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난 이들은 남지 못한 게 아니라 남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고, 남은 이들은 떠나지 못한 게 아니라 떠나지 않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이제는 안다. 어느 쪽을 선택했든 묵묵히 그 길을 걸으면 된다는 것을. 파도에 이겨도 보고 져도 보는 경험이 나를 노련한 뱃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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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한 마음에 지하의 장례식장을 빠져나오면 하얀색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병원을 걸어다녔다. 그럴 때면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들리곤 했다. "과거의 우리를 생각할 수 있는데, 왜 미래의 우리는 생각할 수 없을까?"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02

하지만 내가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는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글을 읽으며 그는 자기 글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강의실에서 자신이 쓴 글의 한가운데로. 여기 있지만 저기에도 있는 사람. 그날은 내가 소설가에 대한 정의를 얻은 날이기도 하다.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다른 세계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사람.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05

외삼촌의 이야기에는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동시에 인간이 경험하는 비극의 핵심에 가닿는 진실이 각인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기억하지 못해 슬퍼진다는 것. 그러므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의 슬픔은 괜찮아질 수 있다는 것.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06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은 세 번의 삶을 살게 된다.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는 첫번째 삶, 과거를 기억하며 거꾸로 진행되는 두번째 삶, 그리고 두번째 삶이 끝나고 다시 과거에서 현재로 진행되는 세번째 삶. 그런데 이 세번째 삶은 첫번째 삶과는 다르다. 그 안에 미래가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06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07

유한한 육체의 시간 속에서 비관할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김연수는 무한한 정신의 시간 속에서 낙관할 수 있는 "깊은 시간의 눈"(「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에 대해 말한다. 깊은 시간의 눈 속에는 나에게 들어온 타인이 있고 나를 품은 타인이 있다. 나와 타인이 섞이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은 인생의 행과 불행에 새로운 의미가 생겨나는 시간이다. 미래를 기억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아름다운 시간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07

「이토록 평범한 미래」는 현재 부부인 ‘나’와 지민이 연인이 된 1999년 어느 여름날에 대한 회상으로, 두 사람은 몇 가지 일을 경험하며 예언이란 예외적인 존재만이 할 수 있는 신비스럽고 불가사의한 말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가장 보통의 사건임을 깨닫게 된다. 그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에서 지민과 ‘나’는 지민의 엄마가 쓴 소설 『재와 먼지』의 줄거리를 알게 되는데, ‘시간여행’에 대한 일종의 판타지 소설인 『재와 먼지』에서 한 연인은 자신들의 사랑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좌절해 동반자살을 한다. 자살 직후 임사 체험을 하게 된 두 사람은 그날을 시작으로 거꾸로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날마다 어려진 끝에 자신들이 처음 사랑에 빠졌던 순간에 이른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시간은 다시 원래대로 흐르고 그들 앞에는 세번째 삶이 펼쳐진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09

"정신의 삶은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멀어지는 고독의 삶을 뜻하지. 개별성에서 멀어진 뒤에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우리의 정신은 얼마간 서로 겹쳐져 있다는 거야. 시간적으로도 겹쳐지고, 공간적으로도 겹쳐지지. 그렇기 때문에 육체의 삶이 끝나고 난 뒤에도 정신의 삶은 조금 더 지속된다네. 우리가 육체로 팔십 년을 산다면, 정신으로는 과거로 팔십 년, 미래로 팔십 년을 더 살 수 있다네. 그러므로 우리 정신의 삶은 이백사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이백사십 년을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을 거야."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0

이들에게 세번째 삶이란 유한한 인간이 영원을 실천하고 낙관을 확신할 수 있는 삶의 방법이다. 미래가 기준이 되어서 현재를 결정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주체를 변형시켜나가는 정신의 삶을 살 수 있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1

실천을 중요하게 여겼던 스토아주의자들은 죽음, 질병, 고통 등과 관련된 참된 원칙들을 발견하고 그에 부합하게 행동할 수 있도록 수련하기 위해 ‘죽음 명상’2)을 했다. 죽음 명상은 인간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 죽음을 현재화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 수련의 핵심은 하루하루를 생의 마지막처럼 사는 데 있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1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흐르는 건 기억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기억이 흐르는 길을 만들어내는 것뿐이지만 기억의 흐름을 만듦으로써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살 수 있다. 그 긴 시간 속에서, 짧은 시간 속에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을 목도하는 우리는 세상을 낙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2

