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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의 맑스 - 미셸 푸코,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ㅣ 디알로고스총서 1
미셸 푸코.둣치오 뜨롬바도리 지음, 이승철 옮김 / 갈무리 / 2004년 11월
평점 :
1. 이처럼 푸코는 공통적이고 집합적인 실천의 가능성을 폐기하지 않는다. 다만, 그가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에 맞선 투쟁이 가지는 일반성은, 권력과 초월적인 가치가 지닌 ‘총체화하는 일반성’의 형태와는 다른 형태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푸코에 따르면, 만약 우리가 초월적인 가치 즉 도덕과 진리의 문제에 기반해 정치적인 투쟁을 시작하게 되면, 언제나 대의(representation)의 함정에 빠지고 만다. 따라서 권력에 대한 투쟁이 이러한 함정을 피하려면, 권력에서 벗어나고 고정된 주체성을 벗어던지려는 개인들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그리고 그것들 간의 수평적 연계에서 출발해야만 하는 것이다. 결국, 푸코의 정치학에서 드러나는 ‘경험’에 대한 강조는, 권력에 대한 저항이, 아래로부터, 국지적인 것으로부터, 구체적인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함을 지시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중 ‘위에서’ 진리와 양심의 이름으로 발언하는 ‘보편적 지식인’에 대한 푸코의 경멸은, 바로 이러한 문제의식에 서 나오는 것이다. (옮긴이서문, 16, 17면)
2. 지식인의 역할은 다른 이들의 정치적 의지를 만들어내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지식인의 역할은, 그 혹은 그녀 자신의 영역에서 분석을 수행하면서, 자명해 보이는 원리들에 대해서 새롭게 질문하고, 행위와 사고의 방식 및 습성을 흔들어 놓으며, 상투적인 믿음을 일소하고, 규칙과 제도들을 새롭게 파악하는 데 있습니다. ... 그것은 (지식인들이) 시민으로서의 역할을 행할 것을 요구받는 곳에서, 정치적 의지의 형성에 참여하는 문제입니다. (26면)
3. 살다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사람들이 보는 것과 다르게 인지할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아는 것이, 계속적인 관찰과 생각을 해나가는데 있어 꼭 필요한 순간이 있다. ... 하지만 그렇다면 오늘날 철학 -즉, 철학적 활동-이란 무엇인가? 그것이 사고에 대한 사고의 비판 작업이 아니라면, 또 그것이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정당화하는 대신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만큼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오늘날 철학이란 과연 무엇이겠는가? 철학적 담론이 외부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명령하고, 사람들에게 진리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그것을 찾는가를 말해 주려고 할 때, 거기에는 항상 우스운 것이 존재한다. ... (쾌락의 활용의 서론) (27, 28면)
4. 내가 생각한 것들은 결코 같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쓴 책들은 나에게는 가능한 한 풍부하게 하고 싶은 하나의 경험을 구성하기 때문이지요. 경험은 변화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 이러한 의미에서, 나는 이론가이라기보다는 실험가입니다. 나는 다양한 연구 분야에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연역적인 체계를 발전시키지 않습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나 자신을 바꾸고, 이전과 같이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책을 씁니다. (31면)
5. 내가 쓰는 것은, 나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떠한 처방전이 될 수 없습니다. (33면)
6. 내가 그들(니체, 바타이유, 블랑쇼, 클로소프스키)에게 끌렸던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이 체계를 구축하는 데 관심을 보인 사람들이 아니라, 직접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들을 손에 넣는 데 관심을 기울인 사람들이라는 점이었습니다. (34면)
7. 반대로, 니체, 바타이유, 블량쇼는 경험을 통해 생의 불가능성에 가능한 한 가까이 위치한, 한계 혹은 극한에 놓여진 삶의 지점에 도달하고자 합니다. (35면)
8. 내가 이 저자들로부터 배운 근본적인 교훈은, 이러한 주체 해체 작업, 즉 주체를 그 자체로부터 찢어내는 “한계-경험”이라는 생각이었습니다. (36면)
