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바이처 관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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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과 원시림 사이에서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송영택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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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생애와 사상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천병희 옮김 / 문예출판사 / 199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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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을 기억하라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심재관 옮김 / 좋은생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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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나의 어린 시절- 알베르트 슈바이처
알베르트 슈바이처 지음, 권혁준 옮김 / 정원출판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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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르치스 2008-09-07 17: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의 어린 시절과 열정을 기억하라는 같은 내용입니다. 책 제목만 보고 구입했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루만 체계이론 관련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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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음에서 함으로- 베른하르트 푀크르젠과의 대담, 인지생물학의 거장 움베르또 마뚜라나가 선언하는 인지 패러다임의 새로운 전환, 다알로고스총서 3
베른하르트 푀르크젠 외 지음, 서창현 옮김 / 갈무리 / 200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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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의 나무
움베르토 마투라나.프란시스코 바렐라 지음, 최호영 옮김 / 갈무리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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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국가의 정치이론- 사회과학신서 5
니클라스 루만 지음, 김종길 옮김 / 일신사 / 2001년 5월
12,000원 → 12,000원(0%할인) / 마일리지 360원(3%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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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계이론과 커뮤니케이션- 커뮤니케이션북스 596, 개정판
김성재 지음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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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법과 실질적 정의
한스 벨첼 지음, 박은정 옮김 / 삼영사 / 2001년 5월
평점 :
품절


 

1. 그리스철학의 초기에는 법과 자연, 즉 인간이 제정한 규범(Nomos) 와 자연적 질서(Physis)는 본질적인 통일을 이루고 있었다. 인간 질서는 존재 일체의 법칙 안에 자리하고 있었고, 이 법칙 안에서 그리고 이 법칙으로부터 이해되었던 것이다. (18면)




2. 인간의 질서는 신적 질서를 모방하는 한 효력을 가지는 바, 이 두 질서가 갈라져 나가리라고는 아직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다. (10면)




3. 소피스트들은 ‘정치하는 기술과 덕’을 가르치고자 했다. 이 모든 것은 철학적인 관심의 변화를 초래하기도 했다. 즉, 이제는 존재 일체가 아니라 인간이 사유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그리스철학에서의 소위 ‘우주론적’ 시대는 이제 인간학적 시대로 교체된 것이다. (22면)




4. 윤리적 영역에서보다는 인식론적 영역에서 그(프로타고라스)의 말이 지니는 주관주의적 의미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인식론적으로 보면 그의 말은 초개인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즉, “나에게는 모든 것이 내 눈에 비치는 대로, 또 네게는 네 눈에 비치는 대로 존재하는 까닭에” 진리는 이를 인지하는 주체와 관련해서 상대적이다. (23면)




5. 선과 정의의 척도는, 윤리적․정치적 영역에서 어떠한 객관적 진리도 인정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그때 그때의 다수 의견에 따르게 하고, 그래서 그것을 정당한 것으로, 즉 그때 그때마다 정당한 것으로 합리화시키는 집단적 주관주의로 나타날 뿐이다. 이는 바로 상대주의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정당화시키기 위한 첫 번째의 시도로서, 그 후에도 상당히 자주 반복되었기에 극히 신중한 검토를 요한다. (24면)




6. ... 헤르메스를 통해서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법을 보냈다. 그리고 전문적인 기술이 일부 인간들에게만 선사되었던 것과는 달리, 이 선물이 모두에게 나누어지도록 했다. 왜냐하면 모두가 부끄러워 하는 마음과 법에 참여하지 않는 한, 공동체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25면)




7. 민주주의는 시민의 대다수가 정치문제에 관하여 이성적으로 숙고할 능력이 있고 또 이를 수행한다고 여기는 ‘낙관적’ 인간상을 필연적으로 전제한다. (25면)




8. 법은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부끄러워하는 마음과 법에의 자질을 완성시키는 과제를 안는다. 자연적 질서와 제정규범은 서로 구별되기는 하나 분리되지는 않는다. 인간이 제정한 규범은 자연적 질서의 완성을 뜻한다. (26면)




9. 만약 법이 시민들에 의하여 부단히 바뀌는 것이라면, 어떻게 ‘자연’에 근거한 구속력을 가질 수 있겠는가(히피아스)? 제정법의 상대화는 그리스인들의 의식에 굳게 박혔던 법률의 사회윤리 및 사회교육적 기능에 대한 확신마저 흔들리게 했다. 리코프론(Lykophron)에 의하면 법은 다만 사람들 사이에 권리를 보장할 뿐, 사람들을 선하고 정의롭게 만들 수는 없다. 오늘날 식으로 말하면 제정법은 거의 권리보호의 의미로 낙착되고, 제반 사회교육의 의미는 제정법으로부터 제외된다. (26, 27면)




10. 우리가 자연법적 주장을 펼치자마자 여지없이 곧 부딪히게 되는 심각한 문제는, 인간의 자연에 대한 상은 프로테우스 상과 같아서, 자연법사상가들이 저마다 그가 원하는 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각자는 그가 옳다고 여기고 또 원하는 바를 (암암리에) 인간의 ‘자연개념’에 먼저 집어넣고는, “자연에 합당하여”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근거짓기 위해서 그것들을 다시 끄집어 내는데 불과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인간의 ‘자연’은 개방적이고 다양한 내용으로 채워 넣을 수 있는 개념이어서, 도대체가 모든 것을 그 개념 안에 집어넣고, 다시금 그 개념을 논거짓기 위해 그것으로부터 꺼낼 수 있게 만든다. 이는 자연법의 초기에, 예컨대 만인평등설이 이와 반대되는 만인불평등설과 똑같은 추론방법으로 인간의 ‘자연’에서부터 도출됐다는 데서 지적된다. (29면)




11. 약간 약한 어조이기는 하지만 트라시마코스(Trasymachos)도 플라톤의 대화편에서, 이와 비슷한 견해를 토로한다. 정의는 오로지 강자에게 유용한 것이고, 국가 안에서 지배세력의 이익에 종사할 뿐이라는 것이다. (30면)




12. 소크라데스는 소피스트철학의 극단적인 주관주의 내지 상대주의에 대항하여 의무를 부과하는 새로운 질서를 위한 기초를 세우고자 했다. 이를 위해 소크라테스는 내면적으로는 소피스트철학과 더불어 시작된 주관성을 심화시키고, 외면적으로는 모든 회의로부터 벗어난 객관적 진리영역에 파고들었다. (32면)




13. 영혼은 위험에 처해있다. 그러므로 그것을 구하는 것이 인간의 필생의 과제이다. (32면)




14. 소크라테스에게는 이론이성과 실천이성 사이의 구별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33면)




15. 모든 윤리적 행함의 근본은 자기절제, 즉 정념에 대한 이성의 지배, 내적 형평과 영혼의 조화를 이루게 해 주는 이성의 지배에 있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정념을 다스리는 데 성공한 사람만이 자유로운 사람이며, 그와 반대로 스스로를 다스릴 수 없는 사람은 자기 욕정의 노예일 뿐, 결코 자유인이 아니다. (33면)




16. 자기절제는 아직 자기결정이나 자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율이 본질상 실질윤리적 명령 쪽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는 데 반하여, 자기절제는 단지 충동세계로 향하게 하는 것일 뿐이다. (33, 34면)




17. 소피스트들의 상대주의와 주관주의는 플라톤에게도 깊은 불안을 안겨 주었다. 그러므로 소크라테스와 함께 그는 단지 주관적 주장의 대상이 아닌, 보편 타당한 지식의 대상인 - 감각 세계의 변화와 불확실성이 배격된 - 영원히 불변하는 사유 내용을 탐색했다. 이 탐색의 결과 그는 이데아론의 창시자가 되었다. (37면)




18. 지각되는 대상들이 아무리 자주 변하고 그들의 특성들 또한 그렇다할지라도, 그들이 지니고 있는 특성 자체는 모든 변화로부터 벗어나 있어야 한다. 이 불변하는 ‘선험적’ 내용을 플라톤은 ‘이데아’라고 불렀다. (38면)




19. 이 이데아들이 오류 불가능한 완벽한 지식인데 비해서, 감각 세계의 가변적 사물들은 불확실하고 오류를 범할 수 있는 주장의 대상일 뿐이다. (38면)




20. 첫째, 이데아는 개별적인 경험에 매임이 없이 타당하므로, 가장 엄격한 보편타당한 인식대상이다. 둘째, 이데아의 내용은 절대적 확실성을 지닌다. 셋째, 이데아는 가변적인 의사결정이 아닌 영원한 이성진리이다. (38면)




21. 이는 마치 수의 비율처럼 신의 의지 이전에 이미 질서지워졌으므로 신조차도 이에 매여 있다. 플라톤은 이로써 라이프니츠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그를 넘어서까지 이념적 자연법론 전체의 기초가 되는 기본명제를 설정했다.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는 기독교의 관점에서 이에 반대되는 명제, 즉 영원한 이성진리가 아니라 신의 절대적으로 자유롭고 불가해한 사랑의 선택이 이 세계에서 선과 악이라는 윤리적 가치를 정한다는 명제를 내세웠다. (39면)




22. 그러나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이념적 자연법의 기본명제를 근거짓는데 쓰였을 뿐만 아니라 극단적으로 권위적인 국가론을 뒷받침해 주기도 했다. 왜냐하면 이데아의 직관은 이 직관이 가능한 자로 하여금 존재의 원초형에 대한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정확한 인식을 보장해 주며, 선과 정의 그 자체에 대해서도 오류의 여지가 없는 지식을 제공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데아를 볼 수 있는 사람은 특별히 은총을 받은, 신중하게 선택된, 수학과 변론술 교육을 받은 소수에 불과하며, 이에 비해 대다수의 사람들은 부정확하고 틀리기 쉬운 지각으로부터 생기는 주장으로 만족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39면)




23. 지배자도 그의 피지배자들에게 그들 자신에게 유익한 것을 하도록 강제할 수 있다. ... 여기서 저 숙명적인 주장, 즉 ‘선으로의 강제’는 윤리적으로 선하며 허용된다는 주장이 처음으로 철학적으로 근거지워졌다. ... 오직 절대적인 진리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취할 수 있는 태연자약하고 오만한 태도로 개인적인 자유의 가치를 간과했다. (41면)




24. 결정적인 의미는 여기서 선의 이데아에 대한 지식에 있다. 플라톤에 의하면 선의 이데아는 최고의 지식이며 ... “우리가 인식하는 사물에 진리성을 부여하고 인식의 주체에게 인식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은 바로 선의 이데아이다.” (42, 43면)




25. 사물에 대한 선험적 인식의 의미의 확실한 지식이 보장되는 경우에만, 플라톤의 국가론의 광범위한 결론은 받아들여질 수 있고 또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43면)




26. 정의란 계층 간의 올바른 관계로서, 이성이 지배하여 낮은 계층이 이성의 지침에 따름으로써 각 계층이 그의 것을 행하는 것이다. ... 프로타고라스와는 아주 대조적으로, 플라톤에 있어서 국가는 정치적인 관계에 관해서도 엄격하게 분업원리에 입각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세 가지의 영혼의 부분에 상응하여 세 종류의 시민층이 있게 된다. 생산자, 군인, 지배자 게층이 그것이다. 이 세 계층은 모두 각자가 오직 그의 것만 행해야 한다는 정의법칙의 지배 하에 놓인다. (44면)




27. “어떤 인간도 만약 모든 인간사에 대한 무제한적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놓이게 되면, 횡포와 불의에 빠지게 됨을 막을 수 없다.” (45면)




28. 플라톤의 이데아론은 선험적 법이론의 기초를 놓았다. 그러나 그의 이데아론은 법과 인간의 본성 사이의 관계를 합당하게 근거지우지는 못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제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이데아와 자연을 연결시키는 목적론적 형이상학으로 변형시킴으로써 이 과제를 완수했다. (47면)




29. 아리스토텔레스에 있어서 이데아와 현실의 관계를 위한 출발점은 존재범주와 존재하는 것 사이의 관계였다. 이데아는 여기서 대상을 초월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물에 내재한다. (48면)




30. 목적은 궁극적으로 생성의 작용인이기도 하다. 모든 생성과정은 인과적, 기계적인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목적론적 과정을 뜻한다. 이 목적은 생성과정에서 실현되는 대상의 ‘자연’이다. 그러므로 이데아(본질), 형식, 작용인, 목적 그리고 ‘자연’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 안에서 통일을 이루고 있다. (48면)




31. 인간 행위에서 목표가 정신적으로 앞서게 되어 현실의 육체운동을 지휘하고 조정하듯이, 일체의 생성은 목적에 의해 정해져 그것에 따라 움직이고 조정되는 거대한 한 과정이다. (49면)




32. 모든 대상은 존재의 각 단계에서 그의 고유한 특수한 목적(Entelechie)을 지닌다. (49면)




33. 이데아, 목적, 그리고 자연은 서로 얽혀서 모두 일체가 되고 동일하게 된다. ‘자연’은 한 대상의 완성된 실현 모습인데 ... 한 대상이 그 생성과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드러내는 속성을 우리는 자연이라고 부른다. (49면)




34. 사람은 결국 각자 자기가 원하는 것, 혹은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자연에 합당한’ 거으로 설명하고, 그리고 나서 이 ‘자연에 합당함’으로부터 다시 선을 도출하는 식의 순환론에 빠지게 된다. (50면)




35. 인간 공동체 안에서 최고의 가치는 자급자족(Autarkie)이다. 이것은 오로지 국가에서만 가능하다. 여기서 국가는 크고 작은 유대관계로 나타나는 모든 결사체들의 목적이자 이윽고는 개인들의 목적이 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므로 인간은 본성상 정치적인 동물이다. 정치적 공동체로 결합하는 일이 인간실존의 목적이자 목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51면)




36. “정치적인 공동체에서 유효한 법은 자연적인 것과 법률적인 것으로 나뉜다. 자연적인 것은 어디서나 똑같은 힘을 발휘하고, 그것이 인정되고 인정되지 않는지에 구애받지 않는다. 법률적인 것은 그 내용이 애초에 이런 것일 수도 있고 저런 것일 수도 있는데, 실질적인 확정을 거쳐야 비로소 일정하게 정해지는 것이다.” (53면)




37. 오로지 신에 있어서만 변화가 없다. 반면 지상에서는 ‘자연적인 것’의 영역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변화 속에 놓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에 의해 있는 것과 자연에 의해 있는 것이 아닌 것 사이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 (53면)




38. 최상의 헌법이 모든 사람들에게 실제로 최상의 것이 되지는 않는다는 점을 곧 알아 차렸다. 이는 오직 최상의 사람들에게만 최상의 것이 될 뿐이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최상에 참여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가는 전적으로 최상인 것 이외에도 대부분의 국가와 사람들 수준에 맞는 차선의 것도 파악해야만 한다. ... 보통 사람들이 영위할 수 있는 생활에 따라 도모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중간층 그리고 절제된 지배형태를 수반한 차선의 헌법을 구상한다. (54, 55면)




39. 그(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의는 다른 사람에게 관계되는 덕이다. 그러므로 정의는 그것을 사람들이 그 자신을 위해서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서 행하기 때문에 가장 완벽한 덕이다. 이러듯 새롭게 발견된 정의의 이타주의적 내용으로 인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저녁 하늘과 새벽 하늘의 별들도 그 만큼 빛나지는 않는다는 최고의 찬사를 정의에 바치는 것이다. 이런 정의의 내용을 아리스토텔레스는 타인과의 평등을 지키는 것이라 설명한다. 즉, 그에 의하면 모든 정의로운 것은 동등한 것이다. 여기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마찬가지로 평등을 두 가지로 구분한다. 즉, 절대적(숫자적 혹은 산수적) 평등과 비례적(기하학적) 평등이다. (55, 56면)




