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왼손에 매달린 은사슬이 살짝 흔들리며 차르르 하는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고 천천히 입가를 치켜올리며 하얀 이를 드러낸 수많은 얼굴 중에서, 나는 그날 구해내지 못했던 그를 발견했다.
"거짓말이네에 우리는 안 속아. 그런 식으로 우리를 속이고 꾀어내서 잘게 조각내려는 거지? 이 악마!"
"악마에게 악마라는 소릴 들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
난 분명 악마였지. 그러니까 마지막은 인간으로서 끝나고싶어."
그것이 지금의 나에겐 유일한 진실이었다.
자, 밤이 어스름을 끌고 다가온다. 그러나 망각의 아침은이제 오지 않는다. - P374

히요리. 나 말이야, 네가 웃으면 태양이 높이 뜬 것처럼 눈부시다고 생각했어. 유학 가고 싶다는 내 꿈도 비웃지 않고 응원해줬지. 그래서 좋아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어. 마음을 전할 수없다면, 하다못해 최고의 추억을 만들고 싶었거든.
그런데 어째서 뭐야 이거, 대체 뭐냐고!
"토와다 타이요 군. 유감스럽지만 자네는 여기서 죽어. 몰랐겠지만 나는 사신이야. 자네의 혼을 저승에 보내주러 왔어."
갑자기 내 눈앞에 검은 옷의 젊은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물에빠진 내 눈앞에서 그는 우아하게 물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죽어가는 내게 손을 뻗어주지도 않고 말이다. 발버둥 칠 힘마저잃어버린 나는 천천히 가라앉아가며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않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히요리도......?
......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입술의 움직임을 읽었는지, 아니면 내 마음속을 읽었는지 몰라도 사신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더니 손가락으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다음 생이 있어. 거기서 다시 한번 그녀와 사랑하게 될 거야."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 그가 꺼낸 건 위로의 말・・・・・・ 이었을까?
뭐야 그게.
최후의 순간, 나는 웃고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우는지 웃는지모를 어설픈 웃음이었다. 하지만 사신이 하는 말이니만큼 한번쯤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1년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는 견우와 직녀처럼, 나도 다음 생에서는 그녀와 평생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사랑을 하게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쑥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생각했다.
아아, 이제 괴롭지 않네, 하고 말이다. - P65

자신의 영혼이 무슨 색일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사람의 영혼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온갖 기억에 담긴 감정의 집합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색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과 소중한추억이다.
나는 죽은 이를 명부로 안내해주는 통행료로 혼의 가장 아름다운부분을 떼어 받는다. 나의 하루는 사신 업무 외에는 다양한 색으로둘러싸인 아틀리에에서 수정처럼 반짝이는 혼의 조각으로 물감을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오늘 업무가 끝났으니 느긋하게 그림을그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에서 마더구스의 노래가 울린다.
"그래, 자네. 안녕한가. 미안하지만 오늘도 갑작스러운 임무라네, 내용은 메일로 보냈으니 신속히 확인하도록."
아아, 최근에는 사신 적성 판정에 합격하는 이가 없어서 사신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더니… 오늘도 급작스럽게 업무 추가다. 여유부릴 때가 아니었네. 자, 그럼 가볼까 찰스? 이번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은 과연 무슨 색일까.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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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색일지라도 혼의 주인에 따라 조각의 색조가 미묘하게 달랐다. 예를 들면, 장미의 붉음과 산딸기의 붉음, 석양의 붉음과 베텔게우스의 붉음처럼 말이다.

사람의 혼이란, 말하자면 기억의 집합체다.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온갖 기억이 담긴 보이지 않는 물질을
‘혼‘이라고 부른다. - P15

"뭐, 여전히 잘 그리긴 했지만 역시 자네 그림에는 무언가가 부족해. 물감 재료인 혼의 빛깔에 너무 의존하고 있는 거지. 아름다움과 정교함에 있어서는 확실히 높이 평가할 만하지만, 이 그림에 존재하는 건 그것뿐이야."
"자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 하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가 없어. 나한테는 흔이 없는걸."
사신이란 존재는 보통 그렇다. 마음의 요람인 혼이 없기에 벌어진 사건이나 학습한 지식 등의 사무적 기억만 남을뿐, 감정적인 기억은 남지 않는다. 하룻밤 푹 자고 나면 자기 전에 느꼈던 감정은 전부 꿈의 저편으로 사라지기 때문인 것도 있고. - P39

