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과거세이야기, 아함경, 법구경, 숫타니파타, 화엄경, 초기불전인 테라기타, 테라가타 등 거의 전 경전을 참고로 하여 원문을 뽑고 일반대중들이 이해하기 쉽게 간단한 해설을 붙인 책이다. (4/356p)

깨달음이란 우리 인생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지 말아야 할 어떤 길을 갈 때도 있으며 혹은 하지 말아야 할 어떤 일들을 할 때도 있다.
이때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스스로의 깨달음이다.
마음이 곧 부처이며 법이기 때문에 이 마음을 깨달으면 어떤 고난 앞에도 굴복하지 않고 강한 신념을 가지고 어떤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10/356p)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유하다 도리어 괴로움을 당하는 일을 흔히 보게 된다 사람은 사람에게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 우다나, 초기불전 -
(13/357p)

부처님은 많은 제자들에게 기쁨의 언어(우다나)와 진리의 언어(이티붓타카)를 설법했다.
이것은 재세시에 그 제자들을 위하여 친히 가르침을 던진 짧은 잠언이나 시구(詩句)들이다.
이 짧은 언어들 속에는 감히 말할 수 없는 깊고도 깊은 우물 같은 진리의 언어와 기쁨의 언어들로 가득 차 있다.
(14/356p)

"진리를 찾고 가르침을 잘 받는 사람은 몸에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아도 즐거운 법이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소유하다 도리어 괴로움을 당하는 일을 흔히 보게 된다. 사람은 사람에게 속박되어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이 재가신자에게 한 말의 깊은 뜻은 욕망에 속박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미 스스로 진리를 위해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므로 그것으로서도 자신의 할 일을 다하고 있다는 부처님의 깊은 뜻이 숨겨져 있다.
(15/356p)

제 몸보다 남의 몸을 사랑하고 제 목숨으로 남의 목숨에 견주는 이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 - 출요경 -
(16/356p)

자비심이란 불보살이 중생을 측은하게 여기고 동정하는 마음을 말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이러한 마음을 타고났다. 그러나 환경과 욕망이 생기고부터 인간의 마음속에는 이러한 자비심이 사라진 것이다. (17/356p)

그러나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약자인 짐승과 약자인 인간에게 한없는 자비심을 베풀 수가 있는 것이다. 이것이 불교의 근본적인 이념인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자비심을 가진다면 어찌 사람을 죽일 수 있겠는가. 생명이란 오직 하나뿐이다.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는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생명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으며 그 가치가 있다. (18/356p)

남의 죄를 자주 드러내지 마라
자신의 몸과 입이 깨끗하지 못하면서 남의 죄를 자꾸 들추는 자가 있다면 곧 상대방은 ‘당신이나 잘하라’고 대꾸할 것이다
- 사분율 -
(19/3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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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대는 18세기가 "공적 행복public happiness"이라고 불렀던 것을 발견했어요.
공적 행복이란, 사람은 공적인 생활public life에 참여했을 때, 그러지 않았다면 그에게 닫힌 채로 남았을 인간적 체험의 차원을 혼자 힘으로 열어젖힌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 여러 면에서 완전한 ‘행복’의 일부를 구성한다는 것을 뜻해요.
(168/297p)

역사를 보면 선善한 상황은 지속 기간이 대단히 짧은 게 보통이지만 이후로 장시간 실제로 일어나는 사건들에 결정적인 영향력을 발휘해요.
그리스의 진정한 고전적 시기classical period가 얼마나 짧았는지 생각해봐요. 그런데 그 시기는 사실상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영양분을 공급하고 있어요.
(169/297p)

혁명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탄압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스스로 혁명의 길을 이끈 적은 결코 없었고, 탄압도 멸시도 받지 않았지만 남들이 그런 처지에 놓인 것을 도저히 참지 못한 사람들이 혁명을 이끌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다만 그들은 자신들의 도덕적 동기를 인정하는 게 부끄러워서 그런 사실을 대놓고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에요.
이런 수치심은 대단히 유서가 깊은데, 여기서 그 역사를 세세히 설명하고 싶지는 않아요.
혁명의 역사에도 대단히 흥미로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혁명에는 항상 도덕적 요인이 등장했어요.
요즘 사람들은 그걸 인정하는 것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그게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는 거지요.
(171/297p)

