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 러닝
이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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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간과 맞서고 있으니까. 시간아, 네가 아무리 좀먹어 봐라. 내가 꿈적이라도 할까. 누가 이기나 보자, 이러고 사는 거야. 정정당당하게 노려보면서, 서두르지 않을거야. 왜 사람들이 시간을 아까워 하는지 모르겠어. 시간은 그냥 여기저기 흘러 다니는 거야. 난 숙제가 없어, 남은 생은 방학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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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
그중 표제작인 <나이트 러닝>은 정말 강렬하다. 한밤중에 묘지를 달리는 5명의 사람들. '한쪽 팔을 잘라서라도 보고 싶은 사람을 볼 수 있다면' 이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한쪽 팔을 자르고 죽은 남편을 기다린다. 그러나 팔은 다시 자라난다. 팔은 자르고 잘라도 또 자라난다. 상징적인 것이겠지만 팔을 자르는 마음은 무엇일까. 네가 없는 세상에서는 살 수 없으니 죽기를 각오하는 절박한 마음인걸까. 다시 팔이 자라났다면 당신마저 죽지않길 바라는 죽은 영혼의 바램일까. 결핍을 가진 다섯 사람은 어떤 하룻밤에 만나 서로의 결핍을 살피고 보듬기 위해 끝도 없이 달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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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
책에는 처음으로 들어보는 슈슈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누군가의 숨소리, 흐느끼는 소리, 그리고 또 누군가의 이름이기도 한 단어. '슈슈'는 마치 익명의 모든 것을 대변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것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감정이든. 대변하는 그것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도 사람들은 모른다. 관심도 없다. 삶의 가장자리에 있어서 있어도 없어도 어색하지 않다. 이리로 저리로 흐느끼고 나부낀다. 슈슈, 바람소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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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한 묶음 사람이 있고 두 묶음 사람이 있어. 한 묶음 사람은 한 사람 자체로 완벽해서 타인을 필요로 하지 않아. 혼자가 더 편한거지. 모든 결정을, 일상을 혼자 할 수 있는거야. 오히려 누가 있으면 더 불행할 수도 있어. 완벽한 자신만의 시공간이 필요한 거지. 하지만 우리 같은 두 묶음 사람들은 결코 혼자 지낼 수 없어. 그래서 언제나 반쪽을 찾아 헤매게 되고 꼭 맞는 반쪽이 아니라 해도 혼자 있는 것을 상상할 수 없기에 괴로운 둘을 감수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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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묶음 사람일까 두 묶음 사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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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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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어딘가 인기가 없는 존재다. 이렇게 모두가 공유하는 취약함은 '좋아요' 강박의 사회에서 벗어날 중요한 실마리일 것이다. 하지만 이 실마리만으로는 좋아요 사회라는 미궁을 헤쳐나갈 자신이 없다. 사실 이 미궁을 꼭 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디까지가 피로감이고 어디서부터 쾌감인지 모호해 멀미를 하던 시절은 지났다. 아니면, '좋아요' 대신 '괜찮아'를 서로와 스스로에게 건네주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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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제목부터 궁금해지는데 갓생, 배민맛, 방꾸미기, 랜선사수, 중고거래, 안읽씹, 사주풀이, 데이트앱 #좋아요 등이다. 갓생이란 계획적으로 열심히 살며 타의 모범이 되는 성실한 삶을 뜻하는 신조어로 짱ㅡ킹ㅡ갓으로 이어져 온 계보라 할 수있다. 그러나 아침에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거나, 운동을 빠지지 않고 했거나, 물 한잔 마시고 명상하거나 등등, 그런일을 했다고 갓생이라니, 평범한 일상을 사는 것이 현생에서 얼마나 어려우면 그런 노력들을 갓생이라고 표현하며 실천하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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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우리 시대의 사람들이 저마다 똑같이 몰두하는 플랫폼 소비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소비하는데 있어서 놀랍도록 비슷하다는데 있다고 말한다. 유튜브를 시청하며 시간을 보내고, 배달앱으로 식사를 해결하고, 당근마켓으로 사고 팔고선 심정적 절약을 느끼며, 넷플을 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더이상 예전처럼 밥상앞에 모이지도 tv앞에서 리모콘 싸움을 하지도 않는다. 그렇게라도 모였던 가족은 이제 서로 보내는 시간이 다르며 보고 싶은 채널은 언제든지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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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을 통해 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모두 멋지고 대단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아 보인다. 단편적으로 올라오는 사진이 그 사람의 모든걸 보여주는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부러워지고 자기 자신은 점점 초라해진다. 그렇게 외로운 사람들은 어느새 그 느낌에서 빠져나올 무언가를 찾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우리의 현실을 꼬집으며 말하고 있지만 마냥 비극적이지는 않는다. 현실은 빡빡하고, 평범해지는 것이 오히려 어렵지만 우리가 달콤한 플랫폼에서 좀 즐기면 어떠한가. 중요한 것은 그 세계가 다는 아니라는 것, 일상속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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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로봇 토라 소소담담 키즈 어린이 동화 6
유지영 지음, 신은숙 그림 / 소소담담KIDS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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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감정도 이름을 불러주면 스르르 녹아버린대"

"감정 이름을 불러준다고?"