"네가 명령했기 때문이야. 카에데에게 죽으라고 했잖아."
"도망친다는 건 죄의식을 느낀다는 뜻인가?"
"다행이야. 요즘 가해자 중에는 피해자가 죽으면 기뻐하는 사람도 있거든." - P93

죽은 카에데의 육체에서 해방된 혼의 대부분은 검정과회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그 정도로 탁한 색의 혼은 오랫동안 이 일에 종사한 나조차도 처음 봤기에 지금 생각해도 놀랍기만 하다. 카에데는 죽은 채로 살아 있었다. 무엇을 봐도반응하지 않는 마음은 단단히 얼어붙은 돌멩이 같았다.
그런 그녀가 유일하게 아름답게 느낀 것이 죽기 직전에본 석양의 빛깔이었다. 그녀의 인생에서 그것 말고는 마음을 움직여준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견딜 수 없이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다.
흔이 없어 삶의 기쁨을 기억할 수 없는 우리와 혼을 가졌으면서도 생의 기쁨을 느끼지 못했던 그녀 중에서 어느쪽이 더 슬픈 생물인 걸까.
·현실에서 도망칠 방법은 그것 말고도 얼마든지 있었어. 인간의 수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지만 삶의 방식은 스스로 정할 수 있지. 모든 걸 잃어버릴 각오로 그 집에서 뛰쳐나왔다면 카에데도 좀 더 행복한 죽음을 맞을 수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 아이는 포기해버렸지. 자기 인생도, 이 세상도." - P103

"이봐, 찰스, 어째서 인간은 추한 것들만 열심히 찾아내는걸까? 고개를 조금만 들어도 세상은 이렇게나 아름다운데."
"인간은 다들 근시거든. 먼 곳을 보게 하려면 안경을 씌워줘야만 하지. 뭐, 그중엔 가끔 자네처럼 먼 곳만 보려 하는곤란한 녀석들도 있지만 말이야." - P104

"......이봐, 엘리. 내가 자네를 고용한 이유가 자네의 눈동자에 첫눈에 반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면, 자네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 P136

"오른손으로 기쁨을 붙잡으려 하면 왼손의 보물을 떨어뜨리게 돼."
인생이란 그런 거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나는 왼손의보물을 잃는 게 두려웠다. 그래서 계속, 언제까지나 지켜내고 싶었다.......
하지만 오른손으로 새로운 기쁨을 움켜쥔 지금은 이게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왼손은 당분간비워두자. 욕심이 나서 또 오른손을 뻗지 않도록. - P157

아아, 수많은 아침을 맞이하면서도 슬픔의 빛이 바래지않는다는 건 멋진 일이야. 엘리, 부디 마지막 순간에 내 눈앞을 장식하는 혼이 너의 눈동자와 같은 색이었으면 해. - P180

"발상의 전환이라는 거죠. 예를 들어, 출생지나 시대, 재해처럼 자기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에 인생을 지배당한다는 건 굉장히 불쾌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일일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분노나 증오에만 집중하다 보면 만만치 않은 현실과 직면할 때마다 본인만 더욱 힘들어질 뿐입니다.
그렇다면 억지로라도 사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과거와의 타협을 훨씬 쉽게 만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거죠." - P234

"우리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보통 사람들 보다 모르는 게 몇 배는 많잖아요. 저는 태양을 본 적이 없고, 하늘이 어떤 색인지도 모르고, 별똥별이 어떤 건지도 몰라서 소원도 빌 수 없어요. 그래서 그만큼 눈이 보이지 않아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좀 더 많이, 많이, 많~~이 알고 싶어요. 눈이 보이는 사람이 열 가지를 알고 있다면, 저는 백가지를 알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제가 불행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고 보통 사람들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할아버지는 ‘세이라는 참 지기싫어하는구나‘ 하며 웃으시지만요." - P285

