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으로서의 학문 나남신서 1140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 나남출판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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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늘날 진실로 결정적이며 유용한 업적은 항상 전문적 업적입니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면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네가 태어나기까지 수천년이 경과할 수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일을 하십시오. (33면)




2. 그러나 착상은 자기 좋을 때 나타나지 우리가 원하는 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착상들은 책상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하며 찾을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링이 서술하는 바와 같이-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라든지 또는 헬름홀츠가 자연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하는 바와 같이, 완만한 오르막길을 산책하고 있을 때라든지 아니면 그와 비슷한 경우에 나타납니다. 어쨌든 착상은 그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실로 옳은 말입니다. 물론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하면서 대답을 정열적으로 찾지 않는다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35, 36면)




3. 존경하는 청중 여러분! 학문영역에서는 순수하게 자신의 주제에 헌신하는 사람만이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문영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예술가치고 자기 일에, 그리고 오로지 자기 일에만 헌신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한 예술가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38면)




4. 그러나 학문연구에는 또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곧 학문연구에서 나오는 결과는 ‘알 가치가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전제가 그것입니다. (5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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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튜아트 밀 자서전
존 스튜어트 밀 지음 / 훈복문화사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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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사는 여전히 내가 가장 강한 흥미를 가지고 읽는 것이었는데, 나는 특히 고대사를 좋아했다. 나는 늘 미트포오드(Mitford)의 ‘그리스사’를 읽었다. (20면)




2. 플라톤의 대화편들의 으뜸가는 모범이 되는 소크라테스적 방법은 여러 가지 오류를 고치고, 인테렉트스 시비 페르밋누스(Intellectus sibi permissus, 수동적 오성)에 따라다니는  여러 가지 혼동을 일소하는 데는 제일 좋은 훈련이 되는 것이다. 이 수동적 오성은 통속적인 용법에 온갖 연상의 무더기를 꾸며왔던 것이다. 애매한 전칭 명제들을 내세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의미하는 바를 명확한 용어로 표현하게 하거나, 그가 떠들어대고 있는 것을 실상은 그가 알지 못한다고 스스로 고백하게 하는 엄밀하고 날카로운 음미(elenchus), 모든 일반적 명제를 개별적 명제에 의하여 끊임없이 검증하는 것, 큼직한 추상 명사의 의미를 밝히되 이 명사와 또 이 밖의 것들을 포함하는 훨씬 더 범위가 넓은 유개념의 명사를 세워 놓고 이것을 자꾸 쪼개어 감으로써 마침내 문제되는 것에까지 추궁해 내려가는 격식을 갖춘 포위 논법 - 이것은 이 추상 명사를, 이 명사와 어원이 같은 것들 하나 하나로부터 엄정하게 구별함으로써 그 범위와 정의를 명확히 규정하면 되는 것이다 -. 이 모든 것은 정확한 사고력을 기르는 교육으로는 다시없이 소중한 것이요, 또 이 모든 것은 어린 내 가슴에 깊이 파고들어 정신의 일부를 형성하기까지 했다. (29, 30면)




3. 내가 받은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무엇이든지 배운 것이 기억력의 단지 연습이 되어 버리는 것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가르치는 모든 단계에 이해하는 일이 따르게 하려고 힘썼을 뿐만 아니라 또한 가능하면 이해하는 것을 가르치는 일에 앞서게 하려고 힘썼다. (38면)




4. 오랫동안 나는 손재주를 요하는 어떤 일에든지 아주 서툴렸고 아직도 무척 서투르다. ... 나는 일상생활의 문제에 부주의하고 똑똑하지 못하며 또 대체로 정신이 느릿하다고 늘 주의를 들었다. (43면)




5. 그(제임스 밀)는 종교를 도덕에 대한 최대의 적으로 보았다. 첫째로는 허구적인 여러 미덕 - 인류의 복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교리 신앙, 헌신의 감정, 여러 가지 의식 -을 만들어 놓고서 이런 것들을 진정한 덕의 대용물로 받아들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도덕의 표준을 근본적으로 개악하기 때문에 그것은 도덕의 최대의 적이 된다. 그리고 끝으로 종교란 겉으로는 온갖 아첨의 말을 아끼지 않으면서도 진정한 사실에 있어서는 가장 증오할 만한 자로서 그려내고 있는 존재의 뜻을 행하는 것이므로, 바로 도덕의 최대의 적인 것이다. ... “지옥을 만들어내는 존재를 생각해 보라”고 그는 말하곤 했다. - 인류의 대다수가 끔찍스러운 영겁의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것을 미리 분명히 알면서, 따라서 그렇게 할 의도를 가지고 인류를 창조한 존재를 생각해 보라. (48면)




