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6.25, 4.19, 5.16, 5.18을 모두 겪었다는 작가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저녁 종이 울릴 때〉는 어느 하나를 특별히 주목하지 않아도, 전쟁터나 국회처럼 직접적으로 참상을 마주하는 장소가 아니어도, 사람들의 일상 속에 그런 역사가 뒤엉켜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각각의 사건으로 배우고 있지만, 당시를 살아낸 이들에게는 그 모든 일이 끊임없이 이어진 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역사를 거창한 이름이나 숫자로만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살아야 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거대한 사건에 가려졌던 작은 목소리들을 통해, 우리의 진짜 역사는 교과서 밖, 삶의 현장 속에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민수의 2.7그램〉은 청소년에게 단순히 꿈과 희망을 주기보다, 한 청소년이 불공정한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세워가는 과정을 보여주며 스스로 교훈을 찾게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민수는 탁구라는 세계에서 정직한 1점의 가치를 깨닫고, 그 공정함을 일상의 삶 속에서도 지키려 노력한다.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현실 속에서도, 스스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며 목소리를 내는 민수의 모습은 함께 사회를 살아가는 독자에게도 많은 질문을 남긴다.
〈하늘 투명 거울〉을 읽으며 시란 결국 삶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창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도 의미를 찾아내고, 그것을 자신만의 언어로 풀어낸다. 나도 내 시선을 담은 시집을 내고 싶다는 마음을 더욱 단단히 해준 계기가 되었다.
4학년 때부터 스스로 장을 봐야 했던 틸다, 엄마의 자살 시도를 목격하고도 침착하게 112에 전화를 거는 이다를 보며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받아야 할 시기에 보호자가 없었기에 아이들이 먼저 어른이 되어버린 것이다. 의식이 없는 엄마를 본 대부분의 열 살 아이는 상황 파악도 하지 못한 채 울기 마련이겠지만, 이다는 놀라 굳어버린 언니를 챙긴다. 누군가는 이다의 모습을 보고 의젓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린아이가 해서는 절대 안 될 말을 하는 이다의 목소리가 들린다. 준비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다'는 틸다의 고백에서는 무너져 내리는 언니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수록된 글들은 블로그에 포스팅했던 글들을 모은 것이라 그런지 한 편 한 편이 길지 않아 남는 시간을 이용해 틈틈이 읽기 좋았다. 짧은 내용에 하고 싶은 말을 눌러 담아서 시집을 읽는듯한 느낌도 들었다. 내용도 무겁지 않고 평범한 일상과 삶에 대한 응원을 담고 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