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질서의 의미에 관하여
베르너 마이호퍼 지음, 윤재왕 옮김 / 지산(길안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1. 칸트는 이 글(세계시민적 의도에서 바라본 보편사의 이념)에서 인간질서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결국 인간의 본성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귀착한다고 본다. 칸트는 인간본성의 본질을 “비사교적 사교성(ungesellige Geselligkeit)"이라는 "충돌관계(Antagonismus)"로 이해한다. 칸트가 보기에 인간은 서로 대립하는 이중적인 성향의 투쟁을 통해 규정된다. 즉, 인간은 “타인과 함께 서로 어울리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다른 사람과 함께 하는 상태에서 자기 스스로를 더욱 아름답게, 다시 말해 자신의 타고난 자연적 소질을 발전시킨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인간은 “스스로를 타인과 구별하려는 고립적인” 성향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든 것을 오로지 자기 뜻대로만 재단하고 타인과 서로 어울리지 않으려는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13, 14면)




2. 결국 “비사교적 사교성”은 개인들로 하여금 서로 충돌하고 대립하게 만들며, 동시에 “어디에서나 부딪히게 되는 저항”의 “근원”이 된다. 하지만 이러한 “충돌관계”는 칸트가 보기에는 인간으로 하여금 “현명한 창조주의 지시에 따른” “목가적인 양치기의 삶”에서 빠져 나와, “전력을 기울려 자연적 소질을 더욱 발전시키도록 자극하는” “자연적 충동”일 뿐만 아니라, 이와 동시에 “사회” 속에서 “인간들의 법률적 질서를 형성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하다. (14, 15면)




3. 정언명령의 근본사상에 따른다면 우리들 각자의 의욕이 “이성적인가”를 심사하는 것은 결국 우리들 각자의 행위원칙으로 통용될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칸트 자신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하나의 준칙이 실천법칙의 보편성으로서 자격”을 갖추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모든 개인들을 향한 “보편적이 되라!”는 호소이다. (19면)




4. 오히려 “가장 근원적인 자기보존과 성장의 법칙에 의거하여” 그 정반대로 행해야 한다고 니이체는 주장한다. 즉 “각자는 자신의 미덕을, 자신의 정언명령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왜냐하면 “‘개인성이 없는’ 모든 의무, 추상성의 재단 앞에서 행해지는 모든 희생만큼 우리의 심연과 내면을 더 철저히 파괴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니이체는 ‘보편적이 되라!“는 정언명령 대신에 정언명령 만큼이나 극단적인 ”너 자신이 되라!“는 정반대의 절대적 요청을 제기한다. (27, 28면)




5. 삶의 길은 언제나 “나의 길”이며, 이런 이유에서 짜라투스트라는 “길을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되물으며 대답한다. “너희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왜냐하면 “단 하나의 길...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Also sprach Zarathustra, S. 217). 이런 점에서 니이체가 말하는 “미덕”은 “모든 사람들에게 최상의 길!”이 아니라 “각자마다 다른 길!”을 뜻한다. (28면)




6. 니이체는 칸트와는 달리 인간의 진정한 본성이 (“이성중심적으로”) 이성적 본성이 아니라, (“의지중심적으로”) 의지적 본성에 있다고 본다. 즉, 인간존재 뿐만 아니라, 모든 존재를 관통하여 존재 전체를 규정하는 “권력에의 의지(Wille zur Macht)"가 바로 인간의 본성이라는 것이다. (29면)




7. 이처럼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더 많은 것에의 의지’, 즉 생성과 변화에의 의지로 해석하는 철학에서는 “가치”의 개념 또한 근본적으로 바뀌게 된다. 칸트의 경우 인간의 존재와 그 행위의 가치 또는 반가치는 그것이 보편적 당위에 상응하는가에 따라 판단되는 반면, 니이체의 철학에서는 이와는 정반대로 어떤 존재나 행위가 가장 고유한 의욕, 즉 생성과 변화 속에서 상승하려는 의지에 보탬이 될 수 있는가에 따라 판단된다. (32면)




8. 니이체가 인간의 “고유한” 측면으로 파악한 것은 보편성의 실현이나 개인성의 실현이 아니라, 유일하고도 너무나도 특유한 인간 “자신”의 특수성을 “완성”하라는 것이다. (34면)




9. 니이체의 철학에서는 모든 “도덕”의 목표가 “인간성”의 “보존”이나 “발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인간”이 자신의 최고의 존재가능성으로 “상승”하는 데 있다. (38면)




