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 진경문고
정민 지음 / 보림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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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고전 독서법-정민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독서법에 대해서 기술을 하고 있다. 책의 저자인 정민교수는 당신의 자녀인 ‘벼리’에게 책의 탄생 관련 이야기를 시작으로 옛 선비들이 독서를 행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렸을 때는 둔재였으나, 끊임없는 노력으로 조선시대의 명문가가 된 ‘김시습’의 이야기와 꾸준한 노력으로 신분제를 극복한 서얼 출신 ‘박제가’ 그리고 유배지에 가서도 꾸준히 독서를 한 ‘다산 정약용’등 그 이외에도 다양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서 그들이 직접 했던 독서법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내용 중에 인상적인 점은 세 가지이다. 첫 번째는 ‘책읽기에도 순서가 있다’라는 것 이고, 두 번째는 ‘책을 읽으면서 반드시 핵심을 잡아라’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의심하고 의문을 품어라.’라는 것이다. 이제부터 이 세가지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겠다.

첫 번째, ‘책읽기에도 순서가 있다’라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p129

책읽기도 우물파기와 같다. 처음에는 너무 편식하지 않고 폭넓게 읽어야 한다. 재미만 가지고 책을 읽으면 고른 영양분을 섭취할 수 없게 되지. 삶의 바른 자세를 잡아 주는 동서양의 고전과 역사책도 꾸준히 읽도록 해라. 인생에 힘이 되는 교훈을 주는 문학 작품도 골고루 많이 읽어야 한다. 그래야 생각이 깊어져서 아무리 힘든 일이 생겨도 쉽게 꺾이지 않고 자신있게 밀고 나갈 수 있게 된다. 처음 책을 읽기 시작할 때 폭을 넓게 해야 깊이를 지닐 수 있는 법이다. 깊이가 있어야 마르지 않는 샘물과 만나게 되지.

 

즉 재미와 흥미 위주의 책을 먼저 읽지 말고, 삶의 자세에 도움이 되는 고전 책을 위주로 읽으라고 말한다. 그 다음에 차츰 관심있는 분야로 가라는 것이다.

 

 

두 번째, ‘책을 읽으면서 반드시 핵심을 잡아라’ 이다. 이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 보다 <<수여방필>>중에 수록된 일부 내용을 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p183

아이 적에 책을 두세 번만 읽고도 곧바로 줄줄 외우는 사람이 있다. 7,8세 때 시문을 잘 지어서 입만 열면 사람을 놀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다 늙도록 이뤄 낸 것은 남보다 특별한 것이 없다. 그래서 똑똑한 재주가 쉬지 않는 노력만 못한 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등잔불을 밝혀 가면서 새벽까지 노력하며 쉬지 않고 늙을 때까지 공부해도 스스로 일가의 말을 이룰 수 없는 것은 어째서 인가? 어떤 사람은 겨우 백여 권의 책을 읽고도 종이를 펼쳐 붓을 내달리면 소리가 아름답고 환하게 빛나, 만 권의 책을 외우는 사람이 등 뒤에서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기도 한다. 간혹 똑같이 한 권의 책을 읽더라도, 한 사람은 한 글자도 남김없이 외웠는데도 식견이 늘지 않고 글을 지어도 볼 만한 것이 없다. 다른 한 사람은 반 이상 잊어버렸지만 핵심이 되는 알맹이를 모두 소화해서 마음 깊이 새겨 두어 이를 펼쳐 글로 지으면 그 글과 비슷한 글이 되곤 한다. 어째서 그런 걸까? 재주는 부지런함만 못하고, 부지런함은 깨달음만 못하다. 깨닫는다는 말은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다. 옛 사람의 책 중에 경전이나 역사책 같은 것은 한 줄기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나머지 책 중에 경전이나 역사책 같은 것은 한 줄기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된다. 그 나머지 책 중에 자질구레한 것은 하나하나 정밀하게 살피느라 정신을 쏟을 필요가 없다. 가령 한 권의 책이 대략 6,70쪽쯤 된다고 치자. 그 중 핵심이 되는 내용만 간추린다면 십여 쪽밖에 안 될 것이다. 머리가 나쁜 사람은 처음부터 다 읽지만 핵심 내용은 잘 알지 못한다. 깨달음이 있는 사람은 손 가는 대로 펼쳐 보고 그만두는데도 효과는 전부 읽는 사람의 두 배나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두세 권의 책을 읽고 있을 때 나는 이미 백 권을 읽고, 효과를 보는 것 또한 남보다 배나 되는 것이다.

