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왼손에 매달린 은사슬이 살짝 흔들리며 차르르 하는소리를 냈다. 그 소리를 듣고 천천히 입가를 치켜올리며 하얀 이를 드러낸 수많은 얼굴 중에서, 나는 그날 구해내지 못했던 그를 발견했다.
"거짓말이네에 우리는 안 속아. 그런 식으로 우리를 속이고 꾀어내서 잘게 조각내려는 거지? 이 악마!"
"악마에게 악마라는 소릴 들을 줄은 몰랐지만…………… 그래.
난 분명 악마였지. 그러니까 마지막은 인간으로서 끝나고싶어."
그것이 지금의 나에겐 유일한 진실이었다.
자, 밤이 어스름을 끌고 다가온다. 그러나 망각의 아침은이제 오지 않는다. - P374

히요리. 나 말이야, 네가 웃으면 태양이 높이 뜬 것처럼 눈부시다고 생각했어. 유학 가고 싶다는 내 꿈도 비웃지 않고 응원해줬지. 그래서 좋아한다는 말을 꺼낼 수 없었어. 마음을 전할 수없다면, 하다못해 최고의 추억을 만들고 싶었거든.
그런데 어째서 뭐야 이거, 대체 뭐냐고!
"토와다 타이요 군. 유감스럽지만 자네는 여기서 죽어. 몰랐겠지만 나는 사신이야. 자네의 혼을 저승에 보내주러 왔어."
갑자기 내 눈앞에 검은 옷의 젊은 남자가 불쑥 나타났다. 물에빠진 내 눈앞에서 그는 우아하게 물속을 떠다니고 있었다. 죽어가는 내게 손을 뻗어주지도 않고 말이다. 발버둥 칠 힘마저잃어버린 나는 천천히 가라앉아가며 입을 열었다.
‘죽고 싶지 않아. 나는 하고 싶은 일이・・・・・・ 히요리도......?
......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입술의 움직임을 읽었는지, 아니면 내 마음속을 읽었는지 몰라도 사신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더니 손가락으로 내 뺨을 어루만졌다.
"다음 생이 있어. 거기서 다시 한번 그녀와 사랑하게 될 거야."
의식이 끊어지기 직전에 그가 꺼낸 건 위로의 말・・・・・・ 이었을까?
뭐야 그게.
최후의 순간, 나는 웃고 말았다. 내가 생각해도 우는지 웃는지모를 어설픈 웃음이었다. 하지만 사신이 하는 말이니만큼 한번쯤 믿어봐도 좋지 않을까? 1년에 한 번만 만날 수 있다는 견우와 직녀처럼, 나도 다음 생에서는 그녀와 평생 한 번 있을까말까 한 사랑을 하게 될 거라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몸이 쑥가벼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나는 생각했다.
아아, 이제 괴롭지 않네, 하고 말이다. - P65

자신의 영혼이 무슨 색일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사람의 영혼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온갖 기억에 담긴 감정의 집합체다. 그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색은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과 소중한추억이다.
나는 죽은 이를 명부로 안내해주는 통행료로 혼의 가장 아름다운부분을 떼어 받는다. 나의 하루는 사신 업무 외에는 다양한 색으로둘러싸인 아틀리에에서 수정처럼 반짝이는 혼의 조각으로 물감을만들고 그림을 그린다. ‘오늘 업무가 끝났으니 느긋하게 그림을그려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스마트폰에서 마더구스의 노래가 울린다.
"그래, 자네. 안녕한가. 미안하지만 오늘도 갑작스러운 임무라네, 내용은 메일로 보냈으니 신속히 확인하도록."
아아, 최근에는 사신 적성 판정에 합격하는 이가 없어서 사신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더니… 오늘도 급작스럽게 업무 추가다. 여유부릴 때가 아니었네. 자, 그럼 가볼까 찰스? 이번 영혼의 가장 아름다운 기억은 과연 무슨 색일까. - P1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