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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사랑하기로 했다 - 지금 사랑이 힘든 사람을 위한 심리학 편지
권희경 지음 / 홍익 / 2020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남편과 결혼한 지 햇수로 9년 차. 권태기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저 사람이 왜 저럴까, 지금 일부러 저는 건가, 이 상황에서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거지?' 등등 여러 의문이 쌓여갔다. 해결되지 못한 숱한 의문들은 관계의 틈을 벌려 놓았고. 대화도 시도해 보고 책도 들여다봤지만 뭐가 문제인지 근본적으로 해결된다는 느낌보단 더 나빠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나도 모르겠는데, 네 속을 어찌 알겠냐 싶은 포기하는 마음도 생겼다. 계속 같은 불만이 쌓여갔고, 대화는 빙빙 돌았고, 해결은 되지 않았고, 감정은 상해만 갔다. 내가 이러려고 남편을 선택한 게 아닌데, 이렇게 살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싶었다. 불행이란 불행은 다 내 몫인 것처럼 우울하고 짜증 나고. 그런 일상들은 내 삶에 득 될 리 없었고, 나를 갉아먹고 있는 듯했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접한 이 책은 무조건 읽어야 할 책이었다. 부부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 정신과 상담을 받아봐야 하나 하던 찰나. 이 책은 어려운 발걸음을 돌려 내가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해주는 책이었다.
우선 이 책은 각각 개별의 사연을 소개해 주고 있다. 이상하게도 사연 속 등장하는 인물들에게서 내 모습이 다 보인다. 열등감, 자존감, 집착, 분노, 희생 등등 나에게 없는 면이 없었다. 그러다 보디 더 집중해서 읽을 수 있었고. 더불어 나의 모습을 객관화시켜 보다 보니 어떤 부분이 문제인지, 어떻게 접근하면 해결할 수 있을지까지 보였다. 읽으면서 내가 상담을 받고 있는 느낌도 들었다. 내 속에 있던 이야기들, 내가 겉으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와 닮은 누군가가 꺼내 놓은 것 같은 기분. 처음엔 연애와 결혼에 얽힌 사연들이다 보니 그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읽혔지만 읽을수록 꼭 남녀관계나 연애, 결혼에 국한시키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내용들이었다. 인간관계 전반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 전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니.

읽으면서 공감되는 구절이 많았다. 나 자신을 돌아보니 나는 남편에게 무조건적이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주지도 표현하지도 않으면서 남편에게는 무조건적이고 변하지 않는 사랑을 원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남편에게 분노하고 실망하고 상처받고 하는 모든 과정에서 어쩌면 나를 아프게 하는 건 나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것도. 그리고 내가 왜 변치 않는 사랑은 갈구하는지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변치 않는 사랑은 상대방이 아닌 자기 의지에서부터 출발해요. 파트너가 때론 섭섭하게 해도 그리고 좀 부족해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랑하겠다는 자기 마음이 더 중요해요. 애정에 대한 믿음은 같이 키우고 쌓아가는 거잖아요. 한쪽에서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쌓이지 않아요. 또 그렇다고 서로 아무리 사랑했어도 변치 않는 사랑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요. 너무나도 많은 변수로 마음은 늘 변할 수 있으니까요.
이미 완성된 영원불변의 사랑은 세상에 없을지도 몰라요. 변치 않는 사랑은 미리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같이 만들어가는 게 아닐까요?
p.36
다른 사람의 어떤 태도나 행동보다 내 마음의 기준, 내 마음의 방향이 더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으며, 남편을 대하는 내 태도와 감정을 돌아보니 남편의 잘못보단 나의 잘못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내 손에 달린 것일 테다. 남편과 함께는 아니지만 혼자라도 어떤 상담을 받은 듯한 결과를 안겨 준 고마운 책. 덕분에 조금 더 사랑 넘치는 가정을, 내 삶을 꾸릴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