6. 아버지의 도덕상 교훈은 언제나 주로 소크라테스 학도의 그것이었다. 즉 정의, 절제(아버지는 이것을 아주 넓은 범위에 적용하였다), 진실, 인내, 고통과 특히 수고하는 일에 서슴지 않고 대하는 마음의 준비, 공익의 존중, 사람들을 그 진가에 의하여, 그리고 사물들을 그 본질적 유용성에 의하여 평가하는 것, 방종한 안일과 태만의 생활에 대립되는 분투노력의 생활 - 그는 이런 것들을 가르쳤다. (54면)




7. 나는 영국의 생활에 경험이 아주 적었고, 또 내가 알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은 대개가 그 마음속에 큰 그리고 사리사욕을 떠난 공공의 목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나는 영국에서 소위 사교계라 하는 것의 저열한 도덕적 풍조를 도무지 모르고 있었다. (65면)




8. 이 사람들(쎄이, 쌩 시몽)에게서 내가 얻은 주요한 소득은 대륙의 자유주의에 대한 강렬하고 영속적인 흥미였다. 그래서 이때 이후로 나는 언제나 영국의 정치 사정뿐만 아니라 또한 대륙의 자유주의에 대해서도 늘 주의하고 소식을 알고 있게 되었다. 이런 일은 그 당시 영국 사람들에게는 흔치 않은 일이었는데, 또 나의 발전에 매우 좋은 영향을 미쳤다. 이 영향으로 말미암아 나는 세계적인 문제를 그저 영국의 표준에서만 판단하는 과오를 저지르지 않을 수 있었다. 이 과오는 영국인에게 있었던 것인데, 심지어 전혀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아버지도 부득불 범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오였다. (67, 68면)




9. 나에게 감명을 준 것은 ‘자연의 법칙’, ‘옳은 이치’, ‘도덕적 감각’, ‘타고난 정의감’ 등등의 문구에서 연역된 도덕적 입법에 있어서의 세상 일반의 추론 양식들에 대하여 벤담이 비판을 가한 장이었다. 그는 이런 추론을 가면을 쓴 독단론이라고 규정하였다. 이런 독단론은 자기의 여러 감정을 요란스러운 말로 감싸 남에게 덮어 씌워 강요하는데, 이 요란스러운 말들은 이 감정의 이유는 전해 주지 못하고 도리어 이 감정을 그 자체의 이유로 삼는다. (71, 72면)




10. 그러나 이제는 기왕의 모든 도덕가들이 초극되고, 사상계에서 그야말로 하나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나를 사로잡고 말았다. 이 느낌은 벤담이 여러 가지 행위의 갖가지 종류와 계층을 분석함으로써 행위의 도덕성에다가 행복의 원리를 적용하는 일을 과학적인 것이 되게 한 그 솜씨 때문에 더 강해졌다. 그러나 그때 무엇보다도 나로 하여금 경탄케 한 것은 죄악의 분류였다. (72면)




11. ‘벌할 만한 행위’라고 하는 크고 복잡한 주제에 대하여, 쾌락을 주는 결과와 고통을 주는 결과라고 하는 윤리적 원리에 의거하여 또 이 문제들에 대하여 벤담이 처음으로 끌어들인 세밀한 방법을 따라, 과학적 분류가 적용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을 때, 나는 마치 그곳으로부터 넓고 넓은 정신세계의 전모를 굽어볼 수 있고 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멀고 먼 데까지 여러 가지 지적 소산물이 펼쳐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어떤 지점에 나를 데리고 간 듯느꼈다. (72면)




12. ‘입법론’의 마지막 권을 다 읽고 났을 때 나는 사람이 달라졌다. 벤담이 이해한 그대로 이해된 그리고 그가 적용한 방식 그대로 이 세 권의 책, 즉 ‘입법론’에서 적용된 ‘공리의 원칙’은, 내 지식과 여러 가지 신념을 서로 아무 상관없이 떨어진 그리고 단편적인 구성 요소들을 한데 뭉쳐, 체계 있게 하는 근본 원리로서 통일을 주었다. 이제 나는 내 의견을 가지게 되었다. 종교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최선의 여러 의미의 하나에 있어서 하나의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것을 남에게 가르쳐 주고 또 이것을 널리 퍼뜨림으로써 외부에 대한 내 일생의 주요 목적으로 삼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학설을 통해서 인류의 상태를 여러 모로 변화시켜 보려는 하나의 웅대한 상념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73, 74면)




13. 생활의 수단으로 쓰는 글은 생명 있는 글이 못 되며, 또 필자가 거기에 최선을 다하는 글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사상가들을 만들어내게 될 책들은 그것을 쓰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며, 또 다 쓰였을 때에도 일반적으로 너무 늦게 세상에 알려지고 명성을 얻기 때문에 생활의 수단으로서 의지할 수는 없다. (88면)




