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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실수로 투명인간을 죽였다
경민선 지음 / 팩토리나인 / 2022년 10월
평점 :
투명인간. 존재하되 눈에 보이지 않음. 어떤 이유로 그가 존재함을 믿을 때 비로소 존재가 성립됨.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마치 신과 같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 내 믿음과 상관없이 신은 존재하니까. 뭐, 그건 됐고.
세상에 투명인간(혹은 투명생물)이라는 종족이 있는데 우리가 알 수 없게-안 보이니까- 사회에 섞여 살며 우리가 가진 것들을 조금씩 훔쳐내어 살고 있습니다, 라고 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물론 거짓말이라 생각할 확률이 훨씬 높을 테지만 그 말을 ‘당연히’ 믿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그 때의 기분.
인간은 잘 알지 못 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한편,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믿을 수 없어 두려워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두려움은 때로, 혹은 자주, 집단 광기와 집단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그런 사례는 제법 있다. 그 광기에 직접 휘말리지 않더라도 나의 일이 아니기 때문에 방관함으로써 일조하게 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아마 그래서 묵인(본 책 속의 투명인간 종족)들은 말을 아껴야 했을 것이다. 차라리 존재하지 않음으로써 존재를 이어갈 수 있었으니까.
투명인간이라는 극단적인 존재를 내세우긴 했지만 나와 다른 소수에 대한 배타성을 돌이켜보며 복잡한 심경이 되었다. 예를 들면 시리아 난민에 대한 편견. 성 소수자에 대한 반감. 한국 사회 곳곳에 들어와 있는 무슬림들. 내 안에는 이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어쩔 수 없게 교육된 편견, 비판적인 사고와 감정, 그런 내 생각에 동조하는 주변인물들이 포진해있다.
예수께서는 당시 이스라엘 인들이 멸시하며 배척하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 하시며 구원을 이야기하셨고,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사마리아 인의 비유를 들어 그와 같은 이웃이 되라 명하셨다. 또한 승천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나타나 네가 갖고 있는 편견을 모두 깨뜨리고 내가 주는 것을 기꺼이 받아 먹으라고도 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들을 모두 안다. 내가 가진 편견과 그로 인한 태도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과 전혀 다른 길인 것도 안다. 알면서도 내 안의 편견을 버리지 못하고 뭇 사람들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용기. 필요한 것은 용기가 아닐까. 동기가 무엇이 되었건 결국에 묵인을 돕기로 하고 움직인 한수의 용기. 밖으로 못 나가게 컨테이너 박스를 에워싼 고압선이 거짓이라는 한수의 말을 믿기로 한 묵인들의 용기. 지금껏 알지 못했던 소수를 깨달을 용기.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용기. 용기내기로 결심한 나를 똑같이 배척할 지도 모를 상황을 기꺼이 감수할 수 있는 용기.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책은 기분이 좋다. 다 읽고 난 뒤에 찝찝함을 느끼지 않아도 되니까. 다소 우울한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한번도 쉬지도 않고 읽어나간 내 노고를 배신하지 않아줘서 고맙다. 재미있게 읽었고, 뜻하지 않게 깊이 생각할 거리를 안겨줘서 놀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