하지만 과연 그들의, 아니 나의 선택은 정말로 옳았던 걸까? 나는 그들이 고른 결말을 축복하는 게 아니라 슬퍼해야하지 않았을까? 결국 생의 기쁨을 잃어버린 그들의 공허한최후에 가슴이 아파야 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세계는...
"우리는 낙심하지 않는다. 우리의 외적 인간은 쇠퇴해가더라도 내적 인간은 나날이 새로워진다. 왜냐하면 우리가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마련해주기 때문이다."
순간 무심결에 주먹을 맏아쥐던 내 귓가에 찰스의 거침없는 암송이 들려왔다.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다...
"라고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편지에 적혀 있지. 인간이란 건 어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것에 얽매이기 마련이야그런 슬픈 생물이지. 전에도 이야기했잖아. 모든 사람은 근시라고."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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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재회가 뭔지 말해 주세요."
"마지막 재회란, 죽어서 이곳 작별의 건너편을 찾아온 사람에게 현세에 있는 사람과 한번 더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는것입니다. 허락된 시간은 24시간. 그러니까 꼬박 하루라는 시간이 아야코 씨에게 주어집니다."
"한번 더 만날 수 있다……… 꼬박 하루 동안이나…………."
"예, 다른 사람도 아야코 씨의 존재를 확실히 알아보고, 만질수도 있고,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외모도 살아 있을 때와 똑같고요."
"......다만, 조건이 있습니다."
"현세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아야코 씨가 죽었다는 사실을아직 모르는 사람뿐입니다." - P17

"난, 엄마 같은 히어로가 될 거야."
"엄마는 지금 지구 말고 멀리 있는 별을 지키고 있는 거지?" - P53

"작별의 건너편을 찾아온 사람은 누구를 만날지 스스로 선택하고, 소중한 사람을 만나러 갑니다.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제가 해야 할 최대의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개하고 주선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이곳 작별의건너편에 존재하는 안내인이니까요." - P62

이곳은 끝맺음을 위한 공간.
그러면서 시작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저 서로의 앞날에 가장 좋은 것이 허락되기를 바랄 뿐이다. - P64

"지난날을 과거의 실수 그대로 내버려 둘지, 아니면 반성하고성장의 밑거름으로 삼을지는 현재의 당신에게 달렸습니다. 그러니 현재를 바꾸면 과거도 자신이 좋았다고 여길 수 있는 것으로바뀝니다." - P97

"남에게...... 피해 주지 마라......."
"대신, 가족한테는 피해 줘도 괜찮다." - P107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야마와키 씨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다음이라, 글쎄.......
"......솔직한 사람이 되고 싶군."
가족들 앞에서 오기를 부렸다. 모처럼 비디오 대여점 점원을만났을 때도, 그리고 안내인을 처음 만났을 때도 계속 센 척했다.
복잡한 심경으로 지난날을 회상했다.
좀 더 솔직했더라면 다르게 살았을 수도 있다.
옛날 친구나 알고 지내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며 살았다.
그리고 아버지 어머니에게는 누구보다 더 큰 피해를 끼쳤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씻을 수 없는 후회.
돌이킬 수 없는 과거.
솔직하지 못해서 후회하는 일은 있어도 솔직해서 후회하는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았다. - P112

돌이켜 생각해 보니 사야카는 보통 사람이 의식하지 못한 채 지나가는 것까지 민감하게 알아차렸고, 그런 만큼 불필요한 상처를 끌어안게 되는 아이였다. - P135

옆에서 지켜봤다면 앞으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사람처럼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미사키는 상관없었다.
사람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하고 싶은 일은 당장한다.
그것이 미사키가 내린 결론이었다.
어쩌면 인생은 생각보다 짧을지도 모르니까. - P160

"미사키가 그랬어요 우리 노래를 들려주고 싶어! 내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건 노래밖에 없어! 그러니까 이대로 페이퍼백의 노래를 사람들에게 전하지 못한다면 죽어도 죽을 수 없어!"

"미안 역시 안 되겠어. 내가 만든 곡과 미사키의 목소리가 하나가될 때 비로소 페이퍼백의 노래가 탄생하거든 그러니까 미키와같이 무대에 오르진 못할 것 같아. 그리고 나도 이제는......" - P173

행복해지고 싶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행복을 손에 넣지 못할 거라고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내안에 있었다.
또한 내게 그 사람이 소중하듯 나 역시 그 사람에게 소중한존재가 되어 버리면, 이별할 때 서로가 너무 힘들어진다. 슬픔은배가 되고, 눈을 질끈 감고 싶어질 안타까운 결말만이 우리를 기다리게 될 것 같았다.
그러므로 그게 최선의 선택이었다.
어차피 잃을 거라면 처음부터 손에 넣지 않는 편이 낫고, 저만치 앞에서 큰 슬픔이 기다리고 있다면 처음부터 작은 기쁨도 누리고 싶지 않았다.
무엇보다 타인을 내 미래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실제로 시한폭탄은 폭발했다.
그런 만큼 나는 짧은 인생을 필사적으로 살아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짧은 삶을 통해 내가 이 세상에 남길 수 있는 거라곤 노래밖에 없었다. - P182

