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 아래서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2
헤르만 헤세 지음, 한미희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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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헤르만 헤세

 

<수레바퀴 주변에서 들리는 신음소리>

   

p119. “그럼, 그래야지. 친구, 아무튼 지치면 안 되네.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고 말 테니까.”

   

소설 속 주인공인 한스 기벤라트는 결국 수레바퀴에 깔리고 말았다. 그리고 죽음과 마주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우리는 무엇이 한스를 죽음에 이르게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교장이 한스에게 했던 ‘수레바퀴’의 의미와 한스가 왜 자신의 길에서 이탈을 되었는지를 알아야 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수레바퀴’가 경주마에게 씌운 ‘눈가리개’와 같다고 생각을 했다. 눈가리개는 말에게 앞만 보게 하는 역할을 한다. 한정된 시각에 놓이게 된 말은 위협적인 상황에 노출이 되면, 주인의 채찍질의 방향과 세기에 따라 주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하고, 더 빠르게 달리는 역할에 간접적으로 기여를 한다. 여기서 생각해 볼 것은 ‘말의 의지’이다. 말의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 보면, 눈가리개는 자신의 의지에 의해서 시각의 범위를 한정 시킨 것이 아니고, 사람(타인)에 의해서 좁은 시야만 보여 지도록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타인이 휘두르는 채찍질에 의해서 말은 불안감과 두려운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게 한다. 그로 인하여 남보다 더 빠르게, 남보다 한 발자국 더 앞서 나가게 한다.

   

말에게 눈가리개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거세시킨 도구’인 것이다. 즉 타인에게 자신의 생각, 판단, 움직임에 대한 권한을 본인 스스로 양도한 것이다. 그렇다면 소설 속 ‘수레바퀴’의 의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속삭일 것이다. ‘자신의 자유의지를 스스로 제거 할수록 수레바퀴는 더욱 더 빨리 돌아갈 것이며, 그로 인하여 너는 모든 사람들이 선망하는 사람이 될 것이야. 하지만 자유의지를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으면, 너는 수레바퀴 아래에 깔린 벌레처럼 될 것이야.’ 라고 말이다.

   

이제부터 소설 속 주인공인 한스가 어떠한 상황을 겪어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살펴보겠다. 말에게 눈가리개가 시야를 좁히게 만들었다면, 한스에게는 주위 사람들의 조언들이 ‘공부만이 살길’ 이라는 한정된 시야만 보게 했다. 즉 그들은 한스가 공부를 잘해서 신학교에 입학을 하고, 그 학교를 졸업을 한 다음 목사 및 교사가 되는 것이 더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과 지나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어린 한스에게 끊임없이 공부를 시킨다. 이러한 주변 사람들의 영향으로 한스 또한 ‘공부만 인생의 전부’라는 색안경을 끼게 된다. 여름방학 임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공부를 한다. 즐거운 낚시조차도 자신의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여기고는 낚시를 그만두고, 공부만 한다.

   

문제는 한스 본인이 ‘자기가 왜 공부를 하고, 왜 그 신학교를 가야하는지, 왜 나중에 교사, 목사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고, 주위의 사람들의 조언 및 ‘애정어린 조언’(?)에 의해서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말은 타인의 채찍질의 의해서 더 빨리 나가게 되었지만, 한스의 경우는 ‘공부라는 목적’을 위해서 스스로 끊임없이 채찍질을 가하면서 스스로 그 시각에만 머물게 만들었다.

   

  이러한 조치가 얼마나 무섭고, 심각한 것인지를 그 다음에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에 의해서 선택 되어지고, 강요를 받는 한스가 그것을 잃게 되었을 때를 말이다. 한스는 신경쇠약이 점점 심해져서, 신학교에 수업을 수강할 수 없었다. 결국 신학교를 나오게 되었다. 한스는 집에 돌아와서 점점 삶에 회의감을 느끼고, 자신의 삶을 무의미하게 여기면서, 자살 준비를 하기도 했다. (한스는 자살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에마를 만나고 나서 한스는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하면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아 갖지만, 그 감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도 못했다. 그러면서 그녀로 인해 받았던 감정들은 잊지를 못했다. 그 이후 한스는 공장에서 수습공으로 일하며 잠시 노동의 기쁨과 삶의 의욕을 느끼지만, 곧 힘든 일에 지쳐 용기를 잃는다. 그리고 공장 직원들과 술자리를 가진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물에 빠져 죽는다. 한스를 통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알 수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한정된 시각을 보여주고, 그것만을 믿게 만들면서, 그들의 자유의지를 스스로 거세하게끔 만들어 나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말이다. 이러한 모습은 비단 소설에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모습이 보여지고 있다.

