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세트 - 전7권 중편들, 한국 공포문학의 밤
전건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영화 장치 때문에 순간적으로 놀랄 때는 더러 있어도 귀신이니 악마니 하는 것이 등장하는 영상을 보면서 무서워한 기억은 거의 없다. 하도 그런 책들을 많이 봐서 무뎌진 것일 수도 있고, 자라난 환경-종교 덕일 수도 있겠지만, 여하간 나는 최근까지도 요괴니 괴이니 하는 것들이나 일단 사람이 죽고 시작하는 스릴러, 미스터리 등의 책을 꽤 즐겨 읽어왔다.

좀 더 어릴 때는 그런 소재들이 주는 충격을 즐겼고 글에서 풍기는 으스스한 분위기가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결국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관계 속에 있지 않나,라는 생각이 든다.

“산 사람이자 타인의 고통을 등지고 생활하는 것보다는 가족의 죽음을 밑받침 삼아 삶을 잇는 게 나았을까? 정유는 산 사람을 이용하는 것과 죽은 사람을 이용하는 것 중 무엇이 더 질이 나쁜 행위인지 알 수 없었다.”
- 월요일의 중편 공포문학, 이마음, <사람의 심해> 중에서

이미 죽었으니 더는 사람이 아닌 것인가, 혹은 생사 여부에 관계없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주장해 주어야 할 것인가. 이마음 작가의 <사람의 심해>는 짧은 글 속에서 어느 선까지를 사람으로 보아야 할 것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내가 정유의 위치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하니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소재가 주는 충격도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좀 더 살을 붙여 장편으로 한 번 더 읽었으면 하는 욕심도 생겼다.

“내게 한 가닥 남은 공포심은 허무와 연결돼 있었다. 마지막 숨을 내뱉는 그 순간에 지금까지의 인생이 실패 그 자체였다는 걸 받아들이게 될까 봐 두려웠다. 한순간도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는 허무가 최후의 감정으로 남을까 봐 무서웠다.“
- 화요일의 중편 공포문학, 전건우, <앨리게이터> 중에서

마치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향수>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을 때와 같은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다. 이렇게 생생하게 묘사해버리면 아무리 상상력이 빈곤한 나여도 곤란하다,라며 투덜거렸다.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 등장인물이 무려 셋. 그러나 뒤이어 도대체 누가 남의 삶을 죽는 것이 낫다고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하는 죄책감이 밀려와 약간의 자기혐오마저 들었다. 끝끝내 살아남은 시궁쥐처럼, 정말로 살아있으면 그 값을 할 날이 올 거라 믿어야 할지 회의감도 생겼다. 여러 감정이 불쑥불쑥 치밀어 올라 고작 백 쪽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 많이 힘들었다..고 징징거려도 되는 걸까.

길지 않은 시간을 내어 읽기에 적당한 분량의 중편 소설들은 긴 시간 집중하는 게 어려워진 현대인에게 적당할 듯 싶다. (현대인의 집중 시간이 금붕어보다 1초 짧아졌다는 충격적인 보고가 있다) 밤이 점점 깊어지는 이 가을에, 진정한 공포의 세계에 빠져보기를 추천한다. 책 읽기가 힘든 당신이라도 이야기가 주는 매력에 금세 홀릴 것이다. 일곱 편의 중편으로 단련한 후에는 꼭, 장편에도 도전하시길!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었다.”
- 화요일의 중편 공포문학, 전건우, <앨리게이터>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다 - 삶의 불확실성, 인생의 공백
마크 브로갑 지음, 정성묵 옮김 / 두란노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딱히 기다림이 낭비라고 생각한 적은 없지만, 급한 성질머리 때문에 기다리는 시간 자체를 그저 못 견뎌하는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 '내 인생에 인내란 단어는 없다'이니 할 말 다 한 셈이다.

그래도 이 나이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또 여러 책들을 읽으며 내려놓는 법과 기다릴 줄 아는 성품을 조금은 알고 가지게 된 줄 알았더니,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았나 보다. 헛된 내 자부심은 이 책,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다>를 읽으며 다시 한번 산산이 부서졌다. 심지어 책 속에 언급된 성경 구절들은 낯익고 심지어 외우기까지 하는 것들이었으나 도리어 낯설게 다가왔다. 나는 무엇을 놓치고 있었던가.

내가 해온 것은 기다림이 아니라 방관이었고 무위였음을 고백한다. 성경의 기다림은 자포자기에서 비롯된 기다림이 아니라 그분의 뜻이 이루어질 것을 알고 믿음에서 비롯된 적극적 기다림이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책에서 저자는 기다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인간의 반응을 분노, 불안, 무관심으로 설명한다. 아마 나는 그중에서도 무관심의 상태였을 것이다. 그것을 여태 모르지는 않았을 테지만, 두 눈 감고, 두 귀를 막은 채 모르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일에만 적극적이었던 셈이다.

