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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여행한 식물들
카티아 아스타피에프 지음, 권지현 옮김 / 돌배나무 / 2021년 3월
평점 :
식물은 정적이기에 전혀 스펙타클함 같은 게 없을 줄 알았다. 성장에서부터 소리없는 녀석들에게서 동적인 스펙타클함을 느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식물 자체는 정적이고 소리가 없을지라도, 식물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언제나 동적이었다. 한 곳에서의 식물들이 동물에게 모두 먹히면, 동물들은 이동할 수밖에 없어진다. 사람이라고 그렇게 다르지 않다. 인류사에서 가장 스펙타클했던 시기는 이른바 제국주의 열강들이 싸우던 때였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특정 구역에서 나는 식물들을 확보하기 위해서 전쟁을 벌이고, 교역료를 만들었으며, 같은 사람들을 착취했다. 과거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황금 삼각지대와 같은 곳에서 마약을 지배해 사회로 유통하는 일 또한 있다. 이즈음 되면 과연 우리는 식물이 정적이기만 한 것인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세계를 여행한 식물들
당신은 병이성이라는 말을 똑똑히 읽었다. 그렇다고 거대한 돌연변이 딸기 괴물의 공격을 상상하지 말라. 뒤셴은 겨우 열아홉 살에 이미 선견지명이 있었다. 그는 종이 반드시 불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선구자였다. 창조론자들이여, 지금은 자명한 이 개념이 그렇게 최근의 것도 아니라는 걸 기억하시라. 뒤셴은 린네에게 표본을 보냈고 린네는 이를 잎이 1개인 새로운 종으로 보고 프라가리아 모노필라 라고 명명했다. 위대한 자연학자였던 린네가 작은 실수를 했다는 점은 당연히 용서해야 할 것이다. 한편 그는 젊은 뒤셴을 입에 마르도록 칭찬했다. - 55pp
식물학자로서 활동을 이어가던 사라쟁은 캐나다의 식물 목록을 작성하는 데 20년을 보냈으며 프랑스에 있는 동료들에게 표본과 보고서, 논문을 정기적으로 보냈다. 또 캐나다에서 해당 식물을 어떤 약재로 쓰는지 설명도 덧붙일 때가 많았다. - 93pp
사라쟁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면, 그는 1704년에 보냈던 첫 번째 표본과 중국의 인삼이 같은 것이라고는 금방 깨닫지 못했다고 차후에 인정했다. 그는 캐나다 임삼이 아랄리아일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는 인삼의 놀라운 효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1717년 11월 5일 왕의 도서관 사서였던 비뇽 사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왕의 정원에 심을 인삼 뿌리를 보냅니다. 비양 선생에게 부탁해서 말린 뿌리를 보내라고 했습니다. 노인은 젊어지고 아직 젊은 사람은 그 젊음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 103pp
테베는 이탈리아, 팔레스타인, 소아시아를 여행하고 신이 나서 돌아왔다. 돌아온 그에게 행운의 여신이 웃어 주었다. 대규모 여행이 기획 중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왕 앙리 2세가 군인이자 탐험가인 니콜라 뒤랑 드 빌가뇽을 브라질 식민지로 파견하기로 한 것이다. 순진한 수도사 테베도 빌가뇽과 함께 남아메리카로 떠나는 배에 올랐다. - 135pp
식물은 과연 동적인 것이기만 한 것일까.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들의 식물에 대한 집작을 상당히 느낄 수 있었다. 특정한 식물을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탐욕과, 전쟁 그리고 사람이 사람을 속이는 일까지. 이 책은 식물이란 조용한 것을 이야기하면서, 인간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문제를 그린 문화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단순히 몇몇 식물들이 어떻게 수출 되었는지, 그 식물들의 전파 정도만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을 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식물 하나가 퍼지는데 있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간의 교류와 사람간의 역학관계 그리고 당대의 사회상과 식물이 갖고 있는 한계의 문제가 얽혀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조용한 책이고, 잠시 읽게 될 책이라 생각을 했으나, 꾀나 소란스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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