혁명가는 혁명을 만들어내지 않아요!
혁명가는 길거리에 권력이 떨어져 있는 것이 언제인지를 알고, 그걸 집어 들 때가 언제인지를 아는 사람이에요.
무장봉기가 그대로 혁명으로 이어진 적은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어요.
(174/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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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 these crimes were committed en masse, not only in regard to the number of victims, but also in regard to the numbers of those who perpetrated the crime, and the extent to which any one of the many criminals was close to or remote from the actual killer of the victim means nothing, as far as the measure of his responsibility is concerned. On the contrary,
in general the degree of responsibility increases as we draw further away from the man who uses the fatal instrument with his own hands. (24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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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종이라는 문제는 그의 평생을 관통하는 라이트모티프leitmotif. 예술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나 중심 사상처럼 기능합니다. 재판 기록에서 그걸 읽을 수 있는데, 그 문제는 영원토록 불쑥불쑥 튀어나옵니다. 완벽히 허깨비 같은 존재의 라이트모티프와 정말로 비슷합니다.

(126-127/297p)

달리 말하면 그들은 그냥 남들에게 동조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들은 만사에 동조할 준비가 돼 있었어요.
누군가 그들에게 "우리와 살인을 저지르더라도 당신은 고작 우리 중 한 사람일 뿐이야" 하고 말하면 그들 입장에서는 좋은 일이죠. "절대로 살인을 저지르지 않아도 당신은 우리 중 한 사람일 뿐이야" 하고 말해도 그들로선 역시 좋은 일이고요.
그게 내가 그 상황을 보는 방식이에요.

(133-134/297p)

우리가 볼 수 있듯, 동조했던 사람들은 늘 똑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의 행위를 옹호했어요.
그들은 늘 말했죠. "우리는 상황이 더는 악화되지 않도록 계속 그 상태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맞죠? 하지만 이런 옹호는 철저히 거부돼야 마땅해요. 상황이 그보다 더 악화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요.

(137/297p)

방조자가 되는 것과 관련해서 야스퍼스가 중요한 말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는 "우리가 살아 숨 쉬는 것은 죄"라고 말했어요.카를 야스퍼스, 『독일 국민의 죄의 문제Questions of German Guilt』 2판, 포드햄대학교 출판부, 2000, 66쪽─원주.
맞죠? "우리는 입을 굳게 다물어야만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신이 알듯, 목숨을 부지할 줄 아는 것과 그 실행 사이에는 거대한 심연이 있어요. 알고서도 외면하고 떠난 사람과 실행에 옮긴 사람 사이에는요. ……따라서 아무 짓도 하지 않은 사람이, 구경만 하고 자리를 뜬 사람이 "우리는 모두 유죄" 하고 말한다면 그건 실제로 철저히 실행한 사람들을 감싸는 게 돼요. 바로 이게 독일에서 일어났던 일이에요. 따라서 우리는 이런 죄책감을 일반화해서는 안 돼요. 그건 진짜 죄인들을 감싸는 짓일 뿐이니까요.

(137/297p)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내놓은 또 다른 명제가 있어요. 내가 보기에 다음 명제가 우리에게 그 이유를 제공하죠. "자기 자신과 불일치disunity하는 것보다는 세계 전체와 불일치하는 편이 낫다. 나는 통일체unity니까." 내가 나 자신과 통일돼 있지 않다면 감당할 수 없는 갈등이 일어나요. 이를테면 그건 도덕 영역에 모순이 있다는 생각인데, 칸트의 정언명령에서 보아도 여전히 타당한 얘기예요. 이 생각의 전제라면 실제 현실에서 내가 자존심을 유지하는 것인데, 이를테면 나 자신과 하나가 되는 것이며 "나는 이러저러한 일은 하지 않을 겁니다" 하고 말하는 것이에요. 그런 짓을 저지른 누군가와 같이 살길 원치 않으니까요. 내가 이러저러한 짓을 저질렀다면 나한테 남은 유일한 길은 자살이 될 거예요. 아니면 시간이 흘러 기독교적 방식으로 생각하면서 내 행동 양식들을 바꾸고 회개를 해야겠죠.

자존심을 유지한다는 것은 물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뜻이에요. 그리고 자신에게 말을 건다는 건 기본적으로 사유를 하는 거예요. 전문적인 사유가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유를 말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런 생각의 뒤편에 있는 추정은 ‘나는 나 자신과 대화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세계와 굉장히 심하게 분열해서 나 자신과─어쩌면 친구와, 그리고 다른 자아와─대화하는 데 의지하는 것 말고는 어쩔 도리가 없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어요. 아리스토텔레스가 근사하게 말한 "자기 안의 타인autos allos"처럼 말이에요. 내가 보기에 이것은 무력한 상황이 실제로 어떠할지 보여줘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고 그냥 뚜벅뚜벅 갈 길을 간 사람들은 자신이 무력하지만 이 명제를 고수한다는 것을, 무력한 누군가도 여전히 사유는 할 수 있다는 명제를 고수한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들이죠.

