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아름다울 뿐인, 내게는 아무 의미도 없을 여자애가 말했다.
"너랑 사귀어도 되지만 조건이 세 개 있어.
첫째, 학교 끝날 때까지 서로 말 걸지 말 것.
둘째, 연락은 되도록 짧게 할 것.
마지막으로 셋째 날 정말로 좋아하지 말 것. 지킬 수 있어?"
당시 나는 모르는게 몇 가지 있었다.
일상적인 것으로는 가짜로 고백하는 올바른 방법이라든지,
철학적인 것으로는 죽음이라든지, 시적인 것으로는 연애 감정이라든지.
그런데 모르는 게 하나 더 늘었다. 나 자신에 관한 것이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모르는 여자애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그래"라고.

그 애 앞에 있으면 저절로 마음이 기뻤다. 그게 틀림없는 내 감정이었다.
유사 연애 관계라 해도 다를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내마음이 기쁜 것. 내가 히노를 좋아하는 것. 다를 게 없다.
이 마음만 있으면 히노가 나를 좋아해주지 않아도 된다. - P126

히노는 밤에 잠이 들면 그날 있었던 일을 모두 잊어버린다. 하루하루를 쌓아 올릴 수 없다. 대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얼마나 괴로울까.
자기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하는 데다 미래까지빼앗겼다.
그렇다면 내일의 히노가 조금이라도 일상을 즐겁게 느낄 수 있도록, 히노가 쓰는 일기를 즐거운 추억으로 가득채워주자.
그것을 읽고 내일의 히노들이 조금이라도 용기를 얻을수 있도록조금이라도 미래에 대한 공포를 덜어줄 수 있도록. - P128

이제 나는 힘없는 어린애가 아니다. 아직 어리기는 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절의 내가 아니다. 적어도 내발로 걸을 수 있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만나러 내 발로 갈수 있다.
도중에 조바심이 나서 뛰기 시작했다.
히노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몸 전체가 기뻐하고있었다.
달리기 때문인지 심장이 빠르게 고동치더니 순간 죄어드는듯한 아픔이 느껴졌다.
비틀거릴 뻔했지만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점심도먹지 않고 느닷없이 뛴 탓일 것이다. 그렇게 턱도 없는 행동을 하는 나 자신에 웃음이 났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 웃으며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한걸음 한 걸음이 그 사람에게로 이어졌다.
나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건 내가 바라 마지않던힘찬 충동이었다. - P179

"제가...... 제가 소설을 쓰려고 한 건 아버지 영향이에요. 소설을 쓴다는 행위는 아버지 덕분에 가까이에 있었어요. 그렇지만・・・・・・ 처음엔 저도 그랬거든요. 지금의 자기자신한테서 도망치고 싶어서 썼어요. 그런데 언제부턴가그게 아니게 된 거예요. 자기를 확장해가기 위한 걸지도모르겠다. 자기 자신의 새로운 말, 새로운 생각을 만나는장소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게 됐어요." - P247

"잊어버리기...... 싫어."
어느새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다. 시야가 부옇게 번졌다.
어라? 어째서? 왜 이러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잊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소중한 시간을 잊어버리다니, 일기에만 남길 수 있다니, 그런 건 싫었다. 그렇지 않나. 인생은 언제나 한 번뿐이다. 어떤 순간도 돌이킬 수 없다. 그렇기에 사람은 그걸 소중히 한다. 보물로 삼으려고한다.
그런 걸 기억할 수 없다니 너무한다. 너무 슬프다.
반대편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나를 남자친구님이 보고있었다.
"잊지 않을 거야, 난 이날을."
그 목소리는 폭죽 터지는 소리에 묻히지 않고 또렷이내 귀에 들렸다.
"나. 나도 잊지 않을 거야. 잊을 리 없는데.
이상하다. 너무 즐거워서 그런가? 눈물이 그치질 않네."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흘리는 내 손을 남자친구님이 꼭쥐었다.
"사람은 원래 잊어버리게 마련이야. 하지만 괜찮아. 어떤 기억도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난 그렇게 믿어." - P266

‘좋아한다‘는 감각에 기인하는 말이다. 오기로 곁에 있어 준다든지 논리로 따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됐을 때, 나중에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그건 좋아한다는 직감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은 ‘어떠어떠하니까 좋아한다‘라고는 할 수 없는것이다.
근거가 없는, 진정한 의미로 감각에 기인하는 감정이다. - P282