14. 나 자신에 관해서 말하면, 일생을 통하여 직장에서 내가 할 일들은 이와 함께 내가 수행하고 있던 다른 정신적인 일에서 실상 휴식을 얻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들은 아무 재미없는 시시한 일이 되지 않을 만큼은 지적인 일이었고, 또 늘 추상적 사색을 하거나 곰곰이 생각해서 글을 쓰곤 하는 사람의 정신력에 지나친 부담을 주지는 않는 것이었다. ... (89면)




15. 이와 동시에 나는 많은 사람들을 움직이는 데 따르는 여러 가지 어려움, 타협의 필요성, 중요한 것을 살리기 위해서 중요치 않은 것을 희생시키는 기술을 실지로 배우게 되었다. 나는 모든 것을 획득할 수 없을 때 어떻게 하면 최선의 것을 획득할 수 있는가를 배웠다. 또 모든 것이 내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낙심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내생각대로 된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기뻐하고 용기를 얻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정 아무 것도 내 생각대로 되지 않았을 때라도 남에게 전적으로 제압된 것을 아주 평정한 마음으로 참고 견디는 것을 배웠다. 나는 일생을 통하여 이러한 여러 가지 수양이 개인의 행복에 다시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것들이 이론가이든 실제가이든 누구든지 자기에게 주어진 기회를 십분 활용하여 최대한의 선을 성취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 조건이라는 것도 알았다. (91면)




16. 세상에서 좋아하지 않는 견해를 품은 사람들은 그것을 표현할 자유를 얻기 위하여 항상 논변하였고, 또 논변할 각오를 하고 있어야만 했다. 나는 위클리프라는 가명으로 연속 5회에 걸쳐 종교에 관한 모든 의견의 자유로운 공표의 문제를 충분히 그리고 광범하게 다룬 공개장을 써서 ‘모닝 크로니클’에 기고하였다. (94면)




17. 그것이 무엇인가 하면, 곧 높은 공공 정신과 무엇보다도 전체의 이익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었다. (108면)




18. 오랜 시일을 두고 이 훌륭한 글을 뒤적거린 것이 나 자신의 글에 큰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122면)




19. 이렇게 한동안 글을 쓰지 않은 것이 나에게는 여러 가지로 큰 유익이 되었다. 이 시기에 내 사상을 곧장 인쇄에 돌릴 필요 없이 소화하고 성숙시킬 수 있었던 것은 이만저만 소중한 일이 아니었다. 만일 내가 계속해서 글을 쓰고 있었다면, 이 여러 해 동안 일어나고 있던 내 사상과 성격의 중대한 변모에 많은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137면)




20. 인류 전체에 유익한 어떤 것에는 쾌락의 관념 연합을 결부시키고 인류 전체에 해로운 모든 것에는 고통의 관념연합을 결부시켜야만 된다는 것이었다. ... 그들은 그저 흔히 쓰여 오던 낡은 수단, 즉 칭찬과 꾸지람 및 상벌에만 의지하는 것 같이 보였다. (141면)




21. 분석의 장점은 편견의 결과를 모조리 약화시키고 뒤집어엎는 경향을 가진 점이다. 즉 분석은 우리로 하여금 그저 우연히 결부되어 있는 관념들을 마음속에서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다. (142면)




22. 왜냐하면 전에는 언제나 도저히 그럴 수 없으리라고 생각한 것, 즉 분석의 습관이 감정을 약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이제 와서는 깨달았기 때문이다. 혹은 깨달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142면)




23. 그러므로 분석적 습관은 신중한 사색과 통찰에는 좋지만, 이로 말미암아 언제나 열정이나 미덕이 송두리째 없어지기 쉽다. (143면)




24. 내 교육은 결국 이상과 같은 고귀한 감정을 분석의 해체시키는 힘에 대항할 만큼 충분히 강하게 내 마음 속에 생기게 해주지는 못했고, 한편 내 지적 수양의 전 과정은 조숙하고 미숙한 내 분석을 내 정신의 뿌리 깊은 습성이 되게 했다고 나는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나는 항해를 떠나자마자 암초에 걸렸다고 혼자 중얼거리게 되었던 것이었다. (143면)




25. 그리고 내 성격을 다시 새롭게 형성하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분석적이 된 정신 속에 새로이 인간적 욕망의 다른 어떤 대상에도 쾌감의 연상을 결부시킬 수 있는 힘이 자연 안에는 전혀 없어 보였다. (144면)




26. 그대가 행복한가 안 한가를 자신에게 물어보라. 그리하면 그대는 곧 행복하지 않게 되고 만다. 행복하게 되는 유일한 길은 행복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지 않고 행복 아닌 다른 어떤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 것이다. 그대의 자아의식, 그대의 검토, 그대의 자문자답을 그 목적에 집중해 보라. 그리하면 다른 점에서 행복한 상태에 있는 한 그대가 호흡하는 공기와 함께 행복을 들이마시게 될 것이다. (147면)