(143-144/297p)

이게 이른바 살인자들 사이에서 나타난다는 내면적 이민internal emigration. 나치즘에 반대했으면서 나치가 정권을 잡은 후에도 독일에 남기를 선택한 독일 작가들을 일컫는 논쟁적인 용어이에요─이것은 내면적 이민이나 내적인 저항inner resistance이라는 개념 전체가 소멸했다는 뜻이죠.
내 말은, 그런 건 없다는 거예요. 세상에는 외면적 저항만 있을 뿐이에요. 인간의 내면에는 기껏해야 심리 유보Reservatio mentalis. 노골적인 거짓말은 아니지만 역시 사람들을 기만하는 행위의 한 형태만 있어요. 맞죠? 그것들은 허깨비들이 하는 거짓말이에요.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대단히 역겨운 거짓말이요.
관료제는 대량 학살을 행정적으로 자행했고, 그런 상황은 여느 관료제가 그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익명성의 느낌을 창출해냈어요. 개별적인 인간은 사라졌어요.
관련된 개인이 판사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는 다시금 인간이 돼요. 이게 실제로 사법 시스템의 대단히 인상적인 측면이에요. 그렇지 않나요? 진짜 변신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 사람이 "하지만 저는 그저 관료일 뿐이었습니다" 하고 말하면 판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잘 들어요. 당신이 여기 있는 이유는 그게 아니오. 당신이 여기에 서 있는 것은 당신이 인간이고 당신이 어떤 짓들을 저질렀기 때문이오." 이런 변신은 뭔가 대단히 인상적이죠.

관료제가 본질적으로 익명성을 갖는다는 사실 말고도, 무자비한 행위는 무엇이건 책임이 증발되는 것을 허용해요.
"멈춰서 생각해보라Stop and think"라는 영어 관용구가 있어요. 어느 누구도 하던 일을 멈추지 않는 한 생각에 잠길 수 없어요.
당신이 누군가에게 무자비한 짓을 강요하거나 또는 그들 스스로 그런 짓에 빠져들도록 방치할 경우 늘 똑같은 이야기로 귀결돼요. 그렇잖아요?
당신은 책임에 대한 인식이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번번이 알게 될 거예요. 그런 인식은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해서가 아니라 자기가 하고 있는 행위에 대해서 숙고하는 순간에만 발전할 수 있어요.

(146-147/297p)

"실제로 피해자를 살해한 사람과……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는 책임 범위에 조금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책임의 정도는 자신의 두 손으로 치명적인 살해 도구를 사용한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증가한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바이킹 펭귄, 1963) 247쪽을 보라─원주.

(150/297p)

……정의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아요.
먼저, 정의는 훼손됐던 질서를 회복해야 해요.
이건 질서를 훼손한 당사자들이, 우리가 지금 논의하는 사람들이 유죄판결을 받아야지만 성공하는 치유 과정이죠.
둘째는 내가 보기에 우리 유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판사 중 한 명이 인용했지만 애석하게도 사람들이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흐로티위스Hugo Grotius, 1583~1645. 국제법의 기초를 닦은 네덜란드 법학자를 인용해야겠군요.
그는 가해자가 처벌받아야 하는 이유가 피해를 당하거나 상처를 입은 사람의 명예 및 품위와 관련된다고 말했어요.
이건 피해자가 감내한 고통하고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요.
무엇인가 올바로 세우는 것하고도 전혀 관계가 없고요.
이건 정말로 명예와 품위의 문제예요.
봐요, 우리가 독일에 있었을 때 그 문제는 우리 유대인에게 중대했어요. 독일인들이 그들 가운데 살인자를 두고서도 추호도 동요하지 않으면서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유대인의 명예와 품위에 반하는 생각이에요.

(151-152/297p)

이 현상을 더 잘 이해하고 싶다면─이건 별개의 현상이에요─나탈리 사로트Nathalie Sarraute, 1900~1999. 20세기 중반에 활동한 프랑스 여성 소설가가 쓴 『황금열매』를 읽어봐야 해요.
그녀는 그런 현상을 코미디로 묘사했어요. 그건 실제로 코미디였어요. 지식인 사회를 다룬 코미디요.
그렇지 않나요? 의견들이 이쪽저쪽으로 그네를 타는 것, 그 과정에서 영향을 받는 것 말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런 것들에 영향을 받아요.
그렇죠? 이런 현상은 지능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어요. 사람은 지능이 대단히 높아도 그런 식으로 행동할 수 있어요.