시간이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흐른다는 근대적 시간 개념은 기억의 대상을 과거에 한정 짓는다. 하지만 시간이 다시 정의되면 기억도 다른 범주를 필요로 한다. 경험한 것만을 기억할 수 있다는 믿음은 경험하지 못한 것도 기억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뀌고, 기억의 쓸모는 무한히 확장된다. 내게 생길 일을 기억하는 건 모두의 일을 기억하는 것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2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 그것을 기억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5

자신은 이제 새들이 모두 날아가고 난 뒤의 빈 나무 같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한번 시작한 사랑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고, 그러니 어떤 사람도 빈 나무일 수는 없다고, 다만 사람은 잊어버린다고, 다만 잊어버릴 뿐이니 기억해야만 한다고, 거기에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할 때 영원히 사랑할 수 있다고.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75

세번째 삶을 살 수 있다면, 단 한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매일의 시련과 불행 속에서도 우리는 새 바람을 맞을 수 있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5

"버티고 버티다가 넘어지긴 다 마찬가지야. 근데 넘어진다고 끝이 아니야. 그다음이 있어. 너도 KO를 당해 링 바닥에 누워 있어보면 알게 될 거야. 그렇게 넘어져 있으면 조금 전이랑 공기가 달라졌다는 사실이 온몸으로 느껴져. 세상이 뒤로 쑥 물러나면서 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의 실망감이 고스란히 전해지고, 이 세상에 나 혼자만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 바로 그때 바람이 불어와. 나한테로."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6

"우리의 얼굴은 유동한다. 흐르는 물처럼 시간에 따라 조금씩 과거의 얼굴에서 미래의 얼굴로 바뀌어간다. 그렇게 우리의 얼굴이 바뀔 수 있다는 사실 덕분에 거기 희망이 생겨나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게 예술이 하는 일이라고도." 배우인 명준이 생각하는 좋은 얼굴은 좋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과도 통한다. 새 바람은 공기가 전해주는 희망의 움직임이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7

유진주는 달의 방향만을 생각했다. 도착지가 아니라 방향만을. 방향은 선택하는 것, 방향은 변형이 시작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유진주는 자기 삶을 변형시킨다. 더이상 대답을 구하지 않음으로써.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19

이유의 통로가 없어졌으므로 이제 그녀는 이해의 통로를 걸어야 한다. 그러므로 대답은 이미 그녀의 질문 안에 있었다.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는 것. 이유를 알아내기 위한 시도는 헛될 수 있지만 이해하려고 애쓰는 마음에는 패배한 이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20

희생적인 아버지와 함께했던 유년의 삶, 치매와 함께 시작된 혼돈과 혼돈의 한가운데서 지켜보았던 아버지의 과거, 그 모든 기억들을 품고 시작되는 세번째 삶. 이 순간 나는 진정한 마음으로, 진주에게 불어올 새 바람을 기다린다. 마치 나의 삶인 것처럼, 다른 방향에서 불어오는 새 바람을 기다린다. 정신의 삶에서 세 명의 바르바라가 겹쳐진 시간을 함께 살았던 것처럼 진주의 삶과 나의 삶도 중첩될 수 있다고 믿는다. 깊은 시간의 눈으로 미래를 기억할 수 있다면 진주의 슬픔도 나의 슬픔도 새 바람 속에서 조금씩 괜찮아질 것이다. 바람이, 새 바람이 분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20

눈은 점점 침침해져 ‘삶이 끝날 때 나는 말하고 싶어’ 다음이 쉼표인지 마침표인지도 분간되지 않지만, 이런 시를 읽으면 용기가 생긴다. 잘 보이지 않는다면 안경을 벗고 눈을 좀더 책 가까이 가져가면 된다. 예전에는 하지 않아도 될 불편한 행동이지만, 몸은 불편해도 더이상 거기에 마음을 쓰지 않는다.
대신 가슴을 뛰게 하는 일들이 더 많이 눈에 들어온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22