40. 비례성의 요소는 이렇듯 선험적 타당성을 띠는 정의개념에 객관적인 한계를 설정해 주기는 하나, 정당한 척도와 관련하여 그때 그때 개별적인 확정을 가능케하는 연관점을 정해 주지는 못하는 것이다. (56면)




41. 선험적인 법구조와 관련한 두 번째의 더 큰 성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귀책론(Zurechnungslehre)에서 나타난다. ... 귀책의 가장 일반적인 원리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행위지배’이다. 행위가 우리들의 지배 하에 있거나, 우리가 행위의 주인이기에, 달리 행동할 수 있었을 때 그 행위는 비로소 귀책적이다. 귀책적인 행위만이 윤리적인 평가 -평가와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57면)




42. 귀책적인 행위를 아리스토텔레스는 그리스적인 기원을 가진 ‘헤쿠시온(Hekusion)' 즉 자의적인 것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에 따라서 ’아쿠시온(Akusion)' 즉 타의적인 것은 귀책적일 수 없다. (57면)




43. 숙고 없이 기도한 행위는 충동적인 행위이거나 고의적이 아닌 행위이다. ... 즉, 행위자는 의식적이기는 하되 숙고함이 없이 행위한다는 뜻이다. 그럼으로써 행위자는 불법을 행하기는 하지만 아직 불의로운 자는 아니다. 숙고하여 불법을 행한 자만이 불의로운 자이다. (58면)




44. 행위자가 착오로 말미암아 행동한다면, 즉 착오가 없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면, 그의 행위는 귀책적이지 못하다는 것이다. (58면)




45. 귀책론의 전개에서 더 큰 성과는 착오의 대상에 대한 구별, 즉 금지되어 있음에 대한 착오와 구체적 행위 정황에 대한 착오 사이의 구별이었다. (58면)




46. 이미 아리스토텔레스는 행위지배라는 귀책의 근본원리, 그리고 행위의 목적적 구조와 착오의 금지문제에 관한 의미있는 통찰을 우리에게 전수해 주었다. (59면)




47. 목적론적 결정론은 스토아 학파의 세계상에 내제해 있다. 세계법칙에 대해 인간은 전적으로 복종하는 것만이 허락될 뿐이다. 운명은 순응하는 자는 안내하지만, 불응하는 자는 끌고 간다. .... 보편적 결정론과 개인의 자유의 일치가능성 문제가 비로소 처음으로 제기되었다. (63, 64면)




48. 세계법칙은 우리 인간의 자연적 본성의 법칙, 따라서 더 좁은 의미에서의 자연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우리 자신의 본성은 전체 자연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삶의 최고목표는 자연에 합당한 삶을 사는 데에 있다. 즉, 우리 자신의 본성에, 그리고 전체 자연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일반적인 법률이 금지하는 것을 행하지 않는 것이다. (64면)




49.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이르러 비로소 공동체는 자기보존에 그치지 않고, 자식과 그 밖의 친지들을 포함하며, 전 인류를 포함시킬 때까지 점점 더 범위를 넓혀간다. “인간에게 있어서 상호간의 존중은 자연적인 것이다. 인간은 이미 인간인 까닭에 다른 인간에 대해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다.” 사회성 이론은 스토아 학파의 특징인 인도주의 이념의 원천이기도 하다. (66면)




50. 스토아철학은 고대에서 일찍이 유래를 찾기 힘들 정도로 주관적, 윤리적인 행위가치를 심화시킨 공적을 남겼다. 스토아철학은 그 행위가치를 소크라테스적인 자기절제나 자급자족 - 자족과 외적인 성과로부터의 독립 -에서 뿐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의 법정에 해당하는 양심의 책임에 연결시켰던 것이다. ... “나는 아무 것도 남의 의견 때문에 행하려 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내 양심 때문에 행하고자 한다. 자기의 양심을 보존하기 위해 자기에 대한 좋은 평판을 포기하는 자야말로 덕을 가장 높이 평가하는 자라는 것이다.” (세네카) (72면)




51. 이성과 비교할 때 의지가 강하게 후퇴한다는 것으로서 바로 그리스적인 ‘주지주의’라고 불린다. (76면)




52. 모든 진정한 결정에는 이성적인 숙고를 통해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어떤 것이 언제나 들어 있다. 그것은 바로 결정의 순간에 이성과 완전히 일치할 수 없는 의지가 실행하는 모험행위이다. 주지주의의 특징은 이 결정의 모험을 무시하고 결정을 전적으로 이성적인 숙고의 기능이라고 주장하거나, 아니면 완전한 합리적인 일치가 없는 결정을 맹목적인 충동에 전가시켜 동물적인 범주로 몰아 부쳐 버린다는 것이다. 이 두 경우에 의지는 송두리째 ‘이성’으로 해체되거나 아니면 반대로 ‘충동’으로 해체되어 버림으로써, 결정의 상황에서 의지가 담당하는 특별한 기능은 잘못 인식되고 만다. (76, 77면)




53. 그리스어에서 자발적인 의지는 숙고와 사유의 기능이거나, 아니면 맹목적인 충동이다. 우리가 의지라고 부르는 것을 그리스인들은 때로는 격정으로, 때로는 인식으로 파악한 것이다. (77면)




54. 이런 ‘주지주의’는 그리스의 자연법에 충실하게 반영되었다. 법은 영원한 이성진리의 기능이거나 아니면 충동적인 실력의 관철을 뜻한다. 이 두 경우 의지행위의 특별한 속성은 모두 놓치고 말게 된다. 이념적인 자연법에서 의지는 단지 이성에 의해 오래 전부터 밑그림이 그려진 이념적인 가능성들의 집행자일 뿐이다. 또한 충동적 자연법에서 의지는 온통 맹목적인 충동가운데 사라질 뿐이다. (77면)




55. “세계는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이렇게 찬란한 작품이 새로운 의지의 결정으로 시작되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은 의지를 가지지 않는다고 사람들이 - 예컨대 마이어(H. Mayer) -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플라톤에게서도 신은 단지 세계를, 그의 의지에 앞서 정돈된 이데아에 따라서 재현시킨 세계건축가일 뿐이다(티마이오스). (77, 78면)




56. 바울의 이러한 신관에 따른 결론이 자연법에 적용되는 것은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그렇지만 중세 전성기에 둔스 스코투스가 바울의 영향 하에서 이념적 그리스적 자연법에 기독교적, 주의주의적 대답을 조응시키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야 했다. (80면)




57. 요한복음의 머리말이 구약의 창조신화를 본 따서, 세계를 있게 한 신의 (이성이 아니라) 말씀인 로고스에 대해 언급했을 때에, 이방 기독교도들은 로고스를 결국은 그리스적인 의미에서 신적인 이성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리스의 이념세계는 조용히 저절로 복음 속에 침투해 들어가게 되었던 것이다. (80면)




58. 주의주의의 경향은 로고스이념도 포착했다. 기독교로 개종한 신플라톤학자 마리우스 빅토리누스에 따르면 로고스는 하나님의 뜻이며, 신적인 존재는 하나님의 자신에 대한 뜻 가운데 있으며, 그리스도는 다름아닌 아버지의 뜻을 의미한다. (81면)




59. 그(아우구스티누스)는 신플라톤학파로부터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받아들인다. 이데아는 사물의 확고한 제일 형식 내지 개념으로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다. 신은 이데아에 따라서 세계를 창조했다. (81면)




60. 이런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 가운데 주목할 만한 것은, 이데아를 신의 관념에 속한 것으로 만들고 그것의 영원성과 불변성을 스스로로부터 근거짓지 않고 신의 정신에 귀속하는 것으로 근거짓는다는 점이다. 그는 다른 대목에서, 신의 인식은 사물의 본질존재에 달려있지 않고, 사물의 본질존재가 신의 인식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 사상은 신의 생산적인 지성에 대한 둔스 스코투스의 이론을 상기시키는 것으로서, 플라톤의 이데아론에다가 그것에 낯선 ‘주의주의적인’ 요소를 불어넣은 것이다. (82면)




61. 그(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이미 인식행위가 의지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기 때문에, 주의집중, 성찰, 판단, 추론 등의 작업 과정은 ‘알기를 원한다’에 따른 것이므로, 더 높은 기준에서 보면 실천적 행위의 원리는 의지이다. ... 의지는 이것들에 동의하거나 거절할 힘을 갖는다. (82, 83면)




62. 바울에서와 마찬가지로 아우구스티누스에서도 신의 의지가 자기 밖에 다른 근거를 두지 않음에 대한 완벽한 표현이다. 신의 결단은 그에 선행하는 그 어떤 이념가치나, 공적, 죄에 결부되지 않은 채 내려진다. 플라톤의 이데아론도 신의 의지의 이러한 자기근거에 이르러서는 좌초하고 만다. (84면)




63. 신의 창조질서가 신플라톤주의의 의미에서의 이성인가? 아니면 신의 의지의 작품인가? 자연법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의에는 여전히 두 가지 가능성, 즉 신의 이성 혹은 신의 의지가 평화롭게 병립한다. (86면)




64. 아우구스티누스의 자연법론에는 두 가능성, 즉 주지주의와 주의주의의 가능성이 아직 균형있게 병립한다 그러나 그의 신학체계는 벌써 주의주의의 외피를 아주 두툼하게 걸치게 되어, 자연법도 이를 수용해야만 하게 되었다. 이성과 의지의 순위다툼은 이미 스콜라학파 초기부터 치열했지만, 자연법 영역에서 이 투쟁은 스콜라 전성기의 거대한 체계 속에서 비로소 해결되었다. 그 속에서 자연법의 가장 심오한 문제점이 노출되었으며, 그 후 자연법론의 전 역사는 이 투쟁에 따라서 결정되었던 것이다. (87면)




65. 아퀴나스: 첫째, 이성이 다시 의지보다 명백한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바울의 주의주의에 대항해서 그리스적인 주지주의가 관철되는 것이다. 둘째,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인 자연개념을 통해서 법이념이 인간의 자연(본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게 된다. (88면)




66.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뒤를 이어 세계법칙을 신적인 세계정부의 법률로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신은 신적인 이성 안에 있는 이념들(모든 피조물의 원형)에 따라 세계의 움직임과 행위를 지배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서처럼 영구법은 신의 창조질서의 법칙이다. (89면)




67. 토마스 아퀴나스 역시 근대적인 의식을 지배하는 현실과 가치, 존재와 당위의 구분에 대해서는 아직 알지 못했다. 이것들은 근대의 몰가치적 자연과학의 산물이었다. (90면)




68. 실정법은 이 두 방법 중의 어느 한 가지로 자연법으로부터 획득된 한에서만 법의 효력을 가지며, 신민들의 양심을 구속한다. (91면)




69. 모든 활동은 선의 관점 하에 놓인 목적을 위해 이루어진다. 모든 감성적인 노력과 모든 의식적인 의도는 항상 선한 것을 향해 간다. ... 이에 따르면 의지는 반드시 이성에 의해 그에게 드러나는 선에 복종해야 한다. (92면)




70. 그러나 윤리의 주관적 원리를 밝힘에 있어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위대한 업적은 이단자와 노예문제에 대한 그의 입장 때문에 막대한 손상을 입게 된다. 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에게만 면책가능한 양심의 착오를 인정하고, 이단자와 배교자에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세례의 은혜를 입은 인간은 신앙의 문제에서 더 이상 면책가능한 착오를 일으킬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이방인과 유대인에게는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이도록 강요할 수 없다고 보는 반면에, 이단자와 배교자에 대해서는 그들이 신앙을 받아들일 때에 약속했던 것을 이행하도록 강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99면)




71. “누군가가 강요당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가 어떤 것에, 즉 선한 것에 아니면 악한 것에 강요되는지가 중요하다.” 이 말은 플라톤처럼, 절대적인 진리를 소유하고 있다고 믿는 자가 개인들의 자유와 주관적 도덕성을 당당히 무시할 수 있음을 표현할 것으로 역사적으로 이단자 박해를 정당화해 주는데 기여했다. (99, 100면)




72. 다른 한편으로 그(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노예설을 수용한다. 즉, 선천적인 오성의 결함 때문에 타인에 봉사하도록 운명지워진, 그러므로 주인의 손에서만 생명이 있는 도구인 인간들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100면)




73. 이러한 주장들은, 신성모독을 막고 전통 신앙인에 대한 나쁜 영향이나 박해를 막기 위해서 불신자에 대한 전쟁을 허용해야 한다는 이론과 함께, 나중에 식민지전쟁을 정당화해 주는 중요한 논거들을 제공했다. ... 특히 토마스 아퀴나스의 거대한 대항자인 둔스 스코투스가 그의 뒤에 바싹 붙어 노예제도를 자연법에 위배되는 것으로 거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101면)




74. 세속적인 자연법은 비로소 신앙의 자유(관용)와 인간의 존엄(인도주의) 사상을 완전히 관철시켰다. (101면)




75.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학 체계에서 그리스의 주지주의는 중세 기독교 사유 안에서 큰 승리를 만끽했다. .... 행복에 관해 정의하면서도 토마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전통과 단절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권위를 따랐다. (102면)




76. 스코트랜드 출신으로 프란체스코 수도회의 수도사인 요하네스 둔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대항하여 아우구스티누스 전통을 복구함으로써, 이성의 우위에 반대하여 사랑의 이념을 그의 철학적․신학적 사유의 중심에 놓는다. 아싸시 출신의 성자 프란체스코의 제자인 둔스는 기독교적인 사랑의 철학자가 되었다. 그의 자연법도 오로지 이 사랑으로부터만 이해될 수 있다. (102면)




77. “의지는 이성적인 인식을 근거로 해서 행동한다. 따라서 그런 한에서 이성의 통찰이 의지에 앞서 있다. ... 그러나 이성의 작용은 의지의 필요조건일 뿐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결국 왜 의지가 한 대상을 원하는지, 다시 말해 그것을 사랑하며 연연하는지는 이성의 통찰에 의해 합리적으로 근거지워 질 수 없다.” (104면)




78. 사랑의 행위는 이성으로부터 유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105면)




79. 개별적인 것에 대한 보편적인 것의 이러한 우위는 주지주의의 특성에 속하며 ... (105면)




80. 보편적인 것보다 개별적인 것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은 ‘개별화 원리’를 저급하고 극복되어야만 하는 무상한 구성요소로 전락시키는 데서 가장 강하게 표현되고 있다. (106면)




81. 둔스는 사랑을 독자적이며 개념화 능력으로서의 오성에 의해서도 전부 이해될 수 없는 세계로 가져감으로써, 개별성도 아주 다른 의미를 얻게 된다. 사랑은 결코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 개인을 향한다. 사랑에 대한 의지가 좀더 고귀한 영혼의 능력인 곳에서는, 개별성은 보편적인 것보다 더 높은 존재형태일 수 밖에 없다. 신이 세계를 창조한 것은 영원한 이성의 형상들을 현실로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와 함께 사랑할 수 있는 존재들을 가지기 위해서이다. (106면)