(154-155/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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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는 민족종교national religion예요.
그런데 정치적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많은 유보 조건을 붙일 때에만 타당해요.
유대인들이 세계 곳곳으로 흩어져 고통을 받았던 이 무세계성worldlessness은, 그리고─사회에서 버림받은 모든 이들과 함께─집단에 소속된 이들 사이에서 특별한 온기를 창출해낸 이 무세계성은 이스라엘state of Israel이 건국됐을 때 바뀌었어요.

(84/297p)

Wenn des Liedes Stimmen schweigen
Von dem überwundnen Mann,
So will ich für Hectorn zeugen…

참패한 이를 위한
노랫소리가 침묵이라면,
나는 헥토르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리니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승전 축하Das Siegesfest>에서─원주.

(92/297p)

당신은 현대사회의 특유한 현상으로 대중의 뿌리 상실uprooting과 고독, 그리고 단순노동과 소비의 과정에서 만족감을 찾아내는 인간 유형의 승리를 지적합니다.

(93/297)

개인적 경험 없이 가능한 사유 과정이 존재한다고는 믿지 않아요. 모든 사유는 뒤늦은 사유afterthought예요.

(93/297p)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정치인이라면 전문가들을 소집하는데, 그 전문가들의 관점은 서로서로 대립해요. 문제를 모든 측면에서 봐야만 하니까요. 그렇잖아요, 그렇죠?
정치인은 전문가들의 견해 사이에서 판단을 해야만 해요. 그런데 이 판단은 대단히 불가사의한 과정이에요─그 과정에서 상식이 명확하게 모습을 드러내죠.
아렌트가 ‘상식(common sense, Gemeinsinn)’이라는 말로 뜻하는 것은 사리를 분별할 줄 아는 성인들이 반복해 보여주는 무의식적인 신중함(gesunder Menschenverstand)이 아니라, 칸트가 말했듯 "모든 이가 공통으로 가진 감각…… 심사숙고를 통해 모든 타인의 표현 양식을 고려하는 판단 능력"이다.
R. 베이너(R. Beiner)가 엮은 아렌트의 『칸트 정치철학 강의Lectures on Kant’s Political Philosophy』(시카고대학교 출판부, 1982) 70~72쪽에 인용된 이마누엘 칸트의 『판단력비판』 §40─원주.
대중과 관련해서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곳이면 어느 곳이나 규모에 상관없이 공공의 이익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97-98/297p)

당신은 야스퍼스에게 바치는 헌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성은 혼자 힘으로는 절대 획득되지 않으며, 누군가 자신의 작업을 대중에게 바친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인간성은 자신의 삶과 존재 자체를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venture into the public realm’에 바친 사람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 "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에 실린 「카를 야스퍼스 찬사Karl Jaspers: A Laudatio」─원주.

(100-101/297p)

내게 공공 영역으로 향하는 모험은 명확한 것 같아요.
한 사람이 일개인으로서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내는 거죠.
사람이 자의식에 사로잡혀 공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고 행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은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는 것을 알아요.
말하기도 행위의 한 형태예요. 그게 하나의 모험이죠.
다른 모험으로는, 우리가 무슨 일인가를 시작하는 게 있어요.

(101/297p)

모든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것에 대한 신뢰─만들어내기는 힘들지만 꼭 필요한 신뢰─말이에요.
그게 없다면 그런 모험은 행해질 수 없을 거예요.

(102/297p)

우리는 어떤 범죄자를 떠올릴 때 범행 동기가 있는 사람을 상상해요. 그런데 아이히만을 살펴보면 실제로는 아무 범행 동기가 없었어요. 우리가 일상적으로 범행 동기라고 이해할 만한 게 없었다는 거죠.
그는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조하기를 원했어요. 그는 ‘우리we’라고 말하고 싶어 했는데, ‘나머지 사람들에게 동조하기’와 ‘우리라고 말하고 싶어 하기’만으로도 역사상 가장 극악한 범죄가 자행되게 만들기에 충분했죠.
사실 히틀러 지지자들은 결국 이런 종류의 상황에 전형적인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 사람들은 타인의 지지가 없다면 무력해질 거예요.