27. 여러 가지 능력 간에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이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러 가지 감정을 배양하는 것이 내 윤리적 및 철학적 신조의 주요한 점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 나는 이제 시와 예술이 인간적 교양의 방편으로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서 내가 책에서 읽거나 사람들에게 들은 것들이 의미가 있음을 깨닫기 시작하였다. (148면)




28. 내가(홉스와 아버지에게 배워) 항상 쓰던 연구 방법은 추상적 원리들을 내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구체적 실례를 가지고 연구하는 것이었으므로... (163면)




29. 특히 모든 역사를 유기적 시기(organic periods)와 비판적 시기(critical periods)로 나눈 데 대해서는 크게 동감하였다. (167면)




30. 나는 영국 헌법에서 귀족 계급들, 즉 귀족과 부자가 우월한 존재로 취급되고 있는 것을 보고 이것은 어떠한 투쟁을 해서라도 없애 버려야 할 악이라고 생각하였다. ... 실로 그것은 국민을 타락케 하는 큰 원인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이 국민을 타락시키는 이유는 첫째로, 그것이 국가 안에서 사리사욕을 공공의 이익보다도 앞세우고, 또 계급의 이익을 위하여 입법권을 남용함으로써 정부의 행위를 대대적으로 공공연한 패덕 행위의 본이 되게 했기 때문이다. 둘째로... 부와 부의 간판이 진정으로 존경받는 유일한 것이 되었고, 또 국민의 생활은 주로 이것을 추구하는 데 온통 바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174면)




31. 이런 정신 상태에 있을 때에 프랑스 7월 혁명이 터졌다. 그것은 나를 극도로 흥분시켜 열정을 품게 했고, 또 이를테면 하나의 새로운 삶을 살게 했다. 나는 즉시 파리로 가서 라파예트를 소개받았다. 그리고 나중에 극좌 정당의 영수 몇 분과 가지게 된 교제의 기초를 세워 놓았다. (175면)




32. 모든 추리가 삼단논법에 귀착된다는 것과 모든 삼단 논법에서 결론은 이미 전제들 속에 들어 있다는 것도 거의 의심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전제 속에 이미 들어 있고 포함되어 있는 결론이 어떻게 새로운 진리일 수 있는가 (183면)




33. 나의 새로운 경향은 어떤 점에서는 강화되어야 했고 다른 어떤 점에서는 완화되어야 했다. 그러나 사상 면에서 장차 있을 유일한 중요한 변화는 정치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인류에 대한 궁극적 전망에 있어서 수정된 사회주의에 더욱 접근한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 정치적 이상이 흔히 민주당 인사들이 생각하고 있는 바와 같이 순수한 민주주의로부터 수정된 민주주의로 옮아간 것이었다. (193면)




34. 이 책(경제학 원리)이 그저 추상적인 학술서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또한 응용의 책인 데다가 경제학을 고립된 학문으로 다루지 않고 보다 큰 전체의 일부로 다루었기 때문이다. 즉 경제학을 사회 철학의 한 분과로 다루었던 것이다. (235면)




35.  복수투표권을 인정하자는 것인데, 전처럼 재산을 보고 투표권을 주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확실히 우월함을 보고 주자고 주장하는 것이었다. (253면)




36. 우리나라의 상류 계급과 중류 계급 거의 전부, 그리고 심지어 자유주의자라고 자타가 인정하는 사람들까지, 열광적으로 남부의 세력에 편드는 것을 내가 어떠한 감정으로 보고있었던가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노동 계급과 몇몇 문인 그리고 몇몇 과학자들만이 예외로 이 일반적 열광에 휩쓸려 들어가지 않았다. (263면)




37. 우리나라의 권력 계급의 마음 속에서 영구적으로 개선된 것이 얼마나 적으며, 그들이 툭하면 내세우는 자유주의적 견해란 얼마나 보잘것 없는가 하는 것을 나는 이때만큼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다. (263면)




38. 이러한 비뚤어진 여론에 대해서 항변하는 극소수 사람들 가운데 한몫 끼는 것은 나의 당연한 의무였다. (264면)




39. 이 마지막 해 즉 1865년 초에, 나는 노동계급 사람들이 자주 나에게 표시한 희망에 따라 내 저작 가운데서 노동계급에게 가장 많이 읽힐 듯싶은 것을 골라 값싼 대중판을 간행하였다. ‘경제학 원리’, ‘자유론’, ‘대의정치론’이 그것이다. 이것은 내 금전상 이익의 상당한 희생이었다. (271면)




40. 노동자의 인정을 받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완전히 솔직한 태도이다. (276면)




41. 여성 참정권과 비례 대표제에 대한 주장은 당시 많은 사람들에게 나 한 사람만의 망령된 생각이라고 여겨졌다. (278면)




42. 의회에서 나는 노동자의 편에 서 있었고, 또 정부의 행동을 통렬히 공격한 바 있었다. (282면)