"기다림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향해 가는 믿음의 여행이다."
(벤 패터슨)

책을 읽으며 마음에 감동을 주는 구절을 받아 적으며 다시금 말씀을 되새기는 시간 또한 내게는 그분을 향해 나아가는 여행과도 같았다. 현재 나의 상태를 하나님의 관점에서 톺아보고, 그분의 약속하심에 대해 깊이 묵상하며, 헛되지 않은 기다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깨달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3기의 신앙이라는 말이 있다. 기도하고, 기대하며, 기다리는 신앙이다. 무기력한 삶의 태도를 던져버리고 적극적인 마음으로 주의 말씀을 기다리는 시간은 인생의 공백도, 헛된 시간 낭비도 아니다. 오히려 기다림의 시간에 내 안을 주의 뜻으로 가득 채우는 충만한 삶이 될 것이다.

아직 이 책을 전부 읽지는 못했다. 예전의 나라면 아직 다 읽지 못한 것에 초조해하며 안달 냈을 테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안다. 그저 뒤로 미루고자 하는 회피가 아니라, 저자가 일러주는 말속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고자 하는 욕구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티커 아트북 : 네온 애니멀 - 손 끝으로 완성하는 안티 스트레스 북 스티커 아트북 (싸이프레스) 16
싸이클 콘텐츠기획팀 지음 / 싸이프레스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표지에서 정면을 응시하는 네온 컬러의 호랑이가 무척 인상적인 스티커 아트북이다. 좋아하는 만화인 원피스 스티커 컬러링북도 해봤고, 정방형 스티커를 붙여 풍경을 완성하는 스티키도 해봤지만, 성미 급한 내 성정에는 이 스티커 아트북이 제일 잘 맞았다.

책 자체도 240*250으로 제법 크거니와 그림도, 조각도 큼지막해 그리 오랜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한 장의 그림이 뚝딱 완성된다. 그림 페이지도 쉽게 뜯어내 쓸 수 있게 절취 칼선이 들어가 있는데, 힘을 많이 주지 않아도 부드럽게 떨어져서 종이가 찢어질 염려도 없었다.

조각마다 붙어있는 번호를 찾다보면 마치 퍼즐을 맞추는 기분도 든다. 비정형 조각이라 그림에 맞게 이리저리 돌려 맞춰야 해서 더욱 그러하다. 직소퍼즐도 즐겨하는 편이었지만 고양이들 때문에 손 놓은지 오래인데, 스티커를 붙이며 퍼즐하는 기분도 낼 수 있어 일석이조였다.

복잡한 그림도 아니고 아이들도 흥미를 가질 법한 동물 그림이라 뭐든 심드렁한 척 하는 열두살 남자 아이도 한번 해볼래, 물으니 냉큼 덤벼들었다. 프라모델 조립할 때 쓰는 핀셋이 있어서 나는 그걸 이용해 붙였는데, 아이는 손이 더 편하다고 핀셋을 내던졌다. 그야말로 ‘손끝으로’ 완성하는 스티커북이다.

풍체에 비해 손목만큼은 유리 같아서 사실 손을 쓰는 일을 장시간 하는 게 여간 힘들지 않은데, 이 정도 작업(?)은 이틀에 나눠서 천천히 하다보면 제법 할 만 했다. 뒤로 갈 수록 조각이 많아지니 소요시간은 더 길어질 수 있겠지만, 총 12종의 동물이 전부여서 많이 아쉽지도, 힘들지도 않게 책 한 권을 뚝딱 완성할 수 있을 듯 하다.

완성한 그림은 중간 중간 흰 부분이 드러나긴 했어도 제법 멋지다. 사이즈가 남달라 액자에 넣긴 어렵겠지만, 잘라낸 완성본을 그대로 벽에 붙여보니 제법 훌륭한 팝 아트 전시물이 되었다. 12장 전체를 벽 한가득 붙여두면 꽤 근사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래도 단독주택 - 아파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단독주택에 살아 보니
김동률 지음 / 샘터사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평생을 단독주택에 살았다. 아파트로 갈 뻔한 위기(?)가 두어 번 있었지만, 다행히(??) 잘 이겨내고 단독주택에 남았다. 가끔 쓰레기 처리가 번거로울 때나 한겨울 거실에서 입김이 하얗게 번지는 경험을 할 때면 아파트에서의 삶이 부럽기도 하지만, 한참을 익숙해진 일이라 또 그럭저럭 버텨낸다.