   

오늘날의 우리 모습은 수레바퀴에 깔리기 직전과 깔린 이후의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우선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으려고 스스로 자유의지를 거세시키려는 자들부터 말하겠다. 대한민국 고등학생들은 ‘공부만이 살길’ 이라는 믿음과 사회의 시선에 따른 ‘두려움’을 느끼면서 하루 열시간 이상 책상 앞에 앉아서 공부를 한다. 대학생들 또한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으려고 비싼 등록금을 어떻게 해서든지 마련을 하고, 취업준비를 필요한 자격증, 토익시험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면서 지금의 자신에게 사랑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랑은 나에게 사치야, 지금 우선 회사에 입사해야 해”라면서 취업 및 돈 이외에 다른 욕망 (연애, 즐김, 낭만)등을 일부러 외면하고 있다. 결국 10,20대들은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으려고 자신의 자유의지를 스스로 거세시키면서 공부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수레바퀴에 깔린 사람들도 있다. 한계레 신문 2013년 2월 5일자 <‘바늘구멍’ 공시에 지친 자들의 탈출구…“게임이 차라리 정직”>을 살펴보면 알 수가 있다. 이 기사는 현실 속 좁은 취업문에 따른 고통 받고 있는 공시생들의 인터뷰를 한 것이다. 내가 여기서 주목한 것은 ‘좁은 취업문’이 아니라 이들의 피시방 게임 속에 빠진 이유이다. 분명 이들도 앞서 얘기한 것처럼 수레바퀴에 깔리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을 것이다. 소위 사회에서 요구하는 스펙을 따기 위해서 불철주야 문제집과 씨름을 몇 년간 하고, 정규직 회사에 취업 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모색 했을 것이다. 즉 사회가 원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서 애를 썼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PC방에 있는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다. 즉 수레바퀴에 깔렸단 말이다. 과연 이들에게 문제는 무엇일까? 눈이 높아서, 너무 욕심이 많아서 일까? 아니다. 소설 속 한스에게 주변 사람들이 한정된 시각으로 몰아 넣고 그 이외의 것은 거부하게 만들었던 것 처럼, 이들 또한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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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외면 - 이병진 포토에세이
이병진 글.사진 / 삼호미디어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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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외면-이병진

올 겨울에는 밖으로 나가서 사진 찍기를 하지 못했다. 밖으로 나가 사진을 찍고 싶은데, 밖의 날씨가 너무나 살인적으로 추웠다. 하지만 이 사진에 대한 열망을 달래기 위해서 한 손에 사진집을 집고, 다른 손에는 커피 잔을 들으면서 책상위에 놓았다. 찬찬히 커피 맛을 음미 하면서 하나씩 사진을 읽어 나갔다.

 

사진집을 볼 때마다 떠올랐던 생각은 작가마다 ‘자신만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사진 작가인 조엘 마이어로위츠은 뉴욕의 거리에서 생동감 넘치는 사진을 찍었으며, 우연히 벌어지는 사건들을 포착한 그의 사진은 삶에 대한 애정이 가득 담긴 유머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나는 똑딱이포토그래퍼다>의 저자인 안태영는 그만의 시각으로 본 일상의 모습들을 보여주고 있다. 왜 내가 ‘그만의 시각’이라고 지칭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한번은 그가 책에서 적힌 촬영장소를 예전에 간 적이 있었다. 그의 사진 책을 보면서 들었던 것은 나는 ‘작가의 사진과 같은 모습(형체)을 본 적’이 없다가 아니라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가 촬영한 곳에 갔고, 그가 촬영한 위치가 어디인지를 추측할 수 있을 정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이 같은 시각으로 보지 못했고, 사진을 찍지도 못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나와 작가’의 시각 및 사진에 차이가 발생했는가?

 

분명히 ‘작가와 나’는 카메라의 파인더를 바라보았을 때, 서로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야 할 점은 카메라는 나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카메라는 내가 원하는 곳을 응시하고, 내가 원하는 곳에 초점을 맞추고,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표현해주는 도구일 뿐이다. ‘나와 작가’가 다른 것은 카메라의 차이가 아닌, 서로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나와 작가’는 서로 다른 생각, 가치관 철학, 지식 등을 추구하고, 이러한 것들을 기본으로 해서 자기만의 시각을 가지고 촬영을 했다는 것이다.

