었는데 거기서 바이킹을 탔다. 내 반대쪽에 앉아있던 청년의 얼굴이 너무나 화사하고 밝아서 아직도 기억하고 있으며 지금껏 그 사람처럼 환하게 웃는 낯을 본적이 없다. 바이킹을 타면 보통 환호하거나 괴로워하는데, 그의 괴로운듯 즐거워하던 그 표정과 인상이 아직까지 내 기억 속에 남아있어서 저 문장과 오버랩 되었다. 내 표현, 참 비루하다... 그를 본 내 심정은 요즘 말로 하자면 "심쿵할" 정도였지만 말을 붙여보지는 못했다. 난 이미 남편도 있고 아들 둘도 있었으니까...  

 

 운명의 상대를 만나도 그런 영화같은 일은 있을리가 없다며 스쳐지나가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소설 속 '히로인'을 믿는다면 스쳐지나가는 게 아니라,

 

"어쩌면 둘 중 누구부터라고 할 것 없이 서로 말을 걸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태어난 의미를 처음으로 알게 될지도 모른다."

 

소설을 덮으며 작가는 우리에게 미래 언젠간 일어날 지도 모를 일에 대한 환상으로 만족감을 주는 것이란 생각을 하며 현실로 돌아왔다. 이것은 소설이라는 비현실을 비하하는 것이 아니고 몇 시간 동안의 환상여행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다.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에 나노로봇이라는 것이 인간의 기억을 콘트롤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공상 과학 소설이라 할 수도 있겠고, 남녀간의 로맨스소설이라고도 분류할 수도 있겠으나, 내가 느낀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해봤을법한 상상을 잘 풀어낸 복합 장르라 생각된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때까지 자신이 못해 본 어떤 사랑을 꼭 한 번은 이루고 죽고 싶어한다. 그것이 통속적이든 그렇지 않든 누구나 자신의 사랑은 불륜이 아니라 로맨스라고 생각하지 않나.

 

 작가가 소설에서 천착한 것은 기억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기억은 결코 정확할 수 없으며 실제로 자의건 타의건 시간이 지난 기억은 각색, 윤색되고 아예 자기 멋대로 만들어 내기도 한다. 그렇다면 자신이 가지고 싶은 추억, 혹은 기억을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까지 미치게 된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 낼 만한 능력까지는 안되므로 대개는 영화, 드라마, 소설 같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스토리의 주인공에 감정이입하며 만족감을 얻는다. 자신이 비련의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자신이 꿈꾸던 이상적인 상대가 나의 연인이거나 배우자이길 바란다.

 

 내가 계속 생각해 온 지점을 이 소설 속에서 만나면서 몰입하여 읽게 되었다. 나는 정말이지 마음이 맞는다고 생각한 상대를 평생 만나본 적이 없다. 흔히들 '소울메이트'라고 부르는데 나는 중학생때부터 그 소울메이트를 찾아헤맸다. 현실에서는 찾을 수 없었고 내가 상상하는 미디어 속의 인물 중에 일치하는 사람이 있으면 과몰입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좋아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고 그것의 폐해는 만날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아쉬움만 커지는 것이었다. 그럴때면 높은 곳에 달린 포도를 따지 못한 채 뒤돌아서는 여우처럼' 어차피 저 사람도 실제로는 분명 단점이 많을 것'이라며 자위했다. 그러다가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서는 '내가 원하는, 내게 꼭 맞는 사람을 만들어내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소설을 써야하는데 그러기엔 내 능력이 너무나 일천하니 머릿속으로 그냥 이생각, 저생각만 하고 마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나같은 사람들을 위해 맞춤한 소설을 만들어낸 것 같다. 내가 그리던 것을 다른 이의 글을 통해 만나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 그동안 연애소설을 읽으며 말도 안된다는 후회로 책장을 덮었는데, 이 소설은 그 부분을 불식시키기에 딱 맞는 소재를 사용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은 외로운 존재다. 하지만 늘 갈구한다. 외로움을 잠재워줄 어떤 존재를. 그러나 자신의 소울메이트를 어쩌면 영원히 만나지 못하고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다. 실제 그럴 확률이 꽤 높다. 그럴 땐 이런 소설을 읽으며 대리만족할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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