43. 얼마 후 토리당 정부가 공원에서의 대중 집회를 금지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했을 때 나는 강력히 반대하는 연설을 했다. 뿐만 아니라, 또한 꽤 많은 진보적 자유주의자를 규합하여, 마침 회기가 끝날 무렵을 이용해서, 토론에서 상대방을 압도하여 꼼짝 못하게 함으로써 그 법안을 말살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후 그 법안은 다시 제안되지 않았다. (284면)




44. 2년 이상이나 우리는 투쟁을 계속하였다. (288면)




45. 이 문제에 대한 운동은 1866년에 시작되었다. 이때 나는 상당히 많은 여류 명사들이 서명한 여성 참정권 요구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29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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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43
존 스튜어트 밀 지음, 서병훈 옮김 / 책세상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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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통 주류의 의견과 다른 결론을 이끌어내는 모든 탐구를 금지할 때,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사람은 이단자들이 아니다. 오히려 이단이 아닌 사람들이 더 큰 피해를 입는다. 이단에 대한 공포 때문에 그들의 정신 발전이 전반적으로 타격을 받고 이성 또는 위축되기 때문이다. (69면)




2. 사상가라면 모름지기 결론이 어떻게 나든 자신의 논리를 끝까지 따라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결코 위대한 인물이 될 수 없다. 단지 생각하는 것이 귀찮아서 기존의 올바른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덕분에 실수를 피할 수 있는 사람보다는, 적절한 공부와 준비 끝에 자기 혼자 생각하다가 실수를 저지르는 사람이 진리의 발견에 더 크게 기여한다. (70면)




3. 그러나 이런 사람도, 비록 자기 생각이 옳다 하더라도 충분히 자주 그리고 기탄없이 토론을 벌이지 않을 경우 그것은 살아 있는 진리가 아니라 죽은 독단이 되고 만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71, 72면)




4. 한 사람 다음으로 고대의 가장 위대한 웅변가라고 할 수 있는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는 자기 문제에 대해 아는 것만큼이나(그 이상은 아닐지라도) 자신과 입장이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이해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74면)




5. 교리라는 것은 원래 적대 세력을 공격하는 데 편리하게 사용된다. (82면)




6. 사람들이 억지로라도 양쪽 의견을 모두 듣게 되면 언제나 희망이 있다. (100면)




7. 다양함은 나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좋은 것이라는 사실은 개인의 의견 못지않게 행동 양식에도 적용될 수 있다. (108면)




8. 만일 사람이 세상 또는 주변 환경이 정해주는 대로 살아간다면, 원숭이의 흉내 내는 능력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선택하는 사람만이 본인의 타고난 모든 능력을 사용하게 된다. 관찰하기 위해 눈을 써야 하고, 앞날을 예측하기 위해 이성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자료를 모아야 하며, 결론을 내리기 위해 이런저런 차이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리고 일단 결정을 하고 나면, 자신의 신중한 선택을 실천에 옮길 수 있도록 확고한 의지와 자기 통제가 필요하다. 사람이 모두 갖추어야 하고 요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은, 각자 행동을 스스로의 판단과 감정에 따라 결정하는 것과 정확히 비례해서 커진다. (112면)




9. 우리는 최대한 다양하게 인간 발전을 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바로 이 최고의, 제1원칙의 절대적 중요성을 그 무엇보다 강조하고 있다. (빌헬름 폰 훔볼트, 정부의 역할과 의무에서, 11면)




10. 사회는 계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사회적 의무의 근거를 끌어내기 위해 계약론을 거론해보아도 별 뾰족한 수가 없다. (14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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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의 문법 - 민주주의총서 01
조효제 지음 / 후마니타스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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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는 주인이 식탁에서 던져 주는 자선의 빵조각에는 관심이 없다. 나는 완전한 권리의 메뉴를 원한다.“ (데스몬트 투투, 15면)




2. 인권에 관한 각 서사방식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권리의 개념에 대한 본질적 성찰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21면)




3. 하지만 나는 인권을 열렬히 옹호하는 한 사람으로서, 인권개념을 선험적이고 절대적이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최고선으로 단순화해서 기술하는 것은 장점만큼이나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21면)




4. 넷째, 인권은 교조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곤 한다. 이런 비판에 따르면 인권론자는 세상을 권리와 의무, 선과 악의 단순 흑백논리로만 본다. 사회, 정치, 인간관계는 권리와 의무론deontology의 도덕성만으로 포착되지 않는, 다양하고 복잡한 차원들을 포함하고 있다. (27면)




5. 인권을 일관성 없이 사용하여 자신에게 유리할 때는 옹호하고 그렇지 않으면 무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인권의 이중기준double standard이라 한다. (30면)




6. 오늘날 인권은 과거의 ‘탄압 패러다임’에서 ‘웰빙 패러다임’으로 외연이 넓어지고 있다. (30면)