"그렇지만...... 죽다니. 그런 일 없어. 괜찮아."
"응, 알아. 하지만 인간은 존재하는 것 자체가 기적이라고 생각하거든. 그렇잖아, 굉장하지 않아? 공업 제품이랑은 다르다고. 거기엔 설계도도, 숙련된 작업자도 없어. 어머니 배 속에서 자라서 세상에 툭 나와서, 그때부터, 아니그 전부터 살아 있지. 그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로봇처럼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게 아니니까 이상이 생겨도 바로 모르고 움직이지 않아도 부품을 교체해 살려낼 수 있는 것도 아냐. 어떻게 이렇게 살아 있는 건지 실은 잘 알 수 없어. 이해할 수 없고, 굉장하고, 동시에 겁나는 일이야." - P307

"세계는 말로 되어 있어. 그리고 사람은 그 말에 매달리려고 해. 좋다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좋은 게 돼.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 무슨 일이든 좋지 않은 게 되고, 특히 이번일은 그게 뚜렷하다고 생각하거든. 결과가 불확실하니까.
일기에서 도루를 없애지 않으면 마오리는 괴로워할지도몰라. 그런 마오리를 보면서 도루 말대로 할 걸 그랬다고너도 괴로워할지도 몰라. 반대로 일기에서 도루를 없애면지금의 마오리한테는 좋을지 몰라. 하지만 넌 양심의 가책에 시달려야 할지도 몰라. 그렇지만 그것도 지금 시점에선전부 불확실하거든."
"살아야 하는 생을 사는 게 우리 인간의 참된 모습이라면 마오리가 괴로워하면서 사는 것도, 우리가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면서 사는 것도, 둘 다 올바른 모습이라고 난 믿어. 다만...... 와타야, 도루는 선택을 너한테 맡겼어. 그러니까 네가 정하렴. 그러고 싶은지, 그러고 싶지 않은지, 그것만 기준으로 해서 난 네 판단을 따를게. 만약 너 혼자 정할 수 없다면 날 이유로 삼아. 그게 도루의 유지라면 난 이뤄주고 싶어. 그렇지만......." - P320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아픔이 계속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그렇게 해서 슬픔을 소화해가는 걸까.
슬픔을 잊게 되는 걸까.
그럴지도 모른다. 계속 사로잡혀 있어서는 앞으로 걸어나갈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언젠가 슬픔을 잊게 된다는 게 슬펐다.
"추억은 소중한 거죠."
그런 생각을 담아 말하자 누나는 표정을 살피듯 나를쳐다봤다.
"전 그 소중한 걸 잃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조금씩 그 애를 잊어갈 거라면 ・・・・・・ 전 조금씩 그 애를 기억해내고 싶어요. 소중한 걸 되찾아보고 싶어요."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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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루 넌 나랑 사귀는 거 싫어?"
"......싫은 건 아닐지도, 아마
"뭐야, 그게."
"너한테 실례일 수도 있지만 약간 재미있을지도...... 싶거든. 세 가지 조건이랬나? 결국 일반적으로 말하는 연애를 하는 게 아니잖아? 유사 연애려나 좋아하지 않는다는게 조건이고, 너만 싫지 않으면 괜찮을 것 같아."
"그럼 됐네. 아, 하지만 이즈미가 걱정하니까 겉으로는유사연애가 아니라 진짜 사귀는 걸로 하자. 이즈미한테도조건 이야기는 안 했거든."
우리는 그렇게 해서 그날 이상한 약속을 맺었다.
A조건부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 - P34

"넌 늘 웃더라."
"아, 응, 뭐, 사실은 늘 그런 건 아닌데 웃을 수 있을 때확실하게 웃어두자 싶어서 웃을 수 없을 땐 진짜 뭘 어떻게 해도 웃어지지 않잖아." - P67

"널 좋아해도 될까."
"안돼."
"왜?"
"나 말이지......."
"병이 있어. 선행성 기억상실증이란 건데.
밤에 자고 나면 잊어버리거든. 그날 있었던 일을 전부"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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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이 세 가지 세포 색을 섞어서 여러 가지 색을 인식합니다. 그런데 이 원뿔 세포가 조금씩 사멸되다 끝에 가서는 온 세상이 회색 톤으로 보이면서 결국 의문의 죽음을맞이하게 되는 병. 그게 바로 무채병입니다."
"데이터를 보니 신도 군이 첫 번째로 볼 수 없게 된 색은연분홍색이군요. 신도군, 당신은 무채병입니다." - P30