82. 위와 같은 이론에는 플라톤에 의해 시작된 사유를 완전히 전도시키는 요소가 들어있다. 이제부터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개별적인 것이 최고의 존재형태가 된다. 이렇게 근대의 개인주의는 둔스 스코투스 때부터 그 승리의 행진을 시작하여 근대의 의식세계로 넘어온다. (106, 107면)




83. 토마스도 가르쳤듯이, 의지가 이성에 종속된 것이라면 자유는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107면)




84. 이는 우리가, 지성이 아니라 의지에 의한 사랑의 힘으로서 최고의 행복에 참여하게 되는 바와 같다. (107면)




85. 둔스는 이와 같은 견해(플라톤의 이데아론)와 결별하고, 신의 절대적인 권력에 대한 이론을 통해서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의 주의주의적인 신관을 자연법론에 도입한다. 절대적인 권력과 합법적인 권력은 더 높은 법칙에 예속된 자에 이르러서는 붕괴되고 만다. 그러나 신 위에 더 높은 법칙은 없으며, 그의 의지가 비로소 모든 법칙을 만든다. 그러므로 그의 행위는 그가 행하는 대로 언제나 반드시 올바른 것이 된다. (109면)




86. 힘과 정의는 신에게서 일치한다. 신의 정의는 신의 절대적인 권력과 같은 크기이다. 이로써 둔스는 로마서의 사상을 다시 받아들인다. 즉, 신은 그가 원하는 대로 늘 의롭게 행한다. 그는 선행하는 이념적인 질서에 구속되지 않으며, 모든 법률들은 신의 그때 그때의 의지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신적인 세계정부의 규칙들은 신의 지혜가 아니라 신의 의지에 의해 결정된다.” 바울처럼 그는 신의 행위의 합법성에 대한 모든 의문을 부적절한 것으로 거부한다. (109면)




87. “지금 바로 이것을 원하고, 그것을 창조하는 신의 의지는 곧 제일의 원인이며, 이에 대해 그 밖의 다른 원인을 찾을 수 없다.” (110면)




88. “올바른 행위의 일반법칙은 신의 의지에 의해 확정된 것이지, 신의 의지행위에 앞서는 신의 이성에 의해 확정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법칙들에서는 개념적 필연성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112면)




89. “신 이외에 다른 것은 단지 신이 그것을 그렇게 원하기 때문에 좋은 것이지, 반대로 그것이 좋기 때문에 신이 그것을 시인하는 것은 아니다.” (112면)




90. 그의 의지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그 자신의 본질을 사랑해야 한다. 따라서 신의 본질인 선함은 그의 의지에도 선행한다. (113면)




91. 그 밖의 모든 것들, 신 이외의 모든 것들은 스스로 존립하는 가치를 얻지 못하고, 다만 신이 그 대상을 인정하는 정도로만 얻는다. (113면)




92. 그가 사물들을 인정하는 정도에 따라서 그것들은 좋은 것이며, 그 반대는 아니다. (113면)




93. 그 밖의 모든 행위규범들은 신의 의지의 우연적인 설정이다. 그가 다르게 행동할 수 있듯이, 그는 다른 법률을 올바른 것으로 제정할 수 있다. 신의 의지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는 법률은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그가 제정하자마자 그 법률은 올바른 것이 된다. (114면)




94. 그러므로 둔스는 이제 더 이상 영구법을 알지 못한다. 영원한 것은 법률이 아니라, 입법자이다. (115면)




95. 신 이외의 모든 사물들의 가치는 오로지 신의 의지결정에 기인하는 것이지, 반대로 신의 의지가 선행하는 이념적인 가치 자체에 구속되는 것은 아니다. (117면)




96. 주의주의적 자연법이 실증주의를 향해 가는 길을 성공적으로 계승한 사람은 둔스보다 젊은 수도사로서, 영국 프란체스카 수도회 소속인 윌리암 오캄(약 1290-1349)이었다. ... 그는 중세 말기에 가장 영향력을 떨친 철학 추세인 소위 ‘유명론(Nominalismus)'의 창시자가 되었는데, 이는 자연법의 발전사에 있어서도 가장 큰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 후 전개될 자연법론은 전부 ‘유명론’과 ‘이념실재론’의 대립 하에 놓이게 된다. (123면)




97. 오캄은 주의주의의 근본사상을 둔스로부터 이어 받는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의지의 절대적 비결정성(Indeterminiertheit)을 핵심으로 하는 의지론이며, 더 나아가서 신의 절대적 권력과 합법적 권력을 구별하는 사상이다. (123면)




98. 그(오캄)은 둔스보다도 더 냉혹하게 신의 의지를 이미 주어진 이성진리에서 포착하려는 이성의 무모함을 거부한다. 이 점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 그는 다음과 같은 아주 역설적이고도 혼란스러운 상상을 끌어들이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즉, 신은 돌이나, 나무 조각, 아니면 당나귀로도 세상에 올 수 있었을 것이며, 이 또한 우리는 믿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신앙의 명제는 합리적으로 증명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때때로 앎과 믿음은 그에게서 예리하게 분리되어 나타난다. 이 예리함을 실제로 거의 이중적인 진리론을 초래한다. 즉, 철학적으로 거짓인 것이 신학적으로는 참일 수 있다. (124면)




99. 그래서 특히 토마스의 기초를 이루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이론, 즉 최고의 선을 향한 자연적 목적지향성에 대한 이론은 믿음의 명제이긴 하지만, 학문적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 된다. “목적에 대한 물음은 자연현상에서 설 자리가 없다. 왜냐하면 어떤 목적으로 불이 생기는가 하는 물음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이로써 나중에 - 이미 유명론 안에서 - 자연에 관한 인과론적 연구가 생겨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다. 이를 위해 오캄은 벌써 완전한 연구의 자유를 들고 나왔다. (124면)




100. 그러나 자연법에 있어서는, 다의적인 자연개념의 도움을 받아 형식적인 법원리에 실질적인 내용들을 채워 넣을 수 있는 길이 차단되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여기서도 오캄은 어쨌든 둔스의 작업을 계속 이어갈 뿐이다. 그러나 도덕적인 명령은 둔스보다는 오캄에게서 더 강하게 신의 절대권력의 지배 하에 놓이면서, 이성의 진리가 아닌 신의 의지에만 구속되는 것으로 드러난다. 신은 절도와 간통행위도 명령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럴 때 이 행위드은 선한 공적이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반대로 신의 명령을 거역하여 이집트인의 재산을 가져가지 않았던 유대인들도 죄를 진 것과 같게 되었을 것이다. (124, 125면)




101. 이 도덕실증주의는 객관적 실질적 가치관계를 더 이상 알지 못하고, 모든 가치우열을 상위에 놓인 권력의 의지결정으로부터 도출해 낸다. 윤리적 개념들은 오로지 상위에 놓인 의지에 의해 확정된 의무만을 ‘내포한다’. 명령이나 금지가 없어지면 행위는 곧 모든 윤리적인 선함이나 상스러움을 상실하게 된다. (127면)




102. 오캄은 개념을 나중에 홉스처럼 많은 개물들을 단순히 요약하는 명칭(nomina)으로 보지 않고 - 그런 한에서는 오캄이 아니라 홉스가 비로소 엄격한 의미의 유명론자였다 - 개념들 자체에다가 보편성이라는 특징을 인정했지만, 그에 의하면 사물 자체에 내재하는 어떤 것도 더 이상 보편개념에 상응하지 않는다. (127면)




103. 그러나 이 비실정적 도덕론의 가장 중요한 대상은 객관적이고 실질윤리적이 규범 내용에 관한 것이 아니라, 주관적, 도덕적 행동 양식, 따라서 윤리적 행위의 심정적 측면에 관한 것이다. (128면)




104. 주의주의에서 법실증주의로 (130면)




105. 자연법과 성서가 이렇게 동일시됨으로써 자연법은 지금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정도의 충만한 내용과 상당한 명확성을 얻었지만, 그 댓가는 바로 자연법이 자연법이기를 중단하고 마는 것이었다. 즉, 주의주의는 바로 자연법이 도덕실증주의 내지 법실증주의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우선은 성서적 계시로서의 실증주의에 이르게 되며, 오캄은 이 계시의 권위에 아주 중요한 영감설에 의존하여 확립했다. (131면)




106. 이성과 의지 사이에, 또한 이념적 질서와 구체적 결정 사이에서의 자연법의 이율배반은 중세 전성기의 거대한 체계 안에서 한편으로는 토마스에 의해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둔스 스코투스와 윌리암 오캄에 의해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플라톤의 이념적 자연법에 대적하는 주의주의의 진영이 마침내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는 바로 이성과 보편자의 우위에 대항하여 의지와 개별자의 우위가 등장함을 의미했다. (133면)




107. 서로 싸우는 당사자들로 하여금 반대편에 대해 점점 더 극단적인 입장을 취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자연법의 세속화과정에서 촉매의 역할을 했다. 좀더 새로운 ‘세속적’ 자연법의 모습은, 토마스주의와 유명론 사이의 논쟁을 통해 스콜라 자연법이 반대쪽 극단으로 계속 발전해감으로써 저절로 대두하게 되었다. (133면)




108. 사물의 본성으로부터 의무가 생긴다는 생각은 그(루드비히 몰리나: 스페인 후기 스콜라철학의 가치객관주의)에 의하면 바로 자연법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141면)




109. 그러나 이 새로운 자연법 형성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던 것은 유명론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두 정신 세력이었다. 그 하나는 종교개혁이고, 다른 하나는 근대 자연과학이다. 유명론에 따른 아리스토텔레스적, 토마스주의적 세계상의 몰락은 두 영역, 즉 신과 세계, 초자연적인 질서와 자연적인 질서, 신앙과 지식을 점점 더 냉혹하게 분리해 나갔다. (147면)




110. 그래서 지상의 왕국에도 자연법 혹은 ‘공도의 신법’이 있는데, 이것은 신이 모든 인간들, 심지어 이방인, 유대인 그리고 터어키인들의 마음 속에까지 쓴 것이다. 따라서 루터는 타락한 자연에 대한 그의 이론에도 불구하고 순수한 자연법을 터득하고 있다. 이 자연법의 원천은 양심, 내적인 소리, 혹은 ‘자연적 이성의 명령’이다. (150면)




111. 루터주의 안에서 자연법론을 발전시키는 데는 루터 자신보다는 멜랑히톤이 훨씬 더 강하게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멜랑히톤은 루터와는 달리 다시 아리스토텔레스 자연법을 계승했다. 그래서 루터 정통파에서는 17세기 말까지 토마스와 스페인 후기 스콜라철학의 지도자들이 자연법의 대가들로 인정되었다. 푸펜도르프는 루터 정통파의 이 아리스토텔레스적, 토마스주의적 스콜라철학에 반대하여 루터 자신을 불러야 했다. (153, 154면)




112. 종교개혁보다 훨씬 더 강하게 근대 자연법 형성에 기여한 것은 새로 전개되는 엄밀한 자연과학과 그 방법론이었다. 특히 갈릴레이의 자연과학적 연구방식은 자연법론을 포함한 그 당시 학문 세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와 토마스의 관조적, 목적론적 세계관과 새로운 수학적, 인과율적 자연연구의 대립은, 그 어떤 자연과학적 발견에서보다도 갈릴레이의 낙하법칙 발견에서 가장 명백하게 나타난다. (155면)




113. 그러나 사건의 목적성이 말소되면, 신과 세계의 직접적인 결합은 끊어지게 된다. 세계의 질서는 이제 자체적으로, 세계 내재적으로 설명되어야 한다. 즉, 인과율적, 수학적 그리고 기하학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자연법의 형태로 설명되어야 한다. (157면)




114. 법률의 선험성을 법률의 내재성으로 대치하는 것이 근대 자연법론의 공통된 특징이다. 이제는 영구법 대신에 이성법이, 계시된 신의 의지 대신에 국가의지가 등장한다. 첫 번째 길은 그로티우스와 라이프니츠로, 두 번째 길은 홉스와 루소로 인도된다. (157면)




115. 자연법의 세속화도 우선은 신의 상대화 이외의 다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158면)




116. 영국철학은 중세의 유명론과 단절함이 없이, 베이컨과 홉스를 거쳐 로크와 흄으로 이어진다. (161면)




117. 홉스가 비로소 오캄의 개념론을 논리적인 방식으로 유명론으로 변질시켰다. 오캄이 아니라 홉스가 진정 ‘유명론자’였던 것이다. (161면)




118.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베이컨, 홉스, 로크, 그로티우스, 푸펜도르프 등 근대철학을 이끈 위대한 사상가들은 모두 스콜라철학자를 스승으로 삼아 교육을 받았다. 그들 중 일부가 나중에 스콜라 교단에 극렬하게 반대하고 새로운 시대의 사유의 자극을 받기는 했지만, 어쨌든 그들은 추측된 것보다는 실제로 훨씬 더 광범위하게 스콜라의 이념들과 연관성을 가졌으며, 그래서 대체로 이 연관속에서만 이해될 수 있다. (161면)




119. 실제로 근대 자연법론도 자기 나름대로 서양 형이상학의 거대한 주제들을 새로운 착상과 함께 계속 이어 나간다. 자연법의 역사는 모순된 이론들이 불연속적으로 이어지는 형태가 아니라, 새로이 제기되고 또 새로이 극복되어야 하는 구체적인 과제의 연속선상에서 진보했다. (162면)




120. 신학자들 대신에 이제 정치철학자와 법철학자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162면)




121. 신학자들은 광범위하게 진행된 자연법의 세속화로 인해 자연법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의 그들만의 정당성을 스스로 의심했을 뿐만 아니라, 자연법론을 특히 종파간의 논쟁에 끌어들여 종파논쟁의 수단으로 이용함으로써, 자연법론의 보편타당성에 대한 그들 자신의 주장을 심히 불리하게 만들었다. (162면)




122. 결국 스페인 후기 스콜라철학자들은 자연법을 세속권력에 대해 교회권력의 우월권을 정당화하는 데에 이용했다. (163면)




123. 이런 종파간의 논쟁은 정신적인 투쟁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이런 종파간의 논쟁은 유혈의 종교전쟁으로 치닫게 되었기 때문에, 카톨릭교도든, 루터교파이든, 개혁교파이든, 그리고 기독교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이제는 모두가 함께 설 수 있는 공통된 기반을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기초를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제는 스콜라철학이 말하는 올바른 이성에 의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게 된 것이다. 홉스는 올바른 이성의 지시만이 올바른 법이라는 명제가 바로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근본오류였다고 생각했다. 만약 사물의 본성 속에서 ‘올바른 이성’과 같은 어떤 것을 발견할 수만 있다면 그 또한 이 명제를 인정했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 올바른 이성인가를 두고 논쟁이 있을 경우, 결국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의 이성을 올바른 이성이라고 보통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163면)




124. 만약 자연버비 보편타당해야 한다면, 이것은 기독교인으로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모든 인간을 위한 규범으로 제시되어야 한다. 푸펜도르프는 바로 이 점을 들어 그의 비판자들에게 반론을 편다. 이방인이든 기독교인이든, 정통파이든 다른 종파이든, 독일이든 프랑스인 혹은 영국인이든, 이 모든 구별은 자연법학자들에게는 상관이 없어야 한다. (163, 164면)




125. 그런데 자연법이 민족과 종파들 간의 논쟁을 종식시키거나 적어도 법적인 궤도로 인도해야 한다면, 이 자연법은 보편타당해야 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서도 힘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현실을 형성하는 힘을 가져야 하고 그래서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목표설정도 ‘세속적’ 자연법을 스콜라 자연법과 구별해 준다. (164면)