(109/297p)

내가 우선 말하고 싶은 것은,
남들에게 동조하는 것─많은 사람이 함께 행동하는 데 끼고 싶어 하는 것─이 권력power을 낳는다는 거예요.
혼자 있을 때는 당신이 얼마나 강한 사람인지 여부와는 상관없이 늘 무력해요.
함께 행동하는 데서 유발되는 이런 권력의 느낌은 그 자체로는 절대로 그릇된 게 아니에요. 그건 인간이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이에요. 그렇다고 선한 감정도 아니에요. 그냥 중립적인 감정이에요. 그건 단순히 하나의 현상이라고 기술할 필요가 있는 보편적인 인간적 현상이에요.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극도의 쾌감이 느껴지죠.

(110/297p)

기능하기functioning는 정말로 변태적인 행위 양식이고, 이런 기능하기에는 항상 쾌감이 따른다는 말을 하고 싶네요.
그렇지만 행위에서 중요한 것은 남들과 함께 행동하기, 즉 함께 상황을 논의하기, 어떤 의사 결정에 도달하기, 책임을 받아들이기,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사유하기 등이 있는데, 이 모든 것이 기능하기에서는 제거돼요.
당신이 거기서 얻는 것은 그저 관성대로 굴러가는 것freewheeling일 뿐이죠.
이런 단순한 기능에서 얻는 쾌감이, 이런 쾌감이 아이히만에게서 꽤나 눈에 잘 띄었어요.
그가 권력에서 특별한 쾌감을 얻었느냐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그는 전형적인 공무원이에요. 그런데 공무원은 공무원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일 때 정말이지 대단히 위험한 신사gentleman예요.
여기에서 이데올로기는 그다지 큰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다고 봐요.
내 눈에는 이게 결정적인 요인으로 보여요.

(110-111/297p)

우리의 총체적인 신화는, 또는 우리의 총체적인 전통은 악마를 타락 천사로 봐요. 타락 천사는 당연히 늘 천사로 남아 있는 천사보다 훨씬 더 흥미로워요. 후자는 우리에게 좋은 이야깃거리를 제공하지 않으니까요.
달리 말해 악惡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는 특히, 그 자체만으로도 진정한 깊이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보장하는 역할을 수행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철학에서도 동일한 상황을 보게 돼요. ‘부정the negative이야말로 역사를 추동하는 유일한 존재다’와 같은 상황을요.
우리는 이 아이디어를 대단히 멀리까지 논의해나갈 수 있어요.
결과적으로, 우리가 누군가를 악마로 묘사한다면 우린 스스로를 흥미로운 존재로 보이게끔 만들 뿐 아니라, 남들은 갖지 못한 깊이를 우리 자신에게 몰래 부여할 수 있어요.
그러지 못하는 이들은 지나치게 얄팍한 사람들이라서 가스실에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지 못해요. 지금 나는 일부러 이런 예를 말하고 있는 것이지만, 결국에는 그게 현실이 되었죠.
어쨌든 악마적인 아우라aura를 자기 자신에게 조금도 부여하지 않은 사람이 존재했다면, 그건 바로 헤어herr 아이히만이었어요.

(113-114/297p)

자, 오해 중 하나는 이거예요.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아주 흔하다고도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 내가 말하려던 바는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려던 게 절대 아니에요.
내가 하려던 말은 오히려 그 반대예요!
나는 내가 누군가를 꾸짖으면 그들이 내가 들어본 적도 없는, 그래서 전혀 흔하지 않은 말을 하는 모습을 완벽하게 상상할 수 있어요. 그러면 나는 "너무 평범해banal. ‘진부하다’라는 뜻도 있다" 하고 말해요. 아니면 "별로 안 좋아" 하고 말하거나요. 그게 내가 말하려던 뜻이에요.

(118-119/297p)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

(122-123/297p)

아이히만 자신도 재판 중에 가끔 칸트를 언급했습니다.
그는 일평생 칸트의 도덕 계율을 따랐으며 칸트의 의무duty 개념을 그의 지도 원리로 삼았다고 말했습니다.

(123/297p)

결국 칸트의 총체적인 윤리학은 모든 사람은 행위를 할 때마다 자기 행위의 규범이 보편 법칙general law이 될 수 있는지 심사숙고해야 한다는 것으로 종합돼요.

(123-124/297p)

칸트철학에서는 어느 누구도 순종할 권리를 갖지 않아요.
아이히만이 칸트에게서 취한 유일한 것은 경향성inclination이라는 치명적인 개념이에요. 칸트의 도덕철학에서 경향성이라는 개념과 의무라는 개념은 늘 대비된다─원주.

(124/297p)

내가 말하는 바는 칸트가 말했듯이, 칸트가 한 말을 지금 그대로 인용해도 된다면요, "다른 모든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이 무능력이에요. 그래요, 그런 무능력……. 이런 종류의 멍청함.

(125/2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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