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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문학상 수상작품집 : 2009-2018
신수원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19년 3월
평점 :
감수성 혹은 공감이란 말에 대한 피곤함을 나는 느끼고 있다. 감수성과 공감에 호소하는 사람들은 안희정 재판은 판사가 젠더감수성이 없느냐 있느냐의 차이라고 이야기 하거나, 세월호 유가족들이 요구하는 특조위에 반대하는 것은 “당신이 유족에게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수도 없이 한다. 물론, 해당 문제들에 관해 감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것은 분명하나 공감과 감수성을 당위로 삼아 정치적으로 동원하려는 모습들은 언제나 반감을 살 수 있으며 실제로 그렇기도 하다. 자의건 타의건 시시각각 변하는 사건의 흐름을 정면으로 맞으며 이를 처리해야 하는 현대 사람들에게 진득하니 한 사건을 바라보고 거기에 대한 꾸준한 연대를 요구하는 것은 타인을 피곤하게 만드는 행위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리고 나 같은 경우에는 감수성과 공감은 딱히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나의 생활 패턴 자체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과 감수성이 묻어나는 부분은 거의 없다. 독서 패턴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읽지 않고, 사회과학 책만 읽는다.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관심만 가지니,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처한 상황은 자잘해 보이고, 별 볼일 없는 외침처럼 보일 때가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피로감이 쌓이다보면 귀는 저절로 막히고, 관심 또한 풍화된다.
그러던 어느 날. 표지가 이쁜 책 하나가 페이스북에 떴다. 책을 좋아하는 나는 이 이쁜 책의 표지를 보고 바로 서평단 신청을 했다. 솔직히 책 내용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대충 둘러보고 ‘증정’마크를 지운 뒤, 알라딘에 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야지 사회과학 책을 더 많이 사 읽을 수 있지 않겠나. 하지만 뜻밖의 별견이라는 것은 언제나 뜻밖의 순간에 찾아오는 법. 시험 준비로 지쳐 있고, 딱히 사회 과학책도 안 읽히고, 다운받아 놓은 드라마도 모두 소진되자 나는 새로운 읽을거리를 찾았다. 그때 갑자기 이 책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단편 소설들이 많으니 1편만 읽어보자!”라는 생각으로 책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서점에 가면 베스트셀러 코너에 있을 법한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지 않다.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처럼 환상적인 배경으로 우리를 매료하지도 않고, ‘꼴깍’하는 침 넘기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극한의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이야기들도 아니다. 이야기의 주제들은 우리 주위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것들이다.
하지만 뜻밖이라면 뜻밖이라고나 할까. 무엇 하나도 베스트셀러 축에 낄 수 없을 것 같은 이 책에 있는 이야기들의 경쟁력은 평범함에 있었다. 평범하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평범한 문제들에 대한 서사는 큰 어려움 없이 해당 글에서 제시하는 문제의식에 공감하게 만들었고, 과연 해당 문제를 주인공이 어떻게 끝낼지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총각슈퍼 올림>을 읽으면서 대형마트의 등장 및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응해 총각슈퍼 처녀가 어떻게 이 문제를 풀지 궁금했다. <상인들>을 읽으면서는 주인공이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으며, 누드모델을 하면서 어떤 상황과 마주하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전광판 인간>을 읽으면서는 휠체어가 경사진 도로로 밀렸을 때, 주인공이 과연 죽을지 말지가 걱정됐고, 자신을 떠민 사람에 대하여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했다. 물론 떠민 사람 또한 왜 떠 밀었는지 그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평범한 이야기라고 해서 긴장감이 없는 것도 아니었고, 우리 사회의 문제를 고발할 수 없는 것 또한 아니었다. 어쩌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서사와 배경이어서 공감의 여지가 넓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SF판타지와 같은 장르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이 책에 있는 여러 이야기들은 인스턴트식 공감이 아닌 푸짐한 시골 밥상을 먹는 듯한 공감을 안겨주었다.
특히, 각각의 이야기들이 담고 있는 사회문제을 서사를 만들어서 자연스럽게 전한 부분이 나는 좋았던 것 같다. <총각슈퍼 올림>은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춘향이 노래방>은 젠더 문제를 <상인들>은 누드 모델이 겪는 다층적인 상황 등(솔직히 가장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긴 한데, 메시지가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약간 알쏭달쏭하다) <오리 날다>에서는 고공농성을 하는 여성 노동자 문제를, <벌레>는 빈공한 청년 고시생의 나날을. 이 책 속의 여러 이야기들은 그동안 신문과 방송 리포트를 통해 딱딱하게 전달되던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개연성있게 잘 풀어내고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 단순한 주장만이 아니라, 해당 사회 문제들을 다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 것이 나는 너무 좋았다. 사회 문제에 대한 메시지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지만 각각의 서사 속에 선명한 사회적 메시지들을 품고 있어 저자가 하고 싶은 말 또한 명확히 보였다. (물론, 재미는 있었지만 <사탕을 줄게>처럼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뚜렷이 모르겠는 것 또한 있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문제 의식 전달 방법은 뭔가 호명적으로 요구되던 감수성과 공감이 아닌, 읽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성찰하고 감수성이 어떤 것인지 깨닫게 해주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하면서 다른 책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좀 그렇긴 하지만 노골적으로 그리고 딱딱하게 메시지를 전하는 <82년생 김지영>과는 완전히 다르다. 자신의 주변과 자기 자신의 삶을 성찰하게 만들고 감수성과 공감이 무엇인지 경험하게 만든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곳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어서 그런 지 사실적인 면이 읽는 것도 있지만, 그동안 사실 또한 믿으려 하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그들이 믿지 못했던 내밀한 우리 주변의 분위기를 그려주며 연대의 시발점이 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책이 아닐까 싶다. 공감과 감수성을 연대를 위한 도구가 아닌, 그 자체를 이 책에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맙다 잘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