단독이라고 다 같은 단독은 아니지만 그래도 단독은 단독이라, 꽤 공감 가는 입장에서 책을 읽어나갔다. 겨울의 추위는 두 번 말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단독주택 최고의 단점이다. 발정기 고양이 울음소리도 대단하지만 그보다 고양이들끼리 영역 다툼을 벌일 때의 소음이 더 굉장하다. 마당의 나무가 너무 잘 자라 옆집을 침범하게 되면 다툼이 생기기 십상이니 가지치기도 제때 해줘야 하고 낙엽도 부지런히 쓸어내야 하지만 도통 게을러터진 나에겐 역시 아파트에 가야 하나 고민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그럼에도 단독주택의 삶을 포기할 수 없게 만드는 건 뭘까. 저자는 그 이유로 유년 시절의 추억을 꼽는다. 이를테면 아는 맛인 거다.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밤하늘의 별만큼이나 수많았던 이야기, 부르던 노랫소리, 우리 형제들이 다투던 울음소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온가족이 웃고 고함지르고 이야기를 나누던 옛집에는 인적도 없이 정적만 가득하다.
(p.48~49)

단독주택에서의 녹록지 않은 생활 뒤에는 단독주택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것들도 잔뜩 있다. 책에는 봄과 여름을 지나 가을, 또 겨울을 살아낸 단독주택에서의 새로운 삶이 가감 없이 새겨져있다. 건조기 대신 뜨거운 태양 아래 바삭하게 말린 수건의 햇살 냄새, 내 집 마당을 아지트로 삼는 고양이들, 손수 가꾸는 나무들과 텃밭의 푸성귀들, 함께 김장을 담가주는 이웃사촌.

단독주택에 환상을 품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현실은 판타지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다. 단독주택의 단점만 잔뜩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또한 이 책을 추천한다. 집이 돈벌이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한자 그대로 한 지붕 아래 가족이 모여 사는 곳을 의미한다는 전제 하에, 이 책은 단독주택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지를 또한 알려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단독주택에 대해 아무 감정과 생각이 없는 이들에게도 이 책을 추천한다. 살던 대로 강남의 아파트에 계셨더라면 하지 않아도 됐을 고생을 굳이 사서 하는 교수님의 이야기는 그저 구경하는 것만으로 즐겁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색연필 정물화 컬러링북 - 마음이 즐겁고 행복해지는
컬러링북클럽 지음 / 아이콘북스 / 2024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즘엔 더 나오지 않은 분야가 있나 싶을 정도로 온갖 종류의 컬러링북이 쏟아지는데, 이 책은 그중에서도 컬러링 북클럽 소속 7인의 작가가 그린 31개 도안이 수록된 '정물 컬러링북'이다. 여러 명의 작가가 참여한 책이어서인지 도안마다 그림의 풍도 조금씩 다르고, 예제로 주어진 완성본의 느낌도 저마다 달라서 보다 다채롭게 다가온다.


A4 크기와 맞먹는 크기의 종이에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품, 식물을 비롯해 다양한 소재들이 심플한 라인으로 큼지막하게 그려져 있어 일단 마음의 부담을 살짝 걷어내준다.


책은 양쪽으로 쫙 펼쳐진다. 왼편엔 완성본과 컬러 칩, 과정 샷 3컷이 담겨있다. 저마다 사용하는 도구가 다를 테니 색상 이름은 따로 표기가 안 돼있다. 같은 색을 써야 한다는 법은 없기 때문에 각자 원하는 색을 사용하면 그만이지만, 초보는 색을 고르는 과정에서 일찌감치 탈락하기 일쑤다. 그럴 땐 나처럼 비슷해 보이는 색을 골라 제시된 컬러 칩 옆에 살짝 칠해서 비교해 보면 된다.


마당 한구석에서 자라던 찔레꽃을 화분에 옮겨 심은 기념으로 장미가 있는 도안을 골랐다. 과정샷을 흉내 내 밑 색부터 깔아보았다. 이 색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만 돌이킬 수 없어 그대로 진행했다. 스테들러 유성 색연필을 사용했는데, 꽤 부드럽게 색이 올라갔다. 다른 색을 덮어도 미끄러지는 느낌 없이 착착 올라붙었다.


그런데 아뿔싸, 밑 색을 깔고 장미꽃 한 송이 채색하니 어느새 날이 저물었다. 아무래도 슥슥 그으면 금세 종이가 채워지는 오일 파스텔을 주로 쓰다 보니 상대적으로 좁은 면적밖에 채우지 못하는 색연필이 힘들게 느껴졌다. 그런 주제에 세밀한 묘사를 버리지 못하니 더딜 수밖에. 물론 늦은 시간에 시작하기도 했다.


고민 끝에 색연필을 내던지고 오일 파스텔을 꺼내왔다. 청보리밭 도안을 새로 펼쳤다. 슥슥 바르고, 박박 문지르고, 보리 이삭 한줄기, 이파리 여남은 개를 채워갔다. 색연필 못지않게 파스텔도 색이 잘 올라갔다. 금세 도안 하나가 끝났다. 하지만 역시 색연필이 주는 특유의 섬세함은 따라잡을 수 없다. 어쩔 수 없이 다시 장미 도안으로 돌아가서 마저 칠해야 할 성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