 

이번에 읽은 책은 개그맨 이병진의 <찰나의 외면>이다. 이 책의 제목인 찰나의 외면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작성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0세기 사진미학의 거장이자 ‘결정적 순간’으로 유명한 전설적인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을 ‘찰나의 거장’이라고 부릅니다. ‘찰나의 외면’이란 제게 걸린 불운의 찰나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진은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누구나 할 수 있었다면 아마 사진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하면 할수록 어려워지지만 그 매력을 알아가고 느끼면서 얻을 수 있는 재미와 감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을 다 읽고 들었던 생각은 ‘찰나의 외면’을 담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병진씨만의 시각으로 본 ‘찰나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찍은 사진을 보고, 그가 적은 글을 읽으면서, 그가 말하고 하는 뜻을 이해했고, 공감도 했다. 그리고 몇몇 사진들은 그의 생각과 그의 가치관들을 알려준 것들이 있었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이병진이라는 존재를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 중 일부가 사진 속에서 품어 있다라는 느낌을 받았다. 아래에는 그가 찍은 사진들이다.


사진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카메라를 잘 다룬 기술적인 모습을 보다 ‘카메라와 호흡을 한다’는 느낌을 들었다. 카메라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억지스럽고 과장되게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말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백하게 잘 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책의 제목인 <찰나의 외면>은 어울리지가 않는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빛으로 그린 어느 시인의 이야기> 로 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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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1 1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순정만화 1~2권 세트 - 전2권 - 강풀 순정만화 시즌Ⅰ 강풀 순정만화
강풀 지음 / 재미주의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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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만화-강풀

 

<‘순진’보다 ‘순수한 사람’이 되자>

 

오랜만에 <순정만화>를 다시 읽었다. 처음에 읽었을 때는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었지만, 이번에는 남녀 주인공인 김연우, 한수영을 살펴보면서 읽었다. 나는 이 커플의 나이 차이가 12살 차이라서 관심이 기울인 것은 아니고, 이들이 서로에게 대하는 ‘배려’에 눈길이 갔다. 대화 시, 그들은 존댓말로 함으로써, 서로를 존중했다. 또한 그들은 상대방의 ‘숨겨둔 아픔’을 보고도 외면하지 않고, 그 상처를 포근히 감싸주었다. 지금 우리에게 하기 어려운 사랑의 모습일 것이다.

 

 

이들의 ‘순수한’ 사랑을 살펴보면서, 작년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교양 수업 첫 번째 시간에 교수님은 앞으로의 수업 방식 이야기 보다 ‘순수와 순진’ 라는 두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교수님曰:

“지금 이 강의실에 들어온 여러분들은 20대 초반이거나 중반 정도 일 것 입니다. 분명 이 중에서는 달콤한 연애를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아니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느라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것 이예요. 그래요. 여러분들은 지금 이 시기에 사랑과 낭만을 즐기는 시기입니다. 10대 시절보다 확대된 자유 속에서 삶을 즐기고 있는 여러분들에게 제가 지금 말하고자 하는 바는 ‘순수와 순진’라는 단어들에 대해서 말하려고 합니다.

 

‘순진하다’라는 의미는 무엇이 자기에게 좋고, 나쁜 것인지를 판단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단지 잘 보이기 위해서 바보처럼 ‘헤헤’거리면서 무조건 그의 요구 및 의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순수하다’는 좋은 것, 나쁜 것을 조금씩 경험을 한 다음, 앞으로 의식적으로 나쁜 것을 배제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상대방이 자신에게 무리한 부탁(나쁜 것들등)을 해도, 그의 권위, 그에 대한 사랑 때문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꼭 기억하세요.

무조건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의 가치관을 저버리고 행동하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앞으로 여러분들이 ‘순진 사람’보다는 ‘순수한 사람’이 되었으면 합니다.