10. 이 양심은 ‘너는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Du-sollst)'는 명령의 법정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의욕한다(Ich-will)"는 말 그대로 ”절대적“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다. 이 절대적 명령의 정당성은 “좋은 인간”이라는 보편적 미덕의 법칙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된다는 “나 자신의” 미덕이 실현되도록 스스로를 기획한다는 데서만 찾을 수 있다. (41면)




11. 등급을 결정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해 니이체는 “너 자신의 힘의 크기이며, 힘 이외의 나머지는 비겁이다”라고 대답한다. (43, 44면)




12. 그리하여 니이체는 “너에게 권리를 부여해 줄 수 있는 자가 누구일 것인가?”라고 묻고,

“너의 권리는 네가 찾아라!”라고 외치며 이 물음에 스스로 대답한다. (45면)




13. 결국 인간은 때로는 다른 인간과 같게, 때로는 다른 인간에 비해 다르게 질서 속에서 “실존”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의문과 더불어 우리는 질서의 의미를 주관성과 객관성의 “여러 가지 사건의 복합”이라는 관점으로부터 이해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여 우리는 오늘날 “인간존재”를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로 규정한다. 이러한 사건의 “복합”을 분석해 보면 인간의 세계 내 실존에 근거하고 있는 존재는 결국 ‘로서의 존재’ 가운데서의 자기존재(Selbstsein im Alssein)임이 밝혀질 것이다. (52, 53면)




14. ... 이처럼 스스로를 다른 사람에 지향시키고 다른 사람과 비교되는 자신의 등급만을 염려하게 됨으로써 개인은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며, 결국 스스로를 잃어버린 채 스스로 서 있지도 못하고 스스로 생각하지도 못하며 스스로 책임지지도 못하는 삶으로 전락하고 만다. (56면)




15. 니이체의 표현에 따르자면 너는 네가 “감당”할 수 있는 것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네가 “너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과제를 떠맡게 되면, 너는 웃음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네가 할 수 있었던 것마저 놓치고 만다.” (79면)




16. ‘이 사람아, 진정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네가 선택하는 역할의 본질이 무엇인지 숙고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네가 선택한 것을 감당할 수 있는지 스스로 검토해 보아라.’ (81면)




17. “행동하는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그 자신이 올바른 일을 행하는 것일 뿐이다. 세상사가 올바르게 이루어지는가는 그가 걱정할 바가 아니다.(괴테)” (83면)




18. 에픽테토스는 그의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준엄하게 경고한다. “먹고 마셔라. 인간답게 행동하라. 결혼도 하고, 자식을 가져라. 국가에 유용한 사람이 되어라. ... 너의 아버지, 너의 아들, 너의 이웃, 너의 배우자와 화목하게 지내라. 그렇게 할 때에 비로소 네가 철학에 대해 실제로 무언가를 이해하고 있음을 우리가 알 수 있게 되리라.” 왜냐하면 에픽테토스로서는 그와 같은 세계와의 “일치”를 통해서만 조화의 “화음‘이 울려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84면)




19. 이 때 ‘너 자신을 알라!’는 지시의 “의미”는 결국 “그 합창단원이 다른 합창단원에게 자신의 주의력을 집중하고, 그럼으로써 다른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와 그 자신이 부르는 노래가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라는 것이 아니겠는가?” (84, 85면)




20. 물론 이러한 의존성이 타자를 이용하는 가운데 나의 독립성을 완전히 상실할 정도에 이르거나, 거꾸로 타자에 의해 내가 이용되는 가운데 철저한 자기희생의 단계에 이르게 되면, 우리의 실존은 타자에 의해 규정되는 상태(타율)가 되고 만다. (104면)




21. 모든 질서는 언제나 시간과 존재라는 두 가지 차원에서의 ‘위치지움’으로 나타난다. (106면)




22. 타인과의 질서를 추구하는 각 개인의 기획은 이중의 방식으로 가능하다. 하나는 자신의 역할에 대한 요청(정언명령)을 성찰함으로써, 다른 하나는 타인이 우리와 만나게 될 때 갖고 있는 그 타인의 역할에 대한 요구(황금률)를 성찰함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117, 118면)




23. 정언명령과 황금률이라는 사회윤리의 두 가지 근본규칙은 비록 전자는 자기 자신의 역할의 관점에서, 후자는 타인의 역할의 관점에서 출발하지만, 사회세계의 구조 안에 이중적으로 ‘위치가 정해져 있다’는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며, 양자는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며 서로를 보충하는 관계에 있다. (120면)




24. 이처럼 우리 자신의 고유한 특수성이 보편성과는 별개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편성 가운데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제기된 과제이다. (1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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