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태어나줘서 고마워 -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 두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의사의 기록
오수영 지음 / 다른 / 2020년 5월
평점 :

2014년. 39주 1일에 자연분만으로 첫째 아이를 낳았다. 저 때 내 나이 서른이었다. 적지 않은 나이인데(지금 보면 아주 어린 나이지만) 어떻게 그렇게 임신과 출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을까. 나는 너무 무지하게도 결혼을 했으니 임신을 했고 임신을 했으니 아이를 낳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게 자연스럽고,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는 길이라고. 그래서 나 또한 그 길로 갈 것이라고. 어떻게 저렇게 단순무식할 수 있지? 지금 돌아보면 놀라울 지경이다. 24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를 낳는 순간에서야 어렴풋이 알았다. 출산이 생사를 오가는 일이라는 것을. 그리고 건강한 아이 또한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햇수로 7년이 지난 지금, 둘째를 만나기 위해 난임병원에 다니고 있다. 첫째 때와 여러 상황이 많이 다르다. 첫째 때는 동네 산부인과를 다니며 그저 마냥 신기할 뿐이었고, 산부인과에서 만나는 수많은 임산부가 그저 나와 같은 임산부일 뿐이었다. 그들도 만삭에 건강한 아이를 낳을 것이고 나 또한 만삭에 건강한 아이를 낳겠지. 이슈라고 자연분만이 될까 제왕절개가 될까 그 정도였다. 난임병원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어찌 됐든 의료기술의 도움이 있어야만 임신이 가능한 사람도 있고, 임신은 자연적으로 가능하나 유지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도 있고, 염색체나 유전적 요인 때문에 시험관을 진행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마주치는 임산부들은 '그저 임산부'가 아니라. 각자가 각자의 무게를 묵묵히 짊어진 채 아이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로 위대한 존재로 보인다. 여러 호르몬 주사와 수술들, 처방들을 이겨내고 아이를 품길 희망하거나 품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이 책은 삼성서울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그동안 만난 고위험 임산부와 아기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은 책이다. 여러 특수한 경우부터 흔하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경우까지 각각의 에피소드 안에 여러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아이를 낳은 것이 평범한 일이 아니었구나, 내 아이의 생명이 그렇게 쉽게 나에게 온 것은 아니었구나, 더불어 나 또한 이 세상에 쉽사리 던져진 게 아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여러 육아서를 읽지만, 가끔은 이런 에세이 하나가 더 큰 울림과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매일 보고 매일 어루만지는 내 아이가 내 눈앞에 있다는 것 자체로 감사하고 복받은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조금 더 위험해진 지금 둘째 아이를 기다리며 읽으니 감회가 더 새로웠다. 이렇게 다양한 이슈가 생길 수 있는 임신을 내가 또 할 수 있을까, 건강히 유지해서 잘 낳을 수 있을까 두려우면서도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부부의 모습을 보니 나 또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을 것도 같았다.
최근 슬기로운 의사 생활이란 드라마를 재미있게 봤다. 차갑고 냉철하고 약간은 기계적인 것 같아 보이는 의사들의 이면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달까. 슬의생의 여파로 유 퀴즈 온 더 블록에서 병원에 찾아가 여러 의사선생님들을 인터뷰한 것도 흥미롭게 봤다. 그중 산부인과 레지던트 3년 차 여자 선생님께서 왜 산부인과를 선택했냐는 물음에 산모와 아이, 두 개의 생명을 지켜내는 부분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답하셨다. 그렇다. 산부인과 의사의 손에는 두 생명이 달려있는 것이다. 어느 한 쪽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도 있을 것이고, 어떤 결정이 보다 최선일지 결정해야 하는 상황도 숱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나 산모와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고 움직이는 저자의 모습에 뵌 적도 없는 내가 신뢰가 쌓일 정도였다. 그만큼 마음 따듯하고 침착하며 능력 있는 분이시란 뜻이겠지. 똑똑한 사람이 글도 잘 쓰나 보다. 쉽게 읽혔다. 쉽게 읽히면서도 마음엔 무겁게 남는 그런 책. 비슷한 상황이라 더 공감하며 읽을 수 있어 뜻깊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