7. 어떤 인간이 정치적 지위를 잃는다면... 그리하여 (생물학적인) 인간이라는 사실만 남을 경우 그 사람은 타인이 그를 같은 종으로 여길 수 있는 인간적 특성 자체를 상실하게 된다. (Arendt 1951, 300) (32면)




8. 인권이 반드시 필요한 맥락이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인권이 모든 경우에 최상의 사상일 수는 없다. 따라서 인권은 다른 좋은 사상, 이념, 세계관, 예를 들어 민주주의, 사회정의, 평화, 특정 이념, 평등, 휴머니즘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며, 이들과 적절히 결합되거나 적절한 역할분담을 할 때 순기능을 발휘할 수 있다. (33면)




9. 첫째, 인권은 얼핏 듣기에 절대적 명제인 것 같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면 ‘언어적 우선순위’ 또는 ‘논의의 문턱’을 가리킬 뿐이다. ‘언어적 우선순위’란 인권을 포함한 여러 가치가 서로 경합할 때 인권이 적어도 언어 표현상에서는 항상 앞자리를 차지한다는 뜻이다. (33면)




10. 인권은 궁극적으로 권력의 문제다. 역사적으로 보아 각 시대의 인권투쟁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권력 형태에 대한 저항담론으로 출현한 것이다. 이것을 사회구성주의적social constructive 인권이론이라고 한다. (36면)




11. 어제의 급진적 이론이 오늘의 상식이 되었다가 내일의 반동적 이론으로 격하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다. (36면)




12. 웰빙 패러다임 아래에서 인권은 삶의 질과 행복을 보장하는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 우리의 인권은 저항권과 생존권 중심에서 삶의 질 강화로 확장되어야 한다(홍성태 2006, 41). 이렇게 되면 인권은 점점 더 일반 사회정책과 비슷한 관점에서 생각하게 되고, 복지국가 목표와 유사한 산출물을 지향하게 된다. 웰빙 패러다임 아래의 인권은 예산배정이나 의사결정에 있어 정치적 고려이 대상이 되는 것을 피하기 어렵다.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에 대한 국제규약은 이런 관점을 명백히 표현하고 있다. (37면)




13. 솔직히 말해, 양심 있는 자유주의자들이 시민적, 정치적 권리를 확실히 옹호하는 바탕에서, 진보적 인권운동이 경제적, 사회적 권리의 프런티어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 이치에 맞는 역할분담이라고 생각한다. (39면)




14. 인권이론은 특정한 시대의 산물이다. 인권운동이 인권이론을 낳기도 했고 인권이론이 인권운동을 자극하기도 했다. (49면)




15. 허버트 스펜서, 마르크스, 에밀 뒤르켕, 막스 베버 등 근대 사회과학의 창시자들은 사회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대상이지 윤리적 원칙으로 이해할 대상이 아니라고 보았다. ... 사회학이 철학의 자리에 들어섰고, 사회의 과학적 연구가 인간의 권리를 대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회과학의 시조들은 ‘도덕성’을 추구하더라도 형이상학적인 규범(예컨대 자연권)으로서가 아니라 사회의 존립을 위해 필요한 기능적 요소로서 추구했다. (86면)




16. 시대의 전반적인 추세로서 과학과 분석과 계량을 중요시하는 사회과학의 세계관이 받아들이기 시작했으므로 자연권의 도덕적인 에토스가 갑자기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87면)




17. 인권담론에는 창시자도, 주도적인 집단도, 결정적인 텍스트도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주창자, 여러 소외집단, 여러 텍스트가 있을 뿐이다. (90면)




18. 그러나 오늘날의 인권은 더는 형이상학적 근거에 의존하지 않는다. 대신 권리가 인간의 창조물이고 인간이 직접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91, 92면)




19. 인권은 인간의 가치를 상향평준화하려는high equal worth 도덕적 지향을 가진 사상인 것이다. (93면)




20. 위에서 본 대로 현대 인권이론은 크게 보아 법이론, 권리이론, 철학적 논의 등을 거쳐, 근래 들어 욕구이론과 역량이론 쪽으로 새 영역을 개척했다. 주로 법학, 철학, 사회운동의 언어를 사용하던 인권이 사회정책, 사회복지, 보건의료, 인류학의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탄압 패러다임에서 웰빙 패러다임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인권의 위상 변화를 말해 준다. (122면)




21. 내가 누누이 강조했듯이 인권은 비판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이 동기와 상관없이 논리적인 비판일 경우 이론적, 지성적으로 조우해야 한다고 본다. 비판이 인권을 키우기 때문이다. (137면)




22. 인권의 힘은 그 이론적 완결성에서가 아니라 그 주장의 절박함에서 나온다. (161면)