 

 

책 속 주인공들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보면서 무심코 떠올랐던 교수님의 말씀. 지금의 나는 순수한 사람인가 아니면 순진한 사람인가, 이것들도 아닌 다른 존재 인가? 이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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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센의 읽기 혁명 - 세계 최고의 언어학자가 들려주는 언어 학습의 지름길
스티븐 크라센 지음, 조경숙 옮김 / 르네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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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외국어 학습은 보수적 입니까? 아니면 진보적 입니까?>

 

‘보수와 진보’ 라는 단어들은 정치 분야에서 자주 등장을 한다. 특히 총선 및 대선 선거에 다가 올수록 이 두 단어들은 매스컴에서 자주 노출 되고 있다. 유권자들도 이 기간에 ‘보수와 진보’라는 단어들을 통해서 자신만의 성향을 표출하고 있다. 그것이 지나치면, 후보의 능력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닌, 이념적 잣대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 예를 들면, 한 보수적인 사람은 주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보았다. “나는 보수적이니까, 보수당 후보만 무조건 뽑을 거야. 진보는 어차피 별 볼일없을 거야.” 라고 말이다. 이와 반대로 일부 진보적인 사람도 이와 유사하게 말한다. 여기서 내가 말하고 하는 바는 우리 사회는 이 두 가지 시각(보수 or 진보)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것을 유지하고, 그것에만 매달린다는 것이다.

 

우리는 한 가지 시각에만 매달리고 그 이외는 무시한다. 진보적인 사람은 보수적인 성향을 무시하고, 보수적인 사람은 진보적인 성향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보수와 진보의 의미는 서로 이질적 관계가 아닌 서로 보완적인 관계이다. 보수는 ‘기존의 체제가 잘 유지 되고 있다고 판단을 내리고, 이 체제를 유지만 하면 앞으로 더 좋아 질 것’이라는 의미이고, 진보는 ‘기존 체제에서 잠재적인 문제점이 발견하고(앞으로 이것을 방치하면 더 큰 피해를 끼칠 것으로 판단이 되기 때문에), 지금 이 문제에 관련된 것을 해결하자’는 의미가 있다. 즉 보수와 진보는 ‘기존의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른 입장 차이로 생성되는 것이지, ‘어느 것이 옳고, 그 외의 것은 틀린다.’ 라는 확고한 이분법적 판단 논리가 아니다.

 

이 두 가지 단어(보수 or 진보)는 정치 분야에만 해당되지 않는다. 교육 분야 특히, 외국어 분야에 해당 된다. 현재 외국어 분야의 학습 방법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학교 수업에는 선생님의 지도 아래 독해, 쓰기, 말하기 그리고 문법 등을 나름 체계적으로 받고 있다. 교사가 가진 지식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그대로 옮기려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은 이미 오래 전 부터 고수 했던 방식이며, 지금도 이렇게 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 까지 아무 별 탈 없이 진행 되어 왔기 때문에, 지금에서도 유지해야 한다.’는 현재 외국어 교육에서의 보수적인 입장 모습이다. 반면 이 책의 저자인 스티븐D.크라센은 외국어 교육에서의 진보적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은 기존 방법(수업을)하는 것만으로는 외국어를 습득하기는 어렵고, 책 읽기만이 외국어를 효율적으로 습득 할 수 있다 라고 주장한다. 그의 말을 더 자세히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P59

읽기가 읽고 쓰는 능력인 리터러시를 발달시킬 수 있다는 많은 연구를 통해 한 가지 분명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읽기는 우리에게 유익한 것이다. 많은 연구 결과 더욱 강력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읽기가 유익한 방법이다. 읽기는 좋은 독자, 훌륭한 문장력, 풍부한 어휘력, 고급 문법 능력, 철자를 정확하게 쓰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주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러한 결론이 옳다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읽기의주요 대안인 직접 교수가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둘째, 다른 분야의 연구 및 이론에서도 같은 결론이 나왔다는 것이다. 초보 읽기 발달을 살펴보는 연구에서는, 책을 읽는 동안 책의 내용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면서 읽기를 배우게 된다는 의미로 ‘읽기를 통해 읽기를 배운다’ 라고 결론 내렸다. 언어 습득에 관한 연구에서 나는 언어습득은 오지 한 가지 방법으로 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즉 불안간이 적은 상황에서 내용(messages)을 이해 할 때 또는 이해하면서 받아들일 때만 언어를 습득 할 수 있다. 여기서 불안감이 적은 환경에서 책 속에 들어있는 내용을 이해한다는 것은 자율독서의 개념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크라센은 ‘기존의 외국어 학습 방식으로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효과가 없다’ 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에 따른 근거들을 사회과학적 방식(비교 실험)으로 실행한 데이터 값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언어를 배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즐겁고, 재미있는 상황에서 외국어(언어)로 쓴 책을 읽어야 언어를 효율적으로 배울 수 있다’ 라고 말한다.