9. 첫째, 나는 연속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적 배경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둘째, 나의 모든 책은 -적어도 부분적으로라도- 나의 직접적인 경험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나는 광기, 정신병동, 질병 그리고 심지어 죽음과도 개인적이고, 복잡하며, 직접적인 관계를 맺었습니다. ... 셋째, 경험에서부터 시작하면서도, 개인적인 변환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도 접근할 수 있는 변환과 변형으로서의 길을 열어갈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42, 43면)
10. 나는 “가르침”이라는 용어를 거부합니다. (44면)
11. 하나의 경험은 개인이 홀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순수한 주체성에서 벗어나 타자들이 -그 경험을 정확히 재경험해야 한다고 이야기하지는 않겠습니다만, 적어도- 그 경험과 조우하고 그것을 자신들에게 투사해 볼 수 있는 방식을 통해서만, 완벽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44, 45면)
12. 즉, 그 책은 우리를 바꾸는 경험으로 읽어지고 있습니다. 그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항상 같은 상태로 존재하지 못하게 하며, 이 책을 읽기 전 사물이나 타자들과 맺었던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46면)
13. 한편으로 철학사 교수가 되지 않고, 다른 한편으로 실존주의와 전혀 다른 무엇인가를 찾고자 했던 나의 선택은 이러한 지적 풍경 속에서 무르익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바따이유, 블랑쇼와 조우하고, 그들을 통해 니체를 읽을 수 있었지요. (49, 50면)
14. 프랑스의 많은 젊은이들은 이 모든 것들에 대해서 전면적인 거부 반응을 보였지요. 우리는 다른 세계와 다른 사회를 원할 뿐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나아가, 스스로를 변환하기를 그리고 관계들을 변혁함으로써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다. 즉,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기를 원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 이야기했던 헤겔주의, 즉 우리가 대학에서 배웠던 “연속적인” 명료성의 역사 모형을 가진 헤겔주의가, 우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명확했습니다. 주체의 우위와 그것의 기본적인 가치를 확고히 유지했던 현상학이나 실존주의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반면에 사람들은 니체에게서 무엇을 발견했을까요? 그것은 불연속의 사상, “인간”을 넘어서는 “초인”의 선언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바따이유에게서 주체가 가진 불가능성의 한계에서 주체가 분해에 이르거나 스스로를 벗어나게 되는 “한계-경험”이라는 주제를 발견했습니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핵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그것은 하나의 탈출구, 즉 전통적 철학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기회였습니다. (51, 52면)
15. 그러나 나는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즉, 주체가 유일하게 가능한 실존 형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주체가 자신을 구성하는 관계들과 더 이상 자기-동일성 속에 있을 수 없는, 그런 경험은 없을까요? 그리고 그 결과, 주체가 그 자체와 결별하고, 그 자신과의 관계를 깨뜨리며, 동일성을 상실하도록 만드는 그러한 경험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까? 이러한 경험이 아마도 영원회귀로 나타나는 니체의 경험이 아닐까요? (53면)
16. 알뛰세와 라캉, 그리고 나 자신은 구조주의자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지난 15년간 “구조주의자‘라고 불려온 우리들 사이에는 공통적인 것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이 핵심적인 수렴 지점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데카르트로부터 우리 시대까지 프랑스 철학에서 결코 단념하지 않았던 위대하고 근본적인 기본 원리인, 주체의 문제에 이의를 제기했다는 점입니다. (60면)
17. 나의 지적 형성의 핵심적인 지점 중 하나는 과학과 과학사에 대한 성찰에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62면)
