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아이디가 고로케라고 하는 어느 분과 이뽈리뜨에 대해 논쟁한 적이 있다. 이 책에서 이뽈리뜨의 인용문 하나를 옮겨 적었더니 독일어 겨우 읽어내는 나를 나를 보고 이뽈리뜨의 '논리와 실존'이라는 저서를 불역본으로 봤는지, 영역본으로 봤는지를 너무나 진지하게 물어서 나의 어학 공부에 대한 의욕을 고취시킨 논쟁으로 기억한다 (결국 인문학 공부는 어학이 그 사람의 지식폭을 결정짓는다). 그 논쟁은 결국 쌍욕(바보, 머저리, 병신)까지 오가는 것이 서로간의 인격형성에 좀 안 좋다고 생각되어 둘이서 서로 대화방에서 만나 화해로서 기분좋게 끝을 냈다. 지금은 그분이 나를 보면 항상 존경스러운 어투로 칭찬하는 것이 차라리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오늘날 프랑스 철학이 세계에 유행을 하지만 그 기원은 이뽈리뜨의 헤겔 정신현상학 변역에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들뢰즈나 데리다 푸코 같은 이들의 수업기간에서 이뽈리드와 헤겔의 이름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다.(푸코와 들뢰즈는 그의 강좌를 들었고 데리다는 그의 조교였다.) 이뽈리뜨가 살아온 시대는 헤겔에 대한 해석과 마르크스와의 대비(인간주의적 맑스 해석), 또 현상학의 수용과 실존철학의 틈바구니에서 헤겔 철학을 올바르게 규정짓는 그의 사상과 무관하지 않았는데, '의식'이라는 문제에서 '언어'라는 새로운 철학적 문제에 연관되어지는 현대철학의 선구는 이미 헤겔의 영역 속에 포함되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 이뽈리뜨의 평생작업이었고 이런 점은 데리다난 레비나스 같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한다. 덧붙이자면 소위 68세대라 불리는 알뛰세 주의자들은 샤르트르, 이뽈리뜨, 르페브르 같은 거의 아버지뻘 세대들을 비판하며 이론중심적이며 구조주의적인 맑스주의 해석을 창안하다. 사실 프랑스 철학자들의 모든 논의에서 헤겔의 정신현상학에서 그 기원을 볼 수 있기에 내가 헤겔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많은 철학자들의 사상을 읽어내는데 너무나 커다란 이익이 된다. 어느 선배는 내게 후설을 권유했지만 아마 내가 그런 질문을 받는 다면 헤겔을 보라고 권할 것이다. 내사랑 헤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