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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인 유럽 거리를 수놓다 - 프랑스 자수로 만나는 느릿한 시간
샤를 앙리.엘린 페트로넬라 지음, 신용우 옮김, 아뜰리에 올라(이화영) 감수 / 이덴슬리벨 / 2024년 6월
평점 :
검은 선으로 그려진 낭만적인 유럽 거리 위로, 몇 가지 색으로 포인트만 줬을 뿐인데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자수가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서(알고 보니 착각이었지만) 나 같은 초보도 시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마침 그림 친구 중에 그런 식의 작품 활동을 하는 분이 계시기도 해서 친숙한 소재이기도 했고.
책에는 자수 작품에 필요한 재료들과 기본적으로 사용하게 될 다섯 가지 스티치에 대한 설명이 선행되어 있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나 같은 완전무결한 초보에게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심지어 실을 가닥가닥 뽑아서 써야 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마터면 10가닥이 훨씬 넘는 굵은 실 다발을 바늘에 끼워보겠다고 낑낑댔을 지도 모른다! 그림 친구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재료 준비에서부터 난항을 겪었을 텐데, 운이 좋았다. (자랑하자면, 인복이 넘치는 편이다.) 아무리 검색 몇 번에 해결되는 세상이라지만 적어도 스티치 기법 관련해서는 요즘에 나오는 책들처럼 영상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처리해 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앞서 내 착각에 대해 언급했는데, 건물을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그린 후 나무나 꽃처럼 색색깔 포인트만 자수를 놓으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코, 맙소사! 왜 먹지가 필요한가 했더니 건물 부분도 검은 실로 라인을 따야 하는 거였다. 잠시- 꽤 오래 고민을 했다. 나는 이걸 왜 하려고 하는 거지?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명쾌했다. 나는---- 즐거워야 한다! 서문에 실린 저자의 한 마디가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건 결과물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수놓는 과정이다.
p.9, 서문 중에서
좀 비뚤게 그려져도, 완성도가 많이 떨어져 보여도, 제일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내가 마땅히 누려야 할 즐거움인 거니까. 자수 선배인 그림 친구의 조언을 따라 그림 그릴 때 사용하던 피그마 펜으로 천에 바로 그림을 그렸다. 처음엔 가는 촉으로 스케치하듯 라인을 그리고, 좀 더 굵은 촉으로 덧칠을 해서 되도록 자수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진하게 만들었다. 책에선 책의 도안 아래에 먹지를 깔고 그리라고 조언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아 보일 가장 단순한 도안을 골랐다. 검은 실 사용은 과감하게 버리고, 바로 초록색 실을 집었다.
책 앞쪽의 다소 불친절한 설명 파트와 달리, 본격적으로 수를 놓는 과정은 사진과 설명이 세세하게 실려있어 비교적 따라가기 수월했다. 다만 실의 가닥수나 몇 번 감아내느냐 하는 부분은 내 판단에 따라 조절했다. 나쁘지 않았다. 막눈인 내 눈엔 어차피 다 훌륭해 보인다. 무엇보다- 나름 즐거웠다.
한 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 책은 아주 초보인 사람에겐 약간의 벽이 있고 여전히 자수는 내게 좀 먼 그대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덕분에 손자수의 소소한 즐거움을 맛볼 수 있었다. 굳이 어렵고 특별한 기법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멋진 작품을 만들 수 있다는데 고무되었다.
특히 자수를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영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자수 작품을 만들 수 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고, 더 다양한 표현 방식을 끌어내는데 큰 도움이 될,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이 가지는 가치가 그런 측면에서 참- 크게 다가왔다. 한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의 일상적인 거리 풍경을 만나보는 즐거움은 덤이다.


당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건 결과물이 아니라, 한 땀 한 땀 수놓는 과정이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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