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far as Eichmann could see, no one protested, no one refused to cooperate. "Immerzu fahren hier die Leute zu ihrem eigenen Begräbnis" (Day in day out the people here leave for their own funeral), as a Jewish observer put it in Berlin in 1943.
(Eichmann in Jerusalem, 115p)

To a Jew this role of the Jewish leaders in the destruction their own people is undoubtedly the darkest chapter of the whole dark story.
(Eichmann in Jerusalem, 117p)

We need mention here only in passing the so-called "inner emigration" in Germany—those people who frequently had held positions, even high ones, in the Third Reichand who, after the end of the war, told themselves and the world at large that they had always been "inwardly opposed" to the regime.
(Eichmann in Jerusalem, 126p)

In Kant‘s philosophy, that source was practical reason; in Eichmann‘s household use of him, it was the will of the Führer. (Eichmann in Jerusalem, 13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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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민족을 파괴하는 데 유대인 지도자들이 한 이러한 역할은 유대인에게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 모든 어두운 이야기 가운데 가장 어두운 장을 이룬다.
여기에 대해서는 내가 앞서 언급한 적이 있는 라울 힐베르크의 권위 있는 저술 『유럽 유대인의 파멸』(The Destruction of the European Jews)에서, 이전에도 알려져 있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그의 병적이고도 지저분한 세부사항까지 처음으로 노출된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88p)

아이히만이 아는 한에서는 아무도 저항하지 않았고 아무도 협력을 거절하지 않았다. 1943년 베를린에서 한 유대인목격자가 쓴 것처럼 "매일매일 사람들은 자신의 장례식장을 향해 이곳을떠났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85p)

우리는 여기서 독일에서의 이른바 ‘내면적 이주‘ (inner emigration, 제3제국에서 종종 지위를 가졌던 사람들, 심지어 고위직을 가진 자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자기 자신과 세계에 대해 자기들은 정권에 대해 항상 내면적으로 반대를 했다고 말한 사람들)에 대해 단지 스쳐 지나가면서 언급하도록 하겠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98p)

칸트의 철학에서 그 원천은 실천이성이었다.
아이히만이 말하는칸트의 가정적 사용에서 그 원천은 총통의 의지였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211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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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자본, 가변자본은 생산과정에서 가치가 생산물에 이전되는 방식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개념입니다.
원료나 기계 같은 생산수단은 가치가 변하지 않고 상품에 고스란히 이전되니 불변자본이고, 노동력은 노동자의 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를 생산물에 이전시키니 가변자본이라고 했죠.
반면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이라는 개념은 노동자의 하루 노동시간 가운데 ‘임금에 해당하는 부분’과 ‘자본가의 이윤으로 전환되는 부분’을 구분하는 개념입니다.
(126-127/36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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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onger one listened to him, themore obvious it became that his inability to speak was closely connected with an inability to think, namely, to think from the standpoint of somebody else. No communication was possible with him, not because he lied but because he was surrounded by the most reliable of all safeguards against the words and presence of others, and hence against reality as such. (Eichmann in Jerusalem, 49p)

"At that moment, I sensed a kind of Pontius Pilate feeling, for I felt free of all guilt."
Who was he to judge? Who was he "to have (his) own thoughts in this matter"?
Well, he was neither the first nor the last to be ruined by modesty.
(Eichmann in Jerusalem, 1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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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06p)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1)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를 심판할 자가 누구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
그는 조심성 때문에 패망하게 된 최초의 사람도 최후의 사람도 아니었다.

1) 예수 시절에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의 총독으로 유대인은 예수를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몰아 빌라도에게 고발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유대인의 요구와 정치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판결했는데, 이 판결 후 빌라도는 손을 물로 씻으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83-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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