18. 내가 니체를 읽고 그에 대해 공감한 것이 정확히 이러한 지점에서 연결되었지요. 즉, 내게는 합리성의 역사뿐 아니라 진리 그 자체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학에게 그것의 역사가 얼마만큼 진리에 다가갔는가(혹은 그것이 진리로의 접근을 얼마나 방해했는가)를 물을 것이 아니라, 진리는 담론 혹은 지식이 그 자신과 맺고 있는 특정한 관계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관계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가 되거나 하나의 역사를 가지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보기에 니체의 가장 매혹적인 점은, 그에게는 과학, 실천, 담론의 합리성이, 그것들이 생산할 수 있는 진리에 의해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진리 그 자체는 담론의 역사에서 하나의 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형태로든 담론과 실천에 내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65면)
19. 나는 미묘하고 인위적인 매커니즘에 따라 모든 사회적 위험들이 완화된, ‘과잉-의료화되어 있는“ 보호 사회인 스웨덴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폴란드에서는 전혀 다른 유형의 ”수용“의 매커니즘을 경험했지요. 어떻게 두 가지 다른 형태의 사회를 구체적으로 경험한 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당시의 프랑스와는 전혀 다른 파장 속에 존재하는 것이었지요. (77면)
20. 이들(구조주의자로 불린 자들)의 연구에는 한 가지 공통점만 있었는데, 그것은 “주체의 우월성”을 이론적으로 확인하는 데 핵심적으로 집중하는 일단의 철학적 정교화나 사고들, 분석들에 대해 반대하고자 했다는 것이었지요. “주체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은, 소외의 개념을 유지하려 애썼던 맑스주의 조류로부터, 살아온 경험에 초점을 맞춘 현상학적 실존주의, 그리고 경험을 인간에게 정합적인 것 -“자아의 경험”이라고 해 두죠-으로 만들겠다는 명목하에 무의식의 테마를 거부했던 심리학 조류들에까지 널리 펴져 있었습니다. (85면)
21. 사실 구조주의 그 자체는 확실히 1960년대의 ‘구조주의자들’이 발견한 것도 아니고, 심지어 프랑스의 발명품도 아닙니다. 그것의 진정한 기원은, 1920년대 경 소련과 중부 유럽에서 이루어졌던 전반적인 연구들 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86면)
22. 어느 정도 맑스주의적이었던 서클들 -공산당원들이거나 맑스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들-은 모두, “구조주의” 속에는 그리고 프랑스에서의 구조주의의 실행에는, 전통적인 맑스주의 문화의 조종처럼 들리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예감했음에 틀림없습니다. 맑스주의적이지 않은 좌파 문화가 막 나타나고 있었던 것이지요. (89면)
23. 사실, 나는 바로 맑스의 정치경제학을 성전화하는 식의 열광에 반대하고자 했습니다. (103면)
24. 그 때(1968년)를 뒤돌아보면서, 나는 당시 막 발생했던 것들이 확실히 그 자신에게 적절한 이론이나 어휘를 가지지 못했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107면)
25. 이렇게 새로운 비판적 입장을 정식화하는 것은, 확실히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적절한 어휘들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한편으론 누구도 우파에서 형성된 어휘들을 사용하길 원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지요. (108면)
26. 내가 프랑크푸르트학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키르히하이머(Otto Kircheimer)가 미국에서 썼던, 처벌의 메커니즘과 형벌 문제에 대한 책(처벌과 사회구조)을 읽은 이후이지요. (114면)
27. 이성의 작동을 통해 자유를 얻겠다는 계몽의 약속은, 반대로 이성 그 자체의 지배로 뒤집혀져 점점 더 자유로부터 멀어지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없을까요? (115면)
28. 아마도 내가 젊었을 때 프랑크푸르트학파를 접했다면, 나는 완전히 그들에게 매혹되어, 그들의 저서에 주석을 다는 작업 외에는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영향은 내게는 때늦은 것이었습니다. 내가 그들의 작업을 접했을 때, 나는 이미 더 이상 지적인 “발견들”을 행할 나이가 아니었거든요. (117면)
29. 파리에서의 1968년 5월 동안 그리고 그 직후에, 많은 프랑스 지식인들이 학생들의 투쟁에 동참했습니다. 그것은, 정치와의 관계 설정과 사회적 행동의 가능성 및 한계라는 문제, 즉 “참여”의 문제를 다시금 새롭게 제기하는 경험이었지요. (127면)
30. 사실, 나는 일생 동안 몇몇 사회를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누렸습니다. (128면)
31. 이 강연(담론의 질서, 1970년 꼴레주 드 프랑스 취임강연)에서 당신은 담론을 통제하는 “배제의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지식과 권력 간의 관계에 대한 좀더 세밀한 연구를 시작했고, 이후 권력이 진리에 행사하는 지배의 문제와 진리에의 의지의 문제는 당신 사상의 새롭고도 중요한 단계를 점하게 되었지요. (138면)