 

지금 토익 공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이 책이 던진 말은 의미심장 하다. 어릴 때부터, 나는 보수적인 방식으로 외국어를 배웠다. 지금은 이 방식에 오히려 익숙해져 있다. 외국어는 지금 나에게 있어 ‘또 다른 수학 공식집’과 같은 존재이다. 주어 다음 동사~~~, 가정문을 쓸때는 현재와 반대적의미로 쓰여야 한다 , 단수 동사는 단수 주어만 등. 이러한 것들을 하나씩 이해하려고 애를 썼고, 좌절도 몇 번을 했다. 생각보다 실력이 향상이 되지 않으면, 나 자신에게 화를 낸 적이 몇 번이지 모를 정도이다. 이렇게 십년 넘게 외국어를 배웠는데도, 제대로 된 문장을 구사하지 못한다. 심지어 어느 날 외국인이 내 옆으로 다가오면, ‘혹시 나에게 말을 걸까봐’라는 두려움에 옆 칸으로 발걸음을 옮긴 적도 있다. 이러한 나에게 이 책은 ‘왜 네가 지금까지 영어로 힘든 이유’를 구체적인 데이터를 통해서 알려주고 있다. 그러면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 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이제부터 학습 방식을 한번 바꿔 보아야 겠다. 이 책의 저자가 주장하는 ‘자율 독서’로 말이다.

 

 

p168

자발적인 독서가 최고 수준의 리터러시를 보장하지는 못하더라도 무난한 수준은 보장한다. 또한 어려운 텍스트를 다룰 수 있는 언어 능력이 길러질 것이다. 자육적인 독서가 없다면, 아이들이 그 기회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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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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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정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독서법에 대해서 기술을 하고 있다. 책의 저자인 정민교수는 당신의 자녀인 ‘벼리’에게 책의 탄생 관련 이야기를 시작으로 옛 선비들이 독서를 행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렸을 때는 둔재였으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선시대의 명문가가 된 ‘김시습’의 이야기와 꾸준한 노력으로 신분제를 극복한 서얼 출신 ‘박제가’ 그리고 유배지에 가서도 꾸준히 독서를 한 ‘다산 정약용’등 그 이외에도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그들이 직접 했던 독서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 중에 인상적인 점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책읽기에도 순서가 있다’라는 것 이고, 두 번째는 ‘책을 읽으면서 반드시 핵심을 잡아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의심하고 의문을 품어라.’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 세가지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겠다.

첫 번째, ‘책읽기에도 순서가 있다’라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p129

책읽기도 우물파기와 같다. 처음에는 너무 편식하지 않고 폭넓게 읽어야 한다. 재미만 가지고 책을 읽으면 고른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게 되지. 삶의 바른 자세를 잡아 주는 동서양의 고전과 역사책도 꾸준히 읽도록 해라. 인생에 힘이 되는 교훈을 주는 문학 작품도 골고루 많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깊어져서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쉽게 꺾이지 않고 자신있게 밀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폭을 넓게 해야 깊이를 지닐 수 있는 법이다. 깊이가 있어야 마르지 않는 샘물과 만나게 되지.

 

즉 재미와 흥미 위주의 책을 먼저 읽지 말고, 삶의 자세에 도움이 되는 고전 책을 위주로 읽으라고 말한다. 그 다음에 차츰 관심있는 분야로 가라는 것이다.

 

 

두 번째, ‘책을 읽으면서 반드시 핵심을 잡아라’ 이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 보다 <<수여방필>>중에 수록된 일부 내용을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p183