"내가 이 말이 와닿았던 건요, 내 건강 문제와 부모님 일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같은 반 애들이 좋아하는 이성이 자기를봐주지 않는다고, 부모님과 싸웠다고, 그런 문제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부러웠어요. 그럴 때 그 말을 듣고, 어쩌면 내 눈에는아무 걱정 없어 보이는 사람도 속에는 뭔가 고민이 있지 않을까.
하고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내가 고민이 있다고 다른 사람의 고민을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되잖아요." - P187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허겁지겁 바쁘게 뛰어다니는 삶.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음미하며 살아가는 삶.
서로 정반대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다르지 않았다.
인생에는 시작과 끝이 있기에 두 사람은 각자의 방법으로 매일을 소중히 여기며 산 것이다. - P218

아름답지 않은 생명은 하나도 없다.
전부 다 고귀하다.
그러면서도 덧없다.
또한 이별은 누구에게나 갑작스레 찾아온다는 것을 몇 번이고 깨닫게 되었다.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없게 되는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모른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게 되는 때가 찾아온다.
그렇기에 하루하루를 후회 없이 살아가자.
소중한 사람 앞에서는 솔직해지자. - P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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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같은 외모로 바뀌면 팬은 조금 적어지겠지만, 점장님이 가진 그 심지를 볼 줄 아는 사람은 분명 남을 거예요. 그러니까 어떻게 생기든 매몰될 걱정은 없다고요."
"네가 말하는 그 심지가 바로 개성이고 매력이야. 우리는네가 가진 심지를 좋게 본 거고." - P126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이랑 정식으로 결혼하고 낳은 미즈키랑 어느 쪽을 더 우선해야 하는건지 모르겠어? 잘못된 애를 만들어서, 불쌍하게 만든 건 당신이지, 내가 아니라고. 내가 틀린 말 했어? - P163

"너네 왜 나한테 거짓말해?"
"어떻게 거짓말을 해서 따돌릴 수가 있어? 그런 짓을 할 땐확실한 이유가 있겠지?"
"그야..." 
"미즈키랑 같이 있으면 신경 써야 되잖아."
"마음에 안 들면 금방 화내고. 미즈키가 없어야 우리가 편하게 놀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 너랑 있으면 힘들어."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고...?"
"미즈키랑 멀어지고 나서야 알게 됐어. 우리가 너한테 지배당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안 됐는데"
"여왕 노릇하는 미즈키한테 아부하는 거, 이제 그만하고싶어. 그래서 더 이상은 미즈키랑 같이 지낼 수 없을 것 같아.
안녕." - P166

"아가씨가 나중에 곤란한 사람을 발견하면 그때 써 줘"
"이런 일은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배려나 상냥함같은 건 다른 사람에게 전하면 전할수록 소중해지니까."
"...전하면 전할수록." - P171

‘더 심한 분노나 폭력으로 되돌려 받는 날이 반드시 올 테니까‘
문득, 1년 전 들었던 말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즈사가 변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어떻게든 되돌리고 싶은 마음에 사과를 받으려 했던 그때, 아즈사가 했던 말이었다. 이런 상황에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화가 나서 뺨을 때리려다 도중에 멈춘 것은 아즈사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미즈키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아즈사의 눈빛에 미즈키를 우습게 여기거나 얕보는 느낌은 없었다. 진심으로 미즈키에게 그런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졌었다. - P192