어른들은 아직 열일곱 살인 우리를 보며 앞날이 창창하다고 말들 하지만 내게는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없었다. 1학년 때부터 장래에 어떤 직업을 갖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진로에 관해 묻는 수업이 여러 번 있었다. 프린트물을 나눠주고 굵은 선 안을 채워 넣으라며 연필을 쥐게했다. 정답은 물론 뭐라고 적어야 할지도 몰라서 그냥 빈칸으로 제출했다가 혼난 기억밖에 없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어른이 되고, 취직을 하고, 누군가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린다. 노인이 되고, 손주가 생기고, 그러다 죽는다. 지극히 평범해 글로 써서 남길 필요도 없는 그런 인생을 살게 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니 빈칸은 채우지 않아도 된다 생각했다. 언젠가 뭐라고 써야 할지 알게 되는 날이 오면 그때 쓰면 된다고. 그렇게 간단히 죽지는 않겠지 싶었다. 나는 내 앞에 들이닥친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죽음이 두려웠다 - P41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얻기 위해 다른 소중한 것을 잃으면서 살아간다. 지금 내가 너를 선택하고 오랜 친구의 손을 잡지 않은 것처럼. - P72

나는 죽고 싶지 않아. 내가 없는 세상에서 네가 웃는 게싫어. 나 아닌 누군가를 향해 미소 짓는 모습을, 나 아닌 누군가와 맺어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너에게 나보다 더 특별한 사람이 생기지 않았으면. - P141

만약에, 내가 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면..
너와 내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없었겠지.
만약에, 내가 죽는 걸 몰랐더라면.
변함없이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갔겠지.
만약에..... - P182

너의 웃는 얼굴이 보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너의 웃는 얼굴을 보며 수없이 구원받았다. 그 얼굴을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 내가 곁에 있는 동안너를 실컷 웃게 해주고 싶다.
그건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이 세상에 남기는흔적이다. - P190

네가 가르쳐주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게 이토록 멋진일이라는 것을. 무심히 지내온 일상이 더없이 소중하다는 것을. 색채가 사라져가는 세상에선 사랑이 미래를 향한 희망을안겨준다는 것을. - P217

‘나는 소야라고 해. 신도 소야, 넌?
・히나 다치나미 히나.‘
‘그렇구나, 히나. 한자로는 어떻게 써?
비단 비자에 능금나무 내() 자를 써
‘비단 비
‘붉은색이라는 뜻도 있어
‘아하! 내 이름. 소야의 소는 푸를 창자를 쓰는데
‘그렇구나‘
굉장해, 빨강과 파랑이잖아! - P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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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얘기했다. 그에게 돌아오는 말이 없어 그제야 주열 씨를 쳐다보았다. 그는 해맑게 웃는 이연이도 보지 않고 베란다를 쳐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몰라도 생각이 많아 보이는표정이었다. 그럼에도 그저 잘해낼 거라 믿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잔인한, 그리고 이기적인 믿음이었다.

사소한 물음에도 다정하게 답해주던 그는 이번엔 내 말에 제대로 답하지 않았다. 부서 이동을 한 뒤 달라진 모습이었다. 일이많아서 힘든가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일부러회사 일에 관해 묻지 않으려 했다. 그게 그를 믿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 P42

"후회해요. 매일 후회해요. 그런 회사 그만두라고, 둘이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말했다면, 뭐가 힘든지 더 물어봤다면, 그날 밖에 나가지 말라고 했다면, 같이 있었다면......."
언제부터 울고 있었을까. 슬프다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데자연스럽게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내게 남은 것은 후회와 그날의 기억이었다. 하나라도 달랐다면 한 번이라도 물어봤다면, 주열 씨의 죽음을 방관한 사람. 방관한, 나.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들도 나 자신도 - P54