126. 이러한 목적론적 형이상학은 이제 해체된다. (165면)




127. 여기서도 자연법의 마지막 실질적인 연관점은 다시 ‘인간의 본성’임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 본성은 아리스토텔레스적, 토마스적 색체의 목적론적 개념이 아니라, 경험적 인간이 지닌 집요하고 예리한 자기관찰 내지 타인관찰로부터 나온 특징을 포함한다. 이로써 인간의 보편적 본성에 대한 규명을 통해 보편타당한 실질적 법내용을 얻고자 하는 마지막의 거대한 시도가 시작된다. (167면)




128. 지금까지 분리되었던 자연법적 ‘실존론’의 두 흐름, 즉 소피스트들의 고대적 충동이론과 둔스와 오캄의 중세적 의지형이상학은 이제 홉스의 체계에서 융합한다. 홉스가 자신의 모국어로 충실하게 번역했던 투기디데스는 그에게 강자의 자연법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옥스퍼드에서 수학하는 동안 그는 유명론도 직접 접하게 되었다. 이 두 거대한 사상은 자연법론의 역사에서 유일하게 그만이 갖는 법철학의 핵심적 관심사를 지원하는 데 기여했다. 그 관심사란 바로 법의 주요과제가 이상적인 질서가 아니라 현실적인 질서를 이루는 것임을 증명해 보이는 일이다. 자연법에서는 - 법에 불리하게 - 경시되었던 법의 현실성이라는 요소가 그의 사유 안에서는 본래적인 원동력이 된다. (169면)




129. 홉스의 심오한 통찰에 따르면, 가장 어려운 전쟁은 소유나 생활공간이 아닌 정신적인 내용, 즉 신앙과 세계관을 둘러싸고 일어난다. 왜냐하면 여기서는 증오의 대상은 싸움이 아니라 동의가 없다는 사실 자체이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의견을 함께 하지 않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착오에 빠진 사람이라는, 인간적으로 견디기 어려운 은밀한 비난을 퍼붓는 셈이 된다. (170면)




130. 모든 선험적 자연법론은 현실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기존의 실정 질서들의 구속력을 상대화시킴으로써 오히려 더 파괴시켰다. 홉스는 법은 인간의 생활설계의 유일한 가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가치는 단순한 이념적, 비현실적 질서일 수는 없으며, 현실을 형성하는 힘을 가질 때에만 그 가치적 성격을 갖는다고 믿었다. 가장 이상적인 질서가 만인의 만인에 대해 투쟁을 극복할 힘을 가지지 못한다면 무가치하며, 반면 아주 불완전한 긴급질서라도 적어도 자연상태의 혼란을 극복하고 현실적인 질서를 복구한다면 이는 바로 현존재를 보장해 주는 질서로서 핵심적인 법가치를 지닌다. 홉스의 자연법을 떠받치고 있는 사상은 현실을 현성하는 질서라는 법적 안정성의 사상, 즉 법 안에서 그리고 법을 통한 안정이라는 사상이다. (170면)




131. 그(홉스)에게 중요한 것은 영원한 정의를 천상에서 끌어내리는 일이 아니라, 적어도 만인의 실존을 보장하는 현실적인 질서를 지상에 세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법철학의 첫째 과제는, 도처에서 언제나 위협하는 법 이전의 혼란상태가 추방될 수 있는 조건들을 제시하는 데 있다고 본다. (171면)




132. 인간에 대한 다른 상은 다른 법체계로 인도되기 마련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의 이데아를 생성 과정의 작용인과 최종 목표로서, 대상의 ‘형식’, ‘자연’, ‘목적’으로서 현실에 옮겨놓은 다음에, 인간상에다가도 이념적 자연법론의 특징인 낙천적 성격을 부여했다. 인간이 이성적이며 사회적이라는, 이 인간의 이념적 최종 목표는 그의 발전과정을 규명하는 그의 ‘자연’이기도 하다. “존재와 선은 서로 치환한다”. 이는 목적론적 형이상학에 대한 토마스식의 표현을 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간의 ‘자연적’ 성향으로부터 자연법 질서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171면)




133. 유명론은 이 낙천적인 인간상에 첫 그림자를 드리웠다. 목적론적인 형이상학의 붕괴와 함께 인간상도 암울해질 수 밖에 없었다. 즉, 오캄에 따르면 인간은 우선적으로 싸움과 분쟁을 좋아하며, 그 때문에 국가는 무엇보다도 악한 자들로부터 보호해 주는 장치가 되어야 했다. 종교개혁자들의 원죄설은 이 상을 드디어 완전히 어둡게 했다. 죄로 인해 인류는 뿌리까지 부패했고, 그 본성을 상실했다(‘타락한 자연’). 홉스에 이르면 여기에 고대의 투기디데스와 소피스트들의 충동설과 권력론이 부가된다. (171, 172면)




134. 그(홉스)에 따르면 인간은 동적이며 위험한 존재이며 늑대인데... (172면)




135. 국가는 인간이 가지는 두 가지 기본적인 힘,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이끄는 권력욕과 이로부터 생기는 상호간의 공포의 결과이다. 뉴턴이 갈릴레이의 낙하법칙으로부터 행성운동의 법칙을 원심적 운동작용과 구심적 중력의 결과로서 설명했듯이, 기계론자인 홉스는 국가를 구심적인 권력욕과 원심적인 상호 공포로부터 해석한다. 공포는 인간으로 하여금 서로 충돌하는 권력욕이 더 이상 실존을 위협하는 영향력을 갖지 못하게 거리를 두도록 만든다. 그래서 국가는 인간 안에 있는 파괴적인 힘을 억제하기 위한 것으로서 공포로부터 생겨난 강제조직인 것이다. 이 조직의 유일한 목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보호에 있다. 그런데 국가는 개인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에 또한 명령할 수도 있다. (172면)




136. 즉 인간의 최고의 선은 자기보존이다. 그러므로 “복종의 유일한 목적은 보호이다.” 이 보호와 복종의 상호 관계는 홉스의 자연법 체계의 토대를 이룬다. “국가에 대한 복종 의무는 국가가 시민을 보호할 힘이 있는 동안에만 지속되며, 그 이외에는 한 순간도 더 지속되지 않는다.” (173면)




137. 국가와 법이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서 실존을 유지해주는 질서를 확보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그 본질적인 과제를 다 수행한 셈이다. 반면 이 질서가 내용적으로 어떤 모습인지는 이차적인 문제에 속한다. 이념적 자연법론에서는 이 이차적인 문제가 - 법질서의 현실적인 존립에 대한 문제는 경시하면서 - 유일한 관심사였으며, 이와 관련하여 인간의 ‘자연’에서 일련의 실질적, 윤리적 원칙을 도출해내는 길이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데 홉스의 인간관에 입각하면 이 길은 차단되어 있다. 인간이 위험하고 파괴적이고 악한 존재인 한은, 그의 ‘자연’으로부터 인간의 공동생활을 위한 가치구조가 도출될 수 없다. 타락한 자연으로부터는 질서의 필연성은 발생하지만, 질서의 내용은 제공되지 않는다. (173면)




138. 홉스가 가장 엄격한 의미의 유명론자였다면, 오캄은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었다. 홉스에 따르면 보편개념들은 정말 단순한 명칭들(nomina)에 지나지 않았고, 많은 개물에 대한 포괄적인 단어들이었다. ‘선한’, ‘악한’, ‘나쁜’이라는 단어들도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단지 상대적으로만 의미를 지니며, 그 자체가 절대적으로 그렇다는 뜻을 표시하는 것은 아니며, 사물의 본성 자체에서 비롯되는 보편규칙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다. (174면)




139. 국가권력이 설립하기 전에는 정의도 불의도, 선이나 악에 대한 보편개념도 없다. 이미 자연법칙이 절도, 간통 등을 금한다고 하더라도 이 개념들을 비로소 정의하는 것은 시민법이다. 왜냐하면 시민법이 하라고 명하면 그것은 절도나 간통이 아니기 때문이다. (174면)




140. 선과 악, 그리고 정의와 불의에 대한 기준은 영원한 진리가 아닌 공권력의 의지결정으로부터 나온다. 진리가 아니라 권위가 법을 만든다(auctoritas, non veritas facit legem). (175면)




141. 국가의 권능은 신의 권능에 정확히 상응한다. (175면)




142. 홉스에 따르면 지상의 지배자들이 취할 입장은 신의 힘을 정확히 ‘모방’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때 결정적인 것은 절대적인 권력 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권력까지도 모두 모방한다는 것이다. (176면)




143. 여기서는 이제 의지의 기능이 아니라 의지적 결정에 논리적으로 선행하는 새로운 가치개념이 등장한다. 그것은 의지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의지적 결정의 가치기준에 해당한다. 그래서 이 점에서 주의주의적 가치체계는 흔들리게 된다. 의지 자체가 아니라 오직 선한 의지 만이 선을 이룬다. (176, 177면)




144. ‘리바이어던’의 라틴어 판 마지막 대목에서 그는 자기 저서의 의도를 요약하면서, 모든 시민들은 그들이 최고의 권력을 위탁한 자의 의지에 따라, 그들의 지배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국가를 보존하고 방위하는데 전력을 다해 기여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177면)




145. 모든 법철학의 가장 어려운 과제는 실정성과 이념성을, 한 요소가 다른 요소를 파괴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결합시키는 연결점을 제시하는 데 있다. 실정성과 이념성 사이의 법의 변증법적 긴장 영역에서 이념적 자연법론은 일방적으로 이념성의 편을 든다. 이것의 근본결함은, 현실적으로는 보편타당한 실질적 법가치 구조를 밝혀내지는 못하면서 법의 실정성을 위태롭게 하거나 파괴하는데 있다. (178면)




146. 이에 반해 홉스식의 실존적 자연법론은 법의 실정성에서, 즉 혼란을 극복하는 현실적인 질서로 기능한다는 점에서, 법의 기본가치를 발견했다는 공로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법 안에서 실정성과 이념성이 서로 분리불가능한 채로 얽혀 있다 왜냐하면 법은 오직 현실적인 가치로서만, 또 현실적 형성력을 갖는 질서로서만 가치적 성격을 지니기 때문이다. 혹은 라드부르흐가 정확히 표현한대로, 실정적인 것이 올바른 법의 개념에 속하기 때문이다. (178면)




147. 실정성과 이념성을 결합시켜 이념적인 것을 실정법의 현실 안에 내재시키려는 홉스의 거창한 시도가 결국 실패로 끝나게 된 이유는, 그가 이념성을 너무 가볍게 여긴 때문이다. (179면)




148. 홉스에게는 시민전쟁의 혼란스러운 상태를 극복하려는 노력과 함께 국가의 실정적 생존보장질서를 수립하는 일이 중요했다면, 그로티우스는 서로 간의 화해가 불가능해 보이는 종교 전쟁의 심연 속에서, 친구와 적이 만나서 평화로운 공존에 이르는 가교 구실을 하는 일에 열정을 쏟았다. 그러므로 이 가교는 서로간의 신앙의 차이 저편에 놓이는 것이어야 했다. (181면)




149. 이성은 이제 더 이상 신앙 체계 중의 한 틀 안에서 자연적 신을 인식하는 기관이 아니라, 수학적 진리와 동등한 사회 생활의 기본 진리를 인식하는 능력이다. (181면)




150. 요컨대 이념적 자연법론의 실질명제들은 보편원리들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라 암묵적인 전제들로부터 얻어진 것이다. (182면)    




151. 그(그로티우스)는 명시적으로 스토아식으로 사회성이라고 불렀던 제1의 자연적인 것들로부터, 즉 인간을 자기 보존 뿐만 아니라 동료 인간까지도 배려하는 기본성향으로부터 하나의 혈관을 도출해 낸다. 그것이 바로 사회적 성향이다. 혹은 그로티우스가 더 정확히 정의하듯이, 자의적인 공동체가 아닌, 평화롭고 이성적으로 질서지워진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성향이다. (183면)




152. 전쟁과 평화의 법에 관한 그로티우스의 저서에는 이전의 자연법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수히 많은 내용의 자연법적 진술들이 들어있다. 이리하여 그 후의 모든 자연법이라는 건축물을 짓기 위한 채석장이 되었다. (188면)




153. 푸펜도르프는 특히 두 전선에서 싸워야 했다. 즉, 계시신학에 반대해서, 그리고 또 프로테스탄트 교단의 스페인 후기 스콜라철학의 추종자들에 반대해서 투쟁해야 했다. 푸펜도르트가, 자연법은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고, 신앙에 차이를 두지 않는다는 그로티우스의 주장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자, 루터교의 정통파는 그에게 대항했다. (195면)




154. 우리가 터어키인 그리고 이방인과 교역을 하고, 전쟁을 치르고 평화를 맺으려 한다면, 우리는 기독교인에게만 타당하고 그들만이 이해할 수 있는 법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타당한 법을 가져야 한다. (195면)




155. 그러므로 그는 보편적인 법을 보편방법에 따라 다루고자 한다고 밝힌다. 즉, 법을 모든 특수한 종교로부터 벗어나게 하여 추상화시킴으로써 모두에게 파악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196면)




156. 푸펜도르프는 “그 자체로부터 명백함”이라는 이 이론에 반대했다. 절도 등이 그 자체로부터 그리고 그 본성상 악하다는 명제는 합리적인 통찰을 사칭하면서 입증책임을 면하려는 주장을 담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작업은 왜 이 행위가 선하고, 저 행위가 악한지를 탐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그 자체로부터 존재함”에 호소하는 자는 더 이상 다른 증명이 필요없다고 믿고, 이로써 안심하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199면)




157. 그러나 푸펜도르프는 적어도 보편적 자연법의 기반을 이룰 수 있는 보편적인 경험개념을 얻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최상의 자연법원리는 직접적으로 명백한 정리가 아니라, 관찰을 통해 얻어진다는 점을 강조한다. (200면)




158. 푸펜도르프는 자연법의 이 최상의 원리를 인간적인 자연(본성)에서 도출하는데, 이 본성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나약함’, 즉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인간의 의지할 데 없음이다. ... 이 의지할 데 없는 상황에서 자연법의 최상의 규정원리로서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은 사회성이다. 즉,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교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필연성이다. ... 사회성의 내용은 인도성과 광범위하게 일치한다. 즉, 그것은 인도성 원리의 법적인 단면이다. (201면)




159. 그것은 그 시대에서 스콜라철학의 삭막한 동어반복과 ‘그 자체로’ 선한 혹은 악한 행위들 운운하는 독단론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했고, 그런 의미에서 젊은 세대로부터 열광적으로 환영받았다. 푸펜도르프가 적용한 방법은 급속히 퍼져 나갔다. 왜냐하면 그 방법은 사물 자체에 접근하는 것을 가능케 하고, 가령 일부일처제에 대한 찬반여부나 근친상간을 금지하는 실질적인 근거 등에 대해 선입견 없이, 그리고 선험적 본질을 빙자한 어떤 금기없이 탐구하는 것을 가능케 했기 때문이다. (202면)