23. 사회적 배제는 주로 정체성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합법적 영주권자들은 공적 영역에서는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권리를 보유하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정체성에 근거한 실질적인 배제와 차별을 경험하기 일쑤다. 이런 사적, 경험적 세계에서의 부정적 현실은 흔히 공적 영역에서 인정되는 규범상의 평등과 권리를 압도하곤 한다. (243면)




24. “민주주의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수 밖에 없다.” (존 듀이, 276면)




25. 화폐에 인플레가 오면 교환가치가 떨어지듯이 인권에 인플레가 오면 규범적 가치가 땅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인권이 희화화될 우려도 있다. (311면)




26. 인권이 탄압패러다임에서 웰빙 패러다임으로 확대된 경향은 인권이 법의 영역에서 정책의 영향으로 대거 이동하는 현상을 촉진했다. 인권과 사회정책이 제일 먼저, 제일 활발하게 만난 분야는 복지정책, 특히 복지서비스 분야였다. 앞에서 말했듯이 복지개념을 시혜에서 권리로 변화시키는 데에는 인권담론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16면)




27. 그렇다면 공리주의 원칙을 완전히 배제하고 권리에 기반을 둔 접근만으로 사회정책을 수립할 수 있을 것인가? 이것도 사실은 불가능하다. 이런 점은 인권운동에 딜레마를 제기한다. (319, 320면)




28. 사회적 인정 투쟁은 헤겔 이래 역사철학적 특성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특정한 가치를 인간의 권리로서 사회적으로 인정한다는 말은 그것과 대응하는 의무를 사회적으로 부과한다는 뜻이 된다. (332면)




29. “사람들은 이념을 믿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가 믿는 사람의 이념을 믿는다” (지브 만코비츠, 335면)




30. 이런 다양한 성찰의 초점은 넓은 의미에서의 정치, 즉 인간사회의 공동선에 인권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에 맞춰져야 할 것이다. 왜 그래야 하는가에 대한 이론적 해답을 찾으려 했던 것이 ‘인권의 문법’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일관된 주제였다. (34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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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질서의 의미에 관하여
베르너 마이호퍼 지음, 윤재왕 옮김 / 지산(길안사)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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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 칸트는 이 글(세계시민적 의도에서 바라본 보편사의 이념)에서 인간질서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결국 인간의 본성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귀착한다고 본다. 칸트는 인간본성의 본질을 “비사교적 사교성(ungesellige Geselligkeit)"이라는 "충돌관계(Antagonismus)"로 이해한다. 칸트가 보기에 인간은 서로 대립하는 이중적인 성향의 투쟁을 통해 규정된다. 즉, 인간은 “타인과 함께 서로 어울리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를 더욱 아름답게, 다시 말해 자신의 타고난 자연적 소질을 발전시킨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인간은 “스스로를 타인과 구별하려는 고립적인” 성향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 뜻대로만 재단하고 타인과 서로 어울리지 않으려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3, 14면)




2. 결국 “비사교적 사교성”은 개인들로 하여금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게 만들며, 동시에 “어디에서나 부딪히게 되는 저항”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관계”는 칸트가 보기에는 인간으로 하여금 “현명한 창조주의 지시에 따른” “목가적인 양치기의 삶”에서 빠져 나와, “전력을 기울려 자연적 소질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자극하는” “자연적 충동”일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사회” 속에서 “인간들의 법률적 질서를 형성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14, 15면)




3. 정언명령의 근본사상에 따른다면 우리들 각자의 의욕이 “이성적인가”를 심사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 각자의 행위원칙으로 통용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칸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하나의 준칙이 실천법칙의 보편성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모든 개인들을 향한 “보편적이 되라!”는 호소이다. (19면)




4. 오히려 “가장 근원적인 자기보존과 성장의 법칙에 의거하여” 그 정반대로 행해야 한다고 니이체는 주장한다. 즉 “각자는 자신의 미덕을, 자신의 정언명령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왜냐하면 “‘개인성이 없는’ 모든 의무, 추상성의 재단 앞에서 행해지는 모든 희생만큼 우리의 심연과 내면을 더 철저히 파괴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니이체는 ‘보편적이 되라!“는 정언명령 대신에 정언명령 만큼이나 극단적인 ”너 자신이 되라!“는 정반대의 절대적 요청을 제기한다. (27, 28면)




5. 삶의 길은 언제나 “나의 길”이며, 이런 이유에서 짜라투스트라는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되물으며 대답한다. “너희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왜냐하면 “단 하나의 길...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Also sprach Zarathustra, S. 217). 이런 점에서 니이체가 말하는 “미덕”은 “모든 사람들에게 최상의 길!”이 아니라 “각자마다 다른 길!”을 뜻한다. (28면)




6. 니이체는 칸트와는 달리 인간의 진정한 본성이 (“이성중심적으로”) 이성적 본성이 아니라, (“의지중심적으로”) 의지적 본성에 있다고 본다. 즉, 인간존재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를 관통하여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가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29면)