메리 올리버의 다른 시 「골든로드」의 한 구절을 들려줘야겠다.
그는 "빛으로 가득 찬 이 몸들보다 나은 곳이 있을까?"라고 썼다.
이 경이로운 문장 이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제 나는 잘 알게 됐다. 직전의 시구는 다음과 같다.
"우리의 삶이라는 힘든 노동은/어두운 시간들로 가득하지 않아?"
‘어두운 시간’이 ‘빛으로 가득 찬 이 몸’을 만든다. 지금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이런 것이다. 그리고 이 이야기들은 언젠가 우리의 삶이 될 것이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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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오후, 산책의 끝은 언제나 앨리스의 다락방이었다. 부암동 초입에서 골목길 안쪽까지 종아리가 좀 땅긴다 싶은 정도로 걸어가면 나오는 모퉁이의, 전혀 앨리스처럼 보이지 않는 중년 부인이 10월 하순의 은행잎보다도 더 샛노란 카레를 끓여주는 이층 카페였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65

나무 계단을 밟고 올라가면, 계단 바로 뒤 창가에 두 사람이 나란히 앉을 수 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그 자리로는 늘 하오의 성기고 바랜 빛이 비스듬하게 드리워졌다. 원목 테이블 위 가지런히 놓인 아이비와 산호수와 포인세티아의 초록과 빨강은 저녁을 앞두고서야 또렷해졌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65

"그런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온 앨리스인가요?"
지훈이 카페 주인에게 물었다.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Alice’s Attic〉이란 단편영화에서 따온 이름이에요."
Alice’s Attic. 지훈은 기억하기로 했다.
"자기 안의 두려움 때문에 우리는 세상을 제대로 못 봐요."
"네?"
"그 영화가 그런 내용이에요."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66

서른한 살에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는 "튤립은 맨 먼저 너무 빨개서, 나에게 상처를 준다"고 썼고, 무대의 모리타 도지는 죽은 친구를 기억하기 위해 검은 선글라스를 한 번도 벗지 않았으며, 기억을 모두 지운다고 해도 누군가를 향한 마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미셸 공드리는 영화를 찍었다는 것을 지훈은 전혀 몰랐을 뻔했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67

사람은 평생 삼천 명의 이름을 접한다고 한다. 이름과 얼굴을 함께 기억하는 사람은 삼백 명 정도인데 그중에서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서른 명이고, 절친으로 꼽을 수 있는 사람은 세 명이라고. 그렇다면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72

그처럼 내 안에는 당신이 아니라면 누구에게도 하지 못하는 말들, 아무런 쓸모도 없는 말들이 가득하네요. 끝내 부치지 못할 이 편지에 적힌 단어들처럼. 그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말은, 그때는 말할 필요조차 없었던, 하지만 이제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게 된 그 말, 한때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는 말할 수 있었으나 이제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는 말할 수 없는 그 말,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나를 사랑했던 너에게, 그리고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 당신에게.
부디 잘 지내고, 잘 지내시길.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74

주석에는 할아버지가 번역한 프랑스 철학자 루이 라벨의 책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적혀 있었다.

육체는 우리 외에는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어떤 누구도 들어갈 수 없는 아주 협소한 영역 안에 우리를 가둬버린다. 그러나 영적 삶은 이와 반대로, 우리를 존재하는 것의 공통적인 첫 시원으로 이끌어간다. 또한 고립은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타인을 멸시하기에 비극을 초래한다. 하지만 고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이탈하는 것이다. 이 이탈을 통해 각 존재는 공통의 시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82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하면서 이 우주를 인식하기에는 육신의 삶이 너무나 짧기 때문에 인간은 말과 글을 통해 서로 협조함으로써 자신을 완성해나갈 시간을 단축해야만 한다는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백 퍼센트 동의했다. 덕분에 책은 우리의 나이 차이를 뛰어넘는 징검다리가 되어주었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83