160. 이미 인간이란 단순한 명칭에 존엄이 있다. 이 존엄은 모든 인간에게 똑같이 부여되기 때문에 인간은 모두 천부적으로 동등하다. 이 ‘자연적인’ 평등은 홉스가 주장했던 것처럼 힘의 평등이 아니라, 법안에서의 평등, 즉 사교성의 의무가 모든 인간들을 똑같이 구속하는 데 기초하는 평등이다. 왜냐하면 이 의무는 인간의 자연(본성) 그 자체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푸펜도르프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선천적 노예설을 - 그로티우스도 여전히 주장했던 - 단호히 거절했다. (204면)




161. 푸펜도르프는 칸트 이전에 최초로 아주 인상깊은 말로써, 윤리적이며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엄이라는 사상을 자신의 자연법 체계의 핵심으로 삼았다. 이로부터 그 다음 세기를 결정하는 인권과 자유권 이념이 도출되었던 것이다. (204면)




162. “나의 저자는 인간이라는 말은 그 음 속에 존엄을 지니고 있다라고 말했다.” (206면)




163. 그러나 이 시기에 전반적으로는 로크의 이론이 푸펜도르프의 것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영국과의 전쟁의 직접적인 외적 계기가 된 과세권을 둘러싼 싸움을 지지하려면, 가장 중요한 자연적 재산권은 재산이며, 국가의 목적은 재산의 보호에 있다는 로크의 이론에 의지하는 것이 푸펜도르프에 의지하는 것보다 훨씬 유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리적 자유와 인권 이념으로부터 자유권을 더욱 심층적으로 정당화하는 작업은 와이즈에게서, 그리고 그를 거쳐 푸펜도르프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된다. 미국에서는 이런 맥락이 결코 완전히 망각되지는 않았다. 그런데 막상 푸펜도르프의 모국에서 그의 이런 업적이 실종된 것은 심히 유감스럽다. (207면)




164. “견디기 어렵게 된 교회의 횡포에 반대한 투쟁에서 마침내 인간의 이 가장 중요한 자유권이 확보되기까지는 수세기가 필요했다.” (208면)




165. 그(라이프니츠)는 설사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가정하더라도 자연법은 유효하다는 그로티우스의 명제를 논리정연하게 반박한다. 신이 없이도 어떤 식으로 정의가 존재할 수 있다고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210면)




166. 요컨대 “의지가 이성에 앞선다”라는 명제는 전제 군주의 구호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사람들이 더 이상 신과 악마를 구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더 심오하고 더 나은 법의 원리를 찾아야지, 신적인 의지와 그의 지성에서, 혹은 그의 권력과 지혜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212면)




167. 푸펜도르프를 비판하면서 라이프니츠는 후기 스콜라에서 많이 이용된 ‘그 자체로 명백함’의 이론을 방어한 적이 있다. (222면)




168. 그로티우스에 대해 명백히 반론을 제기하면서 루소는 인간의 근원적인 사회성향에 대한 가정을 거부하고, 자연상태에서는 인간들을 결합시키는 그 어떤 공감대로 없다는 홉스의 이론으로 되돌아가 다시 출발한다. 그는 자연인에게는 능동적인 이기주의가 아니라 수동적인 이기주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한에서만 홉스의 이론을 약화시킨다. 자연상태의 인간들끼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아니라, 상호적인 무관심이 지배하고 있다. (224면)




169. 개별의지와 전체의지의 이 허구적인 동일성을 루소는 실제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226면)




170. 루소는 국가란 모든 사회구성원의 이익이 적어도 한 점에서 만날 때에만 가능하다고 서술한다. 이 모든 이익 중에서 공동적인 것이 공동적인 결합을 이룬다. 그러므로 사회는 오로지 이 공동적인 결합에 따라서만 지배되어야 한다. 이익의 공동성은 각 개인에게 공동이익과 동시에 자기 자신의 이익을 인지할 수 있게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익은 공동이익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하는 한에서 그는 일반의지에 상응하게 행동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그가 자신을 위한 특혜를 추구할 때, 더 이상 공동이익의 부분이 아닌 이익을 추구할 때 그의 의지는 일반의지에 상응하지 않고 특수의지가 되고 만다. (226면)




171. 루소 이론의 핵심은 이렇다. 이익이 공동적이어서 각 개인이 이것을 옹호하고 동시에 자기 자신의 이익을 인지하게 된다면, 그것은 이 균등한 공동성의 힘만으로도 필연적으로 내용적으로도 정당하다. ... 다시 말해서 법적 규제의 정당성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대상의 균등한 공동성의 유지이지, 그 객관적 내용적 선함이 아니다. (227면)




172. 실질적인 가치내용은 공동이익을 정당한 것으로 만드는 조건이 아니라, 반대로 그 조건은 이익의 형식적인 공동성의 결과이다. 이 의미에서 루소에 의하면 주권자, 즉 일반의지는 단순히 존재함으로써 이미 당위적으로 존재해야만 하는 것이 된다. (227면)




173. 이로써 현실은 정당한 것을 스스로 만들어낼 만큼 실제로 성숙하게 되었다. 선험은 불필요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현실이 스스로 끊임없는 정당성을 보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루소의 말은 자연법과 작별을 고하는 것처럼 들린다. (228면)




174. 이상적인 기준이 불필요하게 되도록 현실의 국가를 구성하고자 했다. 바로 그 때문에 루소는 국가에서 일반의지가 만들어지는 방법에 그토록 비중을 두어야 했던 것이다. (228면)




175. 그런데 이 공동성 원리는 순전히 형식적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이에 상응하지만 구체적으로는 서로 다른 많은 의지내용들이 가능하게 된다. 이 경우 어떤 의지가 일반의지인지는 다수가 결정하게 된다. “일반의지는 투표자의 수에서 표현된다. 따라서 나의 견해가 반대의 것에 진다면, 그것은 바로 내가 틀렸다는 것과, 또 내가 일반의지로 여겼던 것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229면)




176. 사상전개에 있어서 루소의 약점들 - 이성의 과대평가, 욕정과 집단이익에 대한 과소평가 등 ... (229면)




177. 즉, 이념과 실존 사이의 괴리를 없애고, 현실로 하여금 스스로 올바른 것을 산출해내도록 조직하려는 시도가 들어왔다. 이 점에서 루소는 정녕 플라톤에 반대되는 사람이다. (229면)




178. 반면에 루소는 현실을 신뢰한다. 그는 현실이 개별이익과 일반이익, 개별의지와 일반의지를 동일화시킴으로써 정당성을 스스로 직접 산출하도록 제도적으로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230면)




179. 그러나 사람들이 일반의지의 형성을 방해하는 정욕, 집단이익 등의 모든 요소들을 제거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반의지를 가지고 실질적으로 올바른 것을 직접 성취할 수 있다는 믿음은 기망적인 몽상으로 남을 것이다. 균등한 공동성이라는 형식적인 원리는 내용적으로 아주 상이한 많은 이익들에 대해 열려있다. 그것들 중 어떤 이익이 자칭하는 선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근거지울 수 있는 참된 선인지에 대해서는 이 형식원리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다. (230면)




180. 그러나 수천년 동안 기다린 끝에 자연법은 이제 마침내 현실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그 몰락의 싹을 배태하게 되었다. 자연법은 처음부터 이념과 현실의 긴장관계에서 살았다. 그런데 자연법 자체가 이제 현실이 됨으로써 그것이 지금까지 공급해왔던 힘의 원천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모든 민족과 시대에 타당한 법을 만든다는 요구를 들고 나온 것이 바로 자연법이었는데, 이제 그것은 정말로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프랑스의 법전이 되었다. 그래서 그것은 어떤 대결도 필요 없이 현실 자체에 의해 논파당한 것으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232면)




181. 푸펜도르프는 자연법과 도덕신학을 구별하면서 이미 놀라울 정도로 명확하게 합법성과 도덕성을 구분해 주었다. 즉, 자연법은 인간들 사이의 외적 행위에 제한된다. (233면)




182. 푸펜도르프의 제자인 그리스치안 토마지우스는 윤리와 법의 분리문제에서 푸펜도르프보다 더 나아간다. ... 토마지우스는 자신의 핵심과제가 윤리, 법, 관습을 분리하는 데에 있다고 보았다. (234면)




183. 여기서 우선 둘째 관점인 법의 실정성과 관련해서는, 법의 강제적 성격을 둘러싼 논쟁과 무관하게, 실정성(제정성, 관철가능성)이 법의 본질요소의 하나라는 통찰이 중요하다. (236면)




184. “칸트의 의심할 바 없는 위대한 업적은 내적 행위와 외적 행위를 위한 입법, 윤리적 입법과 법학적 입법을 구별함으로써, 법과 도덕의 등위 관계를 엄격히 관철시켜나간 것이다. 칸트는 이로써 그 이전에 행해졌던 도덕화하는 법이론에 종말을 지었다.” (236, 237면)




185. 법과 윤리는 오히려, 법은 그 명한 바를 준수함으로써 합법성으로 만족해야 하는 반면에, 윤리는 외적인 준수뿐만 아니라 도덕성도, 즉 의무를 위한 행위도 요구해야 한다는 것으로써 구별된다. (237면)




186. 우리가 다만 경험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지식을 통해서는 절대적인 필연성을 지니는 법칙을 결코 도출해 낼 수 없다. 도덕법칙들의 구속성의 근거는 “인간의 본성이나 인간이 처한 세계의 상황에서 찾을 수 없고 ..., 선험적으로 순수이성의 개념에서만 찾을 수 있다.” (239면)




187. 이리하여 근대윤리학을 특징짓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게 된다. 수천년 동안 자연법론의 윤리적 연구의 주요 관심사였던 객관적, 실질윤리적 문제 대신에 이제 주관적 도덕성의 문제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윤리의 주관적 원리는 일찍이 후기 스콜라의 양심개념에서 표현되었고, 중세에도 놀라울 정도로 심화되었지만 신학적 교리의 한계 안에 멈춰 있어야 했던데 반해서, 이제는 진정 자유롭게 전개될 수 있다. 개인의 윤리적 자율은 “도덕세계의 기본법칙이다.” 그것은 자유로운 의지의 원리이며, “이 의지는 이것이 의무지워진 것에 동시에 반드시 동의할 수 있어야 한다.” (240면)




188. 칸트의 윤리학은 윤리의 실질적 원리에 대한 그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늘 사물의 객관적, 윤리적 질서를 전제한다. 칸트는 신칸트주의와 실존주의 이론 진영에서 발전되었던 바와 같은 순수한 윤리적 주관주의의 대변자는 결코 아니다. (241면)




189. 그는 주관적으로 도덕적인 문제(윤리적 행위에 있어서 ‘어떻게’라는 문제) 이외에 실질윤리적 문제(윤리적 행위에 있어서 ‘무엇’이라는 문제)에 부여되는 독자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 대신 그는 ‘어떻게’로부터 ‘무엇’을 발전시켜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정언 명령은 이를 위한 수단이 된다. 모순 없이 보편적인 것(‘법칙’)으로 끌어 올려지는 특수한 의지 내용(의지의 주관적 ‘준칙’)의 적절함으로부터 언제나 의무의 실질적인 내용이 나온다는 것이다. (241면)




190. “너는 너의 준칙이 보편적인 법칙이 되기를 원할 수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이제 사람들은 저마다 손에 이 나침판을 들고서, 발생하는 모든 사례에서 어떻게 결정할지를 아주 잘 알고, 무엇이 선하고 무엇이 악한지, 그리고 무엇이 의무에 상응하거나 혹은 반하거나 구별할 수 있는 것이다. (241면)




191. ... 그의 격율을 보편법칙으로 고양시킴으로써 결코 자기모순에 빠지지 않는다. 혼인제도를 시대에 뒤진 것으로 여긴 간통범도 그의 준칙을 보편화함으로써 스스로에게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윤리적인 법칙이 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헤겔). 실질윤리적 행위 내용의 객관적 타당성은 자율의 가능성의 전제이며, 역으로 이 전제로부터 발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42면)




192. 자유의 자율을 통해 인격은 세계질서를 함께 지탱하고 도덕적 법칙의 주체로서 목적 그 자체이다. “자율은 인간적인, 모든 이성적인 본성의 존엄의 근거이다.” (242면)




193. 여기서 칸트는 일체의 거짓말을 “인간존엄을 던져버리는 것”으로 간주한다. ... 선한 목적조차도 거짓말을 결코 정당화할 수 없다. 동일한 원칙들은 자해행위에도 해당한다. (243면)




194. 헤겔은 칸트를 상세히 비판하면서 다시 실질윤리적인 문제를 철학적 법이론의 중심에 놓고, 자연법적 관심사를 다시 수용한다. (247면)




195. 첫째, 헤겔은 토마지우스 이래로 분명해진 오류, 즉 법을 두 가지 서로 대립하는 종류로 나누는 오류를 피한다. 그는 이상적인 법과 이상적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 이성적인 것으로서의 현실적 국가를 파악하고자 했다. (249면)




196. 둘째, 헤겔은 지금까지 자연법론의 가장 명백한 오류인 비역사성을 피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법의 규준을 시간과 공간을 벗어난 보편타당성에서 확인한 이래로, 이 규준은 자연법이 역사적 현실에서 구체화되는 것을 극심하게 방해했다. (249면)




197. 개념의 발전과 시간적인 순서를 지배하는 이 역동적 구조의 법칙을 헤겔은 변증법에서 찾았다. (252면)




198. 이 세상에서 선한 의지 이외에 그 어떤 것도 선하지 않다고 하는 칸트의 순수한 심정윤리와는 반대로, 헤겔은 윤리의 객관적, 실질적 측면의 의미를 복권시켰다. (252면)




199. 출발점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개인적, 사적 이해관계의 싸움터’로서의 시민사회이다. 이 “원자적인 체계”에서는 윤리성은 철두철미 상실된다. 다시 말해서 보편성과 특수성은 산산히 부서진다. 이 양자 간의 화해의 길은 단체를 거쳐서, 즉 동일한 업종끼리의 조합이나 직업단체를 거쳐서 이르게 된다. 단체는 그 구성원들을 배려해 주고, 그들에게 직업상의 의무를 부과함으로써 그들이 직업상의 명예를 갖는 윤리적 동아리가 되도록 감싸주는 것이다. 이렇게 단체는 “개별적으로 존립하는 업체를 윤리화하고, 그것을 힘과 명예를 얻는 권역으로 놓이는 것이다.” 단체를 거쳐서 개체이익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 국가의 이익으로 넘어갈 수 있다. (255면)




200. 개체이익의 무게는 “자기 자신을 통해서” 공동이익으로 넘어가기에는 대체로 너무나 무겁다. 역사가 보여주었듯이, 직업단체들에 있어서도 개체이익은 “자기 자신 안에서” 국가정신으로 변하기에는 대체로 너무도 강렬하다. 직업단체들은 너무나 쉽게 이익단체로 변하고 말아, 거기서 전체의 정신은 실제로 부정되는 것이다. (256면)




201. 역사를 선험적 이념이 자기를 실현하는 변증법적 과정으로 구성할 수 있고 이 과정은 경험과 일치해야 한다는 헤겔의 주장은 - 이성의 가장 담대한 모험! - 이념주의의 역량을 과도하게 자극시켰다. 헤겔주의가 붕괴한 후, 특히 그 창시자의 죽음 직후에 나타난 것은 이상주의적 정신 뿐만 아니라 철학적 정신 일체의 쇠퇴현상이었다. “이 큰 집 한 채가 붕괴한 것은 이 사업 전체가 위축되었기 때문이다”라고 그 당시(1857년) 루톨프 하임(Rudolf Haym)은 기술했다. (260면)