32. ‘광기의 역사’와 ‘임상의학의 탄생’을 쓰면서, 나는 지식의 “계보학적” 역사에 관해 연구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내 연구의 진정한 길잡이는, 바로 이러한 권력의 문제였지요. 궁극적으로, 나는 특정한 제도들이 ‘이성’이나 ‘정상성’의 이름으로 행위, 존재, 실천, 발언의 방식을 확립하고 개인들을 비정상인 혹은 광인으로 낙인찍음으로써, 결과적으로 개인들의 집단에 권력을 행사하는 방식을 추적하기 위해 노력해 왔을 뿐입니다. 결국에, 나는 권력의 역사를 생산하는 작업만을 해왔던 것이지요. (140면)
33. 현대사회에서의 경험에 대해 생각하거나 혹은 내가 수행해 온 연구들을 되돌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권력”의 문제에 부딪히게 딥니다. 이 권력의 문제란, 광기, 의학, 감옥 등등의 문제 속에서 작동하는 권력관계들과 권력의 매커니즘을 설명하는 문제로서, 어떠한 이론 체계도 -역사철학도, 일반적인 사회이론 혹은 정치이론에서도- 다루지 못했던 문제입니다. 나는 “권력관계”에 관한 이러한 일단의 아직 불명확한 문제들을 붙잡고 씨름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권력이 설명될 필요가 있는 것이며, ‘권력관계’가 나머지 모든 것들을 설명하는 제일 원리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나는 항상 가장 적절하고 일반적인 설명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하여, 점진적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했지요. 그러나 나는 여전히 이러한 작업의 시작점에 서 있을 뿐입니다. 나는 확실히 이에 관한 작업을 끝마친 것이 아닙니다. (142, 143면)
34. 사람들은 나보고 국지적인 문제들을 제기하기는 하지만, 총체적인 문제들에 관한 입장은 제시하지 않는다고 말하지요. 사실, 내가 제기한 문제들은 항상 국지적이고, 특정한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난 다음과 같은 것이 궁금하군요. 예컨대, 그러면 이것과는 다른 어떤 방식으로 광기나 정신 병동에 대해 다룰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문제들을 간결하고 정확한 방식으로 제기하고자 한다면, 우리는 가장 특이하고 구체적인 형태 속에서 그것들을 살펴야만 하지 않을까요? (144면)
35.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내게는 사회에 대해 발언해 온 거대담론 중 어느 것도 믿음일 갈만큼 확실해 보이지 않습니다. ... 그리고 나는 지식인들이 학구적이고, 학술적이며, 박식한 연구들로부터 출발해서는, 그들이 살고 있는 사회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지적해 낼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와는 달리, “비-지식인”과 협력하는 주된 형태 중 하나는, 그들의 문제를 듣고 그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정식화하는 데 있습니다. (예컨대) 정신병자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신병동에서의 삶은 어떠한가? 간호사의 일은 무엇인가? 병자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같은 문제들 말입니다. (144, 145면)
36. 나는 일부러 시민사회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전통적인 정치 이론이 주장해 온 국가와 시민사회의 이론적 대당이 그다지 유용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나는 권력의 일반적인 정식이나 기반을 찾기보다는 권력이 행사되고 나타나는 장소 속에서 그것을 이해함으로써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156면)
37. 자본의 축적이 우리 사회의 핵심적 특징이라면, 지식의 축적 역시 이에 뒤지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식의 행사와 생산, 축적은 권력의 매커니즘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157면)
38. 이데올로기 논쟁에 있어 피곤한 것은, 마치 “전쟁 모형”처럼 한 사람이 반드시 상대방을 눌러버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나는 이데올로기 투쟁의 이러한 형태들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각자의 이론적 입장이 가진 계보를 살펴본다면, 이론적 입장 자체가 항상은 아니지만 종종 혼란스럽고 변동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170면)
39. 10여 년 간 이어간 맑스주의 “언어”를 향한 열광이 식은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의 어휘를 유통시키고 있었고, “권력의 미시-물리학”은 근본적이고 자유의지론적인 열광을 대변하는 용어가 되었다. (뜨롬바도리 후기) (17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