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발을 손에 들고 바라보는 것은 기묘한 감각이다. 하루도 쓰지 않는 날이 없는 부위인데 차분히 관찰할 기회는별로 없다. 만든 내 발뒤꿈치를 손에 들고서 바라보고 있으면, 진짜발뒤꿈치가 간지러워진다. 손과 발 두 개의 말단이 연결되어 내가 원환(圓環)이 된 것 같은감각이 생겨난다. 그 자기완결감이 굉장히 신선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내 발로 걷는 나와, 걷기 위해 내 구두를만드는 내 손. 작게 완결된 아름다운 소우주. 나는 그야말로 그런 것을 추구하는지도 모른다. - P63
"이상한 여자라고 생각해도 돼." "괜찮아. 어차피 사람에게는 다들 조금씩 이상한 면이있으니까." - P81
"어때?"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아."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다라......." 엄마는 잠깐 시선을허공에 돌렸다가 문득 뭔가 떠올린 듯이 말했다. "그거 인생 같네." "네?"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일상 속에서 그래도 맛볼 만한걸 찾아가는 것, 그게 인생이야." 엄마는 얼굴에 ‘쓸 만한말을 했다‘라는 자랑스러운 표정을 띠고 있었다. "이거 굉장하지 않아? 무슨 문호가 말했을 것 같잖아." - P91
"단둘이 얼굴을 마주 보고 있으면 이든 100이든 되어버리잖아." "무슨 의미죠?" "상대가 하는 말을 받아들일지 아닐지. 자기가 한 말이받아들여질지 튕겨날지. "의견을 맞추면 되잖아요. 의논을 하거나……………" "처음에는 그렇게 하지. 하지만 늘 그러면 지쳐서 관계가 망가져. 그래서 관계가 망가져버릴 것 같으니까 상대가하는 말을 전부 받아들이거나 전부 물리치거나 하는 식으로 점점 수렴해가는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패 힘들지." "단둘이 있는 건 그런 거라고 생각해. 던지는 말 하나도상대의 마음에 들지 안 들지, 상대의 말이 자기 마음에 들지안 들지. 결국은 그 둘 중 하나가 되어서 칼날처럼 서로에게 말을 들이대는 형태가 되어버리잖아? 하지만 셋이라는 수는 개인 대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라는 틀에 들어가니까, 의견이나 발언을 상대가 받아들이게 하는 게 아니라가볍게 그 자리에 둘 수 있게 되잖아. 셋이 아니라 네 명이상이어도 좋지만." - P112
"당신은 젊고 파워풀하고, 게다가 공감 능력까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라면 남을 도울 생각을 해줬으면 해요." 내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을 것이다. ....? 구두를 만드는 게 아니라요?" "아뇨, 구두를 만드는 것 또한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더 모르겠다. "뜬구름 잡는 것 같은 이야기겠지만, 당신이 주위에 있는 이상한 어른의 이야기를 했을 때 문득 떠오른 게 있습니다. 그건 머리가 좋고 남의 기분을 잘 아는 사람은 종종힘들어진다는 겁니다. 민감하다는 건 약하다는 것이기도하니까요." "......네." 잘 모르는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은 아직 자기 일만으로도 벅차겠지만, 만약 그런사람이 보이면 조금이나마 도와주어도 좋지 않을까요." "그건 어른이 되라는 건가요?" "아뇨. 당신은 아마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어른이 된다는 막연한 목표는 거의 의미가 없어요. 아이인가 어른인가가 아니라, 남의 마음에 민감하면서도강한 내구력을 겸비한 존재가 되는 겁니다. 그렇게 될 수없는 사람이 많으니까, 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되는 게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말씀이신지……………." "강한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이면 좋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첫걸음이죠." - P149
사람을 기다리는 건 마음이 술렁이는 일이다. 모든 시간을 상대에게 바치는 느낌이다. 둘이 있을 때에는 시간을 반으로 나눠 서로에게 바치고있다. 그러니까 공정하다. 하지만 남을 기다리는 시간이란그렇지 않은 것 같다. 책을 읽거나 낙서를 하거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째서인지오늘만은 그저 시간을 바치고 싶었다. 기도란 바로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 P168
생각하던 것을 말하려면 강한 힘이 필요하고, 그 힘은자기 자신을 크게 바꾸어버린다. 맑은 날이 며칠째 이어지는 동안, 나는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말로 해버리면 말한 방향으로 향할 수밖에 없어진다. 막연히 품고 있던 망설임이나 두려움 같은 것이 뒤로 물러나 작아졌다. 그 대신 내 안에는 나 자신의 영지地)라고 할 만한 것이 펼쳐졌다. 거기에 발을 디디면 발밑에서 힘이 들끓어 나오는 것 같았다. 지금 악령이여, 물러가라‘라고 외치면 퇴마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 P175
"나 말이야......."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되었어. 언제부터인가." - P204
구두를 만드는 것을 통해 나는 걷는다. 내 걸음에 따라 구두가 생겨나고 그 구두로 누군가가 걸었으면 좋겠다. 그런 순환이 생겨났으면 좋겠다. 그런 매일이 이어지고 8월이 왔지만, 아침부터 비가 오는 날은 하루도 없었다. 그리고 9월이 왔다. - P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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