202. 이 때부터 우리가 체험한 것은 이성의 자기파괴와 자기해체였다. ... 실증주의, 이데올로기론, 생의 철학, 실존주의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실증주의가 법이론과 법실무에 가장 직접적인 의미를 던진다. (260면)




203. 실증주의는 의미를 이해하는 (의미를 해석하는) 이성을 현존재로 향한 기술적, 도구적 오성으로 환원시킨다. (260면)




204. “법이 존재한다는 것과 그 법이 가치가 있느냐의 여부는 별개의 문제이다. ... 실제로 존재하는 법은 우리의 거부감을 불러일으킬지라도 엄연히 법률이다.” 기준이 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현실에서 작용하는가이다. (261면)




205. 순수한 실정법적 사실에 대해서는 이성진리는 통용되지 않는다. “법분야에서 철학적 사유의 결과로서의 객관적 진리란 도대체 없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적 공상이 아니라면 주관적인 윤리감정, 이성적 심사숙고, 정치적 목적 등에 대한 표현으로서 불확실한 표상에 불과하다. 공동생활의 이상적인 질서와 관련해서 기껏해야 비교적 대규모 인간집단이 그때그때 갖는 직관과 느낌, 다시 말해서 여론이라는 것이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261면)




206. 실정법 그 자체 이외의 모든 법은 법으로서 헛소리에 불과하다. (262면)




207. 형사법학자인 프란츠 폰 리스트는 형법해석학이 과연 학문인가 하는 문제를 1893년에 여전히 미해결인 채로 남겨두었고 ... 법사학자인 파울 코사커(Paul Koschacker)는, “근대의 학문개념에 따르면” 해석법학은 학문이 아니라고 설명한다. 왜냐하면 해석법학은 권위적으로 부과된 법소재를 단지 분석하고 정리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에 따르면 법사학만이 학문적 성격을 지니는데, 그것도 법학으로서가 아니라 사학으로서이다. (263면)




208. 가장 정화된 법실증주의라 할 수 있는 한스 켈젠의 순수법학도 “모든 자의적인 내용이 법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어떠한 인간의 행동도 그 내용 때문에 법규범 내용으로부터 배제될 수는 없다. 법질서에 속하지 않는 다른 규범의 내용에 모순된다는 이유로 그 효력이 부정될 수는 없다.” (264면)




209. 법을 힘에 넘겨주고 마는 상대주의 법철학: 슈탐러의 방법론적 형식주의와 반대로, 빈델반트와 리케르트의 서남독 신칸트학파를 추종한 구스타프 라드부르흐와 막스 에른스트 마이어의 상대주의적 법이론들은 법의 내용적인 가치규정의 길을 되찾게 해 주었다. 물론 이것은 그 내용의 절대적 타당성은 포기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 법이론들은 “변화하는 내용을 가지는 자연법”의 일종이 되었다. (265, 266면)




210. 그래서 라드부르흐는 “가능한 세계관의 관점을 논의하는 틀 안에서 법파악을 위한 관점을 구상하고자 했다.” 그렇게 해서 가능하게 되는 법관 및 국가관에는 세 가지가 있다. 개인주의적, 초개인주의적, 초인격적인 것이 그것인데, 이는 인간의 개체인격, (국가와 같은) 총체인격, 그리고 문화 중에서 어느 것을 최고의 가치로 설정하느냐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르면 최상의 법가치는 자유, 국가, 또는 문화이다. 이 가운데 어느 하나가 객관적 정당성을 갖는다는 식의 ‘학문적’ 판단은 불가능하다. 가치판단은 인식의 문제가 아니라 오직 고백의 대상이 될 뿐이다. “상대주의적 법철학은 각 개인들이 서로 대립하는 최후의 전제들로부터 체계적으로 전개된 법관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을 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266면)




211. “그러나 상대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이성과 학문은 이 과제를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의지와 힘이 이 일을 맡아야 한다.” 힘은 법을 관철시키는 능력에 의해 정당화된다. “법을 관철할 수 있는 자는 이로써 법을 제정할 부름을 받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렇게 상대주의는 필연적으로 법을 힘에 넘겨 주고 마는 것이다.” (266, 267면)




212. 라드부르흐와 달리 막스 에른스트 마이어는 구체적인 법이상을 그때 그때의 문화상태에 따르는 데서 찾고자 한다. “한 문화상태 안에서 성장한 목적, 이상, 이념은 바로 이 안에서 그 정당화를 발견한다.” 이러한 내용들은 헤겔의 역사형이상학에 상응하는데, 물론 거기서처럼 절대적 타당성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여기서 상대주의는 역사주의의 형태로 등장한다. (267면)




213. 강제는 강제하지만, 의무지우지는 못한다. (267면)




214. 의무는 강제와는 다른 영역에서 유래한다. 신칸트학파가 비로소, 특히 율리우스 빈더(Julius Binder)가 이 모순을 제거했다. “도덕 규범은 양심에서 나오고, 그 때문에 의무로서 부과된다. 왜냐하면 의무로서 부과된다는 것은 규범을 준수해야 한다는 의식, 즉 우리가 바로 양심이라 부르는 것과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질서의 명령들은 국가의 외적 강제를 통해서 관철되고, 외적 권위에서 비롯되며, 그런 한에서 의무지우지는 못한다. 그것의 타당성은 내가 내 양심에서 그것을 의무지어진 것으로 시인하는 데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법의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267, 268면)




215. 그러므로 빈더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상식에 의해 거의 모든 법해석학의 출발점이 되버린 법의무란 개념은 거부되어야 한다. 의무는 법적 개념이 아니다. 우리가 법질서에 기초한 의무라고 말하곤 하는 것은 실제로는 아주 다른 어떤 것이다. 피지배자의 의무라고 하는 일반적 범주는 거부되어야 한다. 범죄를 저지르지 말라는 형사법적 의무는 거부되어야 한다. 의무를 이해하라는 민사법적 의무도 거부되어야 한다. 이 모든 경우에 실제로 문제가 되는 것은 책임(Haftung)일 뿐이다. 신체, 생명, 재산, 자유, 명예 등에 대한 책임인 것이다.” (268면)




216. 라드브루흐는 “법철학적 허무주의”라고 불렀던 빈더의 이러한 이론을 받아들여서, 많은 영향을 미친 바 있는 그 자신의 표현으로 승화시켰다. 법적 토양은 의무부과 가능성을 개념 필연적으로 배제시킨다는 것이다. “법관의 직업상의 의무는 법률의 효력의지를 관철시키고, 자신의 법감정을 권위적인 법의 명령에 희생시키며, 오로지 무엇이 법인지에 대해서만 묻고, 결코 이것이 정당하기도 한지를 묻지 않는 것이다. ... 우리는 자신의 확신에 반대해서 설교하는 목사에게는 경멸을 보내지만, 자신의 저항하는 법감정을 통해서 법률에의 충성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법관을 존경한다.” (268, 269면)




217. 라드부르흐는 여기서 판사에게 ‘지성의 희생(sacrificium intellectus)'을 요구한다. (269면)




218. 심리학자 에리히 엔쉬(Erich Jaensch)는 신칸트학파를 “실증주의를 보완하는 이론”으로 일컬었는데, 이 때 그는 실증주의적 현실개념을 고수한다고 스스로 고백했더 하인리히 리케르트를 원용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똑같은 근거에서 신칸트주의 법철학은 법실증주의의 보완이론임이 드러난다. (269면)




219. 신칸트학파 법철학을 거부하는 보다 심층적인 근거는 이념적 ‘규준’과 관련한 형식주의나, 상대주의 혹은 역사주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실증주의적 법개념을 유지하고 심화시켰다는 데 있다. (269면)




220. 실증주의는 법을 권력으로 축소시켰다. (270면)




221. 헤겔의 제자인 마르크스는, 우리가 위에서 주시했듯이, 헤겔의 역사철학을 읽으면서 국가의 보편적 최종목적과 개인들의 특수한 이익 사이에서 해결되지 않는 모순에 부딪쳤다. 엥겔스가 나중에 입증했듯이, 마르크스는 이것과 관련해서 “헤겔에 의해 구조물의 정점에 모셔진 국가가 아니라, 오히려 그에 의해 푸대접을 받은 시민사회가 인류 역사 발전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를 찾을 수 있는 영역이라는 통찰에 이르게 되었다.” 마르크스는 독일철학처럼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오려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지상에서 하늘로 올라가고자 한다. 즉, 그는 ‘실제로 활동하는 인간’로부터 시작하고자 하며... (271, 272면)




222. 철학자들이 ‘실체’ 혹은 ‘인간의 본질’로서 떠올렸던 것의 진짜 근거는, 각 개인과 세대가 이미 주어진 것으로서 발견하는 생산력들과, 자본 그리고 사회적 거래양식들의 총체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의 의식은 “처음부터 이미 사회적 산물이며, 인간들이 생존하는 동안까지는 그것으로 남는다.” (272면)




223. 물질적 생활의 생산방식은 사회적, 정치적, 정신적 생활과정 일체를 제약한다. 인간의 존재를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의식이 아니다. 그 반대로 그들의 의식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그들의 사회적 존재이다. 이렇게 의식을 생산관계에 환원시킴으로써 “도덕, 종교, 형이상학, 그리고 그 밖의 이데올로기”와 같은 모든 정신적 내용들은 그 모든 “독자성의 외관”을 상실하게 된다. (272면)




224. 무엇보다도 법과 도덕은 “지배계급의 생존조건들에 대한 이념적 표현일 뿐이며 ... 피지배층의 개인들에게 생활규범으로 제시된다.” (272, 273면)




225. 프롤레타리아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식할 수 있는 특권적 입장에 서있다. (275면)




226. “노동자계급의 관심은 역사적 발전의 객관적 과정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 그러므로 프롤레타리아는 스스로 객관적 현실을 최대한 올바르게 인식하는데 관심을 가지며, 그런 만큼 이러한 인식에 이를 수 있다.” (275면)




227. 핵심문제는 도대체 마르크스는 어떻게 국가의 일반적 최종목적과 개인의 이익 사이의 모순을 해소시키고자 하는가이다. 여기서도 그의 출발점은 분업이다. 분업과 더불어 노동과 그 생산물의 불평등한 분배, 즉 사유재산제가 시작된다. (276면)




228. 따라서 마르크스는 헤겔에서 이미 발견된 개인이익과 공동의 최종목적 사이의 모순을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대립관계로 첨예화시킨다. (276면)




229.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이다.” 이 역사는 “변증법적으로” 진행하면서 “필연적으로” 결국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로 흘러 들어간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국가는 점차적으로 불필요한 것이 된다. ... 저 “공동체의 대리물”이었던 국가 대신에 이제 참된 공동체인 공산주의 사회가 등장한다. 거기서는 “각자가 고립된 활동범위를 갖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걸쳐 소양을 쌓을 수 있고”, “사회가 일반 생산을 규율함으로써, 나는 구태여 사냥꾼, 어부, 목동 혹은 평론가가 되지 않고서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오늘은 이것은, 내일은 저것을 하고, 오전에는 사냥을, 오후에는 낚시를 하고, 저녁에는 가축을 돌보고 저녁식사 후에는 비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277면)




230. 이제 이성은 주의주의와 비합리주의의 거센 흐름에 의해 훨씬 더 강하게 의심받게 된다. (284면)




231. 이성이 우위에 놓이는가 아니면 의지가 우위에 놓이는가 하는 물음은 서양의 사유가 진행되면서 줄곧 새로이 제기되었고, 여러 가지로 해답되어 왔다. 그러나 거기서 이성이 맹목적, 충동적 자연력으로 해석된 ‘의지’의 단순한 기능으로 전락했던 적은 아직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일이 “수천년간의 철학을 거친 후에” 쇼펜하우어에 의해 “처음으로” 벌어지게 된다. 그에 의하면 세계의 본질은 맹목적 열망이며, 근거없는 충동인데, 이를 그는 “의지”라고 부른다. 지성은 다만 그 자체로 무의식적인 삶의 의지의 산물일 뿐이며, 생존투쟁에서의 도구 내기 무기에 불과하다. 이는 동물과 인간에게 똑같이 해당된다. (284면)




232. 이성을 -이른바- 그 밑바닥에 놓인 비이성적 힘에 환원시키는 작업을 마지막으로 착수한 사람은 니체이다. 그에 따르면, 쇼펜하우어가 인간을 비이성적, 원초적 의지의 마력에서 구원해 주는 방편으로 여겼던, 사유의 무사한 객관성은 “그릇된 서열을 만들어냈다.” 니체는 인식자를 위해 “위대한 감정에의 권리”를 되찾고자 했다. 객관성은 단지 “의지 내지 힘의 빈곤에 대한 표시”일 뿐이라는 것이다. (285면)




233. “객관적 진리는 단순히 약정에 불과하고, 한 묶음의 유동적인 은유, 환유, 의인화, 요컨대 인간관계의 총체”일 뿐이다. (286면)




234. “진리는 ... 존재하는 것으로서 찾아내고 발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되어야 하는 것이며, ... 압도하는 의지에 의해 ... 명칭을 부여하는 것이다. 진리를 부여하고 ..., 적극적으로 규정하기 ... 이는 ‘권력에의 의지’를 뜻하는 말이다.” (286면)




235. 권력에의 의지는 상승하는 삶, “더 강하게 되고자 하는 의지, 성장하려는 의지”의 힘을 통해 지금까지의 모든 가치를 재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치평가 자체가 바로 이 권력에의 의지이기 때문에, 권력에의 의지는 새로운 가치 설정을 뜻하는 것이다.” (286면)




236. 니체는 후기 사상에서 정신적 가치를 생물적 가치에 이데올로기적으로 환원시키는 작업을 사회학적 요소와 결합시킨다. 이 때 그는 사회학을 “지배행태에 관한 이론”으로 이해한다. 도덕은 ‘삶’이라는 현상이 일어나는 지배관계에 대한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도덕에는 두 가지 기본유형이 있다. 주인의 도덕과 노예의 도덕이 그것이다. (287면)




237. 노예의 도덕에는 “권력에의 의지가 표현되는데, 이를 통해 노예와 억압받는 자들이, 때로는 실패한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이, 때로는 평범한 자들이 자기에게 유리한 가치판단을 관철시키고자 시도한다.” (287면)




238. 도덕은 힘있는 자들의 자기찬미이고, 반면 힘없는 자들의 편에서는 경멸이다. (288면)




239. 생의 철학의 이와 같은 행동주의적 극단화를 논외로 한다면, 이 철학의 공통된 특징은 모든 정신적 과정을 “삶”이라는 사실에 환원시키는 것이다. (288면)




240. 슈미트는 인간은 악하고 위험하고, 동적인 늑대와 같은 존재라는 비관적 인간학에 기초하여, “정치개념”을 “친구와 적을 분류하는 것”으로부터 발전시킨다. (290면)




241. 이에 따르면 진리, 도덕, 법에 대한 결단은 두 개의 상이한 “인간계급”에 의해 내려진다. 노예와 주인(대중과 엘리트)이 그것이다. 그리고 세계지배를 위한 투쟁은 이 두 집단 사이에서 행해진다. 여기서 니체의 사상은 추상적이고 비역사적인 차원에 머물렀다. 이에 반해서 칼 슈미트의 노선은 역사주의적인 쪽으로 향한다. (291면)




