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의 부득탐승不得貪勝 - 아직 끝나지 않은 승부
이창호 지음 / 라이프맵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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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둘 줄 알고 모르고 간에

이창호라는 이름 석 자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이창호는 소년시절 프로바둑계에 입단해

아주 오랜기간 세계 1인자로 군림한

바둑계의 스타이다.

 

이런 이창호가 내놓은 책 제목은

'부득탐승'이다.

 

이는 '승리를 탐하면 이기지 못한다'는

바둑 위기십결 내용 중 하나인데,

승리를 추구할 수 밖에 없는

프로 바둑기사가 내놓은 책 제목임을 감안하면

다소 어색함이 느껴지는 타이틀인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창호 기사가 얘기하는 것은

승리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대충대충 두자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이기기에만 몰두하는 자세를

경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세상사를 살다보면

지나친 욕망과 집착은

화를 부르고 정신과 육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은데

이창호도 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듯하다.

 

 

어린 시절 이창호는

당시 바둑계의 이단아같은 존재였다.

 

외모 자체도 다소 곰(?)같은 형태였는데

행마 역시 그런 외형과 비슷하게

상당히 우직한 편이었다고 한다.

천천히 두텁게 두어나가는 것이

제비라 불리우는 조훈현의 행마와는

큰 차이가 있었고,

당시 바둑계에서도

흔한 행마방식이 아니었다.

 

하지만 두터우면서도 결국

마지막에 힘을 발휘하며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는

이창호의 행마를 유심히 본

조훈현은 결국

그를 내제자로 받아들였다.

 

당시 최정상급에 있던 조훈현은

이창호를 내제자로 받으면서

자신의 거의 모든 타이틀을

이 제자에게

내어주고 만다.

 

조훈현 입장에서 본다면

승부사로서는 괴롭지만

스승으로서는 보람찬

참 혼란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세계 1인자를 스승으로 맞이한

이창호는 스승의 장점과

본인의 특성을 절묘하게 조합시켜

당대 최강의

승부사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물론, 좋은 조건이 받쳐준것도 사실이지만

무지막지한 노력도 뒷받침된 것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거의 바둑만 생각하는 삶이

한동안 지속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모두들 잘 아는 것처럼

이창호 시대는 이후 한동안 지속된다.

 

이창호의 바둑 작전은 보통

초반과 중반을 두텁게 해놓고

후반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 작전은

후반 끝내기에 자신있는 기사가 취하는 방식이다.

 

사실 이창호는 전성기 시절

끝내기에 있어서 '신산'이라 불리우던 사람이다.

신의 계산으로 반집까지 정확히 맞춘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인데,

'이창호식 끝내기'는 당시 예술로 불리기도 했다.

 

오죽하면 '이창호와 끝내기 승부로 가면

이기기 어렵다'라는 말까지 있었을까...

 

하지만 이같은 이창호도

나이가 들면서 위기를 맞이하기 시작했다.

30이 넘아가면서 주특기인

계산력이 미세하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이창호의 기보를 연구하며

프로에 입단한 젊은 기사들은

이창호를 만나면

그에게 강력한 독수를 던지며

편안한 초중반을 펼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계산력도 예전같지 않고

기존의 행마를 허락하지 않는

젊고 무서운 기사들 앞에서

이창호도 결국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30이 넘은 이창호는

이제 가끔 유창혁 못지 않은

공격수의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는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변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본인의 장점이

초중반을 두텁게 가져오다

마지막에 끝내기로 이기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안되니

이제 공격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팬의 입장에서 이런

이창호의 모습은 사실 낯설기 그지 없다.

 

하지만 부득탐승하면서도

꾸준히 생존의 바둑을 보여주는

이창호의 진화로 받아들이는

이들도

많다.

 

어느덧 40을 바라보고

수년 전 결혼까지 해

엄연한 중년이 된

이창호는

아직도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프로기사이다.

 

한 차례 큰 기풍의 변화를

보이며 적응력을 보여주고 있는 그가

40대 이후에는

또 어떠한

변화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물론 앞으로의 변화가

높은 승률로 연결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부득탐승'을 마음에 새기고 있는

이창호이기에

그러면 또 어떠하겠는가...

 

아무튼 이창호의 '부득탐승'은

세계 1인자의 인생스토리와

마음 가짐을 읽을 수 있었던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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