‘여아가 항행하여 무화하면 기식우지진부재리오如我恒幸無禍, 豈識友之眞否哉’라면 리마두의 그 책에 나오는 문장으로, ‘만약 내게 항상 행복만 있고 불행이 없다면 어찌 벗의 참되고 거짓됨을 알 수 있으리오’라는 뜻인데, 그 몇 년 뒤 신유박해가 일어나면서 이승훈이며 이벽이며 정약용 형제들은 그 문장이 가리키는 바를 온몸으로 절감하게 되지. 추국청에서 고문을 받으며 한때의 벗이었던 그들이 서로를 부인하고 고발하는 중심에 정약용이 있었어.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85

‘고립은 자신에 대한 애착에서 생겨나는 것으로 타인을 멸시하기에 비극을 초래한다. 하지만 고독은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이탈하는 것이다. 이 이탈을 통해 각 존재는 공통의 시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91

"그래, 거울을 보면 돼. 거울은 바깥으로 향하는 시선을 안쪽으로 되돌리지. 그럼 인간의 인식을 안쪽으로 되돌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게 하는 거울은 뭐냐? 그걸 알려면 자신이 인식한 세계가 바로 자신의 존재라는 것을 알아차려야만 해. 각자가 보는 세계가 바로 자신의 존재를 비춰주는 거울이니까. 존재의 크기는 그가 인식하는 세계의 크기와 같아. 그렇다면 존재를 확장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은 무엇이겠어?"

-알라딘 eBook <이토록 평범한 미래> (김연수 지음) 중에서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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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도는 태양이 지나가는 길이고, 별자리는 항상 같은 곳에 있는데 지구가 자전할 때 팽이처럼 한쪽으로 기울었다가 스르르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가 하느라고 기준 면이 아주 조금씩 바뀌니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별자리 위치가 오늘날은 조금 틀어져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짐작 섞인 설명은 시작한 지 십오 초 이상 지나면 정적을 불러일으키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 상대방은 이미 내가 앉아 있는 뒤쪽 벽의 무늬를 감상하는 중이고, 나는 입으로는 말을 하면서도 생각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8

연주시차였다. 지구가 태양 주위를 매년 한 바퀴씩 돌면서, 이쪽 끝에 있을 때와 반대쪽 끝에 있을 때 별의 위치가 약간 다르게 보인다. 마치 왼쪽 눈만 뜨고 볼 때와 오른쪽 눈만 뜨고 볼 때 책상 위 물건의 위치가 달라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0

별도 마찬가지다. 멀리 있으면 지구가 6개월에 한 번씩 오른쪽 왼쪽에서 본다고 해도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 있는 별은 위치가 달라 보인다. 반대로 말하자면 시차가 클수록 가까운 별이다. 지구가 일 년 동안 더 큰 원을 그리며 돈다면 별의 연주시차는 더 클 것이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1

그런 사람들이 좋았다.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3

대기를 구성하는 물질의 스펙트럼을 보면, 각자 정해진 파장에서 삐죽삐죽 방출선을 내보인다. 얼핏 보면 바코드처럼 보이는데, 역할도 바코드와 비슷하다. 어떤 물질이 어떤 온도와 압력 상황에 있는지 알아볼 수 있다. 물론 ‘띡’ 찍어서 바로 정보가 나오지는 않는다. 다양한 물질이 한데 섞여 있으니 누구누구의 방출선인지 한눈에 알아보기가 어렵다. 그런 면에서 스펙트럼은 『어린 왕자』의 ‘모자 그림’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스펙트럼을 분석한다는 것은 그 그림 안에 들어 있는 보아뱀과 코끼리의 피부색과 자세와 몸무게와 나이를 알아내기 위해 여러 가지 샘플을 하나씩 맞춰보는 것과 비슷한 작업이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8

카시니 탐사선이 토성 궤도에 도착해 새로운 데이터를 쏟아내고 있는데, 분석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했다. 타이탄은 토성의 위성인데, 지구와 비슷한 환경인데다 생명체를 구성하는 유기물질이 많아 카시니의 주요 탐사 대상 중 하나였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19

카시니는 1997년 지구를 떠나 여러 행성을 경유하며 약 7년간의 항해 끝에 토성 궤도에 도착했다. 인류가 타이탄을 탐사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알라딘 eBook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심채경 지음) 중에서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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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돌아올 곳이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돌아올 곳 없이 떠나는 여행은 방황이다. - <여행선언문> 중에서
https://www.millie.co.kr/v3/bookDetail/179565568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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