아이 적에 책을 두세 번만 읽고도 곧바로 줄줄 외우는 사람이 있다. 7,8세 때 시문을 잘 지어서 입만 열면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 늙도록 이뤄 낸 것은 남보다 특별한 것이 없다. 그래서 똑똑한 재주가 쉬지 않는 노력만 못한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등잔불을 밝혀 가면서 새벽까지 노력하며 쉬지 않고 늙을 때까지 공부해도 스스로 일가의 말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인가? 어떤 사람은 겨우 백여 권의 책을 읽고도 종이를 펼쳐 붓을 내달리면 소리가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 만 권의 책을 외우는 사람이 등 뒤에서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간혹 똑같이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한 사람은 한 글자도 남김없이 외웠는데도 식견이 늘지 않고 글을 지어도 볼 만한 것이 없다. 다른 한 사람은 반 이상 잊어버렸지만 핵심이 되는 알맹이를 모두 소화해서 마음 깊이 새겨 두어 이를 펼쳐 글로 지으면 그 글과 비슷한 글이 되곤 한다. 어째서 그런 걸까?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깨닫는다는 말은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다. 옛 사람의 책 중에 경전이나 역사책 같은 것은 한 줄기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나머지 책 중에 경전이나 역사책 같은 것은 한 줄기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나머지 책 중에 자질구레한 것은 하나하나 정밀하게 살피느라 정신을 쏟을 필요가 없다. 가령 한 권의 책이 대략 6,70쪽쯤 된다고 치자. 그 중 핵심이 되는 내용만 간추린다면 십여 쪽밖에 안 될 것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처음부터 다 읽지만 핵심 내용은 잘 알지 못한다.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손 가는 대로 펼쳐 보고 그만두는데도 효과는 전부 읽는 사람의 두 배나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두세 권의 책을 읽고 있을 때 나는 이미 백 권을 읽고, 효과를 보는 것 또한 남보다 배나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읽고, 반복적으로 책을 봤어도, 깨닫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은 꼭 있다. 시험공부 방법으로 하는 것이 교재를 반복적으로 읽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물어보면,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얼버무려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즉 본문의 핵심을 잡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교재를 읽었는데도, 자신이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한 것이고, 그 중 일부는 자신의 아이큐 탓으로 돌리면서 자책한다.

 

 

세 번째는 ‘의심하고 의문을 품어라.’이다. 이 부분도 직접적인 설명 보다는 성호 이익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p146

성호 이익은 독서에서 의문을 품는 과정을 대단히 중요시했단다. 다시 다른 글을 읽어 보자. 배움은 반드시 의문을 일으켜야 한다. 의문을 일으키지 않으면 얻어도 야물지가 않다. 의문이란 의심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야 옳은 줄 안다면 반드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울러 살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얻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혹 잘못된 것을 옳다고 우겨도 대응할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과일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 복숭아나 살구 같은 과일을 주면 살은 먹고 씨는 버린다. 살이 맛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씨 속에 다시 어떤 맛이 있을지 의심한다. 다른 날 개암이나 밤 따위를 주면 껍질은 벗겨 내고 씨만 먹는다. 맛이 씨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서 복숭아나 살구 씨의 맛이 개암이나 밤처럼 먹을 만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만약 그때에 모두 먹어 보아서 분명하게 알아 두었더라면 어찌 다시 이 같은 근심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의문을 갖는 것은 의심을 없게 하려는 것이다. 먹을 줄만 알고 의문을 품지 않는 사람은 비록 밤 껍질을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또한 장차 이를 따를 것이다.

 

우리는 책을 신성시 여긴다. 즉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의심을 품지 않고, ‘책으로 썼으니까, 당연히 그 부분은 맞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물 위로 떨어진 스펀지처럼, 그냥 그 내용을 흡수만 한다는 것이다. 위의 말을 더 확장 시키면, 책에만 위의 말에 해당 되지 않는다. 권위적인 사람의 말(정치인, 교수, 전문가등)과 언론보도등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들이 우리에게 반드시 올바른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이 책은 옛 선인들이 후학들에게 전하는 조언을 담은 책이다. 여기서 말했던 독서법은 단순히 ‘책을 잘 읽는 방법(기술적인 측면)’ 이상으로 ‘앞으로의 삶의 자세’를 알려준다. 김시습에게 배운 ‘좋은 책을 반복해서 읽으라’는 말은 어떤 역경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끈기 있게 하라는 것이다. 또는, 나름 노력했다고 자부한 자들이 조금 나태해지려고 할 때, 그들에게 김시습은 ‘그 정도로 했다고 노력을 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이냐?’ 라면서 꾸짖는 말이다. <<수여방필>>의 저자인 홍길주에게 배운 ‘핵심을 잡아라’ 말은 요즘 인터넷을 사용하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루 동안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다음날에 무엇이 왜 일어나는지를 모를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보에 휘둘려 다니지 말고, 핵심에 찾아라 그리고 그것이 정말 맞는지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의문을 가져 보아라’ 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온고지신>라는 단어가 떠올랐으며, 이 단어를 직접 실천 하고 싶었다는 감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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