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숲속의 올빼미
고이케 마리코 지음, 정영희 옮김 / 시공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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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부부가 살았던 일본의 시골 공간의 이야기를 담은 이야기가 주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작가인 남편을 암으로 잃고 난 후에 작가인 부인이 남편을 생각하며 작성한 글 50여편의 이야기 수록된 글이었습니다. 가족의 죽음을 맞이한 후에 남겨진 자의 생활을 엿 볼 수 있었습니다.

기억은 버릴수가 없다.

버렸다고 생각해도 뜻하지 않은 곳에서 고개를 불쑥 내민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 P50 중에서

주변 지인의 죽음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 깊은 공허함이 오랫동안 남아있지 않을까요? 아주 가까운 그리고 평생을 함께한 부부의 이야기를 함께 함께 하면서 마지막에 그 어떤 죽음도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하는 슬픔에 젖어들고 그리워 하게 되고 미친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는 등의 일상생활속에서 그가 함께 하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 잃은 슬픔의 애도라고 생각하고 싶어졌습니다. 남겨진 사람이 작가이기에 그 슬픔의 표현이 글로 남겨질 수 있어서 행복한 일이 아닌가 했어요. 남편에 대한 사랑과 오랫동안 함께 했던 흔적을 서서히 지워나가는 일상을 보면서 글로써 추도와 애도를 할 수 있어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듯 합니다.

언제였던가, 의사인 친구가 재밌는 말을 했다.

남편이 죽고, 내 어딘가에 '마리코 극장'이 문을 연 것 아니냐며.

관객도 마리코 혼자, 무대 위 연기자도 마리코 혼자.

매일 마리코가 무대에 올라 어떤 날의 기억을 재현시키면

관객석의 마리코가 그것을 보며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고,

때로는 화를 내고, 그러고 있는 거 아니냐며.

질려서 그만두고 싶을 때까지 계속해도 된다고 했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 P95 중에서

1952년생의 작가는 부부가 나란히 수상을 한 작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1952년생이면 올해나이로 71세입니다. 현업 작가이신 고이케 마리코의 글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의 이야기부터 현재의 남편과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한가지 궁금한 부분이 생겼는데요. 작가님이 작고 하시면 이런 글을 남겨줄 자녀가 있을까 싶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소원함이 생기지 않으실지에 대한 궁금증이었습니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가 남편을 추모하며 쓴 글이 사람들의 가슴에 그를 더욱 기억하게 만든 이야기의 책이었다면 작가님을 기억하며 누군가 남겨주는 것이 필요해 보이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그저 떠난 사람을 그리워 하는 누군가가 작가님 곁에 있나 하는 걱정이 생겼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동물 병원의 작은 진료실에도, 암 병동의 진료실에도,

방심하는 순간, 만면에 얄궂은 미소를 띠고 슬금슬금

다가오는 사신이 있다. 나에게 남편의 투병이란

그 사신과 싸우는 일이었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 P174 중에서

시골집에서 부부가 각자의 서재에서 글을 쓰는 활동을 하면서 산속 동물들이 내려와 얼굴을 비추고 노랑할미새가 둥지를 틀고 고양이의 빗어서 생긴 털을 창가에 놓아두면 새들이 둥지를 틀때 활용하고 원숭이 무리들이 지나가고 꼬리털이 포근하게 보이는 여우가 내려와 던져놓은 호두를 먹고 가고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라 제설기로 눈을 치우는 모습들을 연상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시골생활의 여유로움을 공감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좋은 글을 남겨주는 작가님으로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늙고 쇠약해져 가는 존재, 죽음을 향해가는 존재의 손을 잡고 온기를 나워 주던 나의 두 손. 바로 그 손으로 사랑하는 존재를 껴안고, 음식을 만들고, 자판을 두드리고, 코를 풀고, 눈물을 훔친다.

<달밤 숲속의 올빼미> P13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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