7. 이처럼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더 많은 것에의 의지’, 즉 생성과 변화에의 의지로 해석하는 철학에서는 “가치”의 개념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칸트의 경우 인간의 존재와 그 행위의 가치 또는 반가치는 그것이 보편적 당위에 상응하는가에 따라 판단되는 반면, 니이체의 철학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어떤 존재나 행위가 가장 고유한 의욕, 즉 생성과 변화 속에서 상승하려는 의지에 보탬이 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된다. (32면)




8. 니이체가 인간의 “고유한” 측면으로 파악한 것은 보편성의 실현이나 개인성의 실현이 아니라, 유일하고도 너무나도 특유한 인간 “자신”의 특수성을 “완성”하라는 것이다. (34면)




9. 니이체의 철학에서는 모든 “도덕”의 목표가 “인간성”의 “보존”이나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인간”이 자신의 최고의 존재가능성으로 “상승”하는 데 있다. (38면)




10. 이 양심은 ‘너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Du-sollst)'는 명령의 법정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의욕한다(Ich-will)"는 말 그대로 ”절대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 절대적 명령의 정당성은 “좋은 인간”이라는 보편적 미덕의 법칙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된다는 “나 자신의” 미덕이 실현되도록 스스로를 기획한다는 데서만 찾을 수 있다. (41면)




11. 등급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니이체는 “너 자신의 힘의 크기이며, 힘 이외의 나머지는 비겁이다”라고 대답한다. (43, 44면)




12. 그리하여 니이체는 “너에게 권리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자가 누구일 것인가?”라고 묻고,

“너의 권리는 네가 찾아라!”라고 외치며 이 물음에 스스로 대답한다. (45면)




13. 결국 인간은 때로는 다른 인간과 같게, 때로는 다른 인간에 비해 다르게 질서 속에서 “실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의문과 더불어 우리는 질서의 의미를 주관성과 객관성의 “여러 가지 사건의 복합”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여 우리는 오늘날 “인간존재”를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 규정한다. 이러한 사건의 “복합”을 분석해 보면 인간의 세계 내 실존에 근거하고 있는 존재는 결국 ‘로서의 존재’ 가운데서의 자기존재(Selbstsein im Alssein)임이 밝혀질 것이다. (52, 53면)




14. ... 이처럼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 지향시키고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자신의 등급만을 염려하게 됨으로써 개인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며, 결국 스스로를 잃어버린 채 스스로 서 있지도 못하고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하며 스스로 책임지지도 못하는 삶으로 전락하고 만다. (56면)




15. 니이체의 표현에 따르자면 너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네가 “너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과제를 떠맡게 되면, 너는 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네가 할 수 있었던 것마저 놓치고 만다.” (79면)




16. ‘이 사람아, 진정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네가 선택하는 역할의 본질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네가 선택한 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 스스로 검토해 보아라.’ (81면)




17. “행동하는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일 뿐이다. 세상사가 올바르게 이루어지는가는 그가 걱정할 바가 아니다.(괴테)” (83면)




18. 에픽테토스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준엄하게 경고한다. “먹고 마셔라. 인간답게 행동하라. 결혼도 하고, 자식을 가져라. 국가에 유용한 사람이 되어라. ... 너의 아버지, 너의 아들, 너의 이웃, 너의 배우자와 화목하게 지내라.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네가 철학에 대해 실제로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되리라.” 왜냐하면 에픽테토스로서는 그와 같은 세계와의 “일치”를 통해서만 조화의 “화음‘이 울려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84면)




19. 이 때 ‘너 자신을 알라!’는 지시의 “의미”는 결국 “그 합창단원이 다른 합창단원에게 자신의 주의력을 집중하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와 그 자신이 부르는 노래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84, 85면)




20. 물론 이러한 의존성이 타자를 이용하는 가운데 나의 독립성을 완전히 상실할 정도에 이르거나, 거꾸로 타자에 의해 내가 이용되는 가운데 철저한 자기희생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우리의 실존은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상태(타율)가 되고 만다. (104면)




21. 모든 질서는 언제나 시간과 존재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의 ‘위치지움’으로 나타난다. (106면)




22. 타인과의 질서를 추구하는 각 개인의 기획은 이중의 방식으로 가능하다. 하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요청(정언명령)을 성찰함으로써, 다른 하나는 타인이 우리와 만나게 될 때 갖고 있는 그 타인의 역할에 대한 요구(황금률)를 성찰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117, 118면)




23. 정언명령과 황금률이라는 사회윤리의 두 가지 근본규칙은 비록 전자는 자기 자신의 역할의 관점에서, 후자는 타인의 역할의 관점에서 출발하지만, 사회세계의 구조 안에 이중적으로 ‘위치가 정해져 있다’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며, 양자는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며 서로를 보충하는 관계에 있다. (120면)




24. 이처럼 우리 자신의 고유한 특수성이 보편성과는 별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제기된 과제이다. (1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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