 

아무리 많이 읽고, 반복적으로 책을 봤어도, 깨닫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주위 사람들 중에 이런 사람은 꼭 있다. 시험공부 방법으로 하는 것이 교재를 반복적으로 읽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물어보면,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얼버무려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깨닫지 못한 것이다. 즉 본문의 핵심을 잡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열심히 교재를 읽었는데도, 자신이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한 것이고, 그 중 일부는 자신의 아이큐 탓으로 돌리면서 자책한다.

 

 

세 번째는 ‘의심하고 의문을 품어라.’이다. 이 부분도 직접적인 설명 보다는 성호 이익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p146

성호 이익은 독서에서 의문을 품는 과정을 대단히 중요시했단다. 다시 다른 글을 읽어 보자. 배움은 반드시 의문을 일으켜야 한다. 의문을 일으키지 않으면 얻어도 야물지가 않다. 의문이란 의심하고 머뭇거리며 망설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해야 옳은 줄 안다면 반드시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도 아울러 살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제대로 얻게 된다. 그렇지 않으면 어떤 사람이 혹 잘못된 것을 옳다고 우겨도 대응할 수가 없다. 비유하자면 과일을 먹는 것과 비슷하다. 복숭아나 살구 같은 과일을 주면 살은 먹고 씨는 버린다. 살이 맛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씨 속에 다시 어떤 맛이 있을지 의심한다. 다른 날 개암이나 밤 따위를 주면 껍질은 벗겨 내고 씨만 먹는다. 맛이 씨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서 복숭아나 살구 씨의 맛이 개암이나 밤처럼 먹을 만하지 않을 줄 어찌 알겠는가? 만약 그때에 모두 먹어 보아서 분명하게 알아 두었더라면 어찌 다시 이 같은 근심이 있겠는가? 그런 까닭에 의문을 갖는 것은 의심을 없게 하려는 것이다. 먹을 줄만 알고 의문을 품지 않는 사람은 비록 밤 껍질을 먹을 수 있다고 해도 또한 장차 이를 따를 것이다.

 

우리는 책을 신성시 여긴다. 즉 책의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어떤 의심을 품지 않고, ‘책으로 썼으니까, 당연히 그 부분은 맞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 마치 물 위로 떨어진 스펀지처럼, 그냥 그 내용을 흡수만 한다는 것이다. 위의 말을 더 확장 시키면, 책에만 위의 말에 해당 되지 않는다. 권위적인 사람의 말(정치인, 교수, 전문가등)과 언론보도등도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의문을 가지고, 의심을 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이들이 우리에게 반드시 올바른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않는가.

 

 

이 책은 옛 선인들이 후학들에게 전하는 조언을 담은 책이다. 여기서 말했던 독서법은 단순히 ‘책을 잘 읽는 방법(기술적인 측면)’ 이상으로 ‘앞으로의 삶의 자세’를 알려준다. 김시습에게 배운 ‘좋은 책을 반복해서 읽으라’는 말은 어떤 역경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말고, 끈기 있게 하라는 것이다. 또는, 나름 노력했다고 자부한 자들이 조금 나태해지려고 할 때, 그들에게 김시습은 ‘그 정도로 했다고 노력을 했다고 말해도 되는 것이냐?’ 라면서 꾸짖는 말이다. <<수여방필>>의 저자인 홍길주에게 배운 ‘핵심을 잡아라’ 말은 요즘 인터넷을 사용하는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루 동안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으면, 다음날에 무엇이 왜 일어나는지를 모를 정도로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보에 휘둘려 다니지 말고, 핵심에 찾아라 그리고 그것이 정말 맞는지에 대해서 의심을 하고, 의문을 가져 보아라’ 라고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온고지신>라는 단어가 떠올랐으며, 이 단어를 직접 실천 하고 싶었다는 감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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