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거짓말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있었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06p)
"당시 나는 일종의 본디오 빌라도1)의 감정과 같은 것을 느꼈다. 나는 모든 죄로부터 자유롭게 느꼈기 때문이다."
그를 심판할 자가 누구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자기) 자신의 생각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
그는 조심성 때문에 패망하게 된 최초의 사람도 최후의 사람도 아니었다.
1) 예수 시절에 유대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의 총독으로 유대인은 예수를 로마에 대한 반역죄로 몰아 빌라도에게 고발했다. 빌라도는 예수의 무죄를 확신했지만 유대인의 요구와 정치적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를 십자가형에 처하도록 판결했는데, 이 판결 후 빌라도는 손을 물로 씻으면서 자신은 죄가 없다고 말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183-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