"쉽게 설명드릴 순 없지만, 정말 소중했던 사람. 정말 간절한사람. 그런 단 한 사람만이 고인의 마지막 마음을 들을 수 있는특별한 공중전화예요. 고인이 세상을 떠난 시간에만 들을 수 있어서 강주열 씨가 사망한 시간까지 와달라고 한 거고요. 물론, 언제나 연결되진 않아요. 고인이 마지막으로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야만 하죠. 다른 사람은 몰라도 송연아 씨라면, 들을 수 있을 거예요. 누구보다 간절하고, 강주열 씨가 사랑한 사람일 테니까요."
"......."
"믿기지 않아도 믿어주세요. 세상에는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곤 하잖아요." - P68

"강주열 씨는 송연아 씨와 아드님을 버린 게 아니에요. 자신이 무능력하다 느끼고 가족에게조차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신 것뿐이죠. 그러니 자신이 없는 게 더 가족을 위한일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고요. 송연아 씨와 아드님이 더 잘 살기위해선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만나야 한다면서요."
"알아요. 송연아 씨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죠. 하지만강주열 씨는 자신이 놓인 상황에서 끝까지 그것이 모두를 위한선택이라고 믿으신 거예요. 그러니까 부디 강주열 씨가 혼자였다고, 또 송연아 씨가 버려졌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해요. 서로가 서로를…………… 너무 위했던 거예요."
"끝까지 가족을 아꼈기에 그만큼 힘드셨던 거예요." - P72

"자살로 낙인찍힌 다른 유가족분들은 어떻게 살아가세요?"
"자살 유가족분들의 삶을 물으시는 건가요?"
"좀 이상한 질문일 수 있지만, 생각해 봤어요. 만약 주열 씨의죽음이 회사에 의한 사고가 아니라 그저 자살로 끝나게 돼버린다면…………… 자살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된다면...... 저랑 아이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지금이야 계속 싸우고 있지만 언젠가 이 싸움도 끝이 나게 될 테니까요. 그때 만약 자살로 결과가 나온다면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센터장님께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 누구도 낙인찍을 수 없고 자살이 낙인이 되어서도 안 돼요. 지금 송연아 씨가 하고 계신 일 모두 낙인찍히지 않은 삶을위한 싸움이에요. 자살이라는 것이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한 사람의 잘못만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고 계시는 거예요. 설령법으로 산재 인정을 받지 못한다 해도 고인이신 남편분과 지금여기 계신 송연아 씨, 그 누구도 두 분께 낙인을 찍을 수는 없어요. 다른 자살하는 분들도, 다른 유가족분들도 마찬가지예요. 중요한 것은 ‘자살‘을 했다는 게 아니라 ‘소중한 사람을 잃었다‘는 거죠" - P76

-・・・・・・도움을 받고 싶어요.
그 말에서부터 내 삶이 시작되었다. 도움을 받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 말로, 그건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말이자 홀로 걷기 위한 첫발이었다. - P122

"감사해요. 이 말, 꼭 하고 싶었어요."
"그 얘기 하러 오셨군요. 저도 정말 감사해요." - P127

"심리부검이 끝나진 않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어머님은 아영이를 죽이지 않았어요. 다만 어머님이 그렇게느끼는 것은 아영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몰랐기 때문이에요. 아영이의 마음이 어땠는지 안다면 다른 마음을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소중한 이를 잃은 슬픔이요. 똑같은 슬픔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그 둘은 다른 슬픔이에요. 지금 슬픔의 방향은 어머님을 향해 있죠. 내가 이렇게 못 해서, 내가 이렇게 말해서. 하지만 아영이의 마음을 안 순간부터 슬픔은 아영이를 향할 거예요. 소중한아이가 떠나갔구나. 힘든 마음을 가지고 살아갔구나. 그걸 저희는 ‘애도‘라고 말해요. 저희가 그럴 수 있도록 도와드릴게요." - P158

"다영이는 기적이 있을 거라 생각해?"
"있으면 좋겠어요. 없는 것보다 낫잖아요." - P175

"스스로 상처 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직접 들은 적이 있어요."
"왜 자해를 하냐는 물음에 돌아온 대답 중 대부분이 ‘어떻게해야 할지 몰라서‘였어요. 살고 싶어서 했다는 아이들도 있었어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다고요. 그 아이들.
모두 자신의 마음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했던 거예요. 혼자서 어떻게든 해보려다 그렇게 된 거예요. 그중에는 죽고 싶다고말한 아이도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물었죠. 잘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무섭냐고요. 그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어요. 죽고 싶다는 그 아이도 실은 잘 살고 싶었던 거예요. 다시 물어보지 않았다면 저는 그 아이가 그저 죽고싶어 한다고만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자해를 하고, 죽고 싶다고했으니까요. 우리는 때로 상대를 알고 있다는 생각으로..... 진짜마음을 몰라주고 있는지도 몰라요." - P178