"에리나 무리가 날 싫어하게 됐거든. 그리고 나 전에는 정말 못된 애였어. 구리하라 너 같은 애들을 따돌렸어"
"너무 심한 짓을 했어. 정말 못됐었지. 앞으로 그 벌을 받게될 거야. 나랑 친구가 되어 봤자 좋을 게 없어."
"너무하다고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한 번도 안 한 사람은아마 없을 거야."
나지막이 구리하라가 말한다.
"나도 마찬가지야. 초등학교 4학년 때 잡화점에서 도둑질을 한 적이 있어. 친구 생일 파티에 처음으로 초대받아서 선물을 사 가고 싶었는데 돈이 없었거든. 그래서 가게에서 고체향수를 훔쳤어. 비누 향기가 나는 고체향수"
"그런데 담임 선생님이 너무 한심하다고, 사람을 잘못 봤다면서 무섭게 화를 냈어. 최악의 행동이라면서 용서받을 수없는 일이라고 하더라. 물론 그게 옳은 반응이겠지. 난 사라져 버리고 싶을 정도로 심한 자기혐오에 빠졌어. 그래서 선생님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울면서 엄마한테 사죄했어.
그랬더니 엄마가 반성했으면 절대로 같은 실수를 하지 말라고 하더라. 원래 아이들은 실수도 많이 하고, 때로는 잘못을저지르기도 하는 미숙한 존재라고, 그래서 처음한 잘못은 절대로 혼내지 않을 거라고. 다만, 확실히 후회하고 반성해서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하라고 하셨어. 사람은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라고."
"엄마, 나 용서해 주는 거야? 하고 물으니 소중한 사람의실패는 함께 극복해 가는 것이라고 하셨어."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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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애가 나랑 뭘 하자고 했는데 내가 거절했을 때 다카기씨 표정 봤어? 나 같은 놈이 같이 있는 것도 용서가 안 되지만, 그렇다고 나 같은 놈이 감히 그 애의 제안을 거절하는 무례를 범하면 그것도 화가 나는 거야. 상반된 감정이 뒤섞여서 결국 그냥 무표정이 되더라." - P89

고등학교 졸업 후 몇 개월. 쓰바키에게는 세상이 얼마나넓은지 알게 된 시간이었겠지만, 다로에게는 자신이 우물 안개구리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 저마다의 개성이 넘치는 사람들이 모인 대학이라는 곳에서 다로는 착실하게 파묻혀 가고 있었다.
아아, 나는 쓸모없는 남자였구나. - P95

열심히 한 가지만 파는 사람도 빛나지만다방면에 걸쳐 여러 가지를 아는 사람들도 좋아. 생각지도못한 것을 느닷없이 알려 준다거나 하는 두근거림이 있잖아.
"온몸을 깊이 던져 그 세계에 완전히 젖어 버린 사람에게도 빠져들고 싶지만, 광활한 세상으로 데려가 줄 것 같은 사람이 마구 나를 데리고 놀아 줬으면 하는 마음도 든다는 거잖아. 둘 다 매력적인데. 난 어느 쪽이든 다 좋아." - P119

"개성이란 단어의 뜻을 잘 설명할 수는 없지만,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라는 거지? 그럼 개성 있는 게 맞아. 오히려 내가개성이 없지."

"점장님이 호감을 사는 이유는 외모 때문만이 아니잖아요,
뭐랄까, 엄청난 애정으로 가득한 점장님만의 ‘심지‘ 같은 것이 있으니까." - P122

"소중한 손님이에요, 당신은."

아무도 없는 취식 코너에서 다로는 울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이 기뻤다. 설령, 그것이 처음 들어간 편의점 점원의 접객 멘트라도 상관없었다. 이 넓은 세상에 파묻혀 사라질 것 같았던 자신의 존재가 인정받았다.
마치 구원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 P125

"아, 아니, 일찍 알았으면 더 빨리 행복해질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모르고 사는 것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어서"
앞으로도 이런 발견들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후회하겠지.
그렇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인 주에루가 "나도 얼른, 하고싶은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아" 하고 말꼬리를 늘인다.
"내가 평생 하고 싶은 일을 얼른 찾고 싶어. 더 빨리 찾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후회하고 싶지 않으니까."
"멀리 돌아가는 것 같아 답답한 기분, 제자리에서 걷는 듯한 초조함. 그런 걸 모르면 자기가 누리는 감사함을 모르게될 수도 있으니까. 당연하다는 생각에 소중하게 여기지 못할수도 있고, 바라고 바라서 얻은 것은 말도 못 하게 반짝반짝빛나거든."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 왔다. 원래 인생은 그런 것이라고 결론 내린 줄 알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미래도, 가능성도 없는 스스로를 걱정하는 자신이 분명 존재했다. 그런 자신을 계속 무시할 수는 없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흘러갈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고민하고 방황해야 한다. 지금 이대로는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것들에 감사하기는커녕 소원해지기만 할 것이다. - P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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