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은 생명체만이 지닌 최고의 방어 프로그램이다. 고통이 인간을 살게 했고, 고통이 인간을성장시켰다. - P8
역사적인 날. 나는 오늘을 그렇게 부르고 싶다. 사람들에게 역사적인 날이란, 무언가를 처음 시작한 날을 의미할 때도 있었지만 기적이 일어난 날을 더 많이 칭했다. 기적. 오늘은 내 짧은 생에 두번째로 기적이 일어난 날이었다. - P9
어쩐지 눈은 뜨고 있으나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기분이었다. 빼앗긴 적없는데 빼앗긴 기분이었고 버려진 적 없으나 버려진 기분이었다. 휴머노이드를 보면 그랬다. - P91
연재는 타인의 삶이 자신의 삶과 다르다는 걸 깨달아가는 것이, 그리고 그 상황을 수긍하고 몸을 맞추는 것이 성장이라고 믿었다. 때때로 타인의 삶을 인정하는 과정은 폭력적이었다. - P113
다른 수험생들의 엄마가 어떻게 아이를 관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보경의 방식은 ‘방목‘이었다. 숨통을 조이는 순간 분명 어느 한 곳이 짓무르기 시작할 거라고 믿었다. 아이들은 필요하다느끼면 무엇이든 스스로 찾아 해냈으며, 보경이 느끼는 두 딸은착실하게도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고민하며 꿰어 나가고 있었다. 정말로 다급하게 손을 뻗을 때에만 아이들의 SOS를 놓치지않고 들으면 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리라. 섣부른 판단과 간섭은 아이를 답답하게 할 뿐이었다. - P165
"딸이 두 명이나 있는데도 말을 못 꺼내겠더라고. 힘든 애들한테 힘든 거 얹어주는 걸까 봐. 엄마를 신경 써줘야 할 존재로 인식할까 봐." "미안, 인간이 원래 이렇게 주책없어. 그런데 너는 그리움이뭔지 모르겠지? 부럽다." "그리움이 어떤 건지 설명을 부탁해도 될까요?" "기억을 하나씩 포기하는 거야." "문득문득 생각나지만 그때마다 절대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 그래서 마음에 가지고 있는 덩어리를 하나씩 떼어내는 거지. 다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떼어낸다는 게 가능한가요? 그러다 죽어요." "응. 이러다 나도 죽겠지, 죽으면 다 그만이지, 하면서 사는 거지." "그리운 시절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현재에서 행복함을느끼는 거야." "행복이 만병통치약이거든." "행복한 순간만이 유일하게 그리움을 이겨." - P204
돈이 되지 않는 말들을 경마장측에서 계속 보살핀다면 그건 경마장의 손해였고, 그렇게 경마장 운영이 어려워지면 그 역풍은 민주에게 닿을 거였다. 민주는말들의 관리인이 아니고 보이지 않는 마방에 갇힌 또 다른 말이었다. 사회는 개개인이 촘촘히 연결된 시스템이었고 그 선은 서로의 목을 감고 있었다. 살기 위해서는 끊어야 할 때 연결된 선을 과감하게 끊어야 하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죽이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 P218
"고작 이틀에서 14일로 삶을 연장한다고 뭔가 달라질까?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길까...?"
"당연하지. 살아간다는 건 늘 그런 기회를 맞닥뜨린다는 거잖아. 살아 있어야 무언가를 바꿀 수 있기라도 하지." - P261
"살아 있다고 느끼는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살아 있다는건 호흡을 한다는 건데, 호흡은 진동으로 느낄 수 있어요. 그 진동이 큰 순간이 행복한 순간이에요." - P302
함께 있지만 시간이 같이흐르지 않으며 같은 곳을 보지만 서로 다른 것을 기억하고, 말하지 않으면 속마음을 알 수 없다. 때때로 생각과 말을 다르게 할수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숨기다가 모든 연료를 다 소진할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아차렸고, 다른 것을 보고 있어도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으며 떨어져 있어도 함께 있는 것처럼 시간이 맞았다. 어렵고 복잡했다. 하지만 즐거울 것 같기도 했다. 콜리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면모든 상황이 즐거웠으리라. 삶 자체가 연속되는 퀴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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