"그래, 누구나 자기 이름을 불러 주는 걸 좋아하잖아"

"상대한테, 화를 내면 화가 더 나"

"잠시 멈추고 15까지 숫자를 세.
그리고 감정 이름을 불러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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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토라는 전학 간 미나의 새로운 친구다. 엄마가 해외로 공부하러 간 몇 년 동안 할머니 집에서 외로워 할 미나를 생각하여 보내준 소중한 선물이었다. 그런데 토라는 그냥 로봇이 아니었다. 인공지능의 기능을 가졌으며 특히, 감정을 느끼는 공감 로봇이었다. 할머니는 미나의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것 같고, 전학 간 지역의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귀지 못하는데 그나마 한 명 뿐인 친구 지수는 제멋대로라는 생각에 미나는 학교 가는 것이 전혀 즐겁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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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대"

로봇 토리가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미나 뿐만 아니라 마음을 표현할 줄 몰라 상처받은 어른들에게도 침대맡에 귀여운 공감 인형을 하나씩 놓아주고 싶다. 공감 인형이 하는 이야기야말로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건네줘야 하는 이야기이지 않을까. 그런데 항상 바쁜 부모는 아이들과 따뜻한 말과 마음을 주고 받을 시간이 부족하다. 오히려 아이들은 복잡하게 계산하는 어른보다 타인을 잘 헤아리고 공감하는 방법을 아는 것만 같다. 그래서 공감 로봇 토라의 이야기에도 귀 기울이고 상처 받은 친구 지수에게도 마음을 쓰며, 더이상 토라가 곁에 있지 않아도 아이들은 함께 활짝 웃을 수 있는 것이리라.

🔸️
"불편한 감정을 쥐고 있는 건 정말 힘들거든.
감정은 원래 강물처럼 흘러가는 거래.
있는 그대로 느껴주면 자연스럽게 지나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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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 프랑스 - 당신을 위한 특별한 초대 미술관을 빌려드립니다
이창용 지음 / 더블북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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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유럽 미술사를 알기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미술 깡패, 미깡으로 불리는 이창용 도슨트님의 책이다. 책은 분명 미술에 관련된 책이지만 역사에 대한 책이라고 할 만큼 그림이 그려진 역사적인 배경과 이유를 알 수 있도록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가보지 못했는데 마치 박물관을 걸어가며 듣는 것처럼 책 속의 명화에 대한 설명이, 그곳에서 그림을 보고 있는 나를 상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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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대한 사조나 기법만이 아니라 도슨트님의 설명으로 그림에 대한 숨은 이야기와 더불어 역사적인 지식까지도 얻게 된다. 예를들어 낭만주의는 이름만으로도 로맨틱한데 낭만주의 미술이 로맨틱하다고 볼 수 없다. 낭만주의는 엄격한 양식과 이성을 중시하는 신고전주의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미술사로 이성보다는 감정과 강렬한 색채를 통한 개인적 상상력을 중시했다.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로맨틱이라는 단어와 다르게 인간에 내재된 열정, 불안 등을 그림에 담은 것이다.
'테오도르 제리코' 의 작품 <메두사호의 뗏목>만 보아도 로맨틱과는 연결이 없으며 사실, 그림 속 장면은 처참하기만 하다. 이 그림은 실제로 있었던 사건으로 작품의 사실성을 높히기 위해 뗏목에 딴 150여명 중 단 3명의 생존자와 인터뷰하고, 시신의 색감까지 관찰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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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로댕 미술관에 있는 작품과 그곳 중 두곳의 도슨트로 활약했던 작가가 쌓아온 이야기를 책 안에 고스란히 담았다. 이곳을 찾아간다면 어떤 동선으로 미술 관람을 할지, 얼마의 시간을 써야할지, 빠뜨리지 않고 꼭 감상 해야할 작품은 무엇인지 알려준다. 언젠가 갈 수만 있다면 이 책을 들고 가고 싶을 정도이다.
이렇듯 수많은 작품들은 그림 안에 살아있는 역사를 담고 있다. 그래서 책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페이지를 앞뒤로 넘겨가며 그림속에서 찾아보고, 다시 읽고를 반복하게 되었다.

작가는 책을 덮기 직전, 우리가 작품을 하나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할지를 질문을 했는데 꺄아,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좋은 작품은 남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나 스스로 정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움직이는 작품, 나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작품이 진정 좋은 작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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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프랑스 여성작가 소설 1
아니 에르노 지음, 김선희 옮김 / 열림원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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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작가님은 경험한 것을 글로 쓰는 개인의 실제를 바탕으로 작품을 많이 쓰는 작가이다. 그런 경험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시간과 닿아 있어서 글에서 느끼는 고통과 불안과 슬픔은 소설 속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의 삶과 닮아 있기에 그녀의 글을 읽으며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마주하게 되고 대수롭지 않은 문장에서, 단어에서 나는 자주 공감하며 울컥했다.

🔹️
"나는 두 손으로 내 귀를 틀어막았다. 뭔가 끔직한 구멍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연극을 보고 있는것이 아니다.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나의 어머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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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에 걸린 사람은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닌 전혀 낯선 존재를 보는 것만 같다. 그 낯선 존재가 가족이면서 사랑하는 사람이므로 느끼는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크다. 때때로 알 수 없는 행동 때문에 화가나고 내뱉는 소리가 거칠어지면 그에 따르는 죄책감도 더욱 커지면서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가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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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에르노 작가님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는 어머니를 보며 자신이 어머니와 지내왔던 삶의 이야기를 만난다. 어머니의 과거는 자신의 과거에 속해 있으며 어머니의 미래는 자신의 미래일 수 있기 때문이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의 행동에 놀라고, 분노하고, 슬퍼하고, 담담해지는 감정을 고스란히 일기처럼 기록했다. 그 기록안에 누구나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이 담겨 있으며 그녀가 느꼈을 고통을 인식할 수 있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글로 쓴 마지막 문장.

"나는 나의 밤을 떠나지 않는다."

무슨 의미일까 곰곰히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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