"우리는 어른으로서 더 많은 것을 봐야 하는 건지도 몰라요.
하나가 아닌 둘, 혹은 그 이상을요. 아마 아영이도 SNS에 다 담기지 않은 모습이 있었겠죠. 어머님께 보인 모습이나, 학교에서의모습이나・・・・・・ 그 모두가 아영이고, 우리가 마주해야 하는 삶일거예요." - P186

-오빠는 이 일에서 뭐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남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거. - P236

그제야 지안이 왜 그를 불렀는지 눈치챘다. 그들에게 중요한것은 그녀가 ‘어떤 방법으로 죽었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느냐‘에 대한 회고였다. 애도란, 그 삶을 받아들이고 소화해 내는 과정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대화하며 마음을 나누는 것, 그게 바로 수용이란 결지안은 진작 알아챘던 것이다. - P244

"왜 거기 올라갔어?"
모두가 물었다. 나를 담요로 감싸던 구급대원도, 내 이름과전화번호를 묻던 경찰관도 이송된 병원 의사도, 입원 처리되어나를 담당하게 된 의료진도 입원 이후 찾아온 어머니 역시 내게물었다. 왜 거기에 올라갔느냐고. 그들은 모두 내게 죽을 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유는 간단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 P267

그녀가 대리기사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그녀가 차에 타는 것도 확인하지 않은 채 인사만 덜렁 건네고 뒤돌았다. 그 모습을그녀가 신경을 쓰는지 아닌지는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뒤돌아가는 나를 붙잡지도 않았다. 그 사실이 왜 그리 야속했는지. 그제야 나는 내 마음의 옹졸함을 보았다. 나는 항상 누군가 잡아주길 바랐던 것이다. 내가 나를 잡을 수 없어, 누군가가 잡아주길 기다렸던 것이다. - P280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유를요. 어떻게 그렇게 큰 슬픔을 지니고도 살아갈 수 있나. 어째서 계속 살아나가는 걸까. 저라면 포기하고 싶었을 거예요. 그런 슬픔까지…… 견디고 싶지 않으니까요." - P286

-지금도 무너져 있어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상태랄까. 그러니까 지안 씨도………………......?
-지안 씨도 이제 쌓아 올려봐요. 다 무너트려서라도, 끝까지떨어지더라도 다시 시작해 봐요. 지금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이잖아요. 이렇게 안부를 묻고, 대답하고, 대화하는 지금이 우리가살아가야 하는 곳이잖아. - P302

-지안 씨. 시간이 흐르면서 해결되는 것들이 있다지만, 그건해결하려는 노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지안 씨가 말했잖아. 지안씨도 이제 노력이 필요할지 모르지. - P313

"......어머니는 왜 그러셨어?"
"그런 질문 이상해. 너도 아빠가 그렇게 갈 줄 몰랐잖아. 나도몰라. 장례식에서도 사람들이 다 묻더라. 왜 자살했느냐고. 그런데 엄마가 자살이든 아니든 죽었다는 건 나도 알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도. 그리고 나는 엄마가 자살한 게 슬픈 게 아니라 죽었다는 게 슬픈 거야. 너도...... 그냥 슬픈 거잖아." - P350

"나는 지금도 슬퍼. 엄마가 보고 싶어. 밖에 나간다고 한 날말려보는 상상도 했어. 그런데 그래도 엄마는 나갔을 거 같아. 아무리 내가 막아봐도 그렇게 생각하면 한편으론 마음이 편해. 모두는 죽고,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언젠가 이 슬픔을 마주해야하잖아. 나는 그게 좀 이를 뿐이었겠지."
"......"
"슬프지 않은 죽음은 없을 거야. 죽음은 우리도 피할 수 없고. 나는 그냥 엄마 대신 내가 슬퍼한다고 생각해. 내가 먼저 떠나면 이 슬픔을 엄마가 겪어야 했을 테니까." - P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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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 삶이 5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된다면,
우리는 모두 공중전화박스로 달려가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전화할 것이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말할 것이다.
사랑한다고.
-크리스토퍼 몰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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