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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학문 ㅣ 나남신서 1140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 나남출판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오늘날 진실로 결정적이며 유용한 업적은 항상 전문적 업적입니다. 그러므로 말하자면 일단 눈가리개를 하고서, 어느 고대 필사본의 한 구절을 옳게 판독해 내는 것에 자기 영혼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침잠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아예 학문을 단념하십시오. 이런 능력이 없는 사람은 우리가 학문의 ‘체험’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을 결코 자기 내면에서 경험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문에 문외한인 모든 사람들로부터 조롱당하는 저 기이한 도취, 저 열정, “네가 태어나기까지 수천년이 경과할 수밖에 없었으며”, 네가 그 판독에 성공할지를 “또 다른 수천 년이 침묵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사람은 학문에 대한 소명이 없는 것이니 다른 일을 하십시오. (33면)
2. 그러나 착상은 자기 좋을 때 나타나지 우리가 원하는 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좋은 착상들은 책상에 앉아서 골똘히 생각하며 찾을 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예링이 서술하는 바와 같이- 소파에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라든지 또는 헬름홀츠가 자연과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자신의 경험에 대해 말하는 바와 같이, 완만한 오르막길을 산책하고 있을 때라든지 아니면 그와 비슷한 경우에 나타납니다. 어쨌든 착상은 그것을 기대하고 있지 않을 때 나타난다고 하는 것은 실로 옳은 말입니다. 물론 책상에 앉아 골똘히 생각하면서 대답을 정열적으로 찾지 않는다면,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35, 36면)
3. 존경하는 청중 여러분! 학문영역에서는 순수하게 자신의 주제에 헌신하는 사람만이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문영역에서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위대한 예술가치고 자기 일에, 그리고 오로지 자기 일에만 헌신하는 것 이외에 다른 일을 한 예술가를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38면)
4. 그러나 학문연구에는 또 하나의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곧 학문연구에서 나오는 결과는 ‘알 가치가 있다’는 의미에서 중요하다는 전제가 그것입니다. (5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