242. 따라서 법은 영토를 획득할 힘이 있는 것으로 입증된 자의 “역사적 우세”에 따르며, 세계사의 모든 대전환과 함께 “역사적으로 보다 힘센 자”의 편으로 바뀐다. 궁극적인 우세가 없는 것처럼, 법도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법은 그때 그때 안정화된 세력관계의 함수이다. 여기서 -힘에서- 법에 대한 물음은 종언을 고한다. (293면)




243. 그러나 사실상의 질서를 창출하기 위하여 충분히 힘있는 것은 모두, 질서의 내용을 참작하지 않고도 법인가? 사실성의 요소와 함께 이념성의 요소도 법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294면)




244. “진리”는 순수히 주관적 실존적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변한다. “진리”는 오로지 현존재가 존재하는 한에서만 존재한다. ... “모든 진리는 ... 현존재의 존재에 대해 상대적이다.”  “객관적, 추상적” 진리로부터 “주관적, 실존적 진리”로의 변화는 실존주의의 본질적 성격으로서 이미 그 전 단계에서, 즉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사유 속에서, 헤겔의 ‘추상적’ 혹은 ‘체계적’ 사유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정면대결에서 드러난다. (295면)




245. 헤겔이 주체를 세계정신의 객관성과 실체성에서 소멸하게 했었다면, 키에르케고르의 열정적인 주관성 속에서는 모든 객관적인 것과 보편적인 것이 증발해 버린다. 개인이 다시 무한한 가치를 획득하게 된다. “실존한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개별자임을 의미한다.” (295면)




246. 의지가 많아질수록 실존도 많아진다. 따라서 진리개념도 바뀐다. (296면)




247. “열정이 결정적인 것이지 그것의 내용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 내용이란 바로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관적인 ‘어떻게’와 주관성이 진리이다.” “진리는 무한의 열정을 가지고 객관적으로 불확실한 것을 선택하는 모험에 있다.” (296면)




248.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존재자 - 우리 자신이 바로 존재자이다 -를 분석하는 과제를 설정한다. 그는 이 존재자를 “현존재(Dasein)"라고 부른다. 현존재의 존재에는 극단적인 개별화의 필연성이 내재한다. 현존재는 항상 ”각자 나 자신의 것(je meines)"이다. 이 존재자의 본질규정은 사실적인 무엇의 언급을 통해서 수행될 수 없다. 그의 본질은 오히려 오로지 그의 실존에만 있다. (297면)




249. 이 현존재는 자신의 세계-내-존재(In-der-Welt-Sein)의 두려움 속에 있다. “두려움은 현존재를 추적하며, 그의 자기망각적 상실을 위협한다.” (299면)




250. “현존재는 스스로 자신의 영웅을 선택한다.” “그 속에서 가장 먼저 선택이 행해진다. 그 선택은 반복가능한 것에 대한 투쟁적 추종과 충실을 가능케 한다.” (30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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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의 명저 20 지혜가 드는 창 9
김진균, 임현진, 전성우 지음 / 새길아카데미 / 200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1. 실증적 방법의 적용은 생물학보다는 수학, 물리학, 그리고 화학의 분야에서 더 먼저 시작되었다. 실증주의는 복잡한 현상을 다루는 분야에서는 늦게 나타난다. 그리고 연구대상이 단순할수록 실증적 사고의 적용도 쉬워진다. (15, 16면)




2. 콩트는 다른 자연과학과는 구분되는 종합과학의 대표적인 예로 특히 생물학을 들었다. 비유기체적인 자연현상을 다루는 물리학과 화학의 경우, 이들은 고립된 현상들 간의 법칙을 정립한다는 점에서 분석적인 과학이다. 그러나 생물학의 경우는 살아 있는 생물체 전체를 염두에 두지 않으면 하나의 기관이나 조직을 설명하는 것도 어렵다. 콩트는 생물학이 보여 준 부분에 대한 전체의 우위성을 사회학에 적용했다. (16면)




3. ‘실증철학 강의’의 또 다른 중요한 주제는 사회정학과 사회동학의 문제다. 여기에서 정학이란 일정한 사회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요, 동학이란 사회 구조의 변화를 넘어선 역사의 전반적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것은 콩트 사회학의 두가지 중요한 범주다. (16, 17면)




4. 콩트에 의하면, 진정한 사회과학은 몽테스키외의 주요 저작과 함께 시작되었다. 왜냐하면 다른 분야의 현상들과 마찬가지로 정치 현상들도 변하지 않는 자연법칙에 필연적으로 종속된 것으로 생각해야 할 필요를 느낀 첫 번째 사회과학자가 몽테스키외였기 때문이다. (18면)




5. 따라서 이 과학관에 의하면, 사회법칙에 대한 정확한 지식은 지혜로운 사회적 성찰의 합리적 기초로 사용되어야만 하며, 최종적으로는 국정을 운영하는 정치인들의 실천적 정치 활동을 안내하는 데 유용할 것이라는 것이다. (19면)




6. 콩트에 의하면, 현대 사회에서 신학은 더 이상 중세에 가졌던 영적인 능력을 회복할 힘이 없고, 이 경우 신학의 잃어버린 영향력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실증철학이라는 것이다. 그는 앞으로 실증주의가 카톨릭 교회가 과거에 했던 기능을 수행할 뿐만 아니라, 일반 여론을 교육적으로 지도함으로써 새로운 정신적인 권력을 창조할 것이라고 보았다. 현대 사회의 도덕적 통일성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이 사회 숭배와 사회 연대에 관한 그의 생각이다. (20면)




7. 콩트에 의하면, 각각의 사회 체계는 어떤 특정한 연대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사회학은 사회라는 유기체를 연구하기 위해서 반드시 이 개념을 사용해야만 한다. 이 연대 의식의 가장 훌륭한 예가 생물학적 연대이다. 사회 연대주의에 대한 콩트의 생각은 당시의 두 가지 학파에 대한 반발로서 제시된 것이었다. 이들 기존의 학파들은 추상적 원리에 입각해서 사회 질서를 설명했고 또 그것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했다. 이 두 학파 중 첫째는 홉스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다. ... 두 번째 학파는 앞에서 언급한 드 메스트로의 신권이론으로 이들은 사회 질서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교황의 권위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았다. (20면)




8. 그러나 사회가 더 분화되고 사회 현상이 더욱 복잡해짐에 따라서 이러한 자발적 질서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왜냐하면 이 순간부터 사회 질서는 더 이상 자발적인 것이 아니라 인위적인 것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현대 사회에서 정부가 사회적 삶에 개입할 필요를 낳는다. (21면)




9. 콩트의 실증 정치학 이론에 의하면, 사회 질서를 회복하는 데서 이러한 정부의 개입을 지도하는 기본적인 정신이 바로 ‘사회 연대 의식’이다. 다시 말해서 사회의 과학적 재조직을 위한 계획은, 사회 현상의 복잡성과 상호 관련성을 고려하고, 연대 의식이라는 사회학적 개념을 중심으로 하여 사회 도덕에 관한 실증주의적 연구의 합리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실증주의 도덕이 사회적 합의를 조직하기 위한 실증주의 정치학의 기초가 되어야한다. (21면)




10. 콩트는 공산주의자들의 이론 속에서 무정부주의적 주장과 공상적인 혼란함을 보았다. 이는 공산주의자가 쓰는 개념들이 명료성과 현실성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콩트는 실증주의 이론의 유용성을 다시 한번 발견한다. 즉 이들 사회주의자들을 실증주의로 개종시킴으로써, 무산 계급을 현대 사회의 새로운 공화국에 도덕적으로 통합한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공화국의 역할은 부유한 계급을 안심시키며 가난한 사람들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콩트가 당시 루이 블랑이나 그 추종자들에게서 본 것은, 그들이 산업 생산 수단을 노동자 계급의 소유로 바꾸는 문제에만 너무 집착한다는 점이었다. 콩트는 이것이 인간 사회의 두 가지 중요한 측면을 간과한 순진한 생각이라고 보았다. 하나는 이 생각이 중세 이후에 전개된 노동자와 기업자 사이의 분업을 인정하지 않는 점이고, 또 하나는 보편적 종교를 통해서 인간을 훈련하고 인간을 고귀한 이상에 헌신하도록 할 때에만 새로운 산업 사회의 체제는 그 혁명적 와중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22면)




11. 콩트에게서 사회학이란 삼단계 법칙으로서의 사회동학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모든 학문의 왕이 된다. ... 콩트에게서 사회학이란 기독교의 복음과 같이 미래의 사회개혁을 알리는 일종의 실증주의적 복음이었다. (25면)




12. 베버는 근대 ‘자본주의’ 및 근대 문명의 사회학적 핵심문제를 점차 ‘합리주의’ 및 ‘합리화 과정’이라는 더 포괄적이고 이론적인 문제로 확대, 심화해 나간다. ... 이렇게 볼 때, 근대 자본주의의 기원이라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문제가 베버 사회학의 출발점이었다면, 그것의 이론적 귀착점이자 중심 주제는 ‘합리주의’ 및 ‘합리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46면)




13. 베버는 한편으로 서구적 합리성에 내재하는 해방 잠재력의 실현 즉 사고와 행위의 모든 전통적 구속으로부터의 ‘해방’과 이에 바탕한 ‘인격의 자율성’이라는 가치의 실현을 지향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바로 이 해방의 과정이 잉태하는 사회 관계의 ‘물상화’와 획일화, 관료화 -이 현상들을 베버는 ‘합리화의 역설’이라고 부른다-에 저항할 수 있는 제도와 행위 능력의 함양을 추구한다. (47면)




14. 베버가 여기에서(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다루고 있는 측면은 대개 아래와 같은 두 개의 명제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로 초기 자본주의적 기업가 집단의 형성에는 물질적 이해 관계 이외에 측정한 이념적 이해 관계도 작용했는데, 우리는 이것을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개념화할 수 있다. 둘째로 이 ‘정신’의 형성에는 당시 종교적 이념 체계 중의 하나인 신교 종파, 특히 칼뱅주의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 (51면)




15. 베버는 이 명제들의 논증을 위해 ‘이념형적’ 방법을 사용했다. 이념형적 방법이란, 연구자의 문화적 가치관과 인식 관심을 기준으로 삼아 하나의 사회 현상이 가진 무수한 관점들 가운데 하나의 특정 관점을 선택하여 그것을 의도적으로 부각시키고, 이 관점을 중심으로 해당 사회 현상에 대한 ‘논리적’ 체계를 구성하는 방법을 뜻한다. 따라서 이념형은 역사적, 경험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이론적, 개념적 ‘질서’를 부여하는 분석적 수단에 불과하다. (51면)




16. 베버가 구성한 이념형으로서의 자본주의 정신이 가진 첫 번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징은 기업가의 경제행위에 높은 윤리적 의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즉 기업가는 자본주의적영리행위를 단순히 ‘밥벌이’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윤리적 가치와 존엄성을 확인해 주는 행위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 한마디로 자본주의 정신은 기업가로 하여금 자신의 경제행위를 하나의 ‘소명’으로 여기도록 한다. (52면)




17. 베버에 의하면 칼뱅주의의 이 두가지 독특한 교리 즉 신의 초월성과 개개인의 구원예정설은 서로 결합하여 신도들의 실존적 자세 및 윤리적 원칙에 하나의 독특하고 적극적이며 금욕주의적인 성격을 부여한다. (57면)




18. 뒤르켐은 비사회적 요인들이 자살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정하고 자살을 야기하는 사회적인 요인들을 규명한다. ... 자살은 자살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의 작품”이기 때문이다. (69면)




19. 뒤르켐이 싸운 것은 바로 이러한 허무주의다. 그는 이런 허무주의를 논증적으로 뒤집는다. 이러한 허무주의는 사회적 현상이다. “좌절과 실망의 물결은 특정한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회 자체의 해체 상태에서 유래한다. ... 이런 시기에는 사실을 윤리의 순준으로 승격해 자살을 권장하거나 최소한의 생존을 제안하는 경향을 띠는 새로운 도덕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한 도덕이나 형이상학, 종교가 가진 체계들은 얼핏 보기에 그 창시자들이 만들어 낸 것 같지만, 실제로 창시자들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75면)




20. 짐멜은 왜 하필 돈을 분석한 것일까? 왜 그는 돈같이 비속한 것에 고상한 철학의 코를 문질러 댔는 것일까? 그는 이 점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해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돈을 연구함으로써 “삶의 소소한 측면에서 그 총체적 의미를 발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돈은 그런 의미에서 총체적인 현대성, 즉 현대성 안에 있는 체험과 정신 생활 전체를 보여줄 수 있는 단편이다. (83면)




21. 만하임은 지식사회학을 “사회생활에서 불확실하고 모호하게 보이는 모든 것에 대한 의심의 체계화”라고 썼다. 이 ‘의심의 체계화’를 통해 사고의 ‘편파적 정향성’을 드러내는 것은 모든 진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허무주의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아니라 긍정적, 공감적 이해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된다고 만하임은 말한다. 이데올로기가 지식사회학의 대상이 됨으로써, 상반된 정치적 목표들을 서로 짓밟거나 무의미한 것으로 낙인찍는 데에서 발생하는 회의주의나 상대주의가 오히려 하나의 구제책으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회의주의나 상대주의는 자기 비판과 자기 통제를 강요함으로써 객관성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개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105면)




22. 미드가 다윈 등 당대 선진 사상가들의 저작을 접했던 것도 하버드에서의 일이다. 이를통해 미드는 사변보다는 경험적 연구 쪽에 매력을 느끼게 되어, 1888년 하버드를 졸업하면서 전공을 철학에서 생리심리학으로 바꾸고, 독일의 라이프치히로 가서 심리학자 분트의 가르침을 받았다. (124면)




23. 더욱 일관되고 통일된 자아는 규칙을 가진 게임을 일반화함으로써 그 역할들의 조직화된 전체 구조를 취득하게 해준다. 미드는 이러한 조직화된 역할들의 총체를 ‘일반화된 타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전체 사회 과정의 통일성을 표현한다. 개인 행위자들은 이러한 일반화된 타자의 역할을 취득함으로써 안정된 자아를 성취하게 된다. (130면)




24. 그러나 미드가 자아를 늘 변하지 않는 것 또는 사회가 전적으로 결정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아니다. 그는 일반화된 타자의 태도 취하기에서 타자의 태도들에 의해 조직화된 대상적 자아를 자아의 ‘me' 국면이라고 부르고, 이것 외에도 이것에 반응하는 주체로서 자아의 'I' 국면이 존재한다고 지적한다. 자아는 결국 'I'와 "me"의 대화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창조적인 자아인 'I' 덕분에 우리의 사회적 행위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낼 수 있다. (130, 131면)




25. 1950년대 미국 사회학계는 파슨스를 정점으로 사회의 안정과 균형을 강조했고, 추상적인 사회 이론의 구성에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밀즈는 기존의 이런 사회학이 미국 사회의 현실과 문제점을 분석하지 않고 거대한 이론의 구성이라는 학문적 소명에만 안이하게 머무르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사회학의 비판적이고 폭로적인 역할과 양심적 지식인의 실천적 임무를 강조한 미국 사회학계의 대표적인 비판적 학자였다. (137면)




26. 밀즈의 핵심적 작업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로 신중간 계급과 파워 엘리트에 대한 연구에서 나타나듯이 한 사회의 권력 구조와 권력의 위계 속에서 지배하는 집단과 이에 복종하고 착취당하며 조작되는 집단 사이의 근본적인 대립 관계를 분석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비판적 작업이라는 학문적 소명을 상실한 채 다양화된 통계적 조작 속에서 추상적인 명제만을 확인하는 ‘추상화된 경험주의’와 현실과 유리된 파슨스류의 ‘거대 이론’에 대한 비판 작업이다. 밀즈는 사회학자가 관료적 직업인이 아니라 지적 장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엄격한 절차와 분류 방식에 매달리기보다는 ‘사회학적 상상력’을 사용할 것을 주장하며, 사회에 대한 도덕적, 정치적 관심을 가진 구성원이 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139면)




27. 그러나 밀즈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미국은 점차 진실한 여론을 형성하는 공중이 사라지고 비이성적이고 수동적인 집단이 다수를 이루는 대중 사회로 되어 간다고 지적한다. 민주주의의 핵심으로서 여론과 이를 형성하는 위대한 공중은 이제 미국 사회에서는 허구적인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이다. (145면)




28. 매스 미디어는 파워 엘리트들이 자신들의 이해에 따라 효과적으로 여론을 조작하는 수단이 된다. (145면)




29. 밀즈는 현대 사회의 문제와 위기를 비판하는 동시에 이 같은 위기를 해결해 나가야 할 책임과 사명감을 지식인과 학자에게서 찾는다. (147면)




30. 마르쿠제는 부정성(negation)의 철학에 깊이 빠져 들면서도 끝까지 긍정적 해결안을 망각하지는 않았다. (164면)




31. 마르쿠제의 이 기억이론에는 네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로 초기의 마르쿠제는 하이데거의 실존 철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하이데거의 ‘존재의 망각’이 그 예다. 둘째로 비판이론과의 접목으로, 특히 발터 벤야민의 영향을 받았다. 그 예로 벤야민은 문화 개념을 기억(또는 망각)의 맥락으로 논술했다. 셋째로 마르쿠제의 지적 관심이 미학을 포함한 문화 분석에 있었다. 넷째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사용하여 비판 이론을 구성하고 있다. (16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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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맑스 - 미셸 푸코,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디알로고스총서 1
미셸 푸코.둣치오 뜨롬바도리 지음, 이승철 옮김 / 갈무리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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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처럼 푸코는 공통적이고 집합적인 실천의 가능성을 폐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에 맞선 투쟁이 가지는 일반성은, 권력과 초월적인 가치가 지닌 ‘총체화하는 일반성’의 형태와는 다른 형태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초월적인 가치 즉 도덕과 진리의 문제에 기반해 정치적인 투쟁을 시작하게 되면, 언제나 대의(representation)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권력에 대한 투쟁이 이러한 함정을 피하려면, 권력에서 벗어나고 고정된 주체성을 벗어던지려는 개인들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그리고 그것들 간의 수평적 연계에서 출발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푸코의 정치학에서 드러나는 ‘경험’에 대한 강조는, 권력에 대한 저항이, 아래로부터, 국지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중 ‘위에서’ 진리와 양심의 이름으로 발언하는 ‘보편적 지식인’에 대한 푸코의 경멸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 서 나오는 것이다. (옮긴이서문, 16, 17면)




2. 지식인의 역할은 다른 이들의 정치적 의지를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그 혹은 그녀 자신의 영역에서 분석을 수행하면서, 자명해 보이는 원리들에 대해서 새롭게 질문하고, 행위와 사고의 방식 및 습성을 흔들어 놓으며, 상투적인 믿음을 일소하고, 규칙과 제도들을 새롭게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 그것은 (지식인들이)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행할 것을 요구받는 곳에서, 정치적 의지의 형성에 참여하는 문제입니다. (26면)




3. 살다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인지할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계속적인 관찰과 생각을 해나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 하지만 그렇다면 오늘날 철학 -즉, 철학적 활동-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사고에 대한 사고의 비판 작업이 아니라면, 또 그것이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 대신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철학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철학적 담론이 외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사람들에게 진리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그것을 찾는가를 말해 주려고 할 때, 거기에는 항상 우스운 것이 존재한다. ... (쾌락의 활용의 서론) (27, 28면)




4. 내가 생각한 것들은 결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쓴 책들은 나에게는 가능한 한 풍부하게 하고 싶은 하나의 경험을 구성하기 때문이지요. 경험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이론가이라기보다는 실험가입니다. 나는 다양한 연구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연역적인 체계를 발전시키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바꾸고,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씁니다. (31면)




5. 내가 쓰는 것은, 나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처방전이 될 수 없습니다. (33면)




6. 내가 그들(니체, 바타이유, 블랑쇼, 클로소프스키)에게 끌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체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들을 손에 넣는 데 관심을 기울인 사람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34면)




7. 반대로, 니체, 바타이유, 블량쇼는 경험을 통해 생의 불가능성에 가능한 한 가까이 위치한, 한계 혹은 극한에 놓여진 삶의 지점에 도달하고자 합니다. (35면)




8. 내가 이 저자들로부터 배운 근본적인 교훈은, 이러한 주체 해체 작업, 즉 주체를 그 자체로부터 찢어내는 “한계-경험”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36면)




9. 첫째, 나는 연속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적 배경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나의 모든 책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나의 직접적인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광기, 정신병동, 질병 그리고 심지어 죽음과도 개인적이고, 복잡하며,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 셋째, 경험에서부터 시작하면서도, 개인적인 변환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는 변환과 변형으로서의 길을 열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42, 43면)




10. 나는 “가르침”이라는 용어를 거부합니다. (44면)




11. 하나의 경험은 개인이 홀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순수한 주체성에서 벗어나 타자들이 -그 경험을 정확히 재경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그 경험과 조우하고 그것을 자신들에게 투사해 볼 수 있는 방식을 통해서만, 완벽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44, 45면)




12. 즉, 그 책은 우리를 바꾸는 경험으로 읽어지고 있습니다. 그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같은 상태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며, 이 책을 읽기 전 사물이나 타자들과 맺었던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46면)




13. 한편으로 철학사 교수가 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실존주의와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찾고자 했던 나의 선택은 이러한 지적 풍경 속에서 무르익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바따이유, 블랑쇼와 조우하고, 그들을 통해 니체를 읽을 수 있었지요. (49, 50면)




14. 프랑스의 많은 젊은이들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전면적인 거부 반응을 보였지요. 우리는 다른 세계와 다른 사회를 원할 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나아가, 스스로를 변환하기를 그리고 관계들을 변혁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즉,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했던 헤겔주의, 즉 우리가 대학에서 배웠던 “연속적인” 명료성의 역사 모형을 가진 헤겔주의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명확했습니다. 주체의 우위와 그것의 기본적인 가치를 확고히 유지했던 현상학이나 실존주의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반면에 사람들은 니체에게서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그것은 불연속의 사상, “인간”을 넘어서는 “초인”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따이유에게서 주체가 가진 불가능성의 한계에서 주체가 분해에 이르거나 스스로를 벗어나게 되는 “한계-경험”이라는 주제를 발견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핵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하나의 탈출구, 즉 전통적 철학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51, 52면)




15.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즉, 주체가 유일하게 가능한 실존 형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주체가 자신을 구성하는 관계들과 더 이상 자기-동일성 속에 있을 수 없는, 그런 경험은 없을까요? 그리고 그 결과, 주체가 그 자체와 결별하고, 그 자신과의 관계를 깨뜨리며, 동일성을 상실하도록 만드는 그러한 경험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까? 이러한 경험이 아마도 영원회귀로 나타나는 니체의 경험이 아닐까요? (53면)




16. 알뛰세와 라캉, 그리고 나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난 15년간 “구조주의자‘라고 불려온 우리들 사이에는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이 핵심적인 수렴 지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데카르트로부터 우리 시대까지 프랑스 철학에서 결코 단념하지 않았던 위대하고 근본적인 기본 원리인, 주체의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입니다. (60면)




17. 나의 지적 형성의 핵심적인 지점 중 하나는 과학과 과학사에 대한 성찰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62면)




18. 내가 니체를 읽고 그에 대해 공감한 것이 정확히 이러한 지점에서 연결되었지요. 즉, 내게는 합리성의 역사뿐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에게 그것의 역사가 얼마만큼 진리에 다가갔는가(혹은 그것이 진리로의 접근을 얼마나 방해했는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진리는 담론 혹은 지식이 그 자신과 맺고 있는 특정한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거나 하나의 역사를 가지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보기에 니체의 가장 매혹적인 점은, 그에게는 과학, 실천, 담론의 합리성이, 그것들이 생산할 수 있는 진리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진리 그 자체는 담론의 역사에서 하나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담론과 실천에 내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65면)




19. 나는 미묘하고 인위적인 매커니즘에 따라 모든 사회적 위험들이 완화된, ‘과잉-의료화되어 있는“ 보호 사회인 스웨덴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에서는 전혀 다른 유형의 ”수용“의 매커니즘을 경험했지요. 어떻게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사회를 구체적으로 경험한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당시의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파장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지요. (77면)




20. 이들(구조주의자로 불린 자들)의 연구에는 한 가지 공통점만 있었는데, 그것은 “주체의 우월성”을 이론적으로 확인하는 데 핵심적으로 집중하는 일단의 철학적 정교화나 사고들, 분석들에 대해 반대하고자 했다는 것이었지요. “주체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은, 소외의 개념을 유지하려 애썼던 맑스주의 조류로부터, 살아온 경험에 초점을 맞춘 현상학적 실존주의, 그리고 경험을 인간에게 정합적인 것 -“자아의 경험”이라고 해 두죠-으로 만들겠다는 명목하에 무의식의 테마를 거부했던 심리학 조류들에까지 널리 펴져 있었습니다. (85면)




21. 사실 구조주의 그 자체는 확실히 1960년대의 ‘구조주의자들’이 발견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프랑스의 발명품도 아닙니다. 그것의 진정한 기원은, 1920년대 경 소련과 중부 유럽에서 이루어졌던 전반적인 연구들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86면)




22. 어느 정도 맑스주의적이었던 서클들 -공산당원들이거나 맑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모두, “구조주의” 속에는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구조주의의 실행에는, 전통적인 맑스주의 문화의 조종처럼 들리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예감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맑스주의적이지 않은 좌파 문화가 막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지요. (89면)




23. 사실, 나는 바로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성전화하는 식의 열광에 반대하고자 했습니다. (103면)




24. 그 때(1968년)를 뒤돌아보면서, 나는 당시 막 발생했던 것들이 확실히 그 자신에게 적절한 이론이나 어휘를 가지지 못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07면)




25. 이렇게 새로운 비판적 입장을 정식화하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적절한 어휘들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누구도 우파에서 형성된 어휘들을 사용하길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108면)




26. 내가 프랑크푸르트학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키르히하이머(Otto Kircheimer)가 미국에서 썼던, 처벌의 메커니즘과 형벌 문제에 대한 책(처벌과 사회구조)을 읽은 이후이지요. (114면)




27. 이성의 작동을 통해 자유를 얻겠다는 계몽의 약속은, 반대로 이성 그 자체의 지배로 뒤집혀져 점점 더 자유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없을까요? (115면)




28. 아마도 내가 젊었을 때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접했다면, 나는 완전히 그들에게 매혹되어, 그들의 저서에 주석을 다는 작업 외에는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은 내게는 때늦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들의 작업을 접했을 때, 나는 이미 더 이상 지적인 “발견들”을 행할 나이가 아니었거든요. (117면)




29. 파리에서의 1968년 5월 동안 그리고 그 직후에, 많은 프랑스 지식인들이 학생들의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그것은, 정치와의 관계 설정과 사회적 행동의 가능성 및 한계라는 문제, 즉 “참여”의 문제를 다시금 새롭게 제기하는 경험이었지요. (127면)




30. 사실, 나는 일생 동안 몇몇 사회를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128면)




31. 이 강연(담론의 질서, 1970년 꼴레주 드 프랑스 취임강연)에서 당신은 담론을 통제하는 “배제의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지식과 권력 간의 관계에 대한 좀더 세밀한 연구를 시작했고, 이후 권력이 진리에 행사하는 지배의 문제와 진리에의 의지의 문제는 당신 사상의 새롭고도 중요한 단계를 점하게 되었지요. (138면)




32. ‘광기의 역사’와 ‘임상의학의 탄생’을 쓰면서, 나는 지식의 “계보학적” 역사에 관해 연구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내 연구의 진정한 길잡이는, 바로 이러한 권력의 문제였지요. 궁극적으로, 나는 특정한 제도들이 ‘이성’이나 ‘정상성’의 이름으로 행위, 존재, 실천, 발언의 방식을 확립하고 개인들을 비정상인 혹은 광인으로 낙인찍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들의 집단에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추적하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 결국에, 나는 권력의 역사를 생산하는 작업만을 해왔던 것이지요. (140면)




33. 현대사회에서의 경험에 대해 생각하거나 혹은 내가 수행해 온 연구들을 되돌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권력”의 문제에 부딪히게 딥니다. 이 권력의 문제란, 광기, 의학, 감옥 등등의 문제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들과 권력의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문제로서, 어떠한 이론 체계도 -역사철학도, 일반적인 사회이론 혹은 정치이론에서도- 다루지 못했던 문제입니다. 나는 “권력관계”에 관한 이러한 일단의 아직 불명확한 문제들을 붙잡고 씨름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권력이 설명될 필요가 있는 것이며, ‘권력관계’가 나머지 모든 것들을 설명하는 제일 원리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는 항상 가장 적절하고 일반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점진적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러한 작업의 시작점에 서 있을 뿐입니다. 나는 확실히 이에 관한 작업을 끝마친 것이 아닙니다. (142, 143면)




34. 사람들은 나보고 국지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기는 하지만, 총체적인 문제들에 관한 입장은 제시하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사실, 내가 제기한 문제들은 항상 국지적이고, 특정한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난 다음과 같은 것이 궁금하군요. 예컨대, 그러면 이것과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광기나 정신 병동에 대해 다룰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문제들을 간결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제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가장 특이하고 구체적인 형태 속에서 그것들을 살펴야만 하지 않을까요? (144면)




35.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내게는 사회에 대해 발언해 온 거대담론 중 어느 것도 믿음일 갈만큼 확실해 보이지 않습니다. ... 그리고 나는 지식인들이 학구적이고, 학술적이며, 박식한 연구들로부터 출발해서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지적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는 달리, “비-지식인”과 협력하는 주된 형태 중 하나는, 그들의 문제를 듣고 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정식화하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정신병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신병동에서의 삶은 어떠한가? 간호사의 일은 무엇인가? 병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같은 문제들 말입니다. (144, 145면)




36. 나는 일부러 시민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정치 이론이 주장해 온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론적 대당이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나는 권력의 일반적인 정식이나 기반을 찾기보다는 권력이 행사되고 나타나는 장소 속에서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156면)




37. 자본의 축적이 우리 사회의 핵심적 특징이라면, 지식의 축적 역시 이에 뒤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식의 행사와 생산, 축적은 권력의 매커니즘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157면)




38. 이데올로기 논쟁에 있어 피곤한 것은, 마치 “전쟁 모형”처럼 한 사람이 반드시 상대방을 눌러버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나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이러한 형태들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각자의 이론적 입장이 가진 계보를 살펴본다면, 이론적 입장 자체가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혼란스럽고 변동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170면)




39. 10여 년 간 이어간 맑스주의 “언어”를 향한 열광이 식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어휘를 유통시키고 있었고,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근본적이고 자유의지론적인 열광을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뜨롬바도리 후기) (17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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