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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성냥갑 - 2021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 동시집
아돌포 코르도바 지음, 후안 팔로미노 그림, 김현균 옮김 / 한솔수북 / 2022년 10월
평점 :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볼로냐’라는 친숙한 이름. 볼로냐 그림책 일러스트 도록이 몇 권 집에 있다.
두 번째는 뭐니 뭐니 해도 성냥불이 연상되는-이것도 어디까지나 ‘작은 성냥갑’이라는 제목 덕에 연상된 것이긴 하지만- 표지를 꽉 채운 주홍빛 그림이다. 빨강은 열정적이고 뜨겁게 타오르는 빛이지만, 그 느낌은 온기보다 열기에 가깝다. 그에 비해 노랑이 섞인 주황색은 보다 따뜻하다. 아무도 곁에 올 수 없게 만드는 뜨거움이 아니라, 누구라도 포근하게 감싸줄 수 있는 색이다.
이 책에 수록된 동시를 모으고 정리해 엮어낸 아돌포 코르도바 씨는 나이에 상관없이 모든 유형의 시를 즐길 수 있다는 생각으로 ‘모두’를 불러 모으려 했고, 그런 의미에서 표지의 주홍빛은 아주 훌륭하게, 아이에서 어른까지 모든 세대를 따뜻하게 품어내는 역할을 해낸다. (표지를 비롯한 모든 그림은 후안 팔로미노 작가의 작품들이다)
사실, 책 뒤편에 실린 엮은이의 말을 읽기 전에는 페이지를 넘기는 내내 이게 동시라고?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 안에는 동시는 이러이러 해야 한다는 편견이 분명하게 존재하기에, 이토록 길고, 운율을 맞추지 않은, 때로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난해한 것들을 동시라 부르는 건 너무하지 않나,라는 생각이었다. 그나마 아이다운 생각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유니콘 그림’이라는 시조차 시라기보다 일기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 하며 동시라면 그래도 좀 이래야지, 내 마음대로 고쳐보기도 했다.

하지만 엮은이는 나 같은 속 좁은 편견쟁이가 아니었던가 보다. 아이용, 청소년용, 어른용으로 시를 나누지 말란다. 모든 세대는 모든 형태의 시를 즐길 권리가 있다! <고양이 여관 미아키스>에서 호텔 보이 고양이가 이야기했듯, “시는 위대한 것”이니까, 그걸 마음대로 재고 따지려고 하는 건 어쩌면 건방진 일일지도 모르겠다. (우와, 나는 편견쟁이에 건방지다!)
그나저나 작은 성냥갑 안에 무엇을 넣으면 좋을까. 별별 것이 다 들어간다. 성냥, 이건 당연한 거고. 한 줄기 햇살, 눈송이 조금, 나무 열매, 별, 눈물, 비밀 이야기.. 뭐든 다 집어넣게 되는 책상 서랍 속처럼, 작은 성냥갑은 뭐든 다 품어줄 기세다. 그리고 작은 성냥갑 속에 별을 세 개쯤 담아두면 어두운 밤, 나를 두렵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쫓아내준다. 그런데, 놀라지 마시라. 방금 한 이야기는 하나의 시가 아니다. 서로 다른 시대, 서로 다른 나라에 살았던 두 마리아가 쓴 성냥갑에 관한 시 두 편을 (내가) 엮은 것이다. 이 책의 또 하나 놀라운 점은 서로 다른 시를 절묘하게 엮어놓은데 있다.
따로 떼어놓고 보면 뚝뚝 분절된 각자의 이야기인데, 모아들인 시를 테트리스 하듯 정교하게 배치해 마치 처음부터 의도하고 그렇게 쓴 것처럼 긴밀하게 연결하였다. 그런 줄도 모르고 한 장, 한 장 넘겨가다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페이지 깊숙이 젖어든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봤던가. 우리는 80년대의 낭만을 ‘오글거린다’는 말 한마디로 없애버렸다고. 나 또한 십대에 즐겨 읽던 시집들을 사춘기 감성이라 비웃으며 애써 감추어 두었었는데 이 얇은 동시집 한 권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부끄럽게 한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어 서평단 지원을 하는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었던가 보다. 이런 기회가 아니라면 아마 평생 모르고 지나치게 될 많은 책들, 그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 소중한 것들- 그럴 수 있다는 걸 알아서, 무리인 줄 알면서 책을 받아 읽고, 생각하고, 글로 정리하는 것이다. 아직까지 글이 긴 책을 두려워하는 내 아이도 언젠가는 책이 주는 기쁨을 발견해 주길 기대하며 차곡차곡, 책들을 집에 쌓아두는 것이다.
